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대의(2014.06.02.)
사천 분타로 복귀하고 있던 선우초린은 기분이 좋아졌다.
만면에 화사한 미소를 그리며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최대한 복귀를 늦춰야겠지?’소교주.
그 시건방진 꼬마를 드디어 해치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우초린이 막 웃으며 공손아리의 머릿결을 쓰다듬고 있을 때.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전음이 들려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뭘?][무엇을 어떻게 하셨길래 소교주님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나오신 겁니까?]선우세옥.선우세가의 어둠이자 암살을 전문적으로 하는 단체인 지룡단의 단주.
그가 당황한 음성으로 선우초린에게 질문했다.
[왜? 마음에 안 들어?][그럴 리가요? 오히려 너무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 주시니 당황스러워서 그렇습니다.]이미 다 잡은 물고기를 대하는 말투.선우초린의 입가에 가느다란 비웃음이 그려졌다.
[왜? 지금이라면 소교주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후후후, 물론이죠. 설령 저놈이 소문처럼 진짜 화경의 고수라도 이번엔 죽습니다.][흐응……. 가능할까?][믿고 지켜봐 주십시오. 소가주님. 게다가 여긴 저희들만 온 게 아니거든요.]자기들끼리만 온 게 아니다?그럼 누구 또 다른 자들이 왔다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선우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세가에서도 사람들이 나왔나 봐?][예. 사대 세가 전부가 나와 있습니다. 그들도 지금쯤 확실히 알았겠죠. 이번처럼 좋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쯤은.][흠.]사대 세가의 살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그들은 모두 사람을 죽이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였다.
대대로 가문에 해가 되는 자들을 척결해 왔던 사람들.
그런 자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였다.
[근처에 마라천풍대가 있어.][예. 한데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그래도 부대주가 나와 있어, 멍청아. 쉽게 보면 당해.]선우세옥이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됐군요. 그자도 오늘 이곳에서 죽을 겁니다.]강한 자신감이었다.사실 선우초린 역시 오늘이 초류향을 죽이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뭐, 성공하기를 빌어 줄게.][예.]선우세옥은 마차에서 떨어져 나오며 흐릿하게 웃었다.최근에 정말 초조했었다.
초류향을 죽일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우초린이 경고했던 것처럼 초류향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고, 세상에 드러난 그것의 정체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무공으로는 화경의 고수를 꺾고, 진법으로 천하 사패를 무너뜨렸다.’더 성장하게 되면 어느 정도의 괴물이 되어 버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대 세가는 두려웠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런데 정말 뜻하지도 않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사대 세가는 이번 일에 정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초류향을 죽이기 위해 움직인 곳은 사대 세가뿐만이 아니었다.
* * *
무림에서는 자신의 밑천이라고 할 수 있는 무공은 절대로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 파훼법이 나오고, 파훼법이 나오면 그 무공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진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초류향은 마테오 리치의 제안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마 리 선생이라면 금세 배울 수 있을 겁니다.”“괜찮으시겠소?”“어차피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뜨이셨으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스스로 배울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해 드리는 건 단지 그 시간을 단축해 주는 것 정도입니다.”그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다.
지식을 나누는 것에 대단히 보수적인 나라였기에 초류향의 이런 태도는 마테오 리치에게 새로운 감명을 주었다.
“나 역시 그대에게 숨기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해 주겠소.”“감사합니다.”둘은 그렇게 서로가 가진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각자 상대방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가지고 있던 지식들을 아낌없이 전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테오 리치는 자신이 알고 있던 수학적인 지식 외에도 천문과 지리, 그리고 서양의 뛰어나면서 개방적인 사고방식들을 전수하였다.
특히 초류향을 감탄하게 한 것은 마테오 리치의 독특한 ‘기억술’이었는데, 이것은 당대의 중국에서도 크게 회자가 되었던 방법이었다.
수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마테오 리치의 뛰어난 기억력을 시험하기 위해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
동물이 그려진 수백 장의 그림을 뒤집은 후에 그것을 일일이 알아맞혀 보라고 한 것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단 한 번만 보고 그것들을 모두 정확하게 맞혔고,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하며 비결을 배우고자 했다.
그 기억술을 지금 초류향이 전수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식을 전해 줌과 동시에 엄청난 흡수력으로 상대방의 지식을 빨아들였다.
겨우 반나절 만에 각자 서로에게 원하던 것을 얻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잠시 서양의 지식들을 머릿속으로 차분하게 정리하던 초류향은 빙긋 웃었다.
‘역시 남아 있기 잘했다.’지금 얻은 지식은 책으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초류향이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바깥에 더욱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리 선생님.”“아니오. 내가 더 고맙소이다.”둘은 서로에게 더욱 공손하게 대했다.
진정으로 감탄했기 때문이다.
마테오 리치는 흡족하게 웃다가 문득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해도 되겠소?”“예. 경청하겠습니다.”“그대처럼 뛰어난 자는 반드시 적이 생기기 마련이오. 그러니 의도적으로 발톱을 숨겨 위험을 피함이 낫지 않겠소?”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었다.
눈앞에 있는 이 노학자의 진심 어린 걱정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초류향 역시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있는 곳은 평범한 곳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것처럼 겸손의 미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가장 원초적인 폭력과 강력한 힘이 칭송받는 그러한 불합리한 세계입니다.”“허어…… 그게 강호라는 곳이오?”“예. 저는 이미 이 세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생각보다 깊숙하게 들어왔기에 이제 어디로든 빠져나갈 수도 없게 되었지요.”잠시 빈 허공의 어딘가를 바라보던 초류향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사는 세계와 제가 사는 세계는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지독하게도 불합리합니다. 저는 이 불합리하고 야생적인 세계에서 정점을 찍을 생각입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곳으로 올라가 더 이상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는 그런 세계로 만들 겁니다.”초류향은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던 마음속의 진심을 눈앞에 있는 오늘 처음 보는 노학자에게 털어놓았다.
그 진심에 얽혀 있는 고뇌를 읽은 마테오 리치는 초류향을 한동안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오. 감당할 준비가 되었소?”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에는 단호함이 있었고, 그 무엇에도 쉽게 스러지지 않을 각오가 배어 있었다.
“저에게 산법을 가르쳐 주었던 스승님을 이 세계에 들어와서 잃었습니다. 저는 이 세계를 두 번 다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으로 바꿀 겁니다.”최초에는 그저 조기천 스승님의 복수만을 생각했던 초류향이었다.
하나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대의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아수라장이 펼쳐지더라도 감내할 겁니다.”초류향과 맞서 싸우는 적들만 피를 흘리는 게 아니었다.
싸움은 언제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었고, 그것이 항상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반드시 스스로의 피해도 각오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공평하다.’초류향이 가려는 길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갔기에 마테오 리치는 그저 안타까운 얼굴을 해 보일 뿐이었다.
“무운을 빌겠소.”“감사합니다.”초류향은 마테오 리치에게 읍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잠시였지만 선생님과 이야기한 것은 꿈속을 거닌 것처럼 행복했습니다.”이건 진심이었다.
“나 역시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소.”마테오 리치도 초류향을 향해 마주 읍을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 작은 아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험난한 길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했지만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니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면 했다.
그러니 웃으며 보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초류향은 마테오 리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법에 대해서 스승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이토록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마테오 리치와 보낸 반나절이라는 시간은 초류향에게 있어서 정말로 소중하고, 앞으로의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도 분명히 도움이 될 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겠지.’산법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안 되었다.
이제는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할 시간인 것이다.
서늘한 눈으로 마테오 리치에게서 고개를 돌린 초류향은 천천히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는 건안왕이 미리 준비해 둔 마차가 놓여 있었다.
차분하게 마차에 오르던 초류향은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녁이라…….’마치 핏빛처럼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돌아가는 길은 분명히 험악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넘어가야만 했다.
일부러 이렇게 되도록 의도한 것이니까.
‘다시는 아무도 나를 넘보지 못하게 해 주겠다.’항상 스승님의 뒤에 숨어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 무엇에도 꺾이지 않을 힘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세상을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초류향이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은 그런 패왕의 길이었다.
다그닥다그닥-
마차가 움직이며 대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초류향은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느껴지는 사나운 살기에 희미하게 웃었다.
스스로가 각오했던, 그리고 예상했던 그림이 이제부터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교주님. 저희가 길을 뚫겠습니다.]초류향은 귓가에 들리는 전음에 고개를 저었다.“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적들이 이빨을 드러낼 때까지 내버려 두세요.”[……존명.]윗사람이 명령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그게 부당해 보이고 이해가 안 될지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이런 대위기에 두 손 놓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감녕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수하들에게 시켜 그들도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쉽게 당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소교주님.’감녕은 수하들을 이끌고 이동 중인 마차의 주변을 마치 포위하듯이 감쌌다.
두두두두-
미친 듯이 질주하는 마차 주변에 시커먼 흑의를 입은 마라천풍대의 고수들이 포진했다.
이건 사방에 과시하는 것이었다.
잡스러운 놈들은 애초에 마차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인간의 벽을 만들어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초류향은 그 모습을 보면서 흐릿하게 웃었다.
자신을 생각하는 감녕의 마음이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놈들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아니, 사실은 포기해도 곤란했다.
초류향이 마차 창밖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을 때.
드디어 첫 번째 적들이 등장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