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54)
제154화 시간이 흐른 뒤(2014.06.30.)
절세신마(絶世神魔) 공손천기.
사천 지역을 단신으로 휩쓴 그를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불과 한 달.
한 달 만에 혼자서 사천지역 전체를 천마신교의 영역으로 흡수한 그는 돌연 천마신교의 봉문(封門,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문을 걸어 잠금)을 선언한다.
그리고 무려 오 년.
오 년 동안 천마신교는 침묵했다.
* * *
“아우, 추워.”산자락 끝에 있는 오두막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사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섰다.
겨울이 끝나기 전이라 그럴까?
아직도 바깥에 나오면 머리가 띵해질 만큼 냉기가 몰려왔다.
“에이, 귀찮아. 에이!”수염이 덥수룩한 사내는 발목까지 쌓여 있는 눈길을 헤치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이 나온 오두막과 똑같은 모양의 집 앞에 서서 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쾅쾅쾅-!
“어이, 일어나! 일 나갈 시간이야!”문 안쪽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뽀얀 피부에 눈빛이 맑은 앳되어 보이는 미청년.
중년 사내는 청년을 보다가 낮게 혀를 차며 본인이 입고 있던 털가죽 옷을 벗어서 내밀었다.
“이봐, 날씨가 추운데 또 이렇게 입고 잤어? 아무리 젊어도 그렇지 그러다 감기 걸려. 일단 이거라도 입어.”“…….”청년은 중년 사내가 주는 허름한 가죽옷을 받아서 넙죽 입으며 헤실헤실 웃었다.
티 없이 맑은 천진난만한 웃음.
중년 사내는 그 웃음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쩝. 바보는 감기도 안 걸리는 건가? 에잉, 춥다.”중년 사내는 두 팔로 스스로의 어깨를 문지르며 앞서서 걸어갔다.
청년은 그런 중년 사내 뒤를 졸졸 따라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산 중턱쯤에 이르자 중년 사내는 그곳에 놓여 있는 작은 상자를 열며 말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장작을 해 가야 돼. 허 대인께서 오늘 따님의 생일이라고 손님들이 많이 오신다고 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끄덕끄덕.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년 사내가 주는 도끼를 건네받았다.
“일은 잘하니까 걱정 안 되는데…… 그래도 항상 조심해. 주변에 맹수들이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도망쳐 와야 해. 알겠지?”끄덕끄덕.
“근데 너 정말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끄덕끄덕.
청년이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중년 사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투덜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일이나 하자. 너는 저쪽 가서 장작을 패. 나는 이쪽으로 갈 테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뛰어오고.”끄덕끄덕.
청년은 중년 사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근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적당한 나무가 보이자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콰각-
가볍게 도끼를 들어서 나무의 밑동을 슬쩍 치자 도끼날이 마치 두부에 박히는 것처럼 깊숙하게 틀어박혔다.
그렇게 대여섯 번 도끼를 휘두르니 어른 서넛이 두 팔을 벌려 감싸도 될 만큼 굵직한 나무가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지직-!
멀리서 장작을 패고 있던 중년 사내는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일하는 거 보면 정말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긴 한데……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된 거지?”맨 처음.
중년 사내는 청년을 처음 발견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 * *
일 년 전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나무를 하기 위해 산에 올라갔던 중년 사내는 산 밑의 계곡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내려가 보았다.
그곳은 워낙에 인적이 없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내려가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중년 사내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관찰했다.
긴 머리에 뽀얀 피부.
여기저기 해어져 있지만 고급 옷감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무복.
그리고 특이하게도 눈에는 반짝거리는 요상한 물건을 끼고 있었다.
청년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코끝에 손가락을 대 본 사내는 크게 안도했다.
‘숨을 쉬고 있다.’놀랍게도 이 청년은 살아 있었던 것이다.
허둥지둥 청년을 들쳐 매고 힘들게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와 며칠을 보살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죽을 둥 말 둥 하던 녀석이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자가 생겼지.’사람 하나 살렸다는 감격도 잠시.
청년은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 상태였다.
말도 하지 못했고,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더니 딱 그 짝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청년은 사람 말귀를 ‘어느 정도’는 알아먹는 것 같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도 곧잘 했고, 비실비실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힘도 좋았다.
그래서 데리고 있으면서 보살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청년은 항상 밥값을 했으니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밥값 이상을 했기 때문에 중년 사내는 기쁜 마음으로 청년을 보살펴 줄 수 있었다.
‘오늘은 장에 나가서 옷이라도 좀 사 입혀야겠다.’둘둘 싸매고 있는 자신도 이렇게 추운데 저 녀석은 얼마나 춥겠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청년이 있는 곳을 살펴보던 중년 사내는 다시 본인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중년 사내와 청년은 지게에 한가득 장작을 메고 허 대인 집을 찾아갔다.
인근에서 가장 힘 있는 인물인 허 대인은 집도 역시 거대했다.
담벼락이 한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길게 늘어서 있는 대궐 같은 집인 것이다.
허 대인의 집에는 남자 하인들도 무려 서른 명이나 있었고, 계집종들은 그것보다 더 많았다.
자연히 중년 사내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뒷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험상궂은 얼굴로 문을 지키고 있는 사내들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오늘 약속되어 있던 장작을 해 왔습니다요.”“자네가 춘삼인가?”“예에. 제가 춘삼입니다.”중년 사내가 헤헤거리며 웃자 문지기가 턱 끝으로 그 뒤를 가리키며 물었다.
“뒤쪽에 있는 저놈은 누구지?”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춘삼이 등에 지고 있는 장작의 두 배 이상을 짊어지고 있는 청년.
그를 보며 문지기가 묻자 춘삼이 별것 아니라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헤헤, 제 조카 놈인데 밥값을 하라고 데려왔습니다요.”문지기는 청년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너는 이 날씨에 춥지도 않나? 무명옷 하나 입고 엄동설한을 돌아다니다니…….”청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게 문지기를 바라볼 때.
춘삼이 끼어들었다.
“에헤헤, 안 그래도 이번에 삯을 받으면 나가서 옷이라도 한 벌 사 입힐 생각입니다요.”“쯧, 그러도록 하게. 지켜보기 너무 안쓰럽구만.”문지기가 혀를 차며 길을 비켜 주자 춘삼은 청년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뒷마당에 있는 장작 보관소에 등에 지고 온 지게들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봐.”“…….”청년은 멍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머리가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어서 답답했지만 춘삼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까 답답해도 참았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 노관 어르신을 만나 뵙고 돈을 받아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해. 알겠지?”끄덕끄덕.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춘삼은 두 손을 비비며 저 멀리 보이는 문 안쪽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청년은 가만히 장작 위에 앉아서 기다렸다.
춘삼의 걱정과는 다르게 청년은 하나도 춥지 않았다.
일도 전혀 힘들거나 고되지 않았다.
그저 멍했다.
멍한 와중에 따스한 햇살까지 받자 잠이 쏟아졌다.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던 청년은 어느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으응?’누군가가 자신을 부른 것만 같았다.
졸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었다.
청년은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이상하게 나른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청년이 멍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자 장난기 많게 생긴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대략 스무 살 초반 정도?
그녀의 뒤에는 비슷한 또래의 눈꼬리가 올라가 사납게 보이는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해?”“누군데? 아는 사람이야?”“아니, 모르지.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야.”“아…… 그래?”“…….”청년은 아무 생각 없이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도 아무 생각 없이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나무꾼이야?”청년은 잠시 고민했다.
나무꾼이 뭐였지?
무언가 굉장히 익숙한 단어였다.
잠시 기억을 더듬으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파 왔다.
“으음.”청년이 대답하지 않고 괴로운 얼굴을 해 보이자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왜 그래? 어디 아파?”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니 청년이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여자는 잠시 멈칫했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청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거 수상하지?”“응, 그러고 보니까 되게 수상한데? 얼굴도 저렇게나 가리고 있고…….”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여자가 갑자기 손을 뻗어 청년의 앞머리를 확 잡아챘다.
청년이 아픈 표정을 해 보일 때.
여자가 신난 어투로 입을 열었다.
“히히. 자, 이제 정체를 드러내시지, 이 도둑놈아!”“그래, 정체를 드러내!”졸지에 도둑놈이 되어 버린 청년.
머리채를 움켜쥔 여자가 약간 과장된 동작을 하며 청년의 앞머리를 위로 팍 젖혔다.
그리고…….
“…….”“…….”청년은 찔끔한 얼굴로 여자들을 바라보았고, 여자들을 금세 당황한 얼굴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잠시 후.
장난을 친 여자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정체가 뭐야? 아니, 뭐예……요?”청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본인도 자신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 * *
“흥흥흥~”춘삼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노관이라는 장작을 관리하는 놈이 일이 바쁘니까 확인도 하지 않고 돈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확인했어도 받을 돈이긴 했지만 괜한 생트집과 욕을 듣지 않았으니 그게 어디인가?
흥겨운 마음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장작 보관소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어디에서 왔다구요?”“…….”“저쪽……. 설마 백령산(白令山)?”“…….”“그 먼 곳에서부터 여기까지 혼자 온 거예요? 누구랑 같이 왔어요?”“…….”“아, 다행이다. 일행이 있나 보네요?”춘삼은 장작 보관소 근처까지 왔다가 걸음을 멈췄다.
여자 둘이서 무어라 질문을 하고 잠시 대화가 끊겼다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것이 들렸다.
‘뭐지?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야?’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춘삼이 조심스럽게 장작 보관소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있었다.
“저 사람인가요, 일행이?”끄덕끄덕.
춘삼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역시나 자신의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잠시 이리 좀 와 주시겠어요? 묻고 싶은 게 있는데…….”춘삼은 살짝 겁먹은 얼굴로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여인들이 누구인지 춘삼은 단박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저 사납게 생긴 쪽이 허 대인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허유람이고 그 옆에 있는 여자가 친구인 차수진이었지?’둘은 춘삼에게 있어서 감히 바라보기도 힘든 존재들이었다.
근방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집안의 따님들인 것이다.
춘삼이 금방 굽신거리며 다가가자 눈꼬리가 올라간 여인.
허유람이 입을 열었다.
“이분을 알아요?”“네? 네네.”“잘 알아요?”“예. 암요.”아주 잘 알지.
생명도 구해 줬는데.
춘삼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허유람이 의심쩍은 눈으로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그건…….”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 녀석이 어디까지 말했을까?
이 계집애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춘삼이 곤란한 얼굴로 조용히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차수진이 뱁새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정말 잘 아는 사이 맞아요?”“예? 예. 아, 아니요.”춘삼이 차수진의 사나운 눈길에 결국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사실을 실토하고 말았다.
그러자 차수진과 허유람이 그를 압박하며 말했다.
“이분에 대해 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말해요. 안 그러면 곤란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노골적인 협박에 춘삼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춘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차수진과 허유람의 얼굴은 서서히 놀람으로 물들어 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