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68)
제168화 확신(2014.08.18.)
복면인.
운휘는 흑룡문 후원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오늘도 찾지 못했다.’부상에서 회복한 지 이제 반년이 됐다.
하지만 소교주님과 헤어진 기간은 벌써 일 년이 넘어갔다.
초조했다.
아직 완치가 되기 전부터.
겨우 스스로의 몸을 수습할 수 있게 되자마자 운휘는 초류향과 헤어진 곳을 수백 번도 넘게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운휘는 확신했다.
‘살아 계신다. 분명.’초류향을 찾을 단서가 없어진 것은 답답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완벽하게 흔적을 지웠다면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을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운휘가 초류향의 생존을 확신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소교주님의 뒤를 쫓는 누군가가 있다.’천마신교에서 나온 추적자들.
그놈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아직까지 그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분명 초류향은 살아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그게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추적자들 중 하나를 잡아서 고문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겨우 그 감정을 억눌렀다.
괜히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일이 더 어렵게 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조용하게…….’그것이 그동안의 수색 방법이었다.
하지만 슬슬 수색 방법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조용하게 진행하되, 정보 단체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 것 같았던 것이다.
‘최대한 빨리 찾겠습니다. 주군.’헤어지기 직전까지 초류향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공손천기가 마지막에 했던 말을 종합해 보았을 때.
초류향은 아직 알에서 깨기 직전인 상태였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외부의 위협에 가장 취약한 순간이었다.
화령이 곁에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초류향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얼마나 힘든 일들을 겪고 있을지를 생각하니 운휘는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자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것이다.
‘그때 그놈을 억지로 데려왔어야 했다.’운휘는 천마신교를 떠나던 날, 부상에서 덜 회복된 노진녕을 그냥 두고 나왔던 자신을 탓했다.
녀석이라도 있었다면 적어도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놈은 잘 지내고 있겠지?’그래도 한편으로 달리 생각해 보면, 천마신교에 하나의 끈이라도 남겨 둔 것은 다행한 일일지도 몰랐다.
운휘가 보았을 때 지금 천마신교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 * *
현재 천마신교는 운휘의 예상처럼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실종된 소교주를 찾아내서 교주로 등극시키자는 보수파와, 새로운 교주를 세워 교를 안정시키자는 개혁파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이건 애초에 승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보수파에 화경의 고수들이 몽땅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천마신교에 남아 있는 세 명의 화경의 고수.
우 호법, 주 호법, 그리고 노진녕.
이들 중 놀랍게도 노진녕은 보수파가 아닌 개혁파와 함께하고 있었다.
덕분에 미묘하게 양측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우 호법과 주 호법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명백한 배신 행위였다.
하지만 그런 노진녕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사부는 안전하시겠지?”“물론이지.”“만나게 해 줘. 오늘은 얼굴을 보여 준다고 약속했잖아!”노진녕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화를 냈지만 그와 마주하고 있는 자는 느긋했다.
“분명 그랬지.”“그럼 빨리 보여 줘. 살아 계신지, 건강하신지만 확인하면 되니까.”“근데 계획이 변경되었어. 미안하다.”그 말에 노진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사부.
혈수광마 권광민이 이놈들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노진녕은 모든 저항을 포기했다.
아버지와 같은 사부가 아닌가?
그의 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소교주 초류향.
그에게 방해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천마신교 내부의 알력 다툼에서 사대 세가의 손을 들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노진녕으로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살아 계시고, 건강하시다. 우리도 혈수광마 어르신을 함부로 대할 만큼 나쁜 놈들이 아니야.”노진녕은 화가 났다.
눈앞에 있는 능구렁이 같은 자식의 면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짓뭉개 버리고 싶었지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만약에라도 그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면 사부의 안위를 장담할 수가 없으니까.
“확인만……. 먼 거리에서 확인만 할게. 부탁해. 건강하신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노진녕의 앞에 있는 매끈한 얼굴의 청년.
사대 가문들 중 천씨 가문의 후계자.
천자후는 고개를 저었다.
“계획이 변경되어서,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세가의 방침이거든. 미안하다.”“…….”노진녕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스승님이 어디에 계신지만 알면 구출할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대 세가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노진녕이라는 다루기 쉬운 도구를 함부로 잃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노진녕은 그의 사부를 팔면 꼼짝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던 탓이다.
“그나저나 오늘 보수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우 호법님과 회의가 있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불상사가 생길지 모르니까 네가 나를 보호해 줘.”“…….”노진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찌푸리며 천자후를 바라볼 뿐이었다.
“왜? 싫어?”천자후가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자 노진녕은 금세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말했다.
“……아니. 싫을 리가 있나? 그 대신에 이번에는 정말로 사부를 볼 수만 있게 해 줘. 진심이야. 나 사부가 너무 보고 싶어.”천자후는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는 정말로 먼발치에서라도 보게 해 주지. 이번에는 진짜다.”선선히 수긍을 하자 노진녕은 놀란 얼굴을 했다.
그동안 항상 말을 빙빙 돌리기만 했는데, 갑자기 순순히 보여 준다고 하니 이상했던 것이다.
“정말이지?”“그래. 우리도 사실 이번 회의만 잘 마무리되면 더 이상 너를 괴롭히고 싶지가 않아. 혈수광마 어르신 역시 우리와 있는 것보다 너와 있는 편이 더 좋겠지. 그분도 행복한 노후를 보낼 권리가 있으니까.”노진녕은 천자후의 말에서 어느 정도 진심을 읽을 수 있었기에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이번 회의가 그렇게 중요해?”“물론. 새로운 소교주를 뽑을지 말지 결정하기 위한 회의거든.”“…….”노진녕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새로운 소교주라니?
그럼 기존의 소교주님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의문을 읽었음일까?
천자후가 느긋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소교주가 선출되게 되면 기존에 네가 모시던 소교주……. 초류향이었던가? 그 애송이는 이제 본 교의 적이 되는 거지. 본 교가 공개적으로 천하에 추살령을 발표할 수 있게 되는 거야.”추살령(追殺令).
말 그대로 천마신교의 전문 무력 단체가 그 목표를 쫓아가서 죽이는 것을 말한다.
“본 교가 천하에 소교주의 추살령을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어떻게 되는데?”천자후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설명해 주었다.
“그놈은 그때부터 정도맹에서도 쫓기게 될 거야. 백치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간에 어찌 되었건 놈은 그 악마 같은 공손천기의 후계자니까, 정도맹에서도 놈을 죽이려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겠지.”“…….”“뭐, 대충 상태를 살펴보니 차라리 잘된 거 아니야? 백치라며? 그렇게 살 바에 그냥 죽는 게 낫지 않겠어? 하하하.”노진녕은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보수파와 개혁파가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서로를 어쩌지 못한 것은 노진녕의 존재 때문이었다.
화경의 고수 한 명이 가지는 힘이 그만큼 어마어마했으니까.
보수파에서도 섣부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던 개혁파는, 천마신교의 오랜 율법을 거론하며 비어 있는 교주 자리를 새롭게 채우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이 그 결전의 날인 모양이다.
노진녕은 걱정했다.
천자후가 이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어떤 확신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우 호법과 주 호법.
그들이 쉽게 허락하지는 않겠지만 왠지 불안한 노진녕이었다.
* * *
초류향은 약간 느긋한 마음이 되었다.
흑월회와의 거래가 초류향을 느슨하게 만든 것이다.
흑월회의 군사 냉하영.
초류향이 아는 한 그녀는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한 달이라…….’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안에 운휘를 찾아 준다고 했으니 그녀는 정말 찾아 줄 것이다.
그럼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흑월회는 공짜로 일을 해 주지는 않았다.
흑월회가 초류향에게 원하는 것.
그것은 황실의 시선을 잠시 끌어 달라는 것이었다.
황실의 시선을 돌려놓고 흑월회가 무언가 일을 꾸미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굳이 그 이유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거래다.’이건 사실 초류향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으니까.
어떻게 황실의 시선을 묶어 둘까?
그것은 간단했다.
초류향에게는 진법이 있었으니까.
진법이라면 황실의 시선을 확실하게 묶어 둘 수 있었다.
그랬기에 초류향은 느긋한 마음으로 황실의 병력들이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길목들을 제일 먼저 찾아가기 시작했다.
흑월회가 알려 준 정보를 취합해 보았을 때.
안휘성(安徽省)의 성도인 합비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그곳은 정도맹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었고, 황실이 다음 목표로 삼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었으니까.
그것이 냉하영의 판단이었고, 초류향도 동의했다.
안휘성으로 찾아가 황실의 움직임을 살펴보려 했던 초류향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의외의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남궁옥빈.’한눈에 알아보았다.
많이 변했지만 초류향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정관법으로 보았던 남궁옥빈의 수치는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남궁세가의 영역이었구나.’안휘성은 전통적으로 남궁세가의 세력권이었다.
천하제일 세가라 불리는 남궁세가.
그들의 안마당과도 같은 곳이 바로 이곳, 안휘성이었다.
그리고 황실은 이곳을 다음 목표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초류향은 은밀하게 남궁옥빈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구나.’남궁세가는 과연 전통의 명가였다.
그들 역시 황실의 다음 공격지가 이곳이 될 것이라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습격을 받게 되면 최적의 상태에서 바로 대응할 수 있게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가만히 그들의 준비를 살펴보던 초류향은 감탄했다.
그들의 준비에는 빈틈이 없었다.
심지어 정도맹의 안휘 분타까지 끌어들여서 남궁세가는 필승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래도…….’황실에서 정말 작정을 하고 달려든다면 남궁세가는 패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황실 역시 만만치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일방적인 패배는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눈에 뜨였으니까.
초류향은 멀찍이 떨어져 남궁옥빈의 뒤를 쫓다가 머뭇거렸다.
‘들키겠는데?’남궁세가의 경비가 생각보다 삼엄했던 것이다.
아무리 초류향이 화경의 고수라지만 이대로 남궁옥빈을 따라간다면 곳곳에 깔린 정찰 인원들의 눈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그의 존재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여기서 돌아갈까?
초류향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왕 내친걸음이라 여겼다.
때문에 얼마 전에 봤던 시엽의 은신술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용해 보았다.
‘가능할까?’시엽이 보여 주었던 은신술은 상당히 독특했다.
바로 곁에 있어도 사람들은 시엽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을 정관법으로 면밀하게 관찰했던 초류향이었다.
초류향은 그때 관찰했던 특징들을 자신의 몸에 맞게 변경해서 조심스럽게 사용해 보았다.
스으윽-
초류향의 몸이 갑자기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지다가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한 후 초류향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었다.
약간의 긴장감.
초류향은 길목마다 숨어 있는 남궁세가의 고수들의 눈앞을 대놓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공이다.’바로 눈앞에 있는 초류향을 인식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바로 앞을 지나가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초류향은 자신의 은신술이 통한다는 사실에 흐뭇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래서 초류향은 조금 더 대담하게 행동했다.
아예 남궁옥빈 바로 옆에 붙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나아간 남궁옥빈이 발걸음을 멈춘 곳.
그곳을 보며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