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책임의 무게(2014.06.19.)
단리경은 스스로의 실력을 숨겨 왔던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가문의 안정을 위해서, 나중에는 가문의 번영을 위해 스스로의 실력을 감췄던 것이니까.
화경이라는 절대 경지.
거기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수많은 부와 명예들을 누리지 못했지만 단리경은 만족했다.
그가 희생하고 감수했던 만큼 가문이 발전하고 성장했으니까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은퇴를 고려 중인 그에게 이번 일은 정말 마지막 일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마지막은 정면 승부로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콰앙-!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고 초류향과 단리경은 서로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서로를 향해 득달같이 부딪쳐 갔다.
‘이건…….’싸움의 방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둘은 서로를 향해 뻗는 주먹을 피하지도 않고 정직하게 맞부딪쳤다.
콰아아앙-!
너무나 직선적이고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둘은 사양하지 않았다.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내뻗을 뿐이다.
다른 곳은 노리지도 않았다.
자존심 싸움.
가장 원초적인 내력 싸움이었다.
여기서 주먹을 피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격한다면 그 순간 기세에서 밀리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밀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기세 싸움에서 졌으니 순식간에 난타당할 것이 분명했다.
‘괴롭군.’단리경은 얼굴을 찌푸렸다.
주먹을 한 번씩 부딪칠 때마다 내장이 꼬일 정도의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들어 정면을 보니 소교주 역시 자신만큼 큰 충격을 받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니까 포기할 수 없었다.
‘괴롭겠지. 이 녀석도.’노쇠하여 굳어 버린 육체.
그러하기에 단리경 본인도 충분히 괴롭지만, 아직 육체가 완성되지 않은 소교주도 분명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괴로워하고 있을 게 확실했다.
‘네가 제법 표정 관리에 익숙하다만…….’놈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단리경은 이를 악물고 괴로운 얼굴을 최대한 숨긴 채 주먹을 뻗었다.
초류향 역시 피하지 않고 마주 주먹을 내질렀다.
꽈아아아앙-!
여태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폭음과 함께 둘의 신형이 힘없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초류향은 바닥에 쓰러졌다가 벌떡 일어나며 다시 단리경에게 달려들었다.
단리경 역시 힘겹게 일어나 초류향에게 뛰어갔다.
주륵-
달리는 도중에 핏물이 입으로 흘러나오자 단리경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왠지 불안했던 것이다.
‘이번 한 번만 더 가 본다.’단전에 힘을 주고 정말 있는 대로 힘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주먹을 뻗었다.
초류향 역시 마주 뻗어 왔으니 둘은 필연적으로 맞부딪쳤다.
쿠웅-!
‘허?’주먹과 주먹이 맞닿는 순간 단리경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은 힘없이 뒤로 날아갔는데 초류향은 정권을 앞세운 채로 제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던 것이다.
단리경이 눈을 부릅뜰 때.
제자리에서 충격을 해소한 초류향이 뒤로 날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우득-!
단리경은 이를 악물고 몸을 뒤집어 빠르게 접근하는 초류향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쾅-!
초류향은 그것을 손바닥을 펴 막으며 씨익 웃었다.
저건 누가 봐도 승리한 자의 미소였다.
그 모습을 본 단리경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분노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처음부터 잘못되었다.’정상적인 힘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장기인 변칙적인 공격으로 끌고 갔어야 했다.
괜한 감상에 사로잡혀서 일을 그르친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어.’그랬다.
아직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거면 된 것 아닌가?
단리경이 이를 갈며 필사적으로 내력을 고르려 할 때.
초류향이 번개처럼 덮쳐들었다.
이 어린 꼬마 놈은 그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단리경은 뒤로 물러서며 장풍을 연속해서 뿌렸다.
그러자 엄청난 압박감이 초류향을 찍어 누르며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쩌저적-!
하지만 초류향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사방에서 내리누르는 기운을 바닥으로 흘리며 오히려 조금씩 단리경에게 접근했다.
초류향도 눈치챈 것이다.
단리경이 이렇게 임시방편을 동원해 가며 시간을 벌려는 이유를.
거의 지척까지 초류향이 다가오자 단리경은 갑자기 집게손가락 끝을 세워서 빈 허공을 찍었다.
그러자.
퓽-!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이 초류향을 향해 쏘아져 왔다.
여기서 초류향은 잠시 고민했다.
막아야 할지 아니면 피해야 할지 선뜻 판단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일단 이 정도까지 거리를 좁힌 것이 아까웠기에 막아 낼 생각을 하며 손바닥을 펴서 앞으로 뻗었으나, 무언가 찝찝한 마음이 들어 막판에 생각을 바꿨다.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옆으로 몸을 날리며 회피한 것이다.
치이이익-!
단리경의 지풍에 어른 하나가 들어갈 만큼 깊은 구멍이 뚫리며 돌 바닥이 타들어 갔다.
초류향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위험했다.’저 교활한 자는 일부러 약한 공격을 하며 방심을 유도했던 것이다.
단리경은 이번 공격을 피한 초류향을 바라보며 아쉬운 얼굴을 해 보였다.
‘운이 좋은 놈이군.’장풍이라는 것은 힘을 응축하기에 따라서 그 위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초류향이 자신의 장풍을 흘려 내면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기운을 응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약하게 공격한 것은 마지막 일격.
이것 하나만 노리고 있었던 것인데…….
‘어쨌든 잠깐의 시간은 벌었군.’단리경은 몸을 재빨리 추스르며 초류향을 응시했다.
저 녀석 역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내부는 분명 크게 상했을 것이다.
단지 티를 안 내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 초류향이 그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당장이라도 뛰쳐들 듯한 자세.
그 상태로 초류향은 묘하게 웃었다.
‘착각하지 마라.’초류향은 단리경의 생각이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보였다.
그는 단리경의 예상과는 달리 전혀 내상을 입지 않았다.
월인도법을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라환경처럼 폭발적인 힘은 없지만 월인도법은 그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끝내야겠지.’월인도법의 기운은 다시 구석으로 밀어 놓으며 수라환경의 기운을 서서히 끌어 올렸다.
이제 끝을 볼 시간이었으니까.
드드드득-
초류향이 내력을 끌어 올리자 그의 전신에 붉은 핏빛의 기운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그 어마어마한 기운에 단리경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내상을 전혀 입지 않았던가?’그럴 리가 없었다.
조금 전처럼 서로 주먹을 뻗어 일격을 교환하는 방법.
즉 누구의 내력이 강한지, 순수한 내력을 겨루게 되면 압도적으로 내공이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승리한 쪽도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저 기운이 단순한 허세라고?’단리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쉽사리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이번 일격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거라는 점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이번 공격만 막아 내면 그다음에는 저놈의 상태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
단리경은 호흡을 멈추고 오른쪽 주먹에 기운을 잔뜩 몰아넣었다.
그의 소매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그렇게 모은 힘을 언제든 뿌려 낼 준비를 했을 무렵.
초류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단리경은 대꾸할 수 없었다.
지금 입을 열면 어렵사리 끌어모은 기운이 흩어질 터.
단리경의 상태를 알았기에 초류향은 대답도 듣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초류향은 허공을 향해 짧게 주먹을 끊어 쳤다.
예비 동작도 거의 없는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주먹질.
‘패력수라권.’그와 동시에 단리경 역시 주먹에 몰아넣은 기운을 정면으로 뿌렸다.
콰앙-! 퍼걱-!
기운과 기운이 충돌하고 초류향의 기운이 상대방의 것을 압도적으로 찍어 눌렀다.
단리경의 눈이 경악으로 찢어질 듯 부릅떠졌을 때.
초류향이 내뻗은 기운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단리경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콰드득-!
가슴뼈가 몽땅 으스러지고 단리경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것으로 끝.
초류향은 단리경의 시신 너머로 보이는 사대 세가의 잔존 세력들을 보며 흐릿하게 웃었다.
그들은 단리경이 죽은 상황에서도 최후의 저항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초류향이 내상을 입었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십시오.”어차피 이곳에서 몽땅 처리해야 했다.
도망가지 않고 덤벼 주면 고마운 노릇이다.
초류향이 자세를 낮추는 순간.
사방에서 암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 * *
피 웅덩이를 밟고 시체 더미 위에서 초류향은 머리를 흔들었다.
하나 핏물을 전부 털어내진 못했다.
이미 굳어서 딱딱하게 변해 버린 피가 머리칼과 전신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초류향은 넝마처럼 변해 버린 옷자락의 일부를 뜯어내어 안경을 닦아 냈다.
‘죽을 뻔했다.’최후의 순간까지 겁먹지도, 뒤로 도망가지도 않고 우직하게 덤벼들던 사대 세가의 저력을 보며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까딱했으면 정말 이곳에서 뼈를 묻을 뻔했던 것이다.
‘그래도 살아남았다.’애초에 진법을 사용했다면 승부가 빠르게 났을 것이다.
하나 그러지 않았다.
최초의 순간 진법을 이용해 마라천풍대의 인원들을 그곳에 봉인시킨 것이 전부였다.
안과 밖을 완전히 격리시켜 놓고 순수하게 초류향 혼자서 무공으로만 승부를 봤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도군과의 승부에서 얻은 깨달음.
지척까지 다가왔다가 놓쳐 버렸던 그것을 다시 붙잡기 위해서였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그 찰나의 불꽃.
그 상황을 만들어 내야만 했던 것이다.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무공만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 되었다.’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공을 사용하자 어렴풋이 그때의 깨달음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하나 이번에도 그것은 손에 쥐지 못했다.
그저 도군과의 승부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확실하게 몸에 각인시킨 정도였다.
초류향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구석의 텅 빈 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닥의 어떤 부분을 만지다가 힘을 주니 갑자기 정면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교주님!”감녕이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초류향에게 다가왔다가 곧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째서 저희에게 진법을 사용하셨습니까? 저희가 그렇게 못 미더우셨습니까?”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혼자서 싸워야 했던 이유를…….
감녕은 입술을 일(一)자로 꾹 다문 상태에서 초류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교주님을 믿겠습니다. 하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번 한 번뿐입니다. 다음에는 절대 이러지 마십시오. 저희는 소교주님의 검과 방패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저희들은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것은 이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들이 필요합니다. 부디 오해하지 마세요.”감녕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맨 처음 진법이 펼쳐지고 그곳에 갇혔을 때.
순간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소교주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법을 펼쳐 놓았다는 생각이 들자 미칠 것처럼 괴로웠다.
이렇게 약자 취급을 받느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편이 백번 나았다.
게다가 지금쯤 밖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홀로 싸우고 있을 소교주를 생각하니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자신에게 소교주의 생명을 맡겼던 임학겸 대주.
그를 볼 낯이 없었던 것이다.
진법이 풀릴 때까지 감녕은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온갖 감정들과 싸워야만 했다.
심지어 내상까지 입었다.
하나 그런 것을 티 낼 수는 없는 노릇.
감녕은 금창약을 꺼내어 초류향의 눈에 띄는 상처 부위에 발라 주며 말했다.
“조금 더 스스로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소교주님이 자신의 몸을 함부로 생각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초류향은 지금 이 순간.
감녕의 충고가 크게 다가왔다.
분명 오늘 하루 동안 벌인 자신의 행동은 책임감이 결여된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서 하마터면 그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크게 다칠 뻔했다.
‘이기적이었다.’스스로의 행동을 가만히 돌이켜보며 초류향은 부끄러워했다.
자신의 어깨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있음을 새롭게 자각했던 것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초류향은 감녕에게 두 손을 모아 읍을 하며 말했다.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것임을 약속합니다. 감녕 부대주. 덕분에 좋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감녕은 얼떨결에 마주 읍을 해 보였다.
그는 소교주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초류향은 새롭게 찾아온 책임감을 곱씹어 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을 잊지 않겠다.’무공의 깨달음은 결국 잡지 못했지만 책임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하루였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초류향의 행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깨달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