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78)
제178화 목숨을 걸다(2014.09.22.)
흑룡문주 뇌한적.
그는 오늘도 운휘가 찾고 있는 사람을 수소문해 가며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근래에 급격하게 세력이 커져서 이런저런 문제가 터지는 흑룡문도 관리하느라 하루하루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그는 행복했다.
이제는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이 배를 곯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늘 뒷골목에서 삼류 취급이나 받으며 어렵게어렵게 생활해 오지 않았던가?
그 모든 것들을 뒤바꿔 준 사람.
그게 바로 운휘였다.
‘그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흑룡문의 다른 형제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취하는 운휘를 어려워했다.
하나 뇌한적은 알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다.
가슴 한구석에 누구보다도 따뜻한 심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숨기려 애써 모두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다.
‘의외로 귀엽단 말이야.’운휘 같은 사람은 한번 정을 주면 스스로 떼어 내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가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것을 어려워하고 거북스러워하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들이댔던 뇌한적이다.
‘하루바삐 수라마군을 찾아야 하는데…….’맨 처음 운휘가 찾는 사람이 수라마군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뇌한적도 고민을 했다.
수라마군에 대한 강호의 평가가 엄청나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 명을 웃으며 도살했던 희대의 살인귀.
게다가 무척 어리다고 하지 않았던가?
수라마군은 마교가 대놓고 키우고 있는 차세대 살인마였다.
‘그런데 운휘 형님은 대체 왜 그런 자를 찾는 것일까?’원한이나 복수는 아닌 것 같았다.
정말로 그의 생사가 걱정이 돼서 찾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뇌한적은 운휘가 수라마군을 찾는 이유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겠지.’운휘가 찾는다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뇌한적은 운휘를 믿었다.
그의 행동에는 반드시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뇌한적이 장원 외곽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있을 때.
장원 안쪽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지?’흑룡문은 최근에 급속도로 세력이 커졌기 때문에 근방에 적이 많았다.
자연히 자잘한 다툼도 많았기에 뇌한적은 이번에도 그런 사소한 문제일 것이라 생각했다.
별생각 없이 장원의 안쪽으로 뛰어간 뇌한적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일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엄청난 수의 복면인들이 장원 전체를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이놈들의 대장이냐?”“형님!”흑룡문의 형제들이 바닥에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숫자에서도 밀렸고, 무공에서는 더더욱 밀렸다.
뇌한적은 한쪽 볼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터벅터벅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가 쓰러져 있는 형제들의 부상 정도를 살핀 후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어디서 왔는데 대낮부터 이런 살행을 저지르는 거지?”다들 흑색 복면을 하고 있는데 유독 혼자만 붉은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가 있었다.
복면인들 중에서도 대장으로 보이는 자.
그를 노려보며 뇌한적이 묻자, 적색 복면의 사내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꼴에 대장이라고 네놈은 제법 간이 크구나.”“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적색 복면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뭐?”“우리는 천마신교에서 나왔다.”“…….”담이 크기로 유명한 뇌한적도 이번만큼은 크게 놀랐다.
그래서 한동안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적색 복면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천마신교가 이곳까지 온 거지? 사천이랑 여기가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찾는 사람이 이곳에 있다고 들었다.”“누구?”“운휘.”적색 복면의 사내.
그가 말하는 이름을 듣는 순간 뇌한적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왜?”“본교의 적이니까. 죽여야 하거든.”적색 복면의 사내는 의외로 순순하게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뇌한적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상대방은 운휘의 정체를 알고 여기까지 왔다.
게다가 둘러보니 모두가 절정 고수들이 아닌가?
‘언뜻 눈에 보이는 인원만 해도 삼백 명이 넘는다.’이건 제아무리 화경의 고수라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는 숫자였다.
뇌한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나는 일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가 않다, 흑룡문주.”적색 복면의 사내는 뇌한적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너희들을 도살하는 건 사실 무척 쉽다.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너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기회?
그게 무슨 말일까?
“운휘가 이곳에 없다는 건 우리도 안다. 그러니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리겠다. 그를 죽이기만 하면 우리는 조용히 떠나 주겠다. 너희에겐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 어떤가?”뇌한적은 고민했다.
여기서 거부한다면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부상당한 흑룡문의 형제들을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을 생각인가?”“물론이다.”“좋아, 받아들이지.”적색 복면의 사내.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현명한 판단이다, 흑룡문주.”“부상자들을 수습해도 되겠나?”“물론이지. 흑룡문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든 그건 너희의 자유다. 다만 바깥으로는 나가지 마라. 그것은 우리도 용납할 수 없으니.”“알겠다.”뇌한적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부상자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크게 부상을 당한 녀석은 없어 보였다.
잠시 부상자들을 일일이 확인한 뇌한적은 그들을 장원의 식당으로 데려가 굳게 문을 걸어 잠근 다음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물어보십시오, 형님.”“너희들은 비겁자가 되어서 비루하게 살아남길 원하느냐? 아니면 의리를 지키고 고통스럽게 죽길 원하느냐?”부상자를 비롯해 그곳에 모인 흑룡문 무인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것을 확인한 뇌한적이 입을 열었다.
“살아남고 싶다고 해도 된다. 그것까지는 말리고 싶지 않다.”“…….”“너희들도 들어서 알겠지만 저놈들은 운휘 형님을 죽이려고 온 놈들이다. 놈들에게 운휘 형님이 발각되면 아무리 형님이 화경의 고수라도 죽게 될 거다.”“운휘 형님은…… 어디 가신 겁니까?”“그것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조만간 돌아오실 것은 확실하지. 그러니까 그 전에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무엇을 말입니까?”“비루하게 살아남을지, 아니면 운휘 형님에게 위험을 알리고 떳떳하게 죽을지. 결정해야겠지.”모두의 눈에 선명한 갈등이 떠올랐다.
뇌한적은 잠자코 기다렸다.
형제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관없었다.
자신은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까.
단지 이렇게 묻는 이유는 혹여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이 몽땅 뒤집어쓰기 위함이었다.
‘분명 엿듣고 있겠지?’뇌한적은 감각을 최대한으로 열어 주변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쳐들어온 천마신교의 고수들은 뇌한적 수준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감각을 열어 살펴보려 해도 잡힐 리가 없는 것이다.
뇌한적은 그래도 그들이 엿듣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뇌한적은 솔직한 말로 자신의 형제들이 살아남고 싶다고 말해 주길 바랐다.
그래야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다 뒤집어쓰고 갈 수 있었으니까.
한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는 형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부상당해 있던 놈들 중 하나가 그리 말하자 나머지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뇌한적은 크게 당황했다.
“운휘 형님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 수 있다는 거냐, 너희들은?”“……살고 싶긴 하지만 운휘 형님을 위한 일이라면…… 아깝지 않습니다.”뇌한적은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쑥 입을 열었다.
“마풍, 너는 형님이 무섭다고 하지 않았느냐?”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스무 살 초반의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무서웠죠. 근데 지내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운휘 형님은 입으로는 매번 쌀쌀맞게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저희들을 누구보다도 살뜰하게 챙겨 주지 않았습니까?”“…….”“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운휘 형님이 아니었으면 저희들 이렇게 떵떵거리며 살지도 못했을 겁니다. 예전처럼 그 더러운 뒷골목에서 칼침이나 맞고 죽었겠죠. 실력이 없어서 그동안 운휘 형님을 도와드리지 못했지만 비겁해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형님.”뇌한적이 눈을 끔뻑이다가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같은 생각이냐?”“예. 아마 모두가 같을 겁니다. 다들 한두 번 이상은 운휘 형님에게 생명의 빚이 있으니까요.”“……거참, 알겠다.”뇌한적은 기분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운휘 형님을 어려워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번잡해졌다.
“그런데 방법이 있겠습니까? 놈들이 완전히 포위해서 바깥에 연락을 취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형님.”뇌한적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에게 생각이 있다.”뇌한적은 자신만 바라보는 동생들의 눈을 응시하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 * *
불타오르는 장원을 바라보며 뇌한적과 흑룡문의 형제들은 씁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저 많은 술을 결국 입에도 대지 못했습니다, 형님. 아껴 뒀던 건데…….”“저승가면 실컷 먹게 해 줄 테니 걱정 마라.”뇌한적은 각자 하나씩 들고 있는 호리병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죽기 전에 맛은 보고 가겠구나.”“예. 이것마저 없으면 억울하니까요.”흑룡문의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호리병을 입가에 대고 있을 때.
적색 복면의 사내가 불쑥 나타났다.
“바보 같은 행동을 했군, 흑룡문주. 네놈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아느냐?”“평소에도 멍청이라는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뇌한적은 슬쩍 웃어 보였다.
바보 멍청이라는 말은 운휘가 항상 자신에게 했던 말이 아닌가?
하나 이상하게도 그 말이 싫지가 않았었다.
가만히 호리병을 입가에 가져가던 뇌한적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죽기를 각오하고 한 일이니까, 그쪽 마음대로 해도 돼.”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맛이 기가 막히게 달았다.
뇌한적은 바닥에 앉아서 형제들과 건배를 하며 호기롭게 웃어 보였다.
적색 복면의 사내.
눈만 드러내고 있는 그의 시선이 복잡하게 변했다.
‘일이 피곤하게 되었다.’그는 가급적 일을 조용하게 끝내고 싶었다.
천마신교가 봉문을 풀고 강호에 나오긴 했지만 떠들썩하게 다 때려 부수면서 돌아다니긴 어려웠다.
지켜보는 눈들이 많았던 것이다.
지금도 아마 장원 바깥에는 수없이 많은 세력에서 파견한 자들이 은밀하게 숨어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자극해선 곤란했다.
천마신교의 내부 사정은 지금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때문에 외부에서까지 쓸데없이 문제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성격에 맞지 않게 조용조용히 해결하려 했건만, 이놈들이 자신의 배려를 알지도 못하고 사고를 쳐 버리고 말았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군.’화염에 휩싸여 있는 장원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적색 복면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 불길이면 이미 멀리 떨어진 외부에서도 전부 다 보일 것이다.
운휘 그놈이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이곳에 변고가 생겼다는 것은 진즉에 눈치챘을 터.
‘어르신들에게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다 잡은 물고기를 놓쳐 버렸다.
이만한 인원들을 끌고 와서도 놓쳐 버렸으니…… 상부에 보고할 말이 궁색해진 것이다.
적색 복면인이 복잡한 머리를 안고 끙끙 앓고 있는 동안, 뇌한적을 비롯한 흑룡문의 형제들은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적색 복면인이 살기를 가득 담아 입을 열었다.
“각오는 했겠지?”뇌한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는 일을 벌이기 전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 주마.”적색 복면인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그 검날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옅게 맺혔다.
“검기…….”검기는 검기였지만 그 두께와 길이가 심상치 않았다.
거의 강기만큼 길었던 것이다.
“우선 네놈부터 팔다리 하나씩 잘라 주마.”스으윽-
검이 움직이고 제일 먼저 뇌한적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크윽!”뇌한적은 고통스럽게 몸을 숙이며 자신의 잘려 나간 왼팔을 바라보았다.
“형님!”흑룡문의 형제들이 분노에 찬 얼굴로 적색 복면인을 바라볼 때.
그는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은 오른쪽 다리다.”곱게 죽이진 않을 생각이었다.
최대한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느릿느릿 천천히 죽여 버릴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적색 복면인의 검이 몇 번이고 휘둘러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잘려 나간 신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샤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적색 복면인은 검을 들고 있는 자신의 오른팔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컥!”적색 복면인은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자신의 팔이 잘려 나간 것이다.
‘대체 누가?’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적색 복면인이 재빠르게 혈도를 점혈하며 지혈한 후에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정문으로 누군가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거기까지다.”검은색 복면을 하고 있는 사내.
운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