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81)
제181화 사대 세가의 음모(2014.10.02.)
‘토낀가?’새하얀 털빛의 토끼.
자그마한 토끼가 지붕 위에 뒷발로만 서서 아래를 오만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승도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눈에 보인 토끼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놈이 왜 저기 올라가 있지?’이런 데서 토끼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도 신기했고, 그 토끼가 지붕 위에 뒷발로만 서 있는 것도 조금 이상했다.
만월의 커다란 달을 배경으로 지붕 위에 두 다리로 서 있는 토끼.
그 기묘한 모습에서 엄승도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운휘 역시 지붕 위의 토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토끼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운휘는 자신도 모르게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저놈은…….’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그 요물이 아닌가?
저놈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어떤 한 가지의 가능성을 뜻했다.
운휘는 침착하게 시선을 돌렸다.
‘어디 계십니까?’반드시 계실 것이다.
저 괴물 놈은 항상 누군가의 뒤를 따라다니지 않았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운휘가 주변을 살펴볼 때.
막수의 옆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부르르-
동시에 운휘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운휘는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군살 없이 잘 빠져서 언뜻 보기엔 말라 보이는 호리호리한 몸.
정돈되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긴 머리.
뽀얀 피부에 앳되어 보이는 얼굴.
큰 키의 젊은 사내는 아주 순간적으로 운휘와 시선이 마주쳤다.
운휘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펄떡였다.
‘주군!’초류향이었다.
굳어 버린 몸을 일으키려 운휘가 안간힘을 쓸 때.
지붕 위에 있던 그림자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운휘는 필사적으로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초류향은 운휘의 시선이 닿는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 위에 그림처럼 서 있었다.
우웅-
그의 손에 기운이 모이고 붉은색 강기가 허공에 응집되었다.
“폭마혈우.”초류향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붉은색 피의 비.
무시무시한 강기의 빗방울이 하늘에서 바닥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크윽!”“으아악!”강기의 빗방울에 맞은 사람들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수라환경.
그 악마 같은 무공이 강호에 다시 재현된 것이다.
초류향은 폭마혈우 한 방으로 수십 명의 사람을 학살한 다음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왔다.
마치 계단을 내려오듯 편안한 모습.
“허, 허공답보!”척살조의 고수들이 경악에 찬 얼굴을 할 때.
초류향은 천천히 내려와 운휘와 노진녕, 엄승도와 임학겸을 마주한 다음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소교주님…….”죽을상을 하고 있는 노진녕의 몸에서는 수증기가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임학겸 역시 땀을 비처럼 흘리며 지친 안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둘러보던 초류향은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엄승도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걱정 마십시오. 죽지 않았습니다, 소교주님.”엄승도는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
하나 초류향의 굳어진 표정은 쉽사리 펴지지 않았다.
초류향은 그 옆에 있는 운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요. 우선은…….”초류향이 고개를 돌려 척살조의 고수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쪽부터 해결하고 나서…….”척살조의 고수들은 긴장했다.
아직도 그들은 이백 명 정도가 살아 있었다.
절정 고수 이백 명.
웬만한 대문파 하나 정도는 가볍게 찜 쪄 먹을 인원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방금 보여 주었던 무공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가만히 적들을 바라보던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백구십칠 명.”현재 살아남아 있는 척살조의 정확한 숫자였다.
맨 처음 삼백팔십 명이 출발했는데 오늘 한나절 만에 백팔십 명 정도가 죽은 것이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고르고 고른 절정의 고수들.
그들 중 절반이 단 하룻밤 사이에 시체가 되어 버렸다.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던 초류향이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남아 있는 백구십칠 명 모두, 이곳에서 죽습니다.”초류향은 선언하듯이 말하며 천천히 양 손바닥을 펴서 가슴께에 모았다.
이윽고 그가 손바닥을 느릿하게 떼어내자, 붉은색의 험악한 강기가 그 사이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척살조 인원들이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 * *
강호가 들썩거렸다.
수라마군 초류향.
그가 다시 한 번 세상에 등장했던 것이다.
당시에 그 현장을 지켜보는 눈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세한 소문이 마치 날개가 달린 것처럼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다른 어떤 곳보다 수라마군의 등장에 크게 동요한 곳은 천마신교였다.
그들은 내부에서 교주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벌이고 있던 암투도 중단하고 머리를 맞댄 채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오?”“무엇을 말인가?”“아무래도 놈의 기억이 돌아온 모양이오만?”“그런 모양이군.”사대 세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가 죽고 죽이던 사이였다.
교주 자리가 비었으니 누구든 올라갈 수 있었다.
후계자였던 초류향 역시 밀어냈고, 아무나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천마신교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교 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 주 호법과 우 호법을 비롯한 호법원의 고수들이 주축이 되어서 일을 꾸미고 있소.”“좋은 기회겠구먼, 그들 입장에선.”“소교주가 돌아온다면 지금까지 벌여 왔던 모든 일들이 말짱 헛것이 되는 거요. 하루바삐 방법을 찾아내야 하오.”사대 세가의 주인들.
그들은 지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하나같이 얼굴이 푸석해져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견딜 만했다.
이 고비만 넘어선다면 천마신교의 주인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용씨 세가의 가주 용무화는 뻐근한 뒷목을 꺾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약육강식이 본 교의 율법 아니겠소? 그놈이 우리보다 강하다면 우리는 먹힐 것이고, 놈이 약하다면 잡아먹으면 그만이오.”“지금 우리가 잡아먹히게 생겼으니 하는 말 아니오! 얌전히 죽어 줄 생각이오, 용 가주께서는?”용무화는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천씨 세가의 가주, 천태악을 보며 히죽 웃었다.
“너무 겁을 집어먹은 것 아니오? 천 가주.”“뭐요?”“아아, 역정 내지 마시고 잘 들어 보시오. 천 가주 외에 다른 가주들께서도 내 말을 잘 들어 주시오. 언뜻 보기엔 복잡해 보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 문제는 의외로 매우 간단하오.”“호오, 문제가 간단하다? 용 가주께서는 해결 방도가 있다는 거요?”용무화는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선우세가의 가주.
선우강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해결 방도고 뭐고 없소. 초류향, 그 아이는 본 교에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죽이지 못할 테니까.”“어째서?”“잊으셨소? 본 교의 피의 율법을.”피의 율법.
모든 것을 피로써 씻는 천마신교의 오랜 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전대 교주였던 공손천기는 너무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웠소. 우리는 율법에 따라서 그를 축출했고, 소교주 역시 마찬가지요. 소교주는 백치라는 정보가 있었고, 오랜 기간 행방이 묘연했지. 우리는 율법에 따라 당연한 일을 한 거요.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단 소리요.”“그래도…….”“우리가 애초에 우 호법과 주 호법이라는 막강한 고수를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였소? 정당성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이오. 본 교의 역사는 피의 역사였기에 그만큼 끊임없이 발전해 올 수 있었소. 그 기본적인 율법을 지키려 한 것이 대체 어디가 잘못이었단 말이오?”“…….”“초류향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온다면 분명 호법들은 녀석을 교주로 만들려고 할 것이오. 내버려 두시오. 어차피 발버둥 쳐도 그놈은 교주가 될 테니까.”그럴 것이다.
우 호법과 주 호법.
교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초류향을 지지하고 있었다.
“흐흐, 용 가주는 그렇게 꼬리를 만 개가 되려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오.”천태악은 눈을 빛내며 용무화를 바라보았다.
용무화 역시 자신을 개라고 비하한 천태악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둘 사이에서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 공기를 슬쩍 끊은 것은 선우강진이었다.
그가 둘 사이에 슬며시 끼어들더니 입을 열었다.
“천 가주께서는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괜히 무리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려.”천태악은 용무화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모두 똑똑히 들으시오. 만약 내가 그놈을 죽이면 교주 자리는 내 차지가 될 거요.”용무화는 코웃음 쳤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그도 초류향을 죽이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하나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놈과 부딪쳐 봐야 남는 게 없었다.
지금은 훗날을 도모하는 게 옳았다.
“가능할 거라 생각하시오? 삼황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제의 실력에 준하는 놈이오. 그런 놈을 죽이시겠다? 그것도 단독으로?”“물론이오.”용무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태악을 살펴보았다.
진심인지 아닌지 가려내려 한 것이다.
‘미친놈. 설마 진심인가?’오제급의 고수라는 것.
그것은 실로 엄청난 무력이었다.
구주십오객에서 삼황을 제외하면 최강자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오제가 아닌가?
그들과 비견되는 것이 초류향이다.
‘방법이 있나?’용무화는 다시 한 번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대가 만약 초류향을 죽인다면 그대가 교주 자리에 올라서는 것을 우리 용가가 적극 지원하겠소.”“……!”용무화의 갑작스러운 말에 선우강진과 단리무한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여긴 것이다.
“좋소. 나는 그놈을 죽이고 기필코 교주가 되겠소.”단리무한과 선우강진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용무화와 천태악이 신경전.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건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었다.
“만약 그대가 초류향을 죽일 수 있다면 본가도 그대가 교주가 되는 것을 밀어주도록 하겠소.”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선우강진이 말하고 단리무한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도 마지막에 써먹을 패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아껴 둘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다들 각자의 생각을 하며 사대 세가의 회의는 마무리가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천태악은 바깥으로 나와서 그의 손자를 찾았다.
천자후.
천씨 세가의 가장 믿음직한 후계자.
“독비(毒妃)를 찾아와라.”“그 미친 계집을 갑자기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내 모가지를 걸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 볼 참이다.”스산한 목소리.
천자후의 얼굴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설마 할아버지…….”“그래. 초류향을 죽일 거다. 놈만 죽이면 교주가 될 수 있다.”욕망에 이글거리는 천태악의 눈을 보던 천자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건 무모한 짓이었다.
여태까지 조사한 자료들만 보아도 초류향은 감당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놈을 제거하려면 적어도 삼황급의 고수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도 확신할 수가 없지.’삼황급의 고수가 오더라도 그걸로 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놈은 무공뿐만이 아니라 괴상한 진법이라는 것도 다루었으니까.
머릿수로도 상대가 안 되고, 이제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천태악이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은 바로 독이었다.
과연 그 독이 오제급의 고수에게도 통할지는 미지수였지만, 전설로 내려오는 그대로라면 오제가 아니라 삼황급이어도 통하는 절대 독이었다.
‘독중지왕(毒中之王).’이 세상 모든 독들 중 제일가는 독.
형태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독.
‘무형지독(無形之毒).’오랜 시간 독을 복용하고 독공을 연마하면 단지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역사상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절대의 경지.
독비라는 여자는 그 경지를 이룬 고수였다.
‘단지…….’천자후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무형지독을 연성하기 위해 독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 버렸다.
완전히 백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에게는 적군과 아군의 구별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를 녹여 버렸다.
‘피곤하게 되었군.’천자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단 한 번밖에 써먹지 못하는 비장의 패.
그것을 꺼내야 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것을 써먹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을 테니까.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엔 벌써 너무 멀리 왔던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