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56)
제156화 묵혼(2014.07.07.)
허유람은 나무꾼 청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눈에 보아도 귀티가 흐르는 얼굴이었다.
잘 씻지도 않아서 약간 꼬질꼬질하긴 했지만 그래도 청년의 준수한 용모를 가릴 수 없었다.
게다가 무슨 말만 하면 방긋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그렇게 순하고 착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하나 그는 무림인이었다.
“으…… 어떻게 하지?”허유람은 고민했다.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방금 한순간 보였던 청년의 맑은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자꾸만 청년의 눈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 차수진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저 나무꾼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사람 확실히 무림인인가 봐.”“응. 그것도 일 년 전에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죽었던 그 사건이랑 관련이 있는 거 같은데…….”“그치? 그 만석곡 참사와 관련된 사람 같지?”차수진과 허유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석곡 대참사.
엄청난 무림인들이 죽어 갔던 사건이 아닌가?
왜 싸웠는지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만석곡이라는 계곡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수백 명의 무림인들이 떼죽음을 당했던 사건이었다.
덕분에 그때 당시 바깥은 함부로 돌아다니기도 무서울 만큼 흉흉한 분위기였다.
“너희 아빠가 무림이랑은 가급적 연관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잖아?”“응. 하지만…….”눈매가 사납게 생긴 여인.
허유람은 뒷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차수진은 그런 허유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뭐가 고민인데.”“그냥…… 도와주고 싶어서.”“뭐?”차수진은 깜짝 놀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가 잠시 후 눈매를 초승달처럼 만들며 차수진은 허유람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반했어?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그런 거 아니야.”“에이, 우리끼리 뭘 속이려구 그래? 응? 솔직하게 말해 봐. 반한 게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가도 되는 거잖아?”“……그냥 그러기 싫어.”사실 차수진의 말대로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가면 그뿐인 일이기는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러기가 망설여졌다.
‘역시 눈 때문일까?’청년의 맑은 눈빛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역시 남자는 얼굴이야. 그렇지?”허유람은 차수진의 작은 중얼거림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더하면 화낸다.”“히히, 우리 유람이가 남자한테 반하는 건 처음 보네? 경사 났네~ 경사 났어!”“야! 장난 그만하고 너도 좀 고민해 봐. 어떻게 해야 할까?”실실 웃으며 허유람을 놀리던 차수진은 허유람이 정말로 화를 내자 겨우겨우 진정하며 물어보았다.
“흐음. 그런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도와주고 싶은 건데?”“기억을 잃었다고 하니까…… 그걸 되찾아 주고 싶어. 불쌍하잖아. 가족들도 걱정하고 있을 거고…….”“너도 걱정되고?”“……응.”차수진은 허유람이 진심으로 말하자 이번에는 진지하게 같이 고민했다.
그러다 잠시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의원한테 데려가 볼까?”“기억상실은 의원도 못 고치잖아.”“흠. 그럼 어쩌지?”잠시 이것저것 생각하던 차수진이 손바닥을 탁 하고 치며 입을 열었다.
“무림인이면 역시 무림인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누구? 주변에 아는 무림인 있어?”“있지. 우리 외숙부님.”“외숙부님 누구?”“요 옆에 제갈세가라고 알지? 거기 직계 중 한 분이셔.”“제갈세가?”허유람이 깜짝 놀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거긴 엄청 유명한 곳이잖아? 외숙부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제갈명. 강호에서는 풍뢰선(風雷扇)이라 불린대.”“와, 별호가 멋지다. 그럼 그 숙부님을 찾아가 보면 되나?”“응. 나랑 같이 가면 뵐 수 있을 거야.”“좋아. 그럼 저 사람 데리고 같이 가 볼까?”둘은 쑥덕거리는 것을 마무리 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춘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는 이제 가도 됩니까, 아가씨?”“아니요.”허유람은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청년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을 데리고 잠시 어디 가 봐야겠어요.”“어, 어디를 데리고 가실 생각이신지요?”“제갈세가에 데려가 보려구요.”제갈세가?
춘삼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곳은 무림세가가 아니던가?
거길 대체 왜?
“이 사람의 기억을 찾아 주려고 하는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해치지 않아요.”“그, 그래도 저희들은 일이 있어서…….”“그 사람은 무림인이에요. 괜찮으시겠어요?”“…….”춘삼 역시 청년이 무림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했었다.
아니, 청년이 무림인이라 확신했다.
하나 그것이 뭐 어떻다는 건가?
춘삼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얼굴로 눈앞의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깊게 엮이면 위험할 수 있어요.”허유람이 낮은 어조로 말하자 춘삼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가씨들이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그다지 많이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입죠. 그래도 정이라는 건 뭔지 아는 놈입니다.”“…….”춘삼은 옆에서 멍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청년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이 무림인이든 뭐든 그건 저에게 딱히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제가 살린 목숨이니 건강해질 때까지는 제가 데리고 있고 싶습니다.”허유람과 차수진은 당황했다.
춘삼이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허유람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좋아요. 이제 가셔도 돼요. 제가 실례했군요.”춘삼은 허유람의 사과를 받고 잠시 머뭇거렸다.
무언가 찜찜했던 것이다.
“저는 그쪽이 이 사람을 단순히 이용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군요. 미안해요.”춘삼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반쯤 이용하고 있긴 했다.
하나 그래도 춘삼은 떳떳했다.
청년에게 일을 시키는 동시에 청년을 착실하게 돌봐 주고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 알겠죠?”“예, 아가씨.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춘삼은 꾸벅 아가씨들에게 인사한 후 졸린 눈을 하고 있는 청년을 끌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차수진이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아? 이대로 보내도 되겠어?”“응. 별수 없잖아?”하나 말과는 달리 허유람은 굉장히 허전한 표정으로 청년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차수진은 그 모습을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 * *
“많이 배고팠지?”끄덕끄덕.
청년을 데리고 근처 식당에 들어간 춘삼은 오리탕과 만두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춘삼은 의자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의 조각 같은 옆얼굴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멀쩡하게 생긴 놈이 어쩌다가…….’아마 방금 전에 그 아가씨들을 따라갔다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적어도 기억을 되찾을 실마리를 얻거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거다.
이런 기회가 흔하게 오는 것도 아닐 테니 아쉬운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춘삼이 알기론 무림인들은 적이 많았다.
혹시나 이 녀석의 적이 제갈세가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아무래도 걱정이 과한 것 같았다.
춘삼이 자신의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
주문했던 오리탕과 만두가 나왔다.
그러자 청년은 물끄러미 춘삼을 바라보았다.
마치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 듯한 그 눈빛에 춘삼은 피식 웃어 버렸다.
‘이건 순전히 강아지를 키우는 것과 다름이 없구만.’춘삼이 손짓으로 먹어도 된다는 시늉을 해 보이자 그제야 청년은 밝게 웃으며 허겁지겁 만두와 오리탕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음식은 많으니까.”끄덕끄덕.
하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청년은 걸신들린 듯이 음식을 먹었다.
춘삼은 그런 청년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쩌면 이 녀석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도 있는 기회였는데 자신이 망친 것이 아닐까?
그런 걱정도 되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허리춤에 칼을 매고 있는 여자처럼 곱상한 얼굴의 사내.
그 사내가 식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폐부를 조여 오는 날 선 긴장감이 사방에 가득해졌다.
춘삼은 황급히 눈을 돌렸다.
‘무림인이다.’시끌벅적했던 식당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무림인이 등장하는 순간 다들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던 것이다.
‘여기서 나가야겠다.’최근에 무림인들은 강호에서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황실이 직접적으로 무림인들을 소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도 이곳저곳에 노란색 무복을 입은 황실의 고수들이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춘삼은 긴장한 얼굴로 청년의 발끝을 툭툭 건드렸다.
여기서 나가자는 신호를 하기 위해서다.
그때까지 만두를 집어 먹느라 정신이 없던 청년은 의아한 눈길로 춘삼을 바라보았다.
‘나가자.’춘삼이 눈짓으로 말하며 먼저 몸을 일으키자 청년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년은 일어서면서도 마지막 남은 만두를 입 안에 구겨 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칼을 찬 무림인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 무림인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청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뭐하는 놈이냐? 어째서 네놈은 멀쩡하지? 이름이 뭐냐? 무슨 무공을 익힌 거지?”“…….”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림인을 바라볼 때.
춘삼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헤헤, 대협께서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 제 조카 녀석은 머리를 다쳐서 바보가 된 지 오래입니다.”“머리를 다쳤다고?”무림인.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최상승의 무공을 익힌 황실의 비밀 감찰사인 묵혼(墨魂)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가 다치면 원래 겁이 없어지는 건가?’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다.
그러자 김이 팍 새 버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뿜어내는 무형지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감당하는 놈을 보고 긴장했는데 허탈해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바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청년을 자세히 보니 생긴 건 멀쩡한데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영 비루해 보였다.
옷은 다 해져 있고, 낡아 있었다.
잠시 위아래로 청년을 훑어보던 묵혼은 낮게 혀를 차며 길을 비켜 준 후 말했다.
“옷이라도 사 입혀라. 보기 안쓰럽군.”묵혼은 소매에서 금화를 던져 준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춘삼은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서 냉큼 금화를 받아 챙긴 다음 묵혼에게 연신 감사의 말을 남기며 바깥으로 나갔다.
청년을 챙기며 멀리 사라지는 춘삼을 보던 묵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식당 안의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좋군.’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우월한 기분을 느끼려고 일부러 강호에 나오지 않았던가?
묵혼이 조용해진 식당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주 학사님께서 급하게 찾으십니다. 감찰사님.][나를? 그럴 리가? 아직 약속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느냐?][예. 한데 주 학사님 쪽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고전 중이신 모양입니다.]묵혼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재미없는 농담이다. 주 학사가 어떤 사람인데.][한데 이건 사실입니다. 정도맹에서 주 학사님이 만들어 놓은 진법을 돌파했습니다. 조만간 무력으로 충돌할 듯합니다.]묵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밖을 응시했다.그리고 전음으로 말했다.
[정말이더냐?][예. 마침내 주 학사님이 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묵혼은 눈을 가늘게 뜨며 전음을 날렸다. [뛰어난 진법가가 정도맹 측에 합류했다는 말이군.][예. 그런 것으로 사료됩니다.]묵혼은 웃었다.생각보다 일정이 많이 앞당겨졌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알았다. 최대한 빨리 합류하지.][감사합니다. 주 학사님에게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묵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하들에게 전음을 날리며 웃었다.
‘어떤 놈들이 와 있으려나.’황실의 무림 말살 계획.
그 계획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무림인들이 희생당했다.
하나 황실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로 강호에서 모든 무림인들을 지우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황실에서 비밀리에 키운 다섯 명의 살인 병기.
화경의 고수들이 있었다.
묵혼은 그들 중 하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