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80)
제180화 위기(2014.09.29.)
숨어서 몸을 은신하고 있던 엄승도는 적잖이 감탄했다.
운휘가 강하다는 거야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저 정도면 거의 오제급이지 않나?’삼황오제칠군.
그들 중에서 오제급의 고수라면 화경의 고수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는 수준이었다.
운휘가 설마 저 정도의 경지였을 줄은 몰랐던 엄승도였기에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근데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와?’슬슬 올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오지 않는 임학겸을 떠올리며 엄승도는 자신이라도 나서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 * *
‘효과가 있군.’운휘는 차분한 안색으로 녹색 복면인을 응시했다.
지치지도 않은 것처럼 고요한 신색.
운휘를 살펴보던 녹색 복면인의 얼굴이 점차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속은 건가?’방금 전에 보였던 이기어검술.
그것은 현재의 운휘에게 귀도나락무만큼은 아니었지만 거의 그것에 준할 만큼 막대한 내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본래 이기어검술을 펼칠 수 없는 운휘였다.
그것을 펼치기엔 실력이 조금, 아주 조금 모자란 것이다.
방금 그것은 정말 어거지로, 쥐어짜듯이 그것과 비슷하게 겨우 흉내만 내었을 뿐이다.
진짜배기가 아니었다.
‘그래도…….’그것만으로도 놈들은 충분히 겁을 집어먹을 만했다.
어설프긴 했어도 전설상의 이기어검술이 아닌가?
사전에 귀도나락무의 파괴력도 보았으니 운휘의 경지에 대해서 착각하게 될 가능성은 충분했다.
놈들을 겁먹게 하는 것.
이것을 위해 운휘는 지금 무리를 한 것이다.
“이놈…….”녹색 복면인은 운휘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하나 지쳐있는 것인지 아닌지, 도저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석상처럼 서 있는 저놈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피로감도 엿보이지 않았다.
지극히 담담한 얼굴.
저 여유가 꾸며진 것인지 아닌지 쉽게 판별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지금 운휘의 얼굴은 평온했으며 고요했다.
덕분에 그를 둘러싼 척살조의 인원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잠깐.’시간이 흘러갈수록 초조함을 느끼던 녹색 복면인은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의 무공을 썼는데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는 게 말이 돼?’절세신마 공손천기.
그가 아니고서야 저것은 불가능했다.
설령 삼황 중 하나가 오더라도 방금 전처럼 엄청난 무공들을 연달아 사용하면 지쳐 버릴 게 분명했다.
녹색 복면인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허세였군.’그랬다.
저것은 저놈이 어렵사리 꾸미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짝짝짝-
녹색 복면인은 박수를 치며 운휘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재미있었다.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어. 뛰어난 연기력이었다.”“…….”“괴물 같은 움직임에 엄청난 무공. 확실히 대단한 놈이지만 너는 여기서 죽는다.”녹색 복면인은 천천히 지붕 위로 움직여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렇게 아까와 같이 마흔 명의 집단을 하나 더 만들어 내며 말했다.
“처음에 네 녀석이 썼던 그 정체불명의 무공. 그게 무서워서 여태 망설였는데 생각해 보면 해답은 간단한 거였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또 쓸 수 있으면 한 번 더 써 봐. 우리는 아직 인원이 많거든.”그랬다.
애초에 머릿수로 밀어붙이기 위해 오지 않았던가?
괜히 피해를 줄여 보겠다고 시간을 끌다가 오히려 더 큰 타격을 입을 판이었다.
여기에서는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게 옳았다.
“놈을 죽여.”녹색 복면인의 명령이 떨어지고 마흔 명의 고수들이 일제히 운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운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쉽군.’조금만 더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법했다.
귀도나락무를 펼치기엔 아직 힘이 모자랐던 것이다.
그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던 녹색 복면인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저놈은 이제 그 강한 한 방이 없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싸악-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척살조 고수들.
그들의 검기를 최대한 몸을 움직여서 피하며 운휘는 몸을 사렸다.
녹색 복면인은 이제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저놈은 지쳐 있었다.
‘괜히 쫄았네.’생각보다 피해가 컸지만 상관없었다.
일차적인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테니까.
녹색 복면인이 즐거운 마음으로 운휘와 척살조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때.
흐릿한 그림자가 녹색 복면인의 뒤쪽에서 불쑥 나타났다.
‘어?’녹색 복면인이 그 사실을 눈치채고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악-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녹색 복면인의 머리가 공중에 떠올랐다.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엄승도.
그가 움직인 것이다.
“이놈은 내가 죽였다!”녹색 복면인의 잘려 나간 머리를 잡고 위로 쳐들며 엄승도가 말하자, 운휘를 덮쳐 가던 인원들이 잠시 멈칫거렸다.
그 순간.
“후흐-”길게 탁기를 뱉어낸 운휘가 손을 가운데로 모았다가 빠르게 사방으로 휘둘렀다.
‘귀도나락무.’울컥-!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내력으로 인해 속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 여긴 것이다.
콰아아아-!
운휘가 쓴 최후의 일격이 당황하고 있던 척살조의 인원들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엄승도가 다시 한 번 그림자에 숨어서 빠르게 이동했다.
‘최대한 머릿수를 줄여야 해.’운휘는 아마 이번 공격이 마지막일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운휘에게 쏠려 있는 지금.
최대한 적의 수를 줄여야 했다.
엄승도는 재빠르게 움직이며 두 명의 머리를 새롭게 날려 버렸다.
하나…….
촹-!
척살조의 고수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세 명째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검을 꺼내어 엄승도의 공격을 받아쳐 온 것이다.
‘젠장.’실력은 미세하게 자신이 위다.
하지만 숫자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엄승도는 아쉬운 얼굴로 검을 맞부딪친 상대를 포기하며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곧장 운휘를 향해 달려갔다.
“괜찮습니까?”“…….”운휘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마지막 일격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다 죽이진 못했어도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확실하게 지옥으로 보냈던 것이다.
엄승도는 팔목에 차고 있던 검날을 꺼내어 아직 죽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녀석들에게 집어 던졌다.
놈들은 암기가 다가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항하지 못했다.
푸푸푹-
순식간에 살아 있던 일곱 명을 마무리 지은 엄승도가 재빨리 운휘를 들쳐 업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죽지 마십시오.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그럼 노진녕 님이 올 겁니다.]운휘는 노진녕이라는 말에 반응했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매에서 불사호심단을 꺼내어 입에 넣었다.
‘크윽.’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간 불사호심단은 마치 용암을 삼킨 것처럼 뜨거운 액체가 되어 몸 안에 넓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내력이 진정되지는 않았다.
약효가 발휘되기에는 몸이 지나치게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운휘는 입과 코에서 연신 피를 쏟아 내며 힘없이 엄승도의 등에 업혔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전신에서 열이 펄펄 끓어올랐고, 머리는 핑글핑글 돌았다.
쉬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힘들지 않았던가?
‘지금은 안 된다.’운휘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달래며 악착같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노진녕.
그놈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망가진 꼬락서니를 그놈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운휘가 흐려진 시야를 억지로 다시 회복했을 때.
자신을 업고 있는 엄승도는 이미 피투성이였다.
‘음…….’운휘는 벽을 등지고 한 손으로만 척살조의 고수들을 상대하는 엄승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승도는 최대한 적과의 접점을 줄여서 포위를 피해 가며 끈질기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라면 적들도 그다지 무리해서 달려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 눈에는 엄승도와 운휘.
둘 모두 다 잡아 놓은 먹이로 보일 테니까.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흐흐…….”엄승도는 피 칠갑을 한 채 비릿하게 웃었다.
저놈들이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죽지만 않으면, 버티기만 하면 자신의 승리인 것이다.
‘내가 고작 이런 곳에서 죽을 것 같아?’매 순간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느릿느릿 흘러갔다.
하지만 엄승도는 마음을 다잡았다.
기다리면 반드시 온다.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왼손으로는 운휘를 받쳐 들고 오른손만으로 싸우던 엄승도는 어느 순간 오른 손목이 팔목부터 깨끗하게 잘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검을 쥘 손이 없다는 것은 뼈아픈 타격이었다.
“젠장.”엄승도는 낮게 이를 갈았다.
쐐애애액-!
그에게 검이 없다는 것을 보자마자 적들이 성난 이리처럼 달려들었다.
엄승도는 그런 적들을 향해 벌겋게 웃으며 떨어져 있던 검을 발로 차올렸다.
그리고 검 손잡이를 이빨로 단단히 물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촤촤촥-!
엄승도가 고개를 흔들며 검을 휘두르자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던 놈들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나 엄승도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한쪽 귀가 떨어져 나가고 잘려 나갔던 팔목이 이번에는 어깨까지 끊어졌다.
그렇지만 엄승도는 부상당한 운휘를 놓지 않았다.
“지독한 놈.”척살조의 누군가가 진저리를 치며 말하자 엄승도는 검을 물고 있는 상태로 음산하게 웃어 주었다.
“이제 그만 죽어라.”잘 봐줘도 여기까지였다.
척살조의 녀석들이 보기에 엄승도는 정말 할 만큼 했다.
엄승도 역시 더 이상은 움직일 여력이 없는지 가만히 서서 심장을 찔러 오는 검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콰아아앙-!
엄승도의 심장 바로 코앞에서 검이 부러져 나가더니 그 검을 찌른 척살조의 고수가 피 분수를 뿜으며 저 멀리 고꾸라졌다.
엄승도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어깨의 혈도를 짚으며 낮게 웃었다.
“……너무 늦으셨습니다. 정말 죽을 뻔했잖습니까.”“미안, 길이 좀 꼬였어. 근데 괜찮아?”엄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운휘를 벽에 기대어 놓은 채 자신도 그 옆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저 멀리 임학겸이 등을 보이고 있던 놈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있는 게 보였다.
“망할 놈…….”엄승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어찌 되었건 이겼다.
살아남은 것이다.
팔 하나가 잘려 나갔지만 이 정도면 싼 대가였다.
‘문제는…….’엄승도는 주변을 둘러보며 어두운 얼굴을 해 보였다.
임학겸과 노진녕이 왔다 하더라도 별로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들을 업고 도망치기엔 적들이 아직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걸 어떻게 돌파하냐, 이건데…….’아직 노진녕과 임학겸, 두 사람의 체력이 쌩쌩할 때 빠져나가야 했다.
아직도 적들의 숫자는 이백이 넘었고, 그들을 상대로 싸우다가는 결국 다 같이 죽는 수밖에 없었다.
척살조 녀석들도 그 상황을 눈치챘다.
그래서 이제는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면 곤란해.’엄승도는 거친 호흡을 필사적으로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어어?”노진녕은 주먹을 휘두르다가 움찔하며 물러섰다.
이놈들이 주먹을 뻗는데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작정 들이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퍼억-!
피떡이 되어 떨어져 나가는 놈 뒤로 곧장 다른 놈이 덮쳐들었다.
죽은 시체들이 거추장스럽게 노진녕의 움직임을 방해했고, 새롭게 달려드는 놈 역시 공격을 당하든 말든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도살진.
그것이 발동된 것이다.
촤아악-!
“이 새끼들이?”노진녕은 가슴팍에 길게 난 상처를 보며 길길이 날뛰었다.
힘을 아끼거나 배분하지 않고 무작정 막무가내로 쏘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천마신공이 펼쳐지고 사방에서 묵빛의 강기가 떨어져 내렸다.
초반에는 좋았다.
순식간에 적들을 정리한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천마신공은 그 파괴력만큼이나 막대한 내력이 소모되는 무공이다.
당연히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몰려드는 적들에 노진녕은 당황했고, 금세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임학겸은 상황이 더욱 나빴다.
그 역시 수세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노진녕과 합류해서 엄승도와 운휘를 지키고 있었지만 간당간당해 보였다.
‘망할.’엄승도는 억울했다.
도저히 살길이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여기까지 악착같이 버텼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야 하나?
막 그의 눈에 절망감이 떠오를 무렵.
그의 시야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