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43)
제143화 실책(2014.05.22.)
공손천기는 최근 매우 바빴다.
사천 분타의 일들이 안정되자 사방에서 노골적인 견제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야 애초에 그런 적들의 견제쯤은 콧방귀 뀌고 밀어 버릴 수 있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이번 공격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들어왔다.
“확실히 놈들이 이번에는 머리를 잘 썼어. 약한 부위를 정확하게 짚었구만.”“예. 과연 신기묘수 상관중달입니다.”정도맹의 총군사 상관중달.
그가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서 초류향의 아버지.
초무령이 운영하고 있는 표국을 공격해 들어갔던 것이다.
이것은 제법 뼈아픈 실책이었다.
“피해는?”“그래도 다행히 저희 쪽에서 사전에 은밀하게 인원들을 보내 놨기에 최악의 경우는 면했습니다. 소교주님의 가족들을 비롯해서 표국의 주요 인사들은 무사합니다.”공손천기는 턱을 한 번 쓰다듬으며 쓰게 웃었다.
“그 말은 가족들 빼고는 모조리 다 털렸다고 봐도 된다는 뜻이구만.”“……예.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천마신교 대내외의 모든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옥관호 호법.
그가 송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별수 없지. 옥 호법도 바빴으니까.”그랬다.
그들은 바빴다.
그것도 너무 바빴다.
단순히 사천 분타를 안정시키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주변에 본래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정도맹의 세력들을 완전히 몰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창천표국을 지키고 있던 아이들 중에 살아서 돌아온 아이는 몇 명인가?”“천검단 소속의 다섯 명입니다.”“쉰 명을 호위단으로 파견했는데 고작 다섯이 살아 돌아왔다라……. 그래도 상대가 상관중달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잘한 일이다. 상을 줘야겠군.”공손천기는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천검단 소속이라고 했었나?”“예, 교주님.”“그럼 아직 상급 무공까지밖에 열람을 하지 못했겠군.”“예.”천마신교는 그 출신이나 재능에 따라서 무공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에 차등을 두었다.
등급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볼 수 있는 무공의 위력은 천지 차이였다.
“절정 무공까지 열람할 수 있게 해 줘.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두둑이 챙겨 주도록 하고. 그 녀석들 덕분에 내 제자 앞에서 최소한 얼굴은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은인인 셈이지. 잘 보살펴 줘.”“알겠습니다.”“그나저나 정도맹 녀석들에게 어떻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까? 이번 일에 대해 적절한 보답은 해 줘야 할 듯한데.”초류향의 집안을 풍비박산 낸 것.
이것은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마터면 초류향의 가족들을 지키지 못할 뻔하지 않았던가?
그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공손천기는 잠시 고민하다가 옥관호 호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정도맹 소속 구파일방이 어디지?”잠시 지도를 떠올리던 옥관호가 입을 열었다.
“사흘 거리에 사천당가가 있습니다.”“사천당가라……. 딱 좋군.”옥관호 호법은 공손천기를 바라보며 설마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것이지만…… 사천당가를 없애 버리실 생각이십니까?”“그래. 완전히 지워 버릴 생각이다.”옥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된 일이었다.
사천당가는 사천 지역에 세력을 넓히려는 천마신교 입장에서는 거슬리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
“아이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옥관호의 말에 공손천기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번거롭게 일을 만들지 마. 거기엔 내가 직접 간다.”“……!”옥관호 호법이 놀란 눈으로 공손천기를 바라볼 때.
공손천기는 으스스하게 웃으며 말했다.
“되도록 조용하게 일을 진행시키려고 했는데…… 그놈들이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이야기가 다르지.”“…….”“이제 이 지역에 평화는 없다. 놈들에게 본 교 피의 율법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 줘야겠군.”옥관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교주는 진심이었다.
되도록 다른 자들을 해치지 않으려고 했던 교주가 아니던가?
그런데 제자와 관련된 일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잔인해질 수 있었다.
“잘되었군. 아예 이번 기회에 사천에 있는 모든 정도맹 문파를 박살 내 주지. 사천 지역을 통째로 접수하는 것도 괜찮겠군. 저녁에 이 내용에 대한 수뇌부 회의를 할 거니까 다들 그때까지 모이라고 해.”“존명.”“제일 처음은 사천당가다.”공손천기의 중얼거림을 들은 옥관호는 생각했다.
정도맹은 정말로 큰 실수를 했다.
‘하필이면 교주님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을 건드리다니…….’상관중달이 여기까지 생각하고 기습을 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나 어찌 되었건 그의 계획 덕분에 공손천기는 그동안의 방어적인 자세에서 공격적인 자세로 전환해 주변을 깡그리 지워 버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상관중달의 일그러진 얼굴을 직접 보고 싶은 옥관호 호법이었다.
* * *
건안왕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를 대신해서 싸우고 있는 태 공공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는 건안왕이다.
황실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가 태 공공이다.
아니, 어쩌면 태 공공은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한 고수일지도 모른다.
그런 자가 지금 강호에 나와서 정체도 모를 놈에게 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상하군.’수상했다.
태 공공을 저렇게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고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강호에서 흔히 거론되는 구주십오객?
적어도 그들 정도는 되어야 아마 태 공공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저 무식하게 생긴 놈은 구주십오객이 아니었다.
그러니 수상한 것이다.
여태까지 별 신경 쓰지도 않았던 놈들의 정체가 슬슬 궁금해지는 건안왕이었다.
쿠콰콰쾅-!
폭음과 함께 태 공공의 신형이 가랑잎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건안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때.
뒤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태 공공이 입으로 왈칵 피를 토해 냈다.
“우웩!”바닥에 쏟아지는 핏물.
그것을 지켜보던 건안왕은 낮게 혀를 찼다.
‘졌다.’저 정도면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이었다.
건안왕이 작게 혀를 차는 순간.
태 공공이 검을 바닥에 깊숙이 박아 넣으며 정면을 노려보았다.
먼지가 가라앉은 장내에는 주먹을 앞으로 내뻗고 서 있는 노진녕이 있었다.
노진녕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입과 코에서 태 공공보다 더욱 많은 양의 피를 쏟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그는 그 상태에서도 뭐가 즐거운지 실실 웃고 있었다.
“……미친 새끼…….”저놈 역시 죽을 정도의 부상을 입은 게 확실했다.
아니,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저렇게 웃고 있다니 미친놈이 아닌가?
태 공공은 저놈의 정신 상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석상처럼 서 있던 노진녕이 천천히 움직였다.
한 발 한 발 태 공공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다.
하나 그 움직임은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웠고 매우 힘겨워 보였다.
태 공공은 다가오는 노진녕을 바라보며 낮게 이를 갈았다.
‘승부다.’저놈이 움직여서 다가와 준다면 지금으로서는 사양할 필요가 없었다.
최대한 힘을 비축해서 한 번만 검을 뻗으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때.
태 공공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노진녕이 다 죽어 가는 얼굴을 한 채 입을 열었다.
“내 사부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 있다.”“…….”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려고?
태 공공이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을 때.
노진녕이 피를 너무 쏟아서 허옇게 질린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본래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강해지는 법이라고 하셨지. 그때는 믿지 않았는데 그 말은 진짜였다.”“…….”저놈이 분명 호흡을 고르기도 벅찰 텐데 갑자기 이 무슨 개소리인가?
태 공공이 필사적으로 힘을 끌어모으며 검 손잡이를 꽉 쥐어 갈 때.
노진녕이 말했다.
“너는 나를 못 이겨. 난 그녀 앞에서 절대 쓰러질 수 없거든.”노진녕은 말을 하면서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서 선우초린을 바라보았다.
그 느끼한 시선을 받은 선우초린이 바로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찡그린 얼굴조차도 노진녕에게는 마냥 예뻐 보였다.
‘이런 유치한 장난질에 말려들면 안 된다.’태 공공은 노진녕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호흡을 조절했다.
문득 태 공공은 눈 앞에 있는 이 무식한 놈이 의외로 대단히 똑똑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긴박한 순간에 이토록 유치한 심리전을 펼칠 줄이야…….
태 공공이 노진녕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노진녕이 어떤 열기가 가득한 얼굴로 태 공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못 이기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가르쳐 줄까?”“…….”태 공공은 대답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호흡만 골랐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 검을 휘두르면 저 지긋지긋한 놈의 몸뚱이를 갈라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노진녕이 태 공공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 단순한 동작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태 공공은 땅에 박아 놓았던 검에 힘을 주었다.
“거세당한 네놈은 사내가 아니라서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야 한다는 내 숭고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러니 너는 졌다.”거세당한 사내.
환관 태 공공은 그 부분에서 마침내 분노했다.
“……그만 닥치고 이거나 먹어라!”다른 것들이야 여유 있게 웃으며 대처할 수 있었지만 감히 자신 앞에서 거세를 운운하는 미친놈은 찢어 죽여야 직성이 풀렸다.
최후의 순간.
그 마지막 도발에 결국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꽤나 컸다.
태 공공이 휘두르는 검을 차분하게 지켜보던 노진녕은 부상당한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유연한 동작으로 그것을 회피했다.
태 공공의 얼굴이 흙빛이 될 때.
노진녕이 우직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콰직-
“커헉!”갈빗대가 부러지는 느낌과 함께 태 공공의 신형이 옆으로 꺾여서 날아갔다.
털썩-
그걸로 끝.
한번 쓰러진 태 공공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의 승자는 노진녕인 것이다.
노진녕은 감격한 얼굴로 선우초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자신의 승리를 바치고 싶었다.
하나 선우초린은 이미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헤헤, 괜찮아. 이제 시작이니까.’노진녕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하며 건안왕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겼다.”“…….”잔뜩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주제에 으스대는 꼴은 정말이지 웃겼다.
두 눈은 풀려 있었고, 다리는 후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그 우스운 꼴을 보면서도 건안왕은 웃지 못했다.
그저 볼을 몇 번 씰룩거릴 뿐.
그러다 바닥에 널브러져서 꿈틀거리고 있는 태 공공을 바라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저놈을 당장 의원에게 데려다 줘!”“명을 받듭니다.”수하들이 태 공공을 데리고 사라질 때까지 건안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좋다. 이제부터 네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기로 하지. 나 건안왕은 사내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좋아. 그래야 사내지.”건안왕은 씁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약속은 약속이었다.
아쉽지만 저 희대의 미녀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건안왕이 우울한 얼굴로 선우초린을 응시하며 진정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우초린은 두 사내의 작당에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억지로 내리누르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곳에서 지금 발작해 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게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죽이고 싶다.’속에서 천불이 치솟는데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가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다 문득 선우초린은 자신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공손아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 부러워하면 안 돼요, 소군주님. 저것들은 둘 다 완전히 미친놈들이라구요.”“그래도…… 너무 멋지잖아. 노진녕 호위 무사님.”부러움이 가득한 시선.
그 시선과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선우초린은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저게 멋져요?”“응. 링링은 안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고백한 거잖아. 사내답게.”이게 멋지다고? 사내답다고?
대체 어디가?
선우초린의 눈에는 그저 또라이로 보일 뿐이었다.
그동안 그녀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또라이 취급을 받아 왔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정말 부러워, 링링…….”“아놔…….”선우초린이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릴 때 공손아리는 슬쩍 초류향 쪽을 바라보았다.
초류향 역시 때마침 공손아리 쪽을 바라보다가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딱 마주쳤다.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
초류향은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공손아리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때 선우초린을 보면서 헤벌쭉 웃고 있던 노진녕이 웃는 얼굴을 한 채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바닥과 충돌하기 직전 그를 부드럽게 받아 든 초류향은 품에서 약을 꺼내어 노진녕에게 먹인 후 한숨을 내쉬었다.
척 보기에도 만신창이가 아닌가?
방금 전에 쓰러진 태 공공보다 오히려 상태가 더 심각했다.
숨이 꼴딱 넘어갈 지경인 것이다.
이 상태로 여태까지 멀쩡하게 움직인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사랑의 힘인가?’노진녕이 깨어 있었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만 같았다.
초류향이 피식 웃고 있을 때.
그런 초류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건안왕이 입을 열었다.
“한데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대체 너희들의 정체가 뭐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