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55)
제155화 역천귀의술(2014.07.03.)
오 년 전.
천마신교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정도맹에게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 주며 사천 지역을 흡수한 일로 잔뜩 흥분해 있는 상황에서 교주 공손천기가 갑작스럽게 봉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선우조덕을 비롯하여 전박, 주상산과 우규호 등 일부 호법이 비밀리에 찾아와 물었다.
너무 급작스러웠고, 수뇌부들과 사전에 이야기된 바가 아무것도 없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교주 공손천기가 단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 의견에 감히 반대를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유는 알고 싶었다.
공손천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턱을 괴며 물었다.
“영감들이 생각했을 때, 지금 내가 제자에게 교주 자리를 물려준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거 같아?”“예……?”교주 자리를 물려준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의도를 짐작 못 할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단 시기적으로 너무 일렀다.
지금은 교주도 건재하고,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들이 너무 엄청났다.
소교주가 재능이 특출하기는 하나 현재의 교주에 비한다면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리고…….’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교주직을 승계하는 일.
그것은 애당초 지금의 교주가 죽기 전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이다.
‘천마신교에 두 개의 태양은 필요 없다.’하나의 태양이 떠오르려면 반드시 기존의 태양은 없어져야만 했다.
그것이 오랜 전통이자 율법.
“교주님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계신 지금, 소교주님께 교주직을 물려주신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선우조덕이 의문을 품고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손천기가 히죽 웃었다.
“내가 없어진다면 이야기가 되잖아?”“……!”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
모두가 당황해하는 그 순간,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약쟁이 영감, 가까이 와 보도록 해. 와서 직접 진맥해 봐.”선우조덕이 불신에 가득한 눈빛으로 천천히 공손천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번 건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교주님.”“장난 아니야.”우규호와 주상산이 불안한 눈길로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
선우조덕이 소매로 자신의 이마를 한 번 닦으며 입을 열었다.
“……겁주지 마십시오. 저희들 겉으론 이렇게 건강해 보여도 심장이 엄청 약합니다. 게다가 다들 나이가 있어서 오늘내일하는 중이지요, 교주님.”“그러니까 와서 제대로 봐. 다른 영감들은 자네 말이라면 믿을 테니까.”그리고 공손천기가 손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선우조덕은 망설였다.
불길한 느낌.
하나 곧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공손천기의 진맥을 시작했다.
잠시 후.
선우조덕의 전신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 언제부터 이러신 겁니까? 어째서 내부가 이 지경이 되신 겁니까?”“좀 됐군. 두어 달 된 거 같은데?”“왜 저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선우조덕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주호법과 우호법, 전박의 눈동자도 서서히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감 능력은 내가 가장 잘 알지. 그래서 말하지 못했어. 이건 영감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그때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우규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약쟁아!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교주님의 장난에 장단 맞춰 주지 마라, 이놈아. 늙은 심장 멈추는 꼴 보고 싶으냐?”“……너희들은 내가 지금 장난치는 걸로 보이더냐?”“……!”선우조덕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뒤를 한 번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몇 번이고 다시 진맥을 하며 재확인을 해 봤다.
그래도 결과는 같았다.
‘내장이 상해 있다.’단순히 상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 안쪽의 모든 것들이 전반적으로 허물어지며 제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소리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져 내리는 느낌.
문제는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이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내가 지금 시점에서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교주 공손천기가 사라지면?
모두 곤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뜬금없게만 느껴졌던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공손천기가 사라지면 곤란했다.
단순하게 초류향이 차기 교주로 등극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천마신교는 전대의 교주가 죽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교주가 바뀐 적이 없다.
교주가 바뀌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곧장 천하 사패가 움직일 것이다.
“내부의 일은 영감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 이번에 대강 정리도 했고. 하지만 외부는…… 아무래도 영감들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지.”모두가 입을 열지 못했다.
천하사패, 그리고 황실.
그들은 천마신교를 눈엣가시처럼 보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공손천기라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사라지게 된다면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 것이다.
공손천기가 없는 천마신교는 그 성난 이리 떼를 막을 수 없었다.
“천하사패의 주인들이 직접 움직인다면 아마 견딜 수가 없겠지. 그래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톡-
공손천기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탁자를 치며 좌중을 훑어보았다.
자신이 가장 믿는 사람들.
공손천기 본인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그의 사람들이었다.
“봉문을…… 선언한 것 말입니까.”“뭐,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라면 선택이겠지만…….”공손천기는 자신의 턱을 한 번 쓰다듬은 후 좌중을 둘러보다 피식 웃었다.
“이봐, 그렇게 죽을상 하고 있지 마, 영감님들. 이러면 내가 말하기 부담스럽잖아.”“…….”공손천기의 가벼운 농담에도 굳어 있는 분위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모두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복잡함이 떠올랐다.
하나 그 복잡함들 가운데 가장 뚜렷한 하나의 감정.
그것은 바로 진하디진한 슬픔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 그건 영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래?”“……그래도 적어도 저희보다는 오래 사셔야지요. 이 늙은이들보다 먼저 가셔서야 되겠습니까, 교주님?”공손천기는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전박의 말에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러니 이해해 주라.”전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하나 끓어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공손천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천마신교의 팔대 호법들 중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한 전박이다.
그는 이 무섭도록 무겁게 짓눌러 오는 슬픔 속에서도 스스로의 강점을 잊지 않았다.
“생각해 놓은 계획이 있으시겠지요? 갑작스럽게 봉문을 선언하고 이렇게 저희들을 기다렸다는 것은 그 뜻을 말씀하시고자 함이 아닙니까?”공손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천하사패의 주인들이 직접 움직인다면 본 교는 멸망할 거야. 이건 확실하지.”“…….”“그래서 난 이제부터 완벽하게 폐관 수련에 들어갈 생각이야. 내 생사 여부는 영감들도 모르고, 다른 누구도 모르게 되겠지. 그럼 그 소식이 외부에 흘러나갈 일도 자연히 없어지는 거야.”폐관 수련?
모두의 눈가에 복잡함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다지 오래 버틸 순 없을 겁니다.”그랬다.
교주라는 자리는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자리였다.
때문에 본래부터 오래 비워 둘 수가 없는 위치다.
과연 폐관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교주의 죽음을 얼마나 숨길 수 있을까?
기껏해야 몇 년?
그것도 정말 길게 보았을 경우의 이야기다.
그 이상 교주의 부재가 길어지게 되면 내부에서부터 붕괴가 일어나게 될 터.
“……소교주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그랬다.
공손천기의 폐관 수련과는 별개로 초류향은 어찌 되는 걸까?
“외부로 보냈어.”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아직 밖은 너무 위험합니다.”“물론 그냥 나가면 위험하겠지. 얼굴이 너무 알려졌으니까.”“하면…….”공손천기는 공허한 얼굴로 자신의 두 손을 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삼황 정도의 위치까지 오르려면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오 년? 십 년? 그 안에 거기까지 오른다면 정말 대단한 거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는 거야. 적어도 나 정도는 되어야 하지. 그럼 나만 한 위치까지 오르는 데 얼마나 걸릴까? 십 년? 이십 년? 대충 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이십 년이나 삼십 년 사이면 될지도 모르겠군.”“…….”“다들 짐작하겠지만 지금부터 그 아이가 올라가야 할 계단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그 높이가 어마어마해. 그런데 그것마저도 일일이 밟고 넘어갈 시간이 없지. 그래서 편법으로 내 깨달음을 그 아이에게 강제로 전해 주었어.”강제로 깨달음을 전해 주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건가?
모두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편법이 실제로 존재합니까?”공손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혹시 역천귀의술이라고 들어 보았나?”역천귀의술(逆天歸意術)?
모두가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눈을 끔뻑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들은 처음 들어봅니다.”전박이 말하자 공손천기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들어 봤을 리가 없지. 내가 만든 거니까.”공손천기는 말을 하며 아랫배를 잡고 장난스럽게 낄낄 웃었다.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 교주의 모습에 모두의 얼굴이 일그러질 때.
공손천기가 손을 들어 그들을 가볍게 진정시킨 후 말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내 깨달음을 녹여서 원하는 상대에게 강제로 주입시키는 술법이야.”“그,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가능합니까?”깨달음을 전해 줄 수 있다니?
무공과 깨달음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느끼고, 부딪쳐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하긴 해. 원한다면 자네들에게도 지금 당장 해 줄 수 있어. 하지만 부작용이 좀 심해서 해 주지 않을 뿐이야.”“무슨 부작용입니까?”무려 천하제일인 공손천기의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
부작용 따위 대수겠는가?
모두의 얼굴에 떠오른 그 감정을 읽은 공손천기가 악동처럼 웃으며 말했다.
“내 깨달음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전까지는 기억이 봉인당하게 돼.”“……예?”“쉽게 말해서 백치가 되는 거지.”“……!”저 대단한 공손천기가 평생 동안 연마하여 얻은 깨달음의 정수다.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 과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어쩌면 평생이 걸려도 이루지 못할 일이 아닐까?
그 긴 시간 동안 백치로 지내야 한다고?
“내 깨달음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다면 단번에 나처럼 무적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지. 천하사패의 주인들이 다 몰려와도 한 손으로 박살낼 수 있을 만큼.”“하나 백치가 되는 것은…….”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안 그래도 험난한 강호가 아닌가?
맨정신으로도 버티기 힘든데 백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때? 자네들에게도 해 줄까? 나처럼 무적이 될 수 있어.”모두 고개를 저었다.
젊었더라면 한번 욕심을 부릴 만했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아니었다.
이 나이에 자기 앞가림조차 못 하게 될 걸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던 것이다.
“그 아이라면 분명히 소화할 수 있을 거야. 난 단지 여기까지 오르는 시간을 단축해 준 것뿐이지.”천마신교 역사상, 아니 전 무림사를 통틀어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공손천기다.
그를 기준으로 삼고 그 위치까지 초류향이 오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봤을 때 이십 년, 혹은 삼십 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그 정도의 시간 동안 초류향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손천기 본인도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리기 힘든 상태였고, 천마신교를 적대시하는 세력은 더더욱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편법을 썼다.
얼마나 시간이 단축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초류향.
그 아이라면 분명히 어마어마한 시간을 건너뛸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이를 외부에 보낸 이유는 백치라는 걸 들키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야. 제법 믿을 만한 아이들과 함께하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안전하겠지.”그랬다.
어느 정도까지는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다음이 문제지.’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를 넘어서는 그 순간.
그때부터는 지옥이 될 게 분명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공손천기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천마신교 내부에 있게 되면 더욱 문제가 심각해질 테니까.
후계자가 백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오히려 천마신교 내에서도 초류향을 죽이려 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도박의 관건은 과연 얼마나 빨리 초류향이 스스로의 기억을 되찾느냐는 점에 달려 있었다.
‘결과를 보지 못하고 가는 건 좀 아쉽겠군.’공손천기는 클클 웃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으니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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