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40)
제140화 마법(2014.05.12.)
마테오 리치는 아까부터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눈앞에 있던 마차와 사람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일이 생기다니?
‘마법인가?’서양에도 마법이라고 불리는, 악마들을 숭배하는 집단이 쓰는 괴상한 요술이 있긴 했다.
하나 그것은 대단히 위험했고, 그 근본도 미약했기에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한데 지금.
바로 코앞에서 사람들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은 대체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단순히 눈속임?’마테오 리치.
이 늙은 노학자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잠시 동안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가, 곧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변정훈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어딘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마법과 비슷한 것을 사용할 줄이야…….
서양에서 천주교에 몸담고 그곳의 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던 마테오 리치였지만, 사실 교리에 나와 있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신봉하지 않는 그였다.
그랬기에 살아 있는 동안 자연의 섭리에서 어긋나는 일을 겪으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한데 눈앞에서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으니 놀람과 더불어 강렬한 호기심이 생겨 버린 것이다.
어떤 현상을 접하면 그 원리를 이해하고 탐구하려는 학자 특유의 본성을 억누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테오 리치는 변정훈이 하는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것은 자침(磁針, 자석)인가 보군.’둥근 원반 위에 복잡한 기호들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는 이상한 형태의 물건.
그 물건의 중심에는 뾰족하게 다듬어진 쇠붙이가 느슨하게 붙어 있었는데, 마테오 리치 입장에서는 꽤나 익숙한 모양새였다.
서양에도 저것과 비슷한 형태의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나침반(羅針盤)이라 불리는 물건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튼 그것과 방금 전까지 마차가 있던 장소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변정훈을 보고 마테오 리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가 손에 잡힐 듯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무엇일까?’이런 경우는 예전에도 종종 있었다.
진리, 혹은 감추어져 있던 지식의 비밀을 엿보았을 때의 느낌.
어둠 속에 곱게 숨겨져 있는 원초적인 형태를 한 진실의 벌거벗은 몸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각이었다.
꿀꺽-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어딘가 으슬으슬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끼며 마테오 리치는 홀린 듯한 얼굴로 바닥에 무언가를 빠르게 그리기 시작했다.
건안왕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마테오 리치의 그런 상태를 알 수가 없었기에 그저 마차가 사라진 곳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마테오 리치는 자신만의 세계에 아주 깊숙하게 빠질 수 있었다.
* * *
마테오 리치는 서양의 기하학을 익히고 그 외에도 산술이나 물리 등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학식을 갖춘 엄청난 지식인이었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는 수학과 천문, 지리, 신학, 법학, 철학 등 서양의 뛰어난 지식들이 가득했다.
그 지식의 양만 따져도 전 세계에 비견될 사람이 드물 텐데, 중국으로 넘어와서 그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거기에 숨겨져 있던 서양과는 다른 지식들까지 머리에 차곡차곡 쌓았으니…….
실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만큼 지식적으로 우월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하나 마테오 리치는 항상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너무도 막연한 느낌이었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변정훈이 보여 주었던 전혀 다른 시각의 학문을 접하자 막연하기만 하던 감각이 손에 닿을 듯 뚜렷해졌다.
‘좌로 열여덟 발자국. 우측으로 스물두 발자국…….’마테오 리치의 머릿속에 제일 처음 마차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바닥에 그려져 있던 괴이한 형태의 문양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머릿속에 하나의 도형처럼 새겨지며 곧장 이곳저곳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바닥에 완성되어 가는 그림은 언뜻 보기에 서양의 마법진처럼 괴이한 형태였다.
모난 곳 없이 둥근 원 안에 이리저리 어지럽게 짜여 있는 선들은 놀랍게도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마테오 리치가 그 규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깨닫게 되자 바닥에 그려져 있던 문양은 어느새 어떤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완성된 그것은 전혀 다른 세상의 학문이었고, 마테오 리치에게는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신세계의 열쇠이기도 했다.
‘이런 것이 존재하다니…….’마테오 리치의 눈에서 흐릿한 빛이 새어 나오다가 사라졌다.
그러다 변정훈이 진법 안으로 사라졌을 즈음 마테오 리치는 자신도 모르게 낮게 탄식을 터트렸다.
눈앞에 있는 이 도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른다.
정말로 서양에서 은밀하게 연구 중인 마법진(魔法陳)일 수도 있었고, 지금 공공연하게 한창 발달하고 있는 연금술(鍊金術)과 같은 종류일지도 몰랐다.
비록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그 작동 원리라든가 진행 순서 등등은 머릿속에 이미 새롭게 정립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의 마테오 리치라면 변정훈이 만들어 놓은 저 진법 안에 들어가더라도 무사하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진법 그 자체를 처음부터 풀어내서 완벽하게 해석해 버렸으니까.
이것은 초류향과 같은 종류의 접근 방식이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는 정관법이라는 특이한 종류의 안법(眼法, 눈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뿐.
잠시 동안 마테오 리치는 자신의 머릿속에 쌓여 있는 지식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너무도 엄청난 진리의 열매를 먹어 버렸기에 그것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때.
“괜찮으시오, 사부? 어딘가 편찮아 보이오만.”마테오 리치는 건안왕의 걱정스러운 부름에 그때까지 고도로 발휘되고 있던 집중력이 왈칵 깨지고 말았다.
동시에 마테오 리치는 휘청거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갑자기 개미들이 전신을 갉아먹는 것처럼 근지러웠고, 코에서 코피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 늙은 노학자는 뱃속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던 뜨거운 것이 한순간에 쪼그라들며 사라지는 감각을 멍한 얼굴로 느끼고 있었다.
그 허탈한 모습을 지켜보던 건안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버럭 소리쳤다.
“게 아무도 없느냐!”“부르셨습니까, 왕야.”“빨리 사부를 의원에게 보여라. 빨리!”“명을 받듭니다.”호위 무사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부들거리며 떨고 있는 마테오 리치를 부축해서 서둘러 의원에게 데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건안왕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부디 그 아름다운 여자만은 무사히 구출해서 나와 주게나.’방금 전 자신이 마테오 리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마테오 리치가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지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건안왕이었다.
만약에 조금만 더 마테오 리치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어쩌면 그도 제갈량처럼 이 세상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의 일.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 * *
변정훈은 진법 안에 들어가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파탄(破綻, 깨어짐이나 일그러짐)이 안에 들어오자 조목조목 보였던 것이다.
그것들을 살펴보던 변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어?’진법의 흐름을 무언가가 강제로 막아 놓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리고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진법이 크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흐름이…… 변했다?’변정훈의 머릿속에 위험신호가 울려 퍼졌다.
불길한 느낌.
동시에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소매를 펄럭이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파사삭-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바닥에 무언가가 부딪치며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거대한 얼음 조각이었다.
그대로 있었으면 고스란히 두들겨 맞았을 것이 아닌가?
‘이건…… 설마?’변정훈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누군가가 진법 안에서 진법의 형태를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진법은 맨 처음 한번 본래의 흐름을 입력시키면 그것이 그대로 유지된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그것이 변할 리 없었다.
한데 진법 바깥도 아니고, 안에 있는 누군가가 지금 진법의 전체적인 흐름을 변형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전혀 강제적이지 않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비록 그 변형이 변정훈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저쪽 일행 중에 뛰어난 진법가가 있었단 말인가?’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상당한 수준의 진법가가 저쪽 일행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의문이 단박에 해결되었다.
변정훈은 눈을 번뜩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재주와 지식들 중에서 단연 최고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진법이었다.
다른 것들은 진법을 배우면서 곁다리로 배운 지식에 불과했다.
‘너는 사람을 잘못 보았다.’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변정훈은 자신이 있었다.
이 진법은 애초에 그가 만들었고, 직접 통제해 왔던 진법이 아닌가?
게다가 그것이 아니더라도 진법을 다루고 만드는 능력만으로 보았을 때 천하의 그 누구도 자신을 위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한 명 정도 있었던가?’하나 그가 알고 있는 위협적인 사내는 이곳에 없었다.
황실에 매여 있는 몸인 것이다.
그가 이곳에 없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차르르륵-
변정훈은 소매에서 길쭉하게 생긴 쇠사슬을 꺼내 들었다.
그는 거무튀튀한 그것을 몸 주변에 둥글게 펼쳐 놓은 후 한가운데에 편안하게 앉으며 눈을 감았다.
진법은 기본적으로 음양오행(陰陽五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인 기운)이 상생상극(相生相剋, 서로 작용하고 반발하는 일)의 원리로 움직인다.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면 진법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 자신의 뜻을 가미할 수 있는 것이다.
파사사삭-!
가만히 집중하고 진법의 흐름을 느끼고 있을 때.
무언가가 좌측에서부터 쏘아져 오는 것을 깨닫고 변정훈은 북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쾅-!
예의 얼음덩어리가 변정훈을 향해 다가오다가 갑자기 공중에서 흩어졌다.
차가운 물방울이 볼에 닿는 것을 느끼며 변정훈은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진법의 흐름이 거셌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진법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는 가만히 빈틈을 노려야 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거칠게 진법을 다룰 수는 없는 법이다.
한 가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진법을 이렇게 세차게 몰아치게 된다면 조만간 진법은 깨어지게 될 테니까.
그리고 진법이 깨지게 된다면 지금 진법을 장악하고 있는 상대방도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너도 그러기는 싫겠지?’잔뜩 공을 들인 진법이 파괴되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최악의 경우 진법을 파괴시켜서 상대방을 상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 정도 실력의 진법가라면 자신을 번거롭게 할 것이 분명하니까.
변정훈이 막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갑자기 주변에 자욱하게 깔려 있던 어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음?’변정훈은 갑자기 바뀐 흐름에 재빨리 적응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순간적이지만 흐름에서 튕겨 나갈 뻔했던 것이다.
‘진법이 깨어져도 상관없다 이거냐?’상대방은 진법이 깨어지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흐름을 마구 조종하고 있었다.
이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진법이 깨어지게 되면 그 반발력으로 엄청난 기운이 몰아칠 텐데…….
전혀 개의치 않다니?
변정훈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일단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은 분하지만 상대방의 움직임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쇠사슬 안에서 정신을 최대한 집중한 채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주변에 가득하던 흐름이 잔잔한 호수처럼 편안해졌다.
변정훈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고, 두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가득했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라니…….’진법을 이렇게까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만든 진법도 아닌데?
변정훈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과거에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젊은 학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호유!’설마 그자가 이곳에 와 있던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볼 때.
검은 구름이 좌우로 갈라지며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서 있는 한 명의 소년.
안경을 끼고 있는 소년은 그를 바라보며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더 해보시겠습니까?”“……!”변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상대방은 주호유가 아니었다.
믿을 수 없게도 이제 열 살 남짓한 어린 꼬마였던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