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77)
제177화 움직임(2014.09.18.)
노진녕이 형산파를 반파시키고 천하에 그 이름을 알릴 무렵.
천마신교의 동향을 살피고 있던 임학겸과 엄승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저놈들 갑자기 왜 저래?”“글쎄.”“어디 가는 거지? 갑자기 떼로 몰려가네?”엄승도는 복면을 벗어 던진 임학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네가 봐도 수상하지?”“수상하군.”“저놈들이 미치지 않은 이상 저렇게 떼로 움직일 리가 없는데…….”임학겸과 엄승도는 천마신교에서 초류향을 죽이기 위해 빠져나온 척살조의 인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평소라면 이들은 눈에 띄지 않게 각자 조심스럽게 흩어져 다녔을 터인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눈에 띄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우르르 어딘가로 몰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설마?”“소교주님을 찾은 건가?”“……!”엄승도의 말에 임학겸의 표정이 변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가장 최악의 전개였다.
아무리 초류향이라도 단단히 준비한 척살조의 절정 고수들을 모두 감당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엄승도는 임학겸의 질문에 고민했다.
지금 당장 그들이 나서 봐야 목 두 개를 추가시킬 따름이다.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킬 막강한 전력이 필요했다.
엄승도는 복잡한 얼굴로 임학겸을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내가 전부터 말했던 거 기억해?”“……어떤 말?”“만약에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네가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던 말.”임학겸은 얼굴을 찡그렸다.
불길한 느낌.
이번 천마신교의 움직임은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그 말을 할 때마다 헛소리하지 말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엄승도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고지식한 녀석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
차후에 소교주님이 천마신교로 복귀했을 때.
임학겸은 천마신교 역대 최강의 무력 집단인 마라천풍대를 움직여 그를 보좌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알겠지?”임학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역시 그가 최후까지 살아남아서 초류향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 것 같다, 친구. 사실 오래 살지 않았냐, 이 정도면?”임학겸은 엄승도의 팔을 쳐 내며 말했다.
“개소리하지 말고 살아남을 방법부터 생각해.”엄승도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이제부터 할 일은 간단해. 지금 당장 노진녕 님을 찾아서 저놈들 뒤를 쫓아와. 나는 이제부터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저놈들에게서 소교주님을 지킬 테니까, 너는 어떤 변수가 있더라도 노진녕 님을 소교주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오면 돼. 쉽지? 너와 내가 다시 만나면 우리 쪽의 승리다.”화경의 고수가 합류한다?
그 정도라면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임학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척살조 아이들의 힘을 우습게 보지 마라. 노진녕 님이 합류하더라도 전력의 열세는 뒤집을 수 없어.”“아니, 뒤집는 게 아니야.”“그럼?”“도망친다. 놈들과 정면으로 붙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우리 대단하신 공손천기 교주님밖에 없을 테니까.”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도망을 치는 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화경의 고수는 그럴 만한 역량이 있으니까.
“……버틸 수 있나?”“물론이지. 안 죽어, 절대. 여기까지 어떻게 기어 올라왔는데 호법 자리까지는 가 봐야지.”임학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엄승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합류하겠다. 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도 연락을 넣도록 할 테니까…… 그러니까 죽지 마라.”“그만 걱정하고 가 봐.”임학겸은 무거운 표정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엄승도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히죽 웃었다.
“오랜만에 현장에서 뛰어 보겠구만.”척살조의 전력은 그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는 엄승도였다.
녀석들 개개인이 자신과 맞먹을 정도의 무력을 지닌 뛰어난 암살자들인 것이다.
그런 놈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로 소교주님을 발견했다는 의미라고 봐야 한다.
“그래도 우리 소교주님의 목은 쉽게 줄 순 없지.”엄승도는 손목 발목에 촘촘하게 차고 있는 단검들을 한번 스윽 점검하고는 몸을 날렸다.
되도록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는 척살조의 뒤를 추적하며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놈들의 전력을 줄여 놓을 속셈이었다.
‘그다지 의미는 없겠지만…….’엄승도는 불길한 마음을 억누르며 놈들의 뒤를 바짝 쫓았다.
* * *
“오랜만이야.”냉하영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초류향을 바라보며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벌써 무언가 주워들은 게 있는 모양이다.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어딘가에서 실수가 생긴 모양이다.
냉하영이 아쉬운 감정을 숨기고 초류향의 맞은편 자리에 앉을 때.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을 텐데?”“내가? 네가 할 말이 있어서 날 찾은 게 아니었어?”냉하영의 말에 초류향은 서늘한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뼈를 관통하는 한기.
하나 냉하영은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이런 압박감을 수없이 받아오며 헤쳐 나왔다.
생명의 위협 한두 번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한 약속은 지켜졌다.”“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황실의 발목을 붙잡아 두는 것.
초류향이 의도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천마신교의 갑작스러운 등장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버렸다.
초류향은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네가 나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서운한 감정도 없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냉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간에 섭섭할 이유가 없다.
약속만 지켜진다면 그 외의 문제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냉하영은 초류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찾고 있다던 운휘의 행방은 얼마 전에 찾았어. 안 그래도 알려 주려고 했지. 그러니 그렇게 노려보지 마.”냉하영은 소매에서 한 장의 문서를 꺼내어 초류향에게 내밀었다.
“여기에 적혀 있어, 그의 행방은.”초류향은 냉하영이 건네는 문서를 잡아챘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서 순식간에 읽었다.
“……확실하겠지?”“물론. 나 이런 쪽에서 신용 있는 여자거든.”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와의 거래는 이걸로 끝이다.”냉랭하게 말하는 초류향을 보며 냉하영은 미소 지었다.
“이번 거래는 이걸로 끝이야.”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너와 거래할 일은 없을 거다.”“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초류향. 너는 분명 나를 다시 찾아오게 될 테니까.”냉하영은 그렇게 확신했다.
초류향은 그런 확신에 찬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제 와서 그녀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생각해 보면 그녀와의 거래는 말 그대로 거래였을 뿐이다.
서로 약속한 사항, 그 이상의 것을 바라면 안 되는 그런 거래.
한데도 지금 이렇게 서운한 것은 암묵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편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일 터.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가슴 한복판에 찬바람이 스쳤다.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저런 영악한 여자와는 정확히 서로가 원하는 바만 이뤄 주면 되는 것이다.
초류향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바람처럼 사라지자 냉하영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대니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무섭네, 정말.”초류향은 정말 강해져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예측한 것보다 더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두려웠다.
하나 그것도 오늘까지다.
“지금이라면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야.”차라리 초류향은 운휘에게 가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냉하영은 천천히 소매에서 다른 문서를 꺼내어 보며 미소 지었다.
“지금쯤 천마신교의 정예가 운휘를 죽이려고 움직였겠지.”천마신교의 전력을 보았을 때.
운휘는 물론이고 초류향도 살아남기 힘들 게 뻔했다.
그만큼 천마신교는 전력을 투입해서 운휘를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설령 소교주였던 초류향이라 하더라도 다 부숴 버리고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황실도, 정도맹도 그런 천마신교의 강력한 전력을 파악했기에 멈춰 선 것이다.
“그래도 만약에 살아남는다면…….”냉하영은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사실 조금 전까지 그녀는 자신의 예측대로 일이 흘러가리라는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초류향의 무위가 생각 이상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나니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현재 초류향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녀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어떤 식으로든 초류향이 살아남는다면 한 가지는 확실해질 것이다.
‘지금처럼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절대 초류향을 죽일 수 없겠지.’냉하영은 사실 지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번 기회에 운휘는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구룡문의 복수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초류향이 휩쓸려 죽으면 그것으로도 좋았고, 죽지 않고 살아남더라도 그녀에게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해서 전략을 짜지 않았다.
“살아남을 수 있으면 살아와 봐.”본래라면 죽여야 옳았다.
차후에 흑월회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존재는 초류향일 것이라 냉하영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냉하영의 입장에서 보자면 굉장히 특별한 경우였다.
* * *
운휘는 흑룡문을 향해 복귀하다가 잠시 멈칫거렸다.
저 멀리서 보았을 때부터 흑룡문의 장원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화재?’운휘는 자리에서 멈춘 채 고민했다.
장원에 불이 났다면 결코 그것을 그냥 보아 넘길 흑룡문주가 아니었다.
그런데 불길은 아주 멀리서부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컸고, 그것은 운휘에게 어떤 불안감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변고가 생겼다.’이것은 분명 흑룡문에 무슨 문제가 생겼음을 뜻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동시에 저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본능이 강렬하게 경고했다.
‘경고?’운휘는 경고라는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전신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멀찍한 곳에 멈춰서 흑룡문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한 걸음 떨어져 차분하게 생각해 보니 확실하게 보였다.
‘저것은 나에게 보내는 경고다.’그것도 적이 아니라 아군이 보내는 경고였다.
분명 흑룡문주일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듯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이곳으로 돌아오시면 안 됩니다, 형님. 절대로.]운휘의 머릿속에 서서히 모든 정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적이 습격했군.’어떤 적들일까?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기에 그에게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적들이 강하다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래야 본인이 살 테니까.
‘멍청이.’무슨 생각일까?
왜 저렇게 불을 질렀을까?
혹시라도 적들이 지른 것은 아닐까?
운휘는 잠시 폭풍처럼 머릿속을 휘젓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의 정리가 끝나자 운휘는 서늘한 시선으로 흑룡문의 장원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매우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꾸준히 단련했던 본능.
그 본능이 지금 저곳에 가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해 왔던 것이다.
운휘는 복면을 매만졌다.
그러다가 잠시 하늘을 보았다.
‘주군.’지금 상황에서 그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판단은 흑룡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바로 초류향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한데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운휘는 침중한 얼굴로 흑룡문을 바라보다가 움직였다.
결국 화염에 휩싸여 있는 장원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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