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76)
제176화 움직이는 천하(2014.09.15.)
“……대사형.”“왜.”“저 아파요.”“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야.”“처음인데 살살 좀 해 줘요. 너무 거칠다.”적혈명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팔다리를 최대한 비틀어서 이상한 자세로 꼰 채 허공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의 사매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가기공이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유가기공(柳家氣功).
신체를 부드럽게 해서 외부의 어지간한 충격은 내부에서 부드럽게 흩어 버리는 강력한 호신기공이었다.
본래 천축에 있던 것을 북해빙궁이 강탈하여 가져온 무공인 것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 극단적이잖아요. 꼴이 이게 뭐예요?”허공에 늘어진 줄 하나에 팔다리를 비틀고 꼬아서 매달려 있었는데, 마치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숨을 쉬기도 힘들 만큼 몸의 자유를 구속당한 상태인 것이다.
“몸을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고, 관절 사이사이에 내력이 스며들 자리를 강제로 만드는 작업이야. 안 아프고 힘들지 않으면 말이 안 되지. 억울하면 환골탈태를 하시든가.”주다혜는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상태로 입술을 비죽거렸다.
“……제가 대사형 같은 천재였으면 애초에 이런 고생을 안 했겠죠. 아- 나도 환골탈태하고 싶다…….”적혈명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뚱이를 슬쩍 내려다보며 오만하게 말했다.
“하긴, 이 완벽한 나도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서 얻은 환골탈태니까. 평범한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힘든 게 당연하겠지. 이해한다. 이 기회에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건 어떠냐? 원한다면 고통 없이 한 방에 보내 줄 수 있는데.”“그냥 절 죽이고 싶다고 하세요, 대사형.”주다혜는 입술이 댓 발은 나온 상태로 눈을 감고 내력을 조절했다.
하루바삐 유가기공을 완성해야 했다.
이걸 완성시켜야 대사형과 함께 강호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대사형.”“또 왜. 귀찮게 하지 말고 한 번에 다 물어봐.”“근데 왜 절 기다려 주시겠다고 하신 거예요? 혼자 나가셔도 되잖아요.”주다혜가 약간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묻자 적혈명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쯧, 당연한 거 아니냐?”“왜, 왜요? 뭐가 당연한 건데요?”“너랑 같이 안 가면 내 뒷수발은 누가 들어 주냐? 난 험하고 궂은일 못 해. 알잖아? 나 곱게 자란 거.”주다혜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설마 이유가 그게 다예요? 다른 거 없어요?”“다른 거 뭐?”“저와 함께 있어야 안심이 된다든가…… 저랑 떨어져 있으면 제가 너무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오신다든가.”“헛소리할 힘이 있는 걸 보니 단계를 올려도 되겠구나.”적혈명은 코웃음을 치며 천장에 매달려 있던 줄을 가볍게 한 번 잡아당겼다.
그러자 주다혜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아파요, 대사형!”“내가 말했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라고. 나 같으면 그렇게 말할 시간에 호흡을 가라앉히고 내력을 조절하겠다.”“으윽!”주다혜가 분노에 찬 얼굴로 적혈명을 노려보며 내력을 필사적으로 고를 때.
적혈명은 느긋한 몸짓으로 자신 앞에 놓인 서류를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어떤 보고서를 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수라마군. 드디어 움직이나 보구만.”“수……라마군이요?”“응. 그 진법을 쓰던 애송이. 제법 컸겠네, 이제.”초류향의 진법에 호되게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적혈명은 낮게 이를 갈았다.
자신이 오랜 시간 투자해서 곱게 기른 머리카락.
그것을 한순간에 홀라당 태워 먹게 만든 장본인.
“너무 오래 기다렸다.”황실에서 압박이 왔지만 사실상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은 건드리지 못했다.
그들의 주력은 황실이 움직였다는 것을 알자마자 곧장 멀리 빠져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죽어나는 것은 정도맹이었다.
“슬슬 판을 엎을 때가 됐어.”적혈명은 웃었다.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
둘은 그 긴 시간 동안 놀고먹지 않았다.
그리고 슬슬 움직일 때가 왔다.
* * *
운휘는 바깥으로 나가 선주혁과 마홍열의 흔적을 꼼꼼하게 지웠다.
초류향을 만나러 가기 전, 그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춘하월과 그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추적자들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운 후, 운휘는 제압해 놓은 선주혁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깊은 산 속에서 선주혁과 단둘이 마주한 운휘는 입을 열었다.
“내가 무엇을 물어보아도 너는 대답해 주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런 훈련을 받아 왔을 테니.”“…….”선주혁은 질린 얼굴로 운휘를 바라보았다.
운휘 역시 그런 선주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소교주님의 안전이 확인된 지금, 그 무엇보다도 정보 하나하나가 소중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너를 고문할 생각이다.”운휘의 말은 높낮이가 없고 무덤덤했기에 상대방에게는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운휘를 보면 볼수록 선주혁은 후회스러웠다.
자신은 마홍열처럼 자결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마홍열, 그놈이 부럽군.’그가 속으로 투덜거릴 때.
운휘가 선주혁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의 턱 아래 근육을 가볍게 몇 번 툭툭 쳤다.
그러자 아래턱이 힘없이 풀리며 바보처럼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선주혁의 눈가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전문가로군.’이놈은 이쪽 방면의 전문가였다.
하필 걸려도 지독한 놈에게 걸린 것이다.
고문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혀를 깨물어 자살하지 못하도록 턱 근육을 아예 풀어 버리는 놈이라니…….
선주혁은 앞으로 다가올 치 떨리는 고문을 떠올리며 눈빛에 살기를 띄웠다.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독기가 엿보였다.
운휘는 그런 선주혁을 보며 그 어떤 위협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운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의 전신은 선주혁의 몸에서 튄 피 때문에 엉망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선주혁에게 알아낸 것들을 천천히 곱씹고 있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아쉬웠다.
이 녀석이 알고 있는 것은 다 들었지만, 애초에 이 녀석이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나 그 많지 않은 정보도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도움이 됐다.
그중 특히 운휘의 마음에 남는 정보.
‘화령이 죽었다.’운휘는 우울한 눈빛을 해 보였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녀가 초류향의 곁에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아 있을 확률보다 죽었을 확률이 더 높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선주혁의 입을 통해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잠시 복잡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던 운휘는 천천히 움직였다.
이제부터는 그의 주군을 만나러 가야 하는 것이다.
기억은 되찾았을 거라 생각이 되지만 주군은 혼자였다.
하루바삐 돌아가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 드려야 했다.
‘일단은…….’초류향을 찾으러 가기 전.
반드시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동안 몸을 의탁하고 있던 흑룡문에 돌아가 그 녀석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에게 좋았다.
흑룡문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며 운휘는 차분하게 앞으로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초류향은 흑월회의 안휘 분타에 불쑥 찾아갔다.
육 층짜리 높은 기루.
그곳이 바로 흑월회의 안휘성 비밀 분타인 것이다.
사전 약속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초류향은 가장 높은 꼭대기 층까지 성큼성큼 올라갔다.
중간중간 그를 막으려는 흑월회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초류향과 눈이 마주치면 곧장 꼬리를 내리며 물러섰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한 것이다.
그때쯤.
연락을 받은 것일까?
육 층에 도착하자 초류향과 안면이 있는 흑월회의 정보원이 허둥지둥 나와서 곤란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직 초류향 님의 정체는 본 회에서도 특급 비밀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공개적으로 저를 찾아오시면 문제가 커집니다.”초류향은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정보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안휘 분타주였나?”“예. 고맙게도 군사께서 부족한 저를 높게 생각해 주셔서…….”“냉하영을 만나고 싶다.”“예?”초류향은 정보원에게 찾아가 대뜸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정보원이 이유를 물어봐도 초류향은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냉하영을 만나자고만 했던 것이다.
정보원은 불안했다.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초류향의 눈빛에 압도당한 것도 있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흑월회가 그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었기에 불안했던 것이다.
“군사님은 바쁘십니다. 아마 몸을 빼내기 어려우실 겁니다.”초류향은 정보원의 말을 듣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지. 판단은 그녀가 할 테니 너는 그저 가서 말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불과 반나절 만에 초류향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최소한의 존대는 해 주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었다.
정보원이 당황스러워 우물거리며 망설일 때.
초류향이 말했다.
“판단은 어차피 네가 하겠지만, 시간을 끌면 너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다.”정보원은 초류향의 말에 고민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총타에 기별을 넣겠습니다.”“잘 생각했다.”“일단 이리 오시지요.”초류향은 정보원의 안내를 받아 기루의 제일 꼭대기 층으로 안내되었다.
화려한 방 안에 들어서자 정보원이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되겠습니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창밖이 내다보이는 탁자에 앉아 차분한 얼굴로 기다렸다.
이곳은 흑월회가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고, 그랬기에 기루 전체에는 흑월회의 고수들이 득실득실 포진하여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것도 지금의 초류향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무엇을 얻으려 하는 걸까?’냉하영이 초류향에게 숨기고 있는 것.
초류향이 알아낸 것은 일단 천마신교의 척살령이었다.
확실히 냉하영이라면 이 사실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수라마군에 대한 정보는 현재 그녀만이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이런 정보는 분명 대단히 높은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그 정보를 이용하는 것.
거기까지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냥 기분이 불쾌한 정도.’애초에 그녀와 초류향과의 계약은 운휘에 관한 게 전부였으니 그것 외의 다른 일은 그녀가 자신을 도울 이유가 없었다.
따지고 보자면 그녀와 자신은 적이었으니까.
단지 이용만 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지금 초류향이 염려하는 부분은 이것 외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있나 하는 것이었다.
하나를 숨긴다는 것은 또 다른 것들도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흑월회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 것이다.
그랬기에 초류향은 분노를 억누르며 기다렸다.
냉하영은 대단히 영악한 여자였고, 자신이 갑작스럽게 불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분명히 올 것이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여자였으니까.
초류향은 냉하영이 무슨 말을 할지 하나하나 예상해보며 조용한 얼굴로 기다렸다.
* * *
“여기가 형산파가 맞아?”“그렇소만?”“내가 제대로 찾아왔네.”형산파.
호남성에 위치한 정도맹의 중추 문파 중 하나로, 그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어 강호에서 명문으로 대접받는 대문파였다.
호남성을 대표하는 문파이자 오랜 시간 터줏대감처럼 존재해 왔기 때문에 이 근방에서는 감히 형산파에 도전하려는 문파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형산파에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무식한 얼굴의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이게 다야?”“뭐가 말이오?”“형산파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고작 이게 다냐고.”형산파의 문을 지키고 있는 원공도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상대방이 아까부터 너무 무례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우께서는 예의를 지키시오. 함부로 말하다가는 크게 혼나는 수가 있소!”무식하게 생긴 사내.
노진녕은 히죽 웃으며 한 발자국 내디뎠다.
“안 그래도 크게 혼나려고 여기 온 거야.”강호에 노진녕이라는 이름이 울려 퍼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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