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72)
제172화 노진녕의 진심(2014.09.01.)
‘저게 뭐지?’저 동작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남궁옥빈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초류향의 손동작을 바라보고 있던 창천검군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하더니 점점 새하얗게 질렸다.
“……네놈 어떻게 그걸…….”창천검군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초류향이 보여 준 움직임은 창천무애검법의 파훼법이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상대방은 단 한 번 봤을 뿐인 창천무애검법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기까지 했다는 것에 있었다.
‘저런 일이 가능한가?’창천검군은 스스로에게 되묻고 고개를 저었다.
한 번 본 무공을 똑같이 펼친다?
말이 쉽지 그의 상식상 저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상대방은 그 불가능한 것을 해냈다.
놈의 재능이 어디까지 닿았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요행이 아니었다, 이 말인가?’검해를 돌파한 것이 단순히 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몸을 부르르 떨며 잠시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창천검군은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두 물러서라. 녀석을 그냥 보내 주거라.”“아버지!”창천검군은 다급히 자신을 부르는 남궁세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 개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겠지.”남궁세옥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본 가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아버지.”명문세가에는 명문세가만의 자존심이 있는 법이다.
적이 강하다고 물러서고, 힘들다고 피한다면 그게 어디를 봐서 명문이라는 말인가?
적이 아무리 강하고 무섭더라도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게 바로 명문의 고고한 자존심이다.
“저놈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싸울 마음이 없다. 그런 적을 진심으로 상대하는 것도 실로 부끄러운 일이겠지.”“…….”그랬다.
싸움을 피하려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달려드는 것도 우스운 노릇 아닌가?
남궁세가 무인들의 얼굴이 복잡해질 때.
초류향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볍게 몸을 띄웠다.
그리고 포위망을 풀쩍 뛰어넘어 재빠르게 멀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천검군이 결국 입에서 울컥하고 피를 토해 냈다.
그동안 억지로 내상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창천검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는 남궁세옥을 손을 들어 막으며 말했다.
“모두 오늘의 굴욕을 똑똑히 기억해라. 뼈에 새겨서 후대까지 알려야 한다.”비록 적이 눈앞에서 도망쳤다고는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건 그들이 적의 힘을 두려워해서 피한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남궁세옥이 낮은 어조로 말하며 이를 갈았다.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치욕을.
창천검군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구석에 있던 남궁옥빈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를 찾아와라. 너에게 본 가의 검을 전수해 주마.”“……!”남궁윤호가 가문의 검을 전수한다?
그것은 다음대의 세가 제일고수를 정했다는 말이 아닌가?
모두의 눈가에 놀람이 떠올랐으나 창천검군은 거기에 신경도 쓰지 않고 남궁옥빈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궁극을 뛰어넘는 궁극.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 반드시.”남궁옥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할아버님.”“……시간이 없다.”황실과의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전수를 끝내야만 한다.
창천검군은 초류향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들끓는 내상을 필사적으로 가라앉혔다.
* * *
초류향은 남궁세가의 영역에서 멀찍이 벗어난 다음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막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딜 다녀온 거지?”[네놈이 알 필요는 없다.]“그런가.”초류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막수가 어디 가서 무얼 했든 자신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꾸준하게 자신 옆에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목적이 무엇일까?’정말 이놈의 목적은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단지 그것뿐일까?
그리고 그게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아직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근 자신을 바라보는 막수의 눈빛이 변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전의 그 무시하고 비웃기만 하던 눈빛이 아니었다. 뭐라고 꼭 집어서 설명할 순 없었지만 미묘하게 바뀌어있었다.
‘흥미진진한 눈길이라고 해야 하나?’초류향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남궁세가의 포위 범위 바깥에 있는 거대한 절간 위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기다려야 하는 신세였다.
초류향은 차라리 황실이 좀 빨리 움직여 주기를 바랐다.
* * *
“사부, 괜찮아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어요?”노진녕은 사부인 혈수광마 권광민 앞에 무릎을 꿇고 울먹거렸다.
드디어 사부를 만나게 해 준다는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그동안 사부를 인질로 자신과 줄다리기를 하던 사대 세가가 마지막에는 약속을 지켰다.
초췌한 안색의 권광민은 자신의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노진녕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쫘악-
“……?”노진녕이 얼떨떨한 얼굴을 할 때.
권광민이 분노한 얼굴로 그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입을 열었다.
“이노옴!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사, 사부?”“나는 네놈이 바보 같고 멍청하지만 적어도 충의(忠義, 충성심)는 있는 놈이라고 보았다. 한데 네가 지금 소교주님께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는 게냐? 어?”권광민은 활화산같이 분노했고, 그 앞에서 노진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서러웠던 것이다.
노진녕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사부가 죽는다구요. 놈들이 사부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했어요. 아시잖아요? 저라고 소교주님을 싫어하겠어요?”아버지와 같은 사부다.
그의 목숨줄을 쥐고 협박한다면 노진녕은 놈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나쁜 놈이라고, 배신자라고 욕먹어도 할 수 없었다.
사부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악독한 짓이라도 할 수 있는 노진녕이었으니까.
배신자라고 욕먹는 것 정도는 사부의 목숨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진녕을 마주하고 있던 권광민의 눈동자가 갑자기 탁하게 풀렸다. 동시에 그의 입가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어? 사부? 사부! 왜 그러세요? 어디 아파요?”노진녕이 깜짝 놀라 품에서 약을 찾기 위해 허둥거렸지만 권광민은 오히려 그런 노진녕의 멱살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며 말했다.
“……나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놈아. 네가 이 늙은 몸뚱이를 걱정해 주는 건 고맙다만 그건 나를 위하는 게 아니다. 왜 그걸 모르느냐…….”“사부…….”노진녕은 콧물을 훌쩍거리며 사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순간 움찔했다.
과거 두 주먹만으로 강호에서 혈수광마라 불렸던 사부 권광민의 손은 어느새 작고 약해져 있었다.
노진녕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릴 때 권광민이 입을 열었다.
“이토록 멍청한 너를 보살피고 돌봐 줄 사람은 소교주님밖에 없단 말이다! 이 어리석은 놈아.”권광민은 버럭 소리치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거칠게 호흡을 골랐다.
맨 처음 사대 세가 놈들에게 사로잡혔을 때.
그놈들의 더러운 속셈을 단번에 알아차린 권광민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놈들은 분명 자신의 목숨을 이용해서 제자를 마음껏 휘두르려고 할 것이다.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웠지만 자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은, 자신이 죽는다면 아둔한 제자 놈은 정말 끝까지 그놈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착같이 버티며 때를 기다렸다.
사실 당시 권광민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점차 멀어지는 목숨줄을 억지로 부여잡고 버텼던 것이다.
그래야만 이 멍청한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되돌릴 결단을 내리도록 만들 수 있었으니까.
“잘 들어라, 이놈아. 정말 마지막이니까.”노진녕은 초조한 얼굴로 권광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부, 다 알겠으니까 우리 일단 선우조덕 영감님에게 가요. 그 영감님이 의술 하나는 정말 기똥차니까 아파도 금세 고쳐 줄 거예요.”권광민은 입과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지도 않은 채 툴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놈아, 내가 무슨 염치로 마의를 찾아간단 말이냐. 됐다. 여기 앉아라.”“사부가 왜요? 안 고쳐 준다면 제가 다 박살 내서라도 고쳐 주게 만들게요.”권광민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노진녕에게 자신의 앞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사부! 이럴 시간이 없다니까요? 지금이라도 빨리…….”“앉아라.”“…….”노진녕은 사부의 단호한 태도에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결국 그의 앞에 털썩 앉았다.
“우리 빨리 가야 하니까 짧게 해요, 사부.”권광민은 피식 웃었다.
이놈은 정말 멍청하고 바보였지만 그랬기에 그만큼 순수했다.
진정으로 그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진녕아.”“……예, 사부.”“너는 이제부터 소교주님을 구해야 한다.”“…….”노진녕은 입을 다물었다.
바보 멍청이였지만 노진녕도 자신이 여태까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괴로웠고 답답했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소교주님께 미안하고 죄송스러워도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네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이 늙은 몸뚱이를 살리기 위해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게 아니다.”권광민은 전신에서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알았지만 애써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노진녕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야 했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나와 약속해라.”“사부…….”“소교주님을 구하겠다고.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소교주님을 구하겠다고. 그리고 차후에 그분의 처분에 따라 죗값을 치르겠다고 약속해라.”“알겠어요. 약속할게요. 약속할 테니까, 사부. 일단 우리 마의 영감님을 만나러 가요. 예?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권광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으며 노진녕의 뺨에 주먹을 살짝 가져다 대고 말했다.
“이미 너무 늦었다, 이놈아.”급격하게 꺼져 가는 권광민의 눈빛.
동시에 노진녕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는 권광민의 몸을 가볍게 받아 내며 노진녕이 입술 끝을 푸들거렸다.
그리고 벌벌 떨리는 손끝을 권광민의 코 앞에 대 보고 노진녕은 모든 동작을 멈췄다.
“……이거 거짓말이죠, 사부?”“…….”“하하, 나 멍청하다고 장난치는 거죠, 지금? 이건 또 무슨 무공이에요, 사부? 저 또 속을 뻔했잖아요. 예? 대답 좀 해 봐요.”노진녕은 한동안 권광민의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항상 잔소리에 욕만 하던 사부 권광민의 걸걸한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노진녕은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주변은 고요했고, 그와 권광민이 머물고 있던 작은 초가집은 그림처럼 모든 시간이 정지해 버렸다.
쏴아아아-!
바람이 주변 대나무 숲을 스쳐 가는 소리가 들렸다.
석상처럼 굳어 있던 노진녕이 움직인 것은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그는 품 안에 보물처럼 안고 있던 권광민의 눈을 그제야 감겨 주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스승님의 유해를 침상에 조심스럽게 눕혀 놓고 노진녕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과 권광민이 함께했던 작은 초가집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끝에 기운을 모았다.
화르륵-
작은 불꽃이 일어나자 노진녕은 그것을 초가집에 옮겨 붙였다.
타닥- 타닥-
나무와 주변에 널려 있던 재료로 대충 얼기설기 만든 둘만의 초가집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진녕의 장난기 많은 얼굴에서는 이미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사부, 나 가요.”초가집은 사방으로 불똥을 튀기며 맹렬하게 타들어 갔고, 그 광경을 바라보며 노진녕은 다시 말했다.
“약속할게요, 사부. 소교주님은 반드시 제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구할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요.”화염에 휩싸인 초가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약간 얼굴이 상기된 채 노진녕은 몸을 돌렸다.
“사부, 나 이제 정말 가요. 잘 있어요.”노진녕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날렸다.
빠르게 달려가는 그는 보기 불쌍할 정도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결국 그는 얼마 가지 않아서 끅끅거리며 눈물 콧물을 울컥 쏟아 냈다.
심장이 타들어 갈 만큼 아팠다.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참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참지 않았다.
“으허허헝!”노진녕은 펑펑 울면서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지금 달리지 않으면 심장이 멎기라도 할 것처럼 노진녕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달렸다.
‘나는 바보야.’자신은 멍청해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랬기에 계획을 짜고 적극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영감님들 많이 화나셨겠지?’아마 지금 우 호법과 주 호법을 찾아가면 욕을 먹고 매질을 당하거나 두들겨 맞겠지만 별 수 없었다.
그들에게 매달려 소교주님을 구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
“크흑, 크허헝!”노진녕은 그렇게 눈물 콧물을 흘리며 대성통곡을 멈추지 않은 채 달렸다.
최대한 빨리 우 호법과 주 호법을 만나기 위해 펑펑 울면서도 다리에 힘을 주었던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