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57)
제157화 소소(2014.07.10.)
“헤헤, 소소 오빠. 이거 좀 먹어 봐요. 엄마 몰래 다진 고기도 넣어서 맛있을 거예요.”댕기 머리를 한 주근깨가 가득한 소녀.
그녀는 나무꾼 청년에게 주먹밥을 내밀며 쑥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나무꾼 청년은 소녀가 건네는 주먹밥을 넙죽 받아 입으로 넘기며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그 웃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주근깨 소녀가 중얼거렸다.
“정말 오빠한테는 너무너무 미안하지만, 솔직히 이대로 영원히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참 좋겠어요.”“아주 본인 면전에 대놓고 욕을 하는구나.”“어? 아빠?”“내 밥은?”“여기요.”소녀는 옆에 있던 다른 주먹밥을 춘삼에게 건네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소소 오빠랑 결혼하는 거에 대해서 엄마는 이미 허락했어요. 이제 아빠만 하면 돼요.”“네 엄마는 포기한 거겠지. 하지만 난 절대 반대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죽어도 안 돼.”소소(昭笑, 밝은 웃음).
그것이 나무꾼 청년의 이름이었다.
춘삼은 사내에게 어울리지 않는 계집 같은 이름이라고 반대했지만 소녀의 강력한 주장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아빠 눈에 흙이 들어가면 소소 오빠랑 결혼해도 되요?”주근깨 소녀가 바닥에 있던 흙을 손으로 집으며 진지하게 묻자 춘삼은 주먹밥을 먹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비의 시체를 밟고 넘어갈 생각이냐!”춘삼의 분노에 찬 음성에 소녀는 찔끔하더니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사랑의 힘은 위대해요, 아빠.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없어요. 결국엔 제가 낚아채 갈 테니까.”소녀는 손에 들고 있던 흙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버렸다.
춘삼은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다 입술을 푸들거리며 웃었다.
“딸자식 키워 봐야 소용없다더니…….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잔말 말고 어서 내려가!”“허락만 해 주시면 효도 한다니까요, 제가?”“네가? 잘도 그러겠다.”“소소 오빠 닮은 아들딸 씀풍씀풍 낳아서 효도할게요.”딸의 당돌한 말에 춘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불쌍한 우리 소소한테 찝쩍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사라져 주는 게 최고의 효도다, 딸아. 아빠 피곤해. 내일도 새벽부터 일 나가야 하거든. 그러니 좀 가 주라, 응?”춘삼은 주먹밥을 입 안에 한 번에 다 욱여넣고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다시 장작을 해다가 팔려면 일찍 자야 했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하나 그의 딸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소녀는 멍한 얼굴로 주먹밥을 우물거리고 있는 소소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 소소 오빠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은 세상에 저밖에 없어요!”춘삼은 억지를 부리는 딸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애처로운 얼굴로 딸을 바라보았다.
“아서라. 지금 당장이라도 저 녀석이 얼굴 까놓고 길바닥에 앉아 있으면 데리고 가려는 여자들이 줄을 서게 될 게다. 이놈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왜요!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뭔데요!”바락바락 대드는 딸을 보며 춘삼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넌 너무 못생겼잖아.”“……!”“내 딸이지만…… 좀 그래. 너랑 맺어 주면 소소에게 너무 미안하지.”소녀는 아빠의 솔직한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멍청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 휘청거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땅을 짚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딸을 보며 춘삼은 피식 웃었다.
“까불지 말고 내려가서 자. 네 엄마한테는 내일 저녁밥은 내려가서 먹을 거라고 말하고.”“…….”춘삼은 충격에 빠져 있는 딸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소소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일은 시간이 좀 널널하니까 장작을 팬 후에 옷이나 사러 가자. 오늘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못 샀으니까.”끄덕끄덕.
춘삼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소를 기특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걱정 마라. 너는 내가 끝까지 뒷바라지해 줄 테니까. 오늘 그 아가씨들에게 보내지 않은 만큼 더 잘해 주마.”끄덕끄덕.
소소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자 춘삼이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 너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는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냐?”춘삼이 되묻자 소소는 잠시 멍청한 얼굴을 해 보였다가 곧 헤실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도 해맑았기에 춘삼은 자신도 모르게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춘삼의 손길이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지자 소소의 눈동자가 일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찡그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아윽!”“어? 왜 그래? 어디 아픈 거냐?”“소소 오빠!”퍼억-!
“컥!”주근깨 소녀는 그녀의 아버지를 옆으로 강하게 밀치며 소소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살폈다.
“오빠, 어디 아파요? 우리 아빠가 무식해서 미안해요.”소소는 자신을 염려하는 소녀의 말도 듣지 않은 채 머리를 움켜잡고 몸을 최대한 쪼그리고 앉았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왔다.
가끔씩 이런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면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것은 매우 따뜻하면서도 슬픈, 그런 감정의 조각들이었다.
‘생각하면 안 돼. 의식하면 안 돼.’소소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며 가만히 앉아서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길 간절히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입 안의 침이 거의 말라붙었을 무렵.
천천히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거칠게 심호흡을 하며 헐떡거리던 소소는 겨우 안정을 되찾고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괜찮아요?”주근깨 소녀가 묻자 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멀쩡해 보였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소소의 모습을 확인한 후 소녀는 안도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 문득 뭐가 생각났는지 저쪽 옆에서 팔을 주무르고 있는 아빠를 표독스럽게 쏘아보며 말했다.
“왜 우리 오빠 괴롭히는 거예요! 진짜 믿고 맡길 수가 없네!”“아, 아니,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갑자기 그런 거야. 원래 가끔 그랬잖아. 지금도 그런 걸 거야.”“아빠가 갑자기 머리를 만지니까 오빠가 괴로워한 거잖아요! 안 그래도 아픈 사람 챙겨 주지는 못할망정!”“그, 그거야 그렇지만…….”춘삼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섰다가 곧 서러운 듯이 투덜대며 팔을 내밀었다.
“아빠도 방금 전에 네가 밀어서 넘어졌다. 이거 봐라. 이렇게 상처도 났어.”소녀는 힐끔 아빠의 상처 부위를 바라보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살짝 까진 정도로 지금 그렇게 엄살 피우는 거예요? 못생겨서 큰일인 딸 앞에서?”“……미안하다. 아까는 아빠가 잘못했어.”“됐어요. 사과해도 못생긴 건 고쳐지지도 않는데요, 뭐.”소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오빠 요새 너무 자주 아픈 거 아니에요? 저번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러네.”춘삼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점점 주기가 줄어들고 있구나.”소소에게 때때로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처음 주워왔을 때는 보름에 한 번씩 고통이 찾아올 뿐이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사흘에 한 번꼴로 찾아오고 있었다.
그때마다 소소는 저렇게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부들부들 떨며 고통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정말 의원한테 데려가 봐야 하나?’맨 처음 소소가 저렇게 고통에 몸부림쳤을 때.
춘삼은 너무도 놀라서 소소를 들쳐 업고 마을에 딱 한 명 있는 노의원을 찾아갔었다.
하나 그때 노의원이 내린 처방은 별 도움도 안 되는 무의미한 조언뿐이었다.
[이런 종류의 정신병에는 약도 없어. 그냥 잘 챙겨 먹이고 푹 재워. 몸이 허해서 그럴 수 있으니까.]춘삼은 자기도 할 수 있는 말만 내뱉는 노의원을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별수 없었다.‘성도에 있는 큰 의원을 찾아가 봐?’돈이 많이 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가장 확실하지 않을까 싶었다.
춘삼은 결국 한숨을 내쉰 뒤 소소를 보며 말했다.
“내일 일이 끝나면 옷도 사고 의원에게도 가 보자. 아무래도 그 돌팔이 노인네 말은 믿을 수가 없네.” “진즉에 그랬어야죠.”딸의 핀잔에 춘삼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인 후 말했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치료 방법을 알아 와야겠네.”치료법이 있고, 그 결과 소소의 기억이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 부분이 살짝 망설여지긴 했지만 춘삼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가 않았던 것이다.
‘치료가 우선이겠지.’나중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었다.
* * *
성심원(誠心院).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의원을 찾는다면 성심원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그곳에서는 대대로 신의(神醫, 뛰어난 경지에 이른 의원)라 불릴 만큼 재능 있는 의원들이 줄기차게 나왔고, 그들은 항상 환자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의술 실력도 물론 그들이 최고였지만, 성심원의 의원들이 다른 의원들보다 특별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세상의 대다수 의원들이 돈을 좇아 의술을 행하는 것과는 다르게 성심원은 항상 돈보다는 생명을 우선해 왔다.
돈이 없어도 일단 생명부터 구하는 쪽에 무게를 둔 것이다.
때문에 정파와 사파, 마교 등 세상이 각자의 편을 가르며 전쟁에 휩쓸리고 있어도 성심원만큼은 딱히 그 흐름에 휘말리지 않았다.
성심원을 건드리려면 강호의 모든 곳과 적이 될 각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성심원에 춘삼과 소소가 등장한 것은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였다.
“환자가 기억을 잃었다고 했습니까?”“예, 의원님.”“어쩌다 그리되었습니까?”“저도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산속에 쓰러져서 죽어 가던 녀석을 데려와 치료를 해 줬는데 깨어나고 보니 옛날 일을 기억 못 하더라구요.”“저런…….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셨군요.”춘삼과 소소를 맞이한 의원은 굉장히 젊어 보였다.
이제 막 스무 살 중반이나 되었을까?
선한 인상과 깔끔한 옷차림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그럼 환자를 진맥해 봐도 되겠습니까?”“예, 의원님.”춘삼이 굽실거리며 소소를 앞세우자 젊은 의원은 소소의 손목을 잡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눈을 떴다.
“어떻습니까?”“…….”청년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우물거렸다.
“잠시…… 다시 한 번 진맥해 보겠습니다.”“아…… 예.”춘삼은 청년의 태도에 불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무래도 젊은 의원이다 보니 실력이 못 미더웠던 것이다.
잠시 후 얼굴을 찡그리며 진맥을 하고 있던 젊은 의원이 복잡한 표정으로 춘삼을 바라보았다.
“저…… 잠시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예?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젊은 의원은 잠시 무언가 할 말을 찾아 망설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사실대로 입을 열었다.
“아…… 제가 공부가 부족하여 안채에서 어르신을 모셔 와야 할 것 같습니다.”부끄러워하며 말하는 젊은 의원을 보던 춘삼은 고개를 끄덕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근데 치료비는 여기서 더 드릴 여력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젊은 의원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믿음직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이건 저희 쪽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니 진료비는 따로 받지 않겠습니다. 밖에 그렇게 말해 두겠습니다.”춘삼은 안도했다.
그리고 소소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져 주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는 거야 어렵지 않지요. 이미 일 년 넘게 기다렸는데요, 뭐.”“아, 그러시군요. 그럼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젊은 의원은 가볍게 몸을 일으키더니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로 바쁘게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젊은 의원은 중년의 의원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묵직한 인상의 중년 사내.
그는 들어오자마자 춘삼에게 가볍게 읍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저의 제자가 공부가 부족하여 실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양해를 바랍니다.”“아, 아닙니다, 하하하…….”젊은 의원은 뒤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무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춘삼이 그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중년 의원이 담백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진맥하겠습니다.”그는 소소의 손목을 잡고 곧장 호흡을 골랐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도 서서히 곤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지식으로도 지금 소소의 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는 이런 일에 경험이 풍부했다.
중년 의원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표정 관리를 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 후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며칠 머무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예?”“환자의 상태가 며칠 내로 고비가 올지도 모르는 상태라 이곳에서 그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허…… 어찌 그런. 갑자기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습니까?”춘삼은 당황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이다.
그런 춘삼을 보며 중년 의원이 이때다 싶어 재차 입을 열었다.
“후원에 방을 따로 마련하고 제가 직접 치료를 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위험하더라도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그, 그래 주시겠습니까?”“예. 저희 성심원은 이렇게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그동안 많이 살려 내었습니다. 경험이 많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예…….”“이 청년이 입을 옷가지를 가지고 오시겠습니까?”소소와 떨어져야 하나?
옷가지 정도야 그냥 여기서 빌리면 되지 않을까?
춘삼이 선뜻 판단을 못 하고 우물거릴 때.
중년 의원이 말했다.
“치료가 빠를수록 좋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침술을 펼쳐야 할 것 같은데 치료를 진행하다 보면 새 옷이 필요할 겁니다. 마침 저희가 준비한 여분 옷이 다 떨어져서…….”“……알겠습니다.”춘삼은 약간 이해가 안 되는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이곳이 성심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소소를 바라보며 춘삼이 입을 열었다.
“금방 집에 갔다 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알겠지?”끄덕끄덕.
“이분들이 너를 치료해 주실 거야.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기다려.”끄덕끄덕.
춘삼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중년 의원의 담담한 얼굴이 곧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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