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4)
제14화 내 이름은 냉하영(2013.02.28.)
우드득-
뼈가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엄승도의 말처럼 초류향의 몸이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피부 가죽이 터질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초류향은 전신이 찢겨져 나갈 것 같은 이 말도 안 되는 고통 속에서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여기서 정신줄을 놓아 버리면 정말로 온몸이 터져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으아아.’이 정도의 고통은 정말 지옥에나 가서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초류향이 필사적으로 고통과 싸우고 있을 때 엄승도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엄승도는 전신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줄기차게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이 망할 꼬맹이의 몸에 내력을 왕창 쏟아 붓고 있었는데 이건 완전히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닌가? 아무리 부어 넣고, 쑤셔 넣어도 끊임없이 내력이 들어갔다. 이놈 뱃속에 아귀가 있어서 내력을 무한정 잡아먹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엄승도는 필생의 대적을 상대하고 난 것처럼 온몸이 점차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뒷목이 뻣뻣해지며 차츰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고비다.’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쏟아 붓던 내력의 줄기가 빠른 속도로 얇아지기 시작했다. 엄승도는 이를 갈았다. 심장이 간질거렸다.
지금 이 상태에서 쏟아 붓던 내력을 끊게 되면 이 꼬마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설사 부처님이라도 꼬마의 몸 안에 폭주하는 저 기운을 막아내지 못할 것만 같다.
지금 이 순간 엄승도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지금으로선 한 가지뿐이다.
물러설 곳이 없는 것이다.
‘오냐 이놈아, 아주 끝장을 보자.’엄승도는 속으로 욕설을 주구장창 쏟아내며 내력을 살짝 줄였다.
그리고 호흡을 고르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운기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초류향의 몸으로 흘러들어가는 내력에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엄승도의 몸에서 흐르는 땀은 좀 전보다 배나 늘어난 것 같다.
지금 엄승도는 내력뿐만이 아니라 무인이라면 절대로 소모해서는 안 되는 진원진기까지 뽑아다 쓰고 있었던 것이다.
쿠콰콰콰-
폭포수처럼 빠져 나가는 내력에 엄승도는 다시금 급격하게 소모감을 느끼고 있었다. 온몸이 무기력해지며 입고 있는 옷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입에서는 단내가 날 지경이다.
그때.
덜컥-
쏟아 붓던 내력이 뭔가에 막힌 것처럼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엄승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력을 거두었다.
그리고 살며시 초류향의 등에서 손을 떼었다.
‘어?’손을 뗌과 동시에 엄승도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세 그대로 뒤로 쓰러져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성공한 건가?’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는지 엄승도는 결과를 확인해야만 했다.
고개를 들어 가물거리는 눈으로 앞을 보자 찐빵처럼 부풀어 있던 초류향이 다시 본래의 크기로 줄어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전신이 마치 호흡이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씩 줄어들었다가 커졌다가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엄승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정신이 드시오?”엄승도는 멍한 눈길로 조기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곧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제가 정신을 잃은 지 얼마나 된 겁니까?”“열흘 정도 지났소.”그 말에 엄승도는 크게 놀란 듯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달리는 마차 안이었다.
“여, 여긴 어딥니까?”조기천은 웃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인 것 같소?”엄승도는 참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얼마 못 간 것 아닙니까?”조기천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 있으면 무릉나루에 도착한다고 하더구려.”“예?”엄승도는 눈을 몇 번 끔뻑이다가 되물었다.
“섬서성을 지나왔다는 말씀입니까?”“그렇소.”산서성에서 출발하여 섬서성을 지나 벌써 목적지인 감숙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불과 열흘 만에 두 개의 성을 지난 것이다. 대단한 강행군이었다.
엄승도는 잠시 멍한 얼굴로 있다가 본래의 기색을 회복한 후 마부석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거기에 있는 게 누구냐?][속하, 진명(盡命)입니다.][내가 너희들에게 크게 신세를 졌구나. 수고가 많았다.][당치도 않습니다. 속하는 그저 사전에 대주께서 명하신대로 이행했을 따름입니다.]엄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정신을 잃기 전에 모든 것을 안배해 둔 것이 다행이었다.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그동안에 별다른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고맙다. 내 이번 일은 잊지 않으마.][속하는 그저 명령대로 따랐을 뿐입니다.]엄승도가 수하의 말에 안도하고 있을 때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초류향이 먼저 엄승도를 향해 입을 열었다.“몸은 좀 어떻습니까?”엄승도의 얼굴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몸 상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얼마나 날려먹었을까?’엄승도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몸 안의 내력을 운기해 보았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내력이 오히려 증가됐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진원진기까지 쏟아 부은 마당이라 상당한 내력 손실을 예상했는데 이건 오히려 내력이 더 늘어나 있지 않은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던 엄승도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진원진기는 어느 정도 손실이 되었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내력을 담아두는 단전 자체의 크기가 더 커진 모양이었다.
‘마치 기연을 얻은 것 같군.’엄승도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달리던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앞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대주님.][무슨 문제?][그게……,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엄승도는 얼굴을 찌푸렸다.곧이어 달리던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섰다.
조기천과 초류향은 습관처럼 마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을 열려고 했다.
그동안 마차가 멈추면 항상 새로운 마차가 눈앞에 대기하고 있었고, 마차를 갈아탄 후 곧장 다음 장소로 출발하곤 했기 때문이다. 헌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깐. 두 분은 이곳에서 기다려주시지요.”엄승도는 둘의 행동을 저지하며 근심스런 얼굴로 마차 문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생각하던 초류향은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푸른 물결에 이내 시선을 빼앗겼다.
거대한 강.
중국대륙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황하강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때 나루터에서는 일단의 무리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선주님!”선박 근처에 있던 몇 명이 호들갑을 떨며 엄승도에게 다급하게 다가왔다.
동시에 엄승도의 귓가로 전음이 들려온다.
[만만치 않은 놈들입니다. 속하가 힘으로 제압하기엔 승부를 쉽게 장담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대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엄승도는 수하의 전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노인네 하나 모셔오는 이번 일정이 예상 밖으로 만만치 않다. 배치해놓은 수하들의 전력이 보통이 아닐진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평범한 무리가 아닐 것이다. 엄승도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면에 있는 다섯 명을 살펴보며 물었다.“이곳에 무슨 볼일이십니까?”“당신이 이 선박의 선주 되시오?”차가운 인상의 젊은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제 막 서른이나 되었을까?
엄승도는 은밀하게 상대를 가늠해 보았다.
‘이놈은…….’고수였다.
그것도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
엄승도는 상대방을 보면서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처음 보는 놈이다.’문제는 그만한 고수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알기론 강호에 현재 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는 어림잡아 오백을 넘지 못했다. 그들에 관한 정보는 엄승도의 머릿속에 이미 다 저장되어 있었다. 그것이 천마신교의 정보력을 말해준다.
그런데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절정의 고수로 등장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정보력에 큰 구멍이 생긴 셈이다.
“제가 선주입니다만 누구신지?”젊은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먼저 본인의 신분을 밝힐 수 없음을 이해하시오. 용건부터 말하겠소. 우리는 배가 필요하오. 반나절이나 협상을 하려 했지만 이들과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었소.”엄승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배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그렇소. 이 배를 빌려주시오. 아니 아예 우리가 이 배를 사겠소. 타고 있는 선원들과 함께.”사내가 소매에서 전낭을 꺼내어 들자 엄승도가 급하게 손을 저었다.
“됐습니다. 이 배는 팔 생각이 없으니 넣어두시지요.”사내가 말했다.
“배 값의 세배를 주겠소.”마치 이래도 안 팔거냐? 라는 말투에 엄승도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열 배를 줘도 팔 생각이 없소이다.”사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엄승도가 비웃은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 표정을 읽은 엄승도가 손사레를 쳤다.
“아 비웃은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이런 곳에서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에 엄승도가 한번 숙여준 것이다.
그 말에 사내는 굳었던 표정을 조금 풀며 말했다.
“우린 정말 급한 볼일이 있소. 그래서 저 배가 꼭 필요하오.”“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배를 알아보셔야 되겠습니다.”엄승도는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로서는 사실 많이 양보하고 있는 편이었다.
헌데 상대는 그걸 모르는지 계속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이미 다 알아보았소. 그리고 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겨우겨우 찾아낸 것이 이 배요. 그러니 부탁 좀 합시다.”“죄송합니다. 이쪽 역시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요.”젊은 사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기세가 점차 험악해져갔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많이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쩌라고?’엄승도 역시 속으로 화가 나는 것을 억누르며 처음과 똑같이 차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들이 기세를 올리든지 말든지 배는 내어줄 수가 없다. 자신은 교의 명령을 이행해야 하기에.
살벌한 기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엄승도를 바라보던 젊은 사내 또한 상대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고수다.’눈앞의 평범해 보이는 이 사내는 정체를 숨긴 고수였다.
본인의 안목으로는 일신의 내력조차 짐작 못할 정도의 고수.
적어도 젊은 사내 자신보다는 몇 수 위의 인물이다.
자연히 그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그때쯤 사내들에게 가려져 숨어 있던 작은 인형(人形)이 앞으로 불쑥 걸어 나왔다. 젊은 사내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소군주님.”“괜찮습니다. 여기부터는 제가 하지요.”소군주라 불린 자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죽립(竹笠:대나무로 만든 삿갓)을 쓰고 있었다. 엄승도가 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계집이었나?’그것도 어린 계집이었다.
소군주라 불리는 소녀를 모시고 온 일행이라……. 엄승도가 머릿속의 모든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눈앞의 고수를 몰라보고 이쪽에서 실례가 많았습니다.”“……실례라 할 것이 있었습니까?”엄승도가 짐짓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자 소녀는 쓰고 있던 죽립을 매만지며 웃음기 어린 말투로 불쑥 입을 열었다.
“헌데 그쪽은 천마신교의 사람입니까?”무표정하던 엄승도의 신색에 변화가 생긴다.
갑자기 꼬마 계집애가 천마신교의 이름을 운운한 것에 놀라 버린 탓이다.
“천마신교!”놀란 것은 소녀를 호위하고 있던 젊은 사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황급히 소군주를 둘러싸며 엄승도를 경계하는 눈으로 보았다.
소녀의 전면을 막아선 그들은 엄승도를 주시하며 여차하면 손을 쓸듯 흉흉하게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엄승도가 곧장 표정 관리를 하며 의뭉을 떨어보았다.
하지만 그건 조금 늦었고, 적절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짐작대로군요.”“…….”엄승도는 가만히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냥 몽땅 죽여 버리고 여길 뜰까?
전력을 가늠해 보니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마땅치 않은 구석이 있다.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수하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전음을 보내 왔지만, 엄승도는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단을 벌이기엔 장소가 마땅치 않다. 너무 공개된 장소였기 때문이다.이곳이 천마신교의 영역이라면 애초에 고민할 것도 없이 손을 썼겠지만, 이곳은 천마신교의 영역이 아니다. 사고를 치면 뒷수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그가 여러 가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소녀가 다시 말했다.
“기련산에 가시겠지요? 저 역시 그곳에 가니까 함께 가면 되겠네요.”엄승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죽립에 가려져 있는 소녀의 얼굴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의 입가에 유지해 오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
“역시 안 되겠다.”생각을 정리한 엄승도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사나운 기운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소군주의 정체가 뭔지 모르지만 입 밖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이 나왔다.
천마신교가 세상에 숨기고 도모하는 은밀한 행사가 기련산에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그의 앞에서 기련산을 운운해? 아무래도 이곳에서 죽여야 될 것 같았다.
“넌 지금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유언이 있으면 지금 해도 좋다.”한번 상대를 죽이기로 마음먹자 엄승도의 몸에서는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뒤쪽에 있는 마차에 귀한 손님 있어서 가급적이면 쓸데없이 피를 묻히기 싫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리가 없었다. 엄승도가 막 그렇게 마음먹고 검 손잡이를 매만질 때, 꼬마 계집애가 눌러쓰고 있던 죽립을 천천히 걷어 올렸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헉…….’대략 열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아직은 앳되어 보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미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소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엄승도의 기억 속에 분명히 저장되어 있는 강호의 중요 인물이었다.
“전 냉하영이라고 해요. 천마신교의 무사님. 반가워요.”엄승도의 얼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그리고 검 손잡이를 매만지던 손을 떼었다.
상대방이 쉽게 손을 쓰기 곤란한 인물인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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