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6)
제16화 초류향의 술래잡기(2013.03.07.)
‘쥐방울만 한 것들이 아주 놀구들 있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사내.
엄승도는 초류향과 냉하영의 대화를 엿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초류향은 엄승도가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엄승도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그는 초류향이 조심조심 밖으로 나가는 그 작은 기척을 귀신처럼 알아채고 쫓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바람을 쐬는 것 같아서 조용히 돌아가려다가 냉하영이 뒤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 기척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고만고만한 어린 것들이 어른 행세를 하겠다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쳤는지 천마신교의 비밀을 두고 장사치처럼 흥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나가서 이 건방진 꼬맹이들을 확 조져?’엄승도는 속으로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했다.
하지만 초류향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냉하영은 함부로 대하기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녀의 배경이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엄승도가 이렇게 고민하는 동안 초류향과 냉하영의 대화는 계속됐다.
“그동안 무림에 대해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어.”“뭔데? 이 누나가 알고 있는 거면 알려줄게.”냉하영의 대답에 초류향이 뭔가 물으려고 입을 열기도 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엄승도가 끼어들었다.
[섣부른 짓은 하지 마시지요, 어린 도련님. 본교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초류향은 갑자기 들려온 전음에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마치 불장난을 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등 뒤로는 삐질삐질 식은땀이 흘렀다.
‘깨어 있었던가?’천마신교의 인물과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강호 전체를 피바다에 잠기게 할 수 있을 만큼 패도적인 무력을 지닌 집단. 그들과 한 배를 타고서 동행하는 지금 천마신교에 관한 이야기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
초류향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꼭 다물었다.
“왜 그래?”“……실수할 뻔했거든.”초류향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엿듣고 있는 엄승도를 생각하니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숨어서 엿듣고 있었다는 말인가?’왠지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빴다.
초류향의 그런 똥 씹은 표정을 보고 있던 냉하영이 눈치 빠르게 물었다.
“누가……, 있어?”“…….”냉하영은 초류향의 침묵에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없는데.’무공도 모르는 초류향이 뭔가 알아낸 것 같은데 자신은 모른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감각을 최대한 확장해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으로 숨어 있는 엄승도를 찾아내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오시지요.”냉하영이 불쾌한 감정을 실어 말했지만 엄승도는 나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미쳤냐, 내가 왜 나가.’굳이 어린애들 훔쳐보다 나가봐야 볼썽사나워 보일 뿐이다.
어차피 초류향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어도 냉하영에게는 섣불리 말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엄승도는 신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은밀하게 기척을 감추었다.
은신술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것이다.
‘나오지 않을 생각이라 이거지.’한참이 지나도 엄승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초류향은 오기가 생겼다. 웬만하면 자신이 실수한 것도 있으니 그냥 입 다물고 넘어가려 했던 것이다.
근데 이렇게 숨어 있는 게 알려진 마당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저 인간이 자신을 너무 우습게보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살짝 나빠진다.
그냥 내버려두기 싫다.
뭔가 한방 날려주고 싶다.
‘방법이 없나…….’이제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초류향은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도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해볼 만은 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절 모욕하시겠다는 거군요.”결국 기척을 잡아내지 못한 냉하영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흥분하자 초류향이 그녀의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왜?”“거기서 보고 있으라구.”“어쩌려고?”초류향은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호흡을 골랐다.
정관법.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엄승도는 그러거나 말거나 어둠 속에 숨어서 피식 웃고 있었다.
‘너희들이 아무리 찾아봐라, 날 찾을 수 있나.’꼬맹이들이 하는 짓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발끈하는 모습도 그렇고, 어떻게든 찾아내겠다고 용쓰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의 은신술은 일급살수에 버금간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극소수의 고수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은신술을 깨뜨리지 못한다.
그런 자부심을 가진 엄승도 앞에서 냉하영과 초류향이 아무리 애를 쓴들 그저 어린애 장난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택도 없는 것이다. 엄승도는 그렇게 아이들과 질수 없는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엉?’엄승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류향이 갑자기 그가 있는 곳으로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이겠지.’그의 은신술은 바로 코앞에 서 있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덥석.
“장난이 지나치셨습니다.”“…….”엄승도는 멍한 얼굴로 초류향을 내려다보았다.
초류향이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무공도 모르는 꼬마와의 승부 자체가 우스웠으니까.
그런데 이 건방진 꼬맹이가 똑바로 걸어와서는 그의 옷소매를 잡아챘다.
대체 어떻게?
초류향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한 방씩 먹였으니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우드득-
초류향은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엄승도가 초류향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공중으로 들어 올린 것이다.
얼마나 세차게 잡아 올렸는지 엄승도가 손으로 움켜쥔 초류향의 상의 일부분이 뜯겨져 나갈 정도였다.
“네놈……, 대체 뭐하는 놈이냐?”지금 엄승도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술래잡기에서 어린아이에게 진 쪼잔한 어른의 분노는 이런 것이다, 라는 표정으로도 모자라 초류향을 향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초류향은 숨이 막혀서 시뻘겋게 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엄승도는 자신의 손아귀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초류향을 자신의 눈앞까지 당겨 왔다. 그리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말해라 꼬마. 죽는다.”정중한 태도를 보였던 지금까지의 엄승도는 거기에 없었다.
무인 특유의 자부심. 그 자부심에 상처 입은 야수의 본능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난폭한 손에 들린 초류향은 한낱 힘없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초류향이 컥컥거리며 숨을 몰아쉴 때.
“거기까지 하시죠, 천마신교의 무사님. 죽겠어요.”냉하영은 엄승도의 옆으로 와서 그를 쏘아보았다.
조금 전 초류향이 저 남자의 기척을 잡아낸 것이 놀라워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엄승도가 초류향의 멱살을 움켜쥘 때 퍼뜩 정신을 차렸다.
“끼어들지 마라, 계집. 죽고 싶지 않으면.”“그럴 순 없겠는데요?”말을 마친 그녀가 발을 들어 바닥을 쿵 하고 내려치자 그녀의 좌우로 네 명의 사내들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그녀를 호위하는 무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소군주님을 뵙니다.”엄승도는 낮게 이를 갈았다.
그리고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내가 너희를 다 못 죽일 것 같으냐?”냉하영은 엄승도의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보며 웃었다.
최대한 여유롭게 보이도록 가장한 웃음이었다.
“저희를 다 죽일 수 있겠나요?”엄승도는 웃었다.
잇몸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섬뜩하게.
냉하영은 그 모습이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느껴졌지만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여유를 가장한 것이다.
여기서 밀리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것이 냉하영이 알고 있는 무림이다.
“물론이지.”죽인다.
정말로 싸그리 죽일 작정이다.
정말로 살심이 크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자존심 하나가 교의 임무를 망각하고 폭주해 버린 것이다.
냉하영은 그런 엄승도를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말로 죽일 생각이군요.”“그래.”“그리고 시체는 물고기 밥으로 던져줄 생각이죠?”“오랜만에 물고기들이 포식을 하겠지.”이곳은 강 한가운데다. 도망갈 곳도 없고, 도망치기도 전에 모조리 죽일 자신도 있었다.게다가 시체도 처리하기 쉬웠다.
거기까지 엄승도가 생각했을 때 냉하영이 말했다.
“그런데 제가 아무 대책도 없이 천마신교의 배를 탔다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제가 그렇게 바보로 보였을까요? 이 배에 타면서 본회에 아무런 연락도 안 했을 것 같아요?”“…….”그녀의 말에 엄승도의 얼굴이 굳어졌다.
냉하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흥분해서 간과해 버린 것이 있었다.
강호에서 그녀가 단순히 냉무기의 손녀라는 이유만으로 이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젠장.’그녀의 총명함은 이미 그 소문이 자자했다.
흑월회에 숨겨둔 첩자들이 물어오는 소문들 역시 대단하지 않았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갔다.
지금 냉하영을 죽이긴 쉽다.
그러나 흑월회를 상대로 해야 할 뒷감당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교내에서도 사단을 벌인 이유에 대한 추궁이 있을 것이고 그 이유가 궁색한 것도 사실이다.
“잘 생각하셨어요, 천마신교의 무사님.”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승부수를 띄웠는데 다행히 먹힌 모양이었다.
냉하영은 이미 실신해버린 초류향을 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이만 놓아주시지요. 이미 대화를 나누기엔 좋은 상태가 아닌 듯해 보이는데.”엄승도는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차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
초류향이 정신을 차린 것은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스승님의 근심어린 얼굴과 그 옆에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엄승도가 보였다.
“깨어났느냐?”“……예.”“어디 아픈 곳은 없고?”“예, 괜찮습니다.”초류향은 말을 하면서 엄승도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기 전에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던 그 무시무시한 기운.
‘무림인…….’상대방이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자신이 한 행동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한 순간의 치기어린 마음 때문에 무림인, 그것도 천마신교의 무인을 도발한 것은 해도 해도 너무 멍청한 짓이 아니었던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건 내가 힘이 없으니 당한 거다.’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어리고 힘이 없어서 당한 일이었다.
상대방에게 했던 그의 행동에는 잘못됨이 없었다.
오히려 상대방이 그를 모욕한 것이 아닌가?
숨어서 이야기를 엿들은 것도 모자라 모습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희롱하지 않았던가?
힘이 있었으면, 상대와 대등한 힘이 있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모욕이었다.
‘힘이 필요하다.’이번 일이 초류향이 처음으로 힘에 대해 강하게 갈구하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조금 있으면 감숙성이다. 곧 목적지에 도착하겠구나.”스승님은 아직 모르고 계신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괜한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류향은 엄승도를 바라보았다.
엄승도도 때마침 초류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복잡한 표정이었다.
초류향은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마음 또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상대방을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엄승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어설프게 손을 쓰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엄승도였지만 그때는 정말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가 버렸다.
너무 흥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지?’자신의 은신술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손에 꼽는데.
그런데 저런 꼬마아이에게 거짓말처럼 발가벗겨졌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돌아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수상해. 확실히 수상한 꼬맹이다.’엄승도는 소매 안에 있는 종이를 구겨 버리며 신중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방금 구겨 버린 종이에는 초류향의 신상정보에 관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벌써 수십 번도 넘게 읽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가 원하던 정보는 그곳에 없었다.
‘무공을 배운 적이 없다고? 개소리 마라.’믿을 수가 없었다.
설령 엄마 뱃속에서부터 초절정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해도 저 나이에 그의 은신술을 파악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런데 무공을 아예 배운 적이 없다고?
아니, 기록에는 있긴 했다.
‘육합검법에 천수나라장이라…….’이건 표사들이나 배운다는 이름만 거창한 기초적인 권각술에 기본적인 검법이 아닌가.
그런데 고작 그 실력으로 그의 은신술을 꿰뚫어본 것이다.
‘정보에는 적혀 있지 않은 다른 것이 있다.’저 꼬맹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언지 모르겠다. 그래서 답답한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또 물어보기도 좀 뭐한 상황이었다. 그렇게까지 엄청난 짓을 했는데 순순히 말해줄지 의문인 것이다.
‘정말 거슬리는 꼬맹이다.’엄승도가 그렇게 복잡한 생각들을 할 때 초류향 역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배가 서서히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엄승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이제 감숙성입니다.”“그렇소?”초류향이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다시는 이런 모욕은 당하지 않을 테야.’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그럼, 힘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얻어야 하는 것일까?
초류향에게 이번 일은 힘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진지한 고민들은 차후에 그가 수라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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