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50)
제150화 숨겨진 화경의 고수(2014.06.16.)
처음에 초류향은 단리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 보았다.
‘칠십삼.’암살자가 화경의 고수라니?
게다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실력을 정말 오랜 기간 어둠 속에 숨겨 놓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저런 자가 또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만약 숨겨진 고수가 더 있다면 이번 계획은 완전히 망가지는 것이니까.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초류향은 안도했다.
눈앞에 있는 저 노인.
단리경이라 불리는 저 노인 이상의 고수는 없었다. 그만 경계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단리경은 초류향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제법 재미있는 수작을 부렸다만…… 내가 보기에 너는 금강불괴가 아니다. 그렇지?”단리경이 불쑥 질문하자 초류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다른 자들은 속일 수 있어도 저자는 무리였다.
초류향의 긍정에 단리경은 입술을 푸들거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솔직하구나. 나중에 잘만 자랐다면 정말 교주님과 같은 거목이 되었겠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정말 안타깝게 되었다. 넌 여기서 죽어야 할 것 같거든. 우리 가주가 너 때문에 많이 곤란해해서 말이야. 너도 모두가 귀찮아지는 건 싫을 게야, 그렇지?”단리경의 말투는 마치 동네의 할아버지처럼 친근했지만 그 내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초류향은 자신을 조용히 타이르는 듯한 단리경의 말투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 역시 오늘로 모든 걸 끝내고 싶습니다. 노인장만 제거하면 가능할 것 같군요.”언젠가 한 번은 정리하고 갈 문제였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자들의 명분은 이해했다.
거슬렸을 것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이 소교주가 되고, 차후에는 교주의 자리에까지 오른다면 쉽게 납득하기 힘들 테니까.
재능이 있고 없고는 두 번째 문제였다.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그들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순순하게 죽어 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들이 자잘하게 공격해 오는 것을 언제까지나 일일이 받아 줄 순 없었다.
그건 대단히 피곤하고 번거로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초류향은 이번 계획을 생각했다.
때마침 잘되었다고 여긴 것이다.
‘한꺼번에 정리하고 간다.’앞으로 더 멀리, 더 높이 나가려면 뒤에서 거추장스럽게 발목을 잡는 것을 모조리 제거하고 가야 한다.
하지만 초류향의 적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똑똑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가만히 기회만 엿볼 게 분명했다.
그건 곤란했다.
이렇게 신중하고도 똑똑한 자들을 끌어들이려면 정말로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필요했다.
초류향은 그것을 알았기에 스스로의 몸을 미끼로 던졌다.
그리고 그것은 적들에게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이번 기회에 초류향을 죽이려고 전력을 몽땅 다 투입한 것이다.
우둑-
초류향은 단리경을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단리경 역시 초류향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그렸다.
서로가 다른 생각을 한 채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이다.
“왜 웃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초류향이 불쑥 묻자 단리경은 자신의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너 같이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를 죽이게 되어서…… 그리고 이 일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되어서 너무 기뻐 웃었단다.”아무래도 초류향이 다 잡은 물고기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초류향 역시 흐뭇하게 웃으며 단리경을 살펴보았다.
그 두려움 없는 미소에 단리경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아이야, 너는 분명 내 정체를 알았을 텐데…… 그래도 웃음이 나오느냐?”“아아, 스승님께서 숙제를 내 주셨거든요.”“숙제?”“예. 최대한 많이 웃으라고 하셨습니다.”초류향은 이제야 스승님께서 내 주신 숙제가 무슨 뜻이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랬기에 기뻤다.
스승님이 내어 주신 숙제에 대한 정확한 답을 지금이라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리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교주님께서는 그 숙제에 대한 대답을 들으실 수 없으실 게다.”초류향은 고개를 저으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쪽이야말로 오늘 저에게 강제로 은퇴당하시게 될 겁니다.”“네 실력은 이미 지켜보았다. 너는 오만해도 된다. 분명히 강한 힘을 가졌으니까. 하나 너무 정정당당한 싸움에만 익숙해져 있더구나. 그런 건 진짜 강호의 싸움이 아니지.”초류향은 안경을 한 번 만지고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대화가 너무 길어지는 거 같은데 이제 그만 오시죠. 시간이 많으십니까?”단리경의 눈빛이 변했다.
조금 전까지 억지로 인자한 듯, 한가한 듯 꾸미고 있던 그의 눈빛에서 뱀과 같은 사악함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 역시 살인마.
전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인 것이다.
“……클클. 그래, 그러자꾸나. 장난은 그만해야지.”단리경은 가볍게 ‘읏차’라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비실거리고 한없이 약하게만 보였던 그의 몸에서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선우세옥을 비롯해서 외눈박이 유운비도 깜짝 놀랐다.
단리경이 그들의 시대보다 한발 앞서서 자객으로 활동한 것은 알고 있었다.
워낙에 유명했고, 실패를 몰랐던 암살자였으니까.
하나 그가 이 정도의 힘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뭐, 뭐야? 화경의 고수였어, 영감님?”“흘흘, 영업상 비밀이라 숨기고 있었지.”“하, 하하핫! 이 장난꾸러기! 대단하잖아, 영감님!”유운비가 말을 더듬거리며 감탄하자 단리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흘흘. 그래, 이제야 어른에 대해 공경심이 좀 생기는가 보구나.”“하하! 공경심? 아니, 이건 존경심이야, 영감님. 정말 대단해!”선우세옥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식적으로 천마신교에 소속된 화경의 고수는 우 호법과 주 호법, 그리고 운휘와 노진녕.
이렇게 네 명뿐이었다.
한데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화경의 고수가 등장했다.
이것은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매우 유리한 일이지.’현재의 소교주는 확실히 화경의 고수 정도가 아니라면 상대하기 어려웠다.
아니, 죽이고자 한다면 죽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나 절정 고수들로만 상대하려면 정말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경의 고수가 등장했다.
이건 엄청나게 좋은 징조가 아닌가?
분위기는 대번에 반전되었다.
모두가 초류향의 엄청난 무력에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가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는 의외로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주변을 봉쇄해.”“알겠습니다.”선우세옥이 입을 열어 말하자 그의 수하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주변을 차단했다.
그러자 퍼뜩 정신이 든 유운비도 서둘러 수하들에게 주변을 차단하게 시켰다.
최후의 순간.
만에 하나 단리경과 초류향이 격돌해서 초류향이 이긴다 하더라도 치명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도망치게 놔둘 순 없지.’포위를 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어차피 화경의 고수들끼리 부딪치게 된다면 어중이떠중이들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하나 싸움이 끝난 뒤라면 다르다.
초류향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까지도 마차 주변에 둥글게 포진하고 있던 마라천풍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와 최대한 거리를 벌리세요.”“그럴 순 없습니다.”“방해가 될 뿐입니다.”감녕은 고개를 저었다.
그로서는 최초로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다.
하나 이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저라면 소교주님께 한 번쯤 기회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초류향은 감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비장한 표정에서 정말로 그가 목숨을 걸고 기회를 만들어 줄 생각이라는 것을 읽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소교주님!”감녕이 다시 한 번 간절하게 말했지만 초류향은 이미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단리경만을 바라보며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감녕 부대주께서는 제 실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정곡이었다.
제아무리 소교주고, 도군을 제압했다곤 하지만 거기에 어느 정도의 운이 작용했으리라.
그가 대답하지 못하고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자 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거짓말에 서툰 순수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물러나셔도 됩니다. 걱정하시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초류향은 양손 소매를 걷어 올리며 천천히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감녕 부대주께서는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만 막아 주시면 됩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몽땅 죽여야 할 녀석들이니까요.”선우세옥은 초류향의 말에 입을 헤 하고 벌리며 어이없는 얼굴을 해 보였다.
애초에 도망칠 생각도 없었지만 포위당한 주제에 저렇게 말을 하니 황당했던 것이다.
‘저놈들이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우리가 도망치는 것을 막아 달라고?’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런 황당한 소리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뱉으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 사실에 불쾌한 기분이 된 선우세옥이었다.
“잡담은 끝났느냐?”단리경이 물었다.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준비는 되었…….”쉬이이익-!
“헛! 비겁하다!”감녕이 소리쳤다.
초류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리경의 지팡이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지팡이 끝에 가득한 시커먼 기운이 곧장 초류향의 목줄기를 노리며 쏘아져 갔다.
퍼엉-!
다행히 손을 휘둘러 그것을 위로 쳐낸 초류향을 향해 단리경이 곧장 주먹을 뻗었다.
가까운 거리였기에 서슴없이 그것을 마주쳐 가던 초류향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집어 마차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주먹끼리 충돌하기 직전, 단리경이 손을 활짝 펴며 초류향의 손목을 교묘하게 잡아채려고 했기 때문이다.
‘근접 박투술을 사용한다?’단리경은 본래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근접전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팡이는 속임수였군.’하마터면 이번 공격에 손목이 꺾여 나갈 뻔했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초류향은 단리경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공격을 하지 않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숨기고 계신 것이 많군요.”“아직 보여줄 게 더 많다, 아이야. 한데 고작 이 정도에 당황해서 되겠느냐?”“저도 아직 보여줄 게 남았습니다.”“흘흘, 다 보여 보거라. 죽기 전에 재롱이라도 떨어 봐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도군처럼 손에 여유를 두는 사람이 아니다.”단리경이 도군을 거론하자 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오늘 여러 번 웃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도군 임제학이 손에 여유를 두었다고?
지금 단리경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단리경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대다수의 무림인들이 저렇게 착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보여 줄 것이다.’초류향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함정을 판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세상에 그의 실력을 제대로 입증해 보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희생자는 눈앞에 있는 단리경이 될 것이다.
초류향은 서서히 주먹을 말아 쥐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 * *
거대한 저택.
밤의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이 거대한 저택의 지붕 위에 두 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결과를 어떻게 봐요?”냉하영의 질문에 시엽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소교주가 이길 겁니다.”“역시 그렇겠죠?”“예.”시엽의 단호한 대답에 냉하영은 손부채를 부치며 작게 투덜거렸다.
“휘유, 수라환경 하나만 해도 버거운데 월인도법까지 익혔으니……. 그야말로 천마신교에서 괴물 하나를 만들었네요.”시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괴물이었다.
그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저 정도의 무력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력뿐만이 아니지…….’진법 실력도 엄청나다고 들었다.
저 소교주라는 아이는 참으로 재주가 많은 인간인 것이다.
냉하영은 저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냉정하게 관찰하며 입을 열었다.
“남만야수문과 북해빙궁의 주력들이 멀리 있었던 게 다행이었네요. 그들까지 왔더라면 소교주는 죽었을 거예요.”시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만야수문의 실력은 모르겠지만 북해빙궁의 실력은 확실하게 알지 않는가?
‘적혈명…….’그 젊은 고수는 분명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산이었다.
그자가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면 소교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죽었을 것이다.
그는 한 번 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테니까.
‘나도 죽을 뻔했다.’과거에 냉하영이 적절하게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시엽은 그와 붙었던 그날 죽었을 것이다.
“소교주가 말했던 황궁이 절대로 개입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이제야 겨우 이해가 되었어요.”냉하영은 그동안 사천에서 머물며 초류향이 말했던 황궁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의 명확한 출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겨우겨우 진실에 도착하게 되자 하나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주호유…….”천하제일 산법가.
대장군 척계광의 그늘에 가려 음지에서만 활동하는 그의 존재를 정말 어렵게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주호유와 초류향과의 복잡 미묘한 관계도 알 수 있었다.
‘조기천이라.’별달리 특별한 것도 없는 산법학자였다.
한데 초류향과 주호유라는 당대의 거물들 사이에 연관되자 조기천이라는 이름 역시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되어 버렸다.
이 한 사람과의 인연 때문에 황궁이 천마신교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냉하영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던 것이다.
“조기천과 주호유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봐야겠어요.”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더욱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야 저렇게 무서운 속도로 크고 있는 초류향을 제어할 수 있을 테니까.
냉하영은 단리경을 향해 달려드는 초류향을 보며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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