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5)
제15화 초류향과 냉하영의 밀당(2013.03.04.)
“일이 그렇게 되어서 저쪽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조기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야 별 상관이 없소만, 원래 그게 문제가 되는 일이오?”엄승도는 머리를 긁적였다.
별다른 이견이 없을 거라 예상했었지만 자신의 불편한 심정으론 그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면 뭔가 궁리해볼 요량이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 양해해주십사 물어보는 겁니다.”“알겠소.”별 어려움 없이 조기천의 양해를 얻은 엄승도는 마차에서 나와 냉하영에게 걸어갔다.
“손님들의 양해를 구했습니다.”“고마워요. 다행이네요.”“먼저 배에 오르시지요.”“예. 감사드립니다.”엄승도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수하들을 시켜 이곳에 있었던 흔적들을 지우게 하고는 마차로 돌아갔다.
“배에 오르시지요.”“알겠소.”
조기천과 초류향은 마차에서 내려 배에 올랐다. 중형급의 선박이라 그런지 내부의 규모도 컸다. 잠을 잘 수 있는 선실 다섯 개에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딸려 있었다.
선박을 둘러보던 초류향은 문득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갑판 난간에 기대어 그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강바람에 은은한 적갈색의 머리를 흩날리고 있는 소녀.
이것이 먼 미래에 수라왕(修羅王)이라 불리는 초류향과 은향호리(隱香狐狸)라 불리며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재녀(才女) 냉하영의 첫 만남이었다. 둘의 첫인상은 서로에게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저 아이가 야황의 손녀라 이거지…….’배에 오르기 전 엄승도에게서 들은 말이다.
초류향은 안경을 고쳐 쓰며 냉하영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구주십오객에서도 최고라 손꼽히는 삼황이다. 그중 한 명인 야황의 손녀라니……. 자연스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초류향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정관법을 사용해서 냉하영을 살폈다.
한편, 냉하영은 다른 의미로 초류향을 살피고 있었다.
‘애체(안경)를 쓰고 있네.’이때 당시의 안경은 매우 귀한 물건이라 아무나 쓰고 다닐 수 없었다. 그런 물건을 쓰고 있는 저 소년은 누굴까? 천마신교와는 무슨 관계지? 소년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기련산으로 향한 배에 손님으로 가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천마신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소년에게서는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없다. 무림인이 아닌데도 엄승도는 자신들의 동행에 대해 저들의 허락을 구할 만큼 귀하게 모시는 손님으로 대하고 있다. 그랬기에 호기심과 함께 의아함이 생겼다.
‘대체 저 소년을 데리고 기련산에는 무슨 일로 가는 거지?’언뜻 보아도 이 배의 선주라는 자는 절정고수 이상이었다. 그런 절정의 고수를 호위로 두고 기련산으로 가는 소년. 확실히 뭔가 있을 것이다. 냉하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빠르게 떠올려 보았다.
이곳 무릉나루에서 배를 타면 곧장 감숙성으로 갈 수 있다. 감숙성에 도착하여 그곳에서부터 하루 반나절 동안 마차를 타고 가면 곧장 기련산의 초입 부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이들의 목표는 두 번 생각해보지 않아도 기련산이라는 소리다.
그 기련산에서 천마신교가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벌써 그 소문으로 강호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었으니까. 다만 천마신교가 뭘 꾸미고 있는지 모를 뿐이다.
‘기련산에서 천마신교가 얻으려는 건 대체 뭘까?’굳이 정도맹의 세력권에 들어와서 위험을 감수하며 벌이는 일이 뭘까?
‘뭔지 몰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천마신교가 이런 위험을 감수할 리 없으니까.’냉하영은 생각에 생각을 더하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저 소년은 그 일과 연관이 있는 사람일까? 직접적이든 아니든 모종의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냉하영에게 외투를 조심스럽게 덮어주며 말했다.
“소군주, 아직 바람이 찹니다. 이만 선실로 들어가시지요.”호위무사로 보이는 사내의 말에 그녀는 깊은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본회에서도 이번 기련산 사태에 인원들을 보내고 있나요?”“예. 상동하(想董河)장로가 직접 은월대(隱月隊)를 이끌고 온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냉하영은 눈을 반짝였다. 상동하 장로는 고수였다. 그것도 흑월회에 속한 화경의 고수. 구주십오객에서 추혈군(追血君)으로 불리는 자가 바로 그였다.
“잘됐군요.”냉하영은 웃었다.
이번에 천마신교의 행사에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섞여 있었다. 정보가 부족하여 그것이 무엇인지까지는 알아낼 수 없지만, 파헤치다 보면 뭔가 나올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위험 부담이 있겠지만 그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상동하 장로는 아버지를 괴롭히는 장로들의 우두머리다. 냉하영은 이번 행사를 통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잘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아니에요. 그냥 혼잣말이었어요.”냉하영은 잠시 초류향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선실 안으로 몸을 돌렸다.
조기천은 갑판에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제자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초류향이 시선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쁜 아이더구나.”스승의 말에 초류향이 멀뚱거리며 조기천을 바라보았다.
초류향의 관심사가 다른 데 있다는 걸 조기천은 알지 못했다. 초류향의 머릿속이 경악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을.
‘칠십구…….’여지껏 초류향이 정관법으로 보았던 사람들 중 단연 최고의 수치를 보여주었던 소녀. 초류향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때 넋 놓고 있던 초류향을 향해 조기천이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것을 한번 보겠느냐?”초류향은 스승이 건네주는 종이를 받아보았다. 거기에는 숫자들이 어지럽게 배열되어 있었다.
“이것은…….”초류향은 정신을 가다듬고 배열된 숫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감탄했다.
“이건 말(言)이군요.”조기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 이곳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때 사용할 너와 나만의 암호가 되겠지.”이 숫자의 의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그의 제자와 그밖에 없을 것이다.
마차에서 이동을 하는 내내 조기천은 줄곧 고민했다. 솔직한 말로, 천마신교의 사람들은 아직 믿을 수가 없었다.
헌데 제자와 비밀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갈수록 많아진다. 저번에 진법을 발동시킨 방법이나 그 안에서 파훼보를 걸었던 것 등등, 물어보고 싶은 것도 참으로 많았고, 알려줘야 될 것도 많았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방법이다. 역시 똑똑한 제자는 그것을 한 번에 알아봐주었다. 그것은 조기천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그가 평생을 바쳐온 산법을 통해 만들어낸 일련의 결과에 대해 알아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제자는 알아봐주었다. 거기에 어떤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제자도 저들의 시선 때문에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묻지 못했습니다.”“앞으로 이 방법을 쓰면 될 게다.”초류향은 스승의 발상에 감탄했고, 스승 역시 제자의 뛰어난 안목에 흡족해했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세상에서 오로지 그들만이 소통할 수 있는 산법으로 된 언어를 만들었다.
***
‘수상한데.’초류향과 조기천이 선실에 틀어박혀서 무언가 쑥덕거리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엄승도는 처음에 둘이서 뭘 하고 있나 궁금해 슬쩍 들여다보았다가 기겁을 하고 물러서야 했다.
‘미친놈들.’둘은 종이 한가득 숫자들을 적고 그것을 교환하며 무언가를 계속 풀어대고 있었다.
제자라는 놈은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무언가를 받아 적고, 스승 역시 흡족한 얼굴로 제자가 받아 적은 것을 조심스럽게 옆에 챙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종자들이다.’엄승도는 그들만의 세상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고개를 휘휘 젓고 잠을 청했다.
본래는 개인 객실을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예상 밖의 손님들 때문에 조기천과 함께 방을 써야 했다.
조기천과 초류향이 엄승도를 불편해하는 걸 알고 있지만 그것은 엄승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신용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인 셈이다. 게다가 그들의 수발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번거로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엄승도가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있을 무렵.
조기천과 초류향은 진법 공부에 한창이었다. 물론 모든 대화는 그들만의 언어인 산법으로 이루어졌다.
[진법이라는 놈은 매우 섬세한 녀석이다. 조금만 계산상의 착오로, 조금만 지정된 방위를 벗어나면 발동되지가 않지. 사람으로 치면 예민한 놈이지.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 녀석이다.]조기천은 제자에게 그렇게 말을 한 후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무언가를 종이에 적어갔다. [헌데 네가 사용하는 방법은 보통의 것과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충분히 이단이라 부를 수도 있는 방법이지. 그러니 남들에게는 가급적이면 숨기는 것이 좋을 듯싶다.]보통의 진법은 천지의 기운을 담고 있는 보석을 핵(核)으로 사용하여 발동시킨다. 그렇게 진법이 발동되면 절로 천지의 기운이 모여 기문(奇門)이 열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인위적인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하지만 초류향이 진법을 발동할 땐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문을 먼저 열고 그곳에 핵을 올려놓는 방식이었다. 순서가 바뀌었으니 기존의 방식과 궤를 달리한 것이다.
그런데 발동되는 진법은 기존의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완전해 보였다. 게다가 초류향의 방식대로라면 장소에 상관없이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진법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로 엄청난 일이다.
[정관법이라 했더냐?][예.] [그것을 너에게 가르쳐주고 사라졌다는 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넌 천고의 기연을 얻은 게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지금 그의 머릿속에 살고 있는 노인의 정체를 스승님에게도 숨긴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노인이 당부했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네 방식이 훌륭한 것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도 배워두면 좋을 것이다. 네 방법에 전통적인 방식을 응용한다면 또 다른 발전이 있을 게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방법은 다르지만 둘의 요체는 한 가지다.
초류향과 조기천은 그렇게 하루 종일 선실에 붙어서 진법 연구에 매진했다.
***
‘피곤하다.’초류향은 충혈된 눈을 비비며 갑판으로 나왔다. 저 멀리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지고 있는 것을 보니 대충 새벽쯤인 모양이었다. 스승님은 주무시고 엄승도 역시 자고 있었다. 초류향도 피곤함에 지쳐 자리에 누웠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갑판 난간에 기대어 서자 차가운 강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어느 정도 피곤이 가시는 듯했다. 안경을 벗어 소매에 넣으며 초류향은 난간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스승님에게 배우는 진법은 확실히 재미가 있었다. 그가 모르던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듯해서 즐거웠고, 이런 식으로 산법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역시 누가 뭐라 해도 초류향은 산법이 좋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재능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했다.
초류향이 그렇게 강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와 있었다.
“아직은 강바람이 차가운데 새벽부터 왜 나와 있어?”초류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았다.
그녀였다.
냉하영이라 불리는 야황 냉무기의 손녀.
“설마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했니?”초류향은 소매에서 안경을 꺼내 쓰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조금은.”냉하영은 초류향의 말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직 어리구나.”초류향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어린 것은 맞지만 너무 뜬금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냉하영은 그런 초류향의 옆 난간에 기대어 서며 말했다.
“이렇게 이쁜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어볼 때는 그냥 아니라고 말해야 되는 거야.”“왜?”“그게 어른이니까.”초류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른이라는 건 어렵네.”“그럼, 어렵지. 아주 많이.”초류향은 붉게 타오르는 태양 때문에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는 냉하영을 바라보았다.
냉하영 역시 초류향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물어봐.”초류향이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말하자 냉하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궁금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몰라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냉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누나가 사실 기회를 엿보고 있었거든. 어떻게든 너랑 대화할 기회를 계속 노리고 있었어. 이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말이야…….”누나?
초류향은 왠지 모르게 반발심이 생겨났지만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그럴 것 같았어.”“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데?”냉하영이 궁금한 얼굴로 묻자 초류향은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좀 전에 알았지.”“어떻게?”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어느 한 명이 일부러 기다리지 않는 한, 이 새벽녘에 단둘이 마주하고 있을 우연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건 대단히 낮은 확률이거든.”냉하영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럼 처음부터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네? 이 누나는 되도록 우연을 가장해서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싶었는데.”“그런 우연은 세상에 좀처럼 없지.”“너 솔직해서 참 좋다.”초류향은 자연스럽게 다가와 말부터 놓는 이 소녀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 느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해?”“네 정체. 그리고 천마신교가 꾸미고 있는 일.”초류향은 아무 말 없이 냉하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냉하영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 여자의 성격이 상당히 직설적인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당돌하게 물어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왜? 아, 이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가?”“아니.”“그런데 왜?”왜 망설였을까?
잠깐 생각하던 초류향은 그 이유를 떠올리곤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등가교환이다.
주는 것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어떤 것을 얻어야 했다.
그것이 거래.
냉하영은 초류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불쑥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냉하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 누나 같은 미인이 물어보는데도 공짜가 아니니?”“…….”초류향은 잠깐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미인인 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 있지?”“어? 그 말은 이 누나가 미인인 건 인정한다는 거네?”냉하영이 기쁜 듯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묻자 초류향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 곧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소를 품평하기라도 하듯 샅샅이 살펴보고 난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인이긴 하군. 하지만 그건 거래에 아무런 영향을 못 주는 거야.”냉하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네가 아직 어린 거야.”또 그놈의 나이 타령이다.
초류향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나 어린 거 맞아. 그러니까 공짜는 안 돼.”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대였다. 어린애라는 말로 자극해 낚을 수 있는 단순한 상대가 아니다.
냉하영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돈 필요해? 누나가 돈 줄까?”“돈이 많은가 보네.”“그럼, 아주 많지.”초류향은 냉하영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런데 이건 돈으로 거래될 문제가 아니지. 잘 알고 있을 텐데?”상대방의 신분도 알고 있고, 그녀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떠한 정도의 값어치인지도 짐작이 갔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한 것을 얻어야 하는데 초류향은 돈으로 밀당할 생각은 없었다.
냉하영은 아쉬운 얼굴로 웃어 보였다.
“너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어린데 제법 거래도 할 줄 알고.”“똑똑해지려고 열심히 공부했거든.”냉하영은 초류향의 대답에 낮게 웃어 버렸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아이였다. 그녀는 말했다.
“그래, 뭘 원해?”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다. 초류향은 안경을 고쳐 썼다. 평소부터 무림에 대해 궁금하던 것을 어쩌면 이 기회에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원하는 건…….”초류향의 말을 끝까지 듣던 냉하영의 얼굴에 처음으로 여유로움이 사라졌다.
그녀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걸 초류향이 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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