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61)
제161화 제갈량의 후예(2014.07.24.)
월인삼라산법술해 下.
그 책을 완전히 독파하고 이해한 다음부터 제갈무휘는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
진법만 펼칠 수 있으면 더 이상 강호에 적수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제갈무휘 앞에 등장한 주호유는 놀람을 넘어서 감탄이 터져 나오는 존재였다.
진법을 이렇게 궁극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말고도 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너무 방심했어.’이번 황실과의 마지막 싸움.
그 싸움에서 정말 다 잡았던 주호유를 아슬아슬하게 놓쳐 버렸다.
너무도 아쉬웠다.
주호유가 펼쳐 놓았던 진법은 제갈무휘의 활약으로 어찌어찌 돌파했지만, 정도맹 측도 더 이상 전진할 수는 없었다.
황실에서 진짜 고수를 전장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화경의 고수.’이번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화경의 고수는 강력했다.
무턱대고 함부로 움직여도 될 만큼 만만하지가 않았다.
정도맹은 무리하지 않으며 뒤로 물러섰고, 황실 역시 더 이상의 공격은 감행하지 않았다.
서로가 이미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단지 화경의 고수 하나가 등장했을 뿐인데 전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차피 이번 건 시간 벌기였다.’황실도 그러했고, 정도맹도 그러했다.
지금은 둘 다 다음 계획을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무림 말살 정책이라…….’제갈무휘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황실의 이 어처구니없는 계획이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이쪽도 가만히 앉아서 죽어 줄 수는 없어.’정도맹을 비롯한 천하 사패는 각자가 조직적으로 저항하기로 계획했다.
황실은 이제부터 함부로 일을 벌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기에 제갈무휘는 오랜만에 짬을 내어 작은 할아버님의 상태를 보러 오게 되었다.
그의 작은 할아버지인 제갈유성은 얼마 전에 있었던 싸움에서 큰 내상을 입어 성심원에서 요양 중이었다.
* * *
“몸은 좀 어떠세요?”제갈유성은 자신의 앞에 불쑥 나타난 청년을 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바쁠 텐데 왜 네가 직접 온 거냐? 다른 아이를 보내지.”제갈무휘는 품속에서 가져온 작은 환약을 꺼내 들며 미소 지었다.
“당분간은 한가할 것 같아서요. 황실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겁니다.”마지막 싸움으로 주호유를 잃을 뻔했으니 아마도 한동안은 그들도 극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일 것이 뻔했다.
제갈유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제갈무휘가 건네는 약을 받아먹은 후 입을 열었다.
“마침 네가 왔으니 잘 되었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두 개 물어보셔도 돼요. 할아버지.”제갈무휘가 근처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말하자 제갈유성은 신중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이곳에 펼쳐 놨다는 진법이 혹시 깨졌느냐?”제갈무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아뇨. 멀쩡하던걸요?”“흐음.”제갈유성은 얼굴을 찡그리며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제갈무휘를 바라본 후 말했다.
“그럼 이곳에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게 맞겠지?”“예.”제갈무휘는 대답하다가 말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입을 열었다.
“어? 혹시 누군가가 왔었어요?”제갈유성은 잠깐 고민했다.
아까 전에 자신이 봤던 그것이 허상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착각이라고 하기에 너무 생생했다.’그랬다.
그냥 헛것을 본 거라고 넘어가자니 걸리는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제갈유성은 결국 제갈무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사라졌지만 누군가가 오긴 왔었지.”“곧바로 사라졌다구요?”“그래. 저곳에서 사라졌다.”제갈무휘는 제갈유성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본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요?”“……네가 보기에도 그러하냐?”“예.”제갈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법을 만든 녀석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정말 자신이 헛것을 본 모양이었다.
“이상한 녀석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저 자리에 앉더니 바닥을 몇 번 훑고 다시 앉으니까 연기처럼 사라졌다.”“……바닥을 훑고 다시 앉았다구요?”“그래.”“혹시 이렇게요?”제갈무휘가 발로 바닥을 가볍게 쓸어 보이자 제갈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구나.”“…….”갑자기 제갈무휘의 이마에 주름살이 패였다.
심각한 얼굴이 된 것이다.
“언제 왔었어요, 그놈이?”“음…… 대략 반 시진(한 시간) 정도 된 것 같구나.”“그럼 아직도 있을 수 있겠네요.”제갈무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제갈유성이 가리킨 자리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 잠시 고민했다.
“여기에서 사라졌다라…….”아무리 둘러보아도 놈의 흔적은 보이지가 않았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제갈무휘는 일단 손을 뻗어 보았다.
그리고 빈 허공에 손을 막 휘적거리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왜 그러느냐?”“잠시만요.”제갈무휘는 재미있다는 얼굴을 해 보이며 손을 계속 휘적거렸다.
보통은 바닥 쪽을 먼저 살펴볼 텐데 그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보다 더 높은 곳을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엉뚱한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제갈유성은 깜짝 놀란 얼굴로 제갈무휘를 바라보았다.
제갈무휘 역시 자신의 손끝에 걸린 무언가를 느끼고 두 눈을 깜빡이며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진짜 있었네요?”“조심하거라.”제갈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끝에 걸린 옷깃을 잡아당겼다.
처음에는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이윽고 무언가가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청년이 바깥으로 나오는 그 순간.
조금 전까지 청년이 있던 자리가 호수 위의 파문처럼 일렁거리다가 다시 선명하게 돌아갔다.
제갈유성이 그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제갈무휘가 입을 열었다.
“너 정체가 뭐야? 어떻게 진법 안에 이렇게 빈틈을 만든 거지?”“…….”청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관찰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하긴 쉽게 대답해 주는 것도 우습지.’그렇게 순종적인 놈이었으면 이렇게 숨어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청년을 찬찬히 살펴보던 제갈무휘는 본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새하얀 섭선을 소매에서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곳은 내가 만든 진법 안이야.’자신이 만든 진법 안에서 기운을 움직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섭선이 기묘하게 흔들리자 청년의 눈가에 작은 빛이 번뜩였다.
동시에 청년이 뒤로 훌쩍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제갈무휘는 그것을 뒤쫓지 않았다.
그저 즐겁다는 얼굴로 미소 지을 뿐이었다.
“역시 너는 진법가로구나.”“…….”초류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곤혹스러운 얼굴을 할 뿐이었다.
저 사내가 들고 있는 섭선이 이상하게 움직이자 진법이 그 움직임에 맞춰서 변형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뒤로 물러선 것까지는 좋았다.
‘이건…….’초류향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저 사내가 움직이는 진법이 초류향에게 있어서 매우 익숙한 모양과 형태였기 때문이다.
‘어째서…….’자신 외에는 알 리가 없는 진법의 움직임.
그것을 저자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초류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다 천천히 바닥을 살펴보며 초류향은 발끝을 움직였다.
‘시험해 봐야 한다.’이것은 중요했다.
만약에 저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로 그 흐름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확인해 봐야만 했다.
결심이 서는 순간 초류향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조용히 두 손을 가슴 어림까지 들어 올려 손뼉을 마주쳤다.
짜악-!
“무슨…… 어?”섭선을 가볍게 부치며 여유롭게 웃고 있던 제갈무휘의 표정이 초류향의 박수 소리와 함께 대번에 일그러졌다.
“너 이 자식!”진법의 흐름이 한 번에 바뀌었다.
박수 소리와 함께 진법의 주체가 초류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제갈무휘는 움직였다.
섭선을 흔들며 초류향에게로 달려든 것이다.
너무 방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허망하게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되찾아 와야 해.’제갈무휘는 이를 악물고 섭선을 휘둘렀다.
찌이이익-!
사방에서 공기가 사납게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주변의 공간들이 어지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립하는 두 사람의 흐름 때문에 진법 전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이다.
제갈무휘가 요란하게 진법을 휘젓는 것과는 다르게 초류향은 손뼉을 마주치고 있는 그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제갈무휘의 행동을.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것이 확인되자 초류향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월인삼라산법술해인가?”“……!”제갈무휘는 섭선을 휘둘러 겨우겨우 주도권을 되찾아 오자마자 들려온 단어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갈 만큼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
“너, 너…… 어떻게 그걸…….”“…….”초류향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제갈무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금 전 초류향의 말이 단순하게 넘겨짚고 그를 떠본 것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너 설마 떠본 거냐?”초류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환혼진(還魂陳)은 흔한 진법이지. 하지만…… 진법을 펼친 자가 쓴 특유의 방식은 숨길 수가 없다.”이곳에 펼쳐져 있는 환혼진법은 기억이 돌아오자마자 알아챘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호하려는 진법임을 알아봤던 것이다.
“너…… 정체가 뭐지?”제갈무휘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는 더 이상 장난칠 기분이 아닌 것이다.
저놈이 단순히 진법가였다면 이렇게 정색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놈은 그가 익힌 진법의 뿌리까지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이건 평범한 진법가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어떻게 알아봤지?”“그냥 보였다.”“어물쩍 넘어갈 생각 따위는 버려라. 네가 거론한 그것은 외부에 단 한 번도 유출된 적이 없는 가문의 보물이다.”“가문……?”초류향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흥미로운 얼굴을 해 보였다.
짐작 가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제갈세가의 사람인가? 하긴 그렇겠군. 이제야 이해가 된다.”“몰랐던 것처럼 굴지 마라! 본가의 보물을 아는 놈이 나를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지금?”초류향은 정말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몰랐다.”“……무릎을 꿇려 놓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만.”제갈세가의 비전.
월인삼라산법술해.
가문 내에서도 그것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제갈무휘 본인을 포함해서 딱 세 명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생판 모르는 놈의 입에서 듣게 되었으니…….
‘죽여서라도 반드시 입을 막아야 한다.’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 가치가 유지되는 법.
게다가 월인삼라산법술해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져서 좋은 게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제갈무휘가 독한 마음을 먹고 섭선을 휘두르자 초류향은 얼굴을 찡그렸다.
‘진법을 변형시킨다?’진법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단히 위험한 형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의 진법은 그저 내부를 보호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진법이 사람을 죽이기 위한 용도로 변경되고 있었다.
‘하지만…….’초류향은 섣불리 손을 쓰지 않았다.
제갈세가라면 제갈량의 후예들이지 않은가?
그의 핏줄에게 과감하게 손을 쓰기가 망설여진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사태를 정리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진법을 그렇게 급격하게 바꾸면 나는 괜찮지만 저 사람은 죽게 된다.”“……!”“죽이고 싶은 게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인가?”초류향이 뒤쪽에 앉아 있는 제갈유성을 보며 말하자 제갈무휘는 아차 하는 얼굴로 섭선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이를 갈았다.
그때 뒤에서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제갈유성이 입을 열었다.
“망설이지 마라. 그새 잊었느냐? 가문을 위한 일이라 판단되면 내 목숨 정도는 신경 쓰지 말라는 내 당부를?”“……!”제갈유성의 말에도 제갈무휘는 입술을 깨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할아버지의 목숨도 걱정이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 지금 제갈무휘가 움직임을 멈춘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였다.
‘확신이 없다.’진법을 펼쳐서 저놈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
그런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현명하군.”초류향은 제갈무휘의 생각을 읽었다.
그랬기에 천천히 일어나 걸어갔다.
제갈무휘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진법을 유유히 헤치며 걸어가는 초류향을 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쫓아갈까?’쫓아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진법을 펼쳐도 유유히 빠져나갈 놈인데.
‘무공으로 찍어 눌러?’그것도 이상하게 썩 내키지 않았다.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진법을 다루는 놈이면 무공으로 덤빈다 하더라도 진법 안에서 요리조리 도망쳐 버릴 수 있었으니까.
한참 갈등하던 제갈무휘는 결국 초류향의 등을 바라보며 불쑥 소리쳤다.
“네놈 이름이 뭐냐!”“이름?”“그래. 다른 것은 몰라도 네놈 이름은 알아 둬야겠다. 그래야 다음에라도 오늘의 굴욕을 갚을 수 있을 것 아니냐?”초류향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초류향. 내 이름은 초류향이다.”“초류향…….”제갈무휘가 그 이름을 몇 번이고 곱씹고 있을 때.
초류향이 다시 등을 보이며 걸어가며 말했다.
“다음을 기대하지. 제갈량의 후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