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75)
제175화 운휘, 춘하월을 만나다.(2014.09.11.)
임학겸과 엄승도는 강호에서 노진녕을 만났다.
사대 세가의 편을 든 노진녕에게 적잖이 실망했던 그들이었지만, 자초지종을 듣고는 일이 어쩔 수 없었음을 알기에 그를 받아들였다.
그들 역시 막막했던 것이다.
초류향의 흔적은 정말이지 너무도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화령과 운휘가 그만큼 완벽하게 흔적을 지운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다는 데에 있었다.
“정보가 너무 적습니다. 이건 적다가 아니라 아예 없는 수준이니까요.”“역시 그렇지?”제아무리 추적과 암살의 달인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정보가 적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되면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직접 발로 뛰며 일일이 사람들을 확인하고 다닐 수밖에.
“저희들은 처음 계획대로 흔적들을 쫓으면서 교에 계신 어르신들과 연락을 하겠습니다. 노진녕 님께서는 저희와 연락하면서 이 주변을 크게 흔들어 주시면 됩니다.”“그러면 정말로 운휘가 찾아올까?”노진녕이 걱정스럽게 묻자 엄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확신이 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현재는 거기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운휘 님과 연락이 닿으면 그쪽이 가진 정보와 저희가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무언가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알았어.”노진녕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천마신교에서 파견된 척살조가 이미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먼저 초류향을 발견해 낸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그들이 알기로 초류향은 아직 백치 상태였기 때문이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도 있었다.
노진녕은 서둘러 움직였다.
그 역시 초류향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 * *
운휘는 초류향의 흔적을 쫓고 있던 추적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행동 반영과 이동하는 방식들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 운휘는 곧바로 그들을 덮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빛내며 그들이 하는 짓을 유심히 살폈다.
* * *
“그러니까 소소라는 놈이 여기에 있었다, 이거지?”“모, 몰라요.”“모르긴 뭘 몰라. 누굴 바보로 아나.”장대한 체구의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
천마신교에서 초류향의 흔적을 쫓기 위해 파견한 추적자이자 신마대의 대주인 마홍열이었다.
그는 허리춤에 매어져 있던 짧은 단창을 꺼내 들며 음산하게 웃었다.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별수 없지.”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소소라는 백치 녀석이 산속에 나무꾼으로 위장한 채 살고 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주워듣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홍열은 지난 일 년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좀 떨어져 있는 곳에서 묵묵하게 서 있는 염라대주 선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할까?”“뭘?”“뭐긴 뭐야, 고문이지.”선주혁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럴 가치가 있나?”무림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어린 여자아이가 아닌가?
저렇게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는데 조금만 위협해도 술술 불 것이 분명했다.
굳이 고문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마홍열은 이미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춘하월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후후, 걱정 마라. 나도 생각보다 눈이 높아서 너 같은 추녀는 덮치지 않으니까.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을 해도 좋아. 하지만 넌 충분히 피가 보고 싶어지는 얼굴이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춘하월은 겁을 먹은 와중에도 화가 났다.
상대방의 모욕적인 말에 분노가 치민 것이다.
그리고 분노는 때론 두려움을 넘어서게 만들어 준다.
“아저씨들은 대체 소소 오빠를 왜 찾는 거죠?”“응? 소소가 누군지 정말 몰라?”“뭔데요, 정체가.”“나 참, 정말 그 살인귀의 정체도 모르고 보살펴 준거야?”마홍열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수라마군이라고 들어봤어? 소소가 바로 그 녀석이야. 희대의 살인귀.”수라마군?
수라마군이라면 춘하월도 들어 본 기억이 있다.
오 년 전 구주십오객에 새롭게 올라간 절대 고수.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을 즐겨 했기에 그의 별호에는 아수라를 뜻하는 ‘수라’의 칭호가 들어갔다.
강호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네년은 그런 살인 병기를 먹여 주고 재워 줬던 거야.”“……우리 소소 오빠가 그럴 리가 없어요.”“물론 그렇게 믿고 싶겠지. 하지만 사실이다.”“거짓말쟁이!”“푸하하하! 이 어리석은 년에게 벌을 내려줘야겠구만.”마홍열은 단창을 들어 올리며 히죽 웃었다.
일 년 동안 정말 개고생해서 겨우 단서를 찾았다.
‘나무꾼? 웃기지도 않는 놈이네.’초류향이 해 왔던 행적을 역으로 되짚어서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이 여기였다.
이 작은 산골마을에서 초류향의 행적이 끊어진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 무슨 목적으로 갔는지 등을 이 계집애를 고문해서 알아 내야 하는 마홍열과 선주혁이었다.
사실 선주혁은 별로 그런 생각이 없었지만 마홍열은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어느 정도 받고 싶었다.
‘핏값으로 받아 내야지.’마홍열이 그렇게 생각하며 단창을 휘두르려 할 때.
갑자기 옆에 있던 선주혁이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응?”옆으로 쓰러진 선주혁의 앞.
그곳에는 복면을 하고 있는 사내가 그림처럼 서 있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마홍열은 재빨리 단창에 기운을 모아 곧장 복면 사내를 덮쳐 갔다.
콰아아아아-
폭풍처럼 휘둘러지는 단창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복면 사내.
운휘.
그는 천천히 주먹을 쥐어 단창의 창끝을 가볍게 후려쳤다.
쾅-!
“컥!”마홍열은 입에서 피 분수를 토해 내며 뒤로 튕겨 나갔다.
압도적인 힘.
화경의 고수와 절정 고수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운휘는 튕겨 나간 마홍열을 수습하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다 움찔하며 재빨리 마홍열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하나 마홍열의 얼굴을 살펴보곤 얼굴을 찌푸렸다.
‘자결했나?’그 사이 혈맥을 터트려 자살한 것이다.
운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혈도를 짚어 놓은 선주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결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선주혁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 후 운휘는 입을 열었다.
“잠시 기다려라. 너에겐 물어볼 게 많으니.”으스스한 음성.
선주혁의 얼굴이 운휘의 말에 급격하게 어두워질 때.
운휘가 고개를 돌려 춘하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나?”“네? 네.”“다행이군.”춘하월은 커다란 덩치의 마홍열을 공깃돌처럼 가볍게 들어다가 저 멀리 창밖으로 집어 던지는 복면 사내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복면을 한 수상한 사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복면 사내는 그런 춘하월을 한동안 살펴보다가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저들이 말한 소소……라는 분에 대해서 알고 싶다.”춘하월은 눈을 깜빡였다.
분명 소소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하나 그렇더라도 믿을 수 없었다.
소소와 관련된 정보는 누구에게도 알려 줄 마음이 없는 춘하월이었다.
그때 운휘가 조용하게 의자를 빼내며 춘하월에게 눈짓으로 앉으라는 뜻을 비쳤다.
하나 춘하월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선 채로 말했다.
“우리 소소 오빠를 어떻게 알죠? 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 소소 오빠에 대한 것을 알려 줄 마음이 없어요.”운휘는 난감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이걸 어떻게,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운휘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 주었다.
“……그가 정말 내가 아는 사람이 맞다면, 나는 너를 해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너에게 보상을 해야겠지. 만약 정말로 그가 내가 아는 그분이라면…… 보살펴 준 대가는 반드시 치르겠다.”춘하월은 잠시 고민했다.
상대방의 말이 왠지 진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춘하월은 일단 배짱을 부리기로 했다.
“거짓말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 복면을 벗고 이야기해 봐요. 그래야 대화가 되겠어요.”“…….”운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순순히 복면을 벗었다.
춘하월은 복면 속에 드러난 사내의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분한 눈과 굳게 다문 입술.
뽀얀 피부에 선이 가는 미남자였다.
단지 흠이 있다면 왼쪽 볼에 짧게 나 있는 검상이었는데, 오히려 그 검상이 선이 얇은 그의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 주었다.
“되었나?”“예? 아, 예. 뭐, 괜찮네요. 헤헤.”춘하월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얼버무리며 운휘의 얼굴을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보기 드문 미남자가 아닌가?
춘하월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운휘가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 앉아라.”“예? 네.”춘하월은 이번에는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운휘 역시 그녀의 맞은편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분의 외모가 어떤지 알고 싶다. 특징을 말해 줄 수 있겠나?”“누구요? 아, 소소 오빠요?”“그래.”춘하월은 소소의 외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운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춘하월이 마냥 뜬구름 잡듯이 잘생겼다, 착하다, 키가 이만하다, 등 애매하게 이야기해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육감이 말하고 있었다.
‘그분이다.’하나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일렀다.
이런 일에는 신중함이 필수였으니까.
운휘는 흥분해서 떠들고 있는 춘하월의 이야기를 차분히 인내심을 가지고 듣다가 입을 열었다.
“다른 특징은 없던가? 혹시 가지고 계시던 물건이 있다든가…….”“아! 있었어요. 이렇게 생긴 물건인데…….”춘하월이 허공에 자그마한 둥근 원을 두 개 그리며 어떤 물건을 설명하자 운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물건을 가지고 계셨었나?”“예? 네.”운휘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었다.
드디어 찾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단서.
“그 물건은 소소 오빠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부터 갖고 있던 거랬어요.”운휘의 고개가 옆으로 틀어졌다.
“절벽에서 떨어지셨다고?”“네. 그때 머리를 다쳐서 그런지 아무것도 기억 못 했거든요.”운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정리했다.
방금 춘하월이 말하는 물건은 안경이 분명했다.
저것은 소소라는 사람이 초류향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하지만 절벽에서 떨어졌다니?
게다가 이상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화령은 어떻게 된 것이지?’운휘는 지금까지 초류향과 화령이 함께 있다고만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화령이랑도 헤어져서 혼자셨던 모양인데 그동안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지금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중간의 일은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당장 초류향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운휘는 춘하월을 보다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채며 입을 열었다.
“그분이 지금 어디 계신지 알고 있나? 말해다오.”“그건…….”“부탁한다. 돈을 달라고 하면 돈을 주마. 그 외의 보상을 원한다면, 그분을 찾음과 동시에 하겠다.”춘하월은 난감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이 사람은 진짜였다.
방금 전의 그 두 사람처럼 소소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를 걱정하고 염려하기에 찾으려 하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저도…… 오빠가 어디로 간지 몰라요. 미안해요.”“…….”운휘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거기에서 전해져 오는 숨길 수 없는 아픔에 춘하월은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오빠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고, 자기가 있으면 위험해질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일이 끝나면 꼭 돌아오겠다고 했어요.”“……!”운휘의 얼굴에 잠시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운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말을 하셨다고?”“네. 기억이 돌아왔거든요.”운휘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그게 정말인가!”“네. 기억을 찾아서 저희를 떠났거든요.”“하……!”운휘는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손으로는 땅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가린 채 웃었다.
운휘는 그렇게 한동안 미친놈처럼 정신없이 웃어 댔다.
기뻤다.
드디어 소교주님께서 기억을 되찾으신 것이다.
자리에서 웃으며 기쁨을 만끽하던 운휘는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바닥에서 일어나 춘하월에게 정중하게 읍을 해 보였다.
“내 이름은 운휘. 지금 너에게 입은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는다. 반드시 돌아와서 갚겠다.”“네? 가시게요?”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가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의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나는 당장 나의 주군을 만나러 가야 한다. 분명 주군은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만남이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운휘의 마음이 뜨겁게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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