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82)
제182화 새로운 시대가 열리다(2014.10.06.)
초류향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걱정했습니다, 소교주님.”초류향을 찾아온 두 사람.
바로 천마신교의 모든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전 호법, 전박과 의술에 있어서 천마신교 최고라 손꼽히는 마의 선우조덕이었다.
전박은 도착하자마자 품에서 여러 가지 문서를 꺼내어 초류향 앞으로 내밀었고, 선우조덕은 후원에서 쉬고 있는 운휘와 엄승도를 찾아가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초류향은 전박과 단둘이 마주 앉아서 문서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없는 사이 본 교는 아주 부자가 되었군요.”“모두 소교주님이 바탕을 다져 놓으신 덕분에 가능했지요.”사천으로 진출했던 소금 사업이 아주 잘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로는 소금뿐만 아니라 서방 세계와의 중개 무역에서도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었다.
이제 천마신교는 자금력 하나만큼은 향후 몇십 년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초류향은 천천히 다음 문서를 읽다가 감격한 눈을 해 보였다.
“제 가족들은 무사했군요.”“예. 제가 따로 안전한 곳에 모셔 두었습니다.”“감사합니다, 전 호법님.”전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실행은 제가 했지만 모든 계획은 교주님께서 짜 놓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부탁하셨었지요.”“스승님께서요?”“예. 그리고 나중에 소교주님을 만나면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었다.
스승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
기대가 되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전박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약간 난처한 얼굴로 초류향을 바라보며 물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전해 드리라 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예, 저도 편한 마음으로 듣겠습니다.”전박은 초류향에게 있어서 참으로 묘한 사람이었다.
과거 그의 스승이었던 조기천 선생님.
그와 너무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산법을 잘하고 좋아한다는 것도 그러했고, 성격도 조기천 스승님과 매우 비슷했던 것이다.
‘항상 차분하고 이성적이지.’그런 그가 저렇게 곤란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면 공손천기 스승님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가만히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전박이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몹쓸 짓을 한 것 때문에 아직까지 소인배처럼 꽁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 섭섭해하는 것까지는 이해해 주마. 그래도 어쩌겠느냐?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너도 잃고, 천마신교도 잃게 생겼는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이거였다.”“…….”전박이 공손천기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하는 모습은 초류향에게 있어서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자니 전박이 시뻘겋게 변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며 계속 입을 열었다.
“네 가족들을 구해 준 것으로 서로 퉁 치도록 하자. 그리고 그동안 미처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는데 이 영감을 빌어 말하도록 하마. 사랑한다, 제자야.”“…….”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전박은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한 교주 공손천기를 속으로 원망하며 헛기침을 했다.
“……여기까지입니다. 험험.”말을 다 전해 놓고 그는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차마 초류향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초류향은 마지막 말은 들은 후로 한동안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스승님답군요. 감사합니다. 힘드셨을 텐데.”초류향의 감사에 전박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오랜 업보를 내려놓았다.
그에게는 천마신교라는 거대 단체의 몇 년 치 예산을 다루는 것보다 지금 공손천기가 부탁했던 말을 전해 주는 쪽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성격상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공손천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틱틱거리고 사사건건 공손천기에게 충고를 했던 전박이지만, 그 역시 공손천기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마지막 부탁이니 제아무리 전박이라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건 교주님의 마지막 짓궂은 장난을 전해 드렸으니 마음이 후련합니다.”하나 후련하다고 말하면서도 전박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더 이상 교주 공손천기는 세상에 없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초류향 역시 잠시 공손천기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현재 초류향의 입장은 참으로 묘했다.
소교주였다면 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천마신교로 돌아가면 된다.
하나 지금은 공식적으로 천마신교에서 쫓겨난 신세다.
‘끈 떨어진 연이지.’돌아가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돌아가지 않자니 갈 곳이 없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상황인 것이다.
“소교주님께서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전박이 되묻자 초류향은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 상황에서는 천마신교에 복귀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하나 그러기엔 문제가 너무 복잡했다.
“일단 부상에서 회복하는 게 우선일 듯싶습니다. 운휘 님과 엄승도 님이 많이 다치셔서…….”전박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은 최대한 빨리 교에 복귀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이유가 있습니까?”“예. 부담스러운 녀석들이 소교주님을 노리고 있거든요. 곧장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초류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누구입니까?”“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입니다.”전박의 말을 들은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아무리 강해졌다곤 하지만 확실히 남만야수문과 북해빙궁을 우습게 볼 수는 없었다.
적혈명과 구휘.
그리고 그들보다 더욱 강한, 삼황급이라 예상되는 북해빙궁주와 남만야수문주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야겠군요.”“예, 최대한 빨리 교에 복귀하셔야 합니다. 준비는 이미 마쳤습니다.”준비를 마쳤다?
그게 무슨 말일까?
전박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척살령은 취소될 것입니다. 소교주님께서 기억을 되찾으셨고, 무공 역시 회복하셨으니 복귀해서 교주직에 오르시는 게 당연합니다.”“사대 세가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당연한 질문이었다.
사대 세가는 교주 직위에 집착이 강하니 거의 손아귀에 들어온 그것을 쉽사리 내줄 생각이 없을 것이다.
하나 의외로 전박은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으머 말했다.
“방법은 있습니다.”방법이 있다?
초류향이 궁금한 얼굴을 해 보일 때.
전박이 슬쩍 웃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약육강식. 결국 힘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면 됩니다.”“음…….”그랬다.
아주 단순한 일인 것이다.
힘의 증명.
그게 바로 천마신교의 오랜 전통이 아닌가?
“하루바삐 교에 복귀하셔서 안정을 찾아 주시는 것, 그것이 소교주님께서 가장 우선으로 해 주셔야 할 일입니다.”초류향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언젠가는 교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 혼자만으로는 어렵다.’그렇다.
분명 혼자였다면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초류향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를 도와주는 호법들이 있고, 노진녕과 운휘도 있다.
엄승도와 임학겸도 있지 않은가?
‘너의 사람은 네 손으로 구해라.’과거 공손천기 스승님께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도는 초류향이었다.
물론 당시의 스승님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옳았다.
“교에 복귀하겠습니다.”“잘 생각하셨습니다.”전박은 환하게 웃었다.
이로써 주 호법과 우 호법, 그리고 전박과 선우조덕이 생각하고 있던 천마신교의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초류향이 돌아오는 날.
천마신교는 다시 한 번 멀리 도약할 수 있는 크나큰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 * *
“이거 정말 재미있는 일이군, 사제.”“그러게 말입니다.”태극검황 백무량.
그는 느긋한 얼굴로 눈앞에 놓여 있는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웃었다.
“왜 갑자기 황실이 물러갔을까? 힘의 균형을 보았을 때 본인들이 압도적인 것을 알았을 텐데……. 뭐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나?”“글쎄요……. 그놈들이야 워낙에 꿍꿍이를 숨기니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백무량은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자신의 사제.
사자검군 유설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흑월회에서는 이렇게 일이 될 것을 이미 알았던 걸까?”“예,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철수한 안휘성에서 그들만이 남아서 이득을 취하고 있었겠지요.”백무량은 감탄한 얼굴을 해보였다.
“대단하구만. 본 맹의 상관중달도 알아내지 못했던 무언가를 냉하영이라는 처자가 알고 있었다는 말이구만.”“예.”“냉무기가 손녀 하나는 잘 키웠어.”“그래 봐야 머리만 쓸 줄 아는 계집일 뿐입니다.”사자검군 유설빈은 아까부터 불쾌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있었다.
백무량은 사람 좋은 웃음을 입가에 그리며 그런 사제를 바라보았다.
“사제가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역시 그 녀석 때문이겠지?”“누구를 말하는 겁니까?”“수라마군.”“…….”유설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백무량은 그런 유설빈의 얼굴을 살펴보며 빙긋 웃었다.
“그때 죽이지 못했다는 아이가 수라마군이 맞나?”“예. 용모파기를 보았을 때, 그놈이 맞습니다.”“죽이지 못한 걸 후회하나? 이렇게 강해져서 온 녀석이 부담스러운가?”후회한다? 부담스럽다?
이 사자검군 유설빈이?
유설빈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전 그냥 아쉬운 것뿐입니다.”“아쉽다?”유설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번거롭게 일을 두 번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때 한 번에 끝낼 수도 있었던 일인데.”그날.
혈음마군 주상산과 함께 있던 꼬마아이가 마교의 소교주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모든 것을 제쳐 놓고서라도 그 꼬맹이부터 죽였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아까웠다.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은원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일세, 사제. 그것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말게.”유설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백무량의 말을 듣자 갑자기 그때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던 꼬맹이의 눈빛이 떠올랐던 것이다.
‘건방진 놈.’솔직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때 그 안경잡이 꼬맹이는 제 사부의 피를 뒤집어쓰고 피 칠갑을 한 채 자신을 악귀처럼 노려보지 않았던가?
그건 분명 고작해야 열 살 남짓한 꼬마가 보일 만한 눈이 아니었다.
“그 꼬마, 분명 눈앞에서 스승이 죽는 걸 보았다고 했었지?”백무량이 자신의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묻자 유설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그 스승을 죽인 게 유설빈 본인이었으니 확실했다.
유설빈이 떨떠름하게 대꾸하자 백무량이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사제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구먼. 한번 바닥으로 떨어져 봤던 놈만큼 무서운 건 없네.”유설빈은 입술 끝을 씰룩거렸다.
“얼마든지 받아 줄 생각입니다. 그래봐야 애송이일 뿐이죠. 지금이라도 당장 놈을 박살 내러 갈 수 있습니다.”백무량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서두르지 말게. 그 정도 은원이라면 자네가 원하지 않아도 조만간 만나게 될 터이니. 그나저나 재미있겠군. 내 진전을 이은 자네와 공손천기 제자와의 대결이라……. 기대되는구만.”“기대하실 것도 없이 싱거운 승부가 될 겁니다.”백무량은 미소 지었다.
태연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과는 달리, 그의 사제 유설빈은 수라마군을 제법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후다닥 그들에게 다가왔다.
유설빈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맹에서 온 특급 정보입니다.”“그래?”유설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보원이 내미는 문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 자리에서 개봉하여 읽어 내려갔다.
문서를 읽어 내려가던 유설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표정 변화를 살펴보던 백무량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무슨 재미있는 정보라도 올라왔는가?”“예, 아주 재미있는 정보입니다.”“이리 줘 보게.”백무량에게 문서를 건넨 유설빈은 찻주전자에서 차를 따르며 어처구니없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문서를 읽어 내려가던 백무량 역시 눈을 빛내며 재미있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황실에서 척계광이 실각되었다라…….”“예.”“황실의 병력이 최근에 움직임이 이상하더라니… 갑작스럽게 철수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군.”“그렇겠죠.”“권력 싸움에서 척계광이 밀릴 것을 흑월회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지?”“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황실이 제압했던 영역에 미리 들어가서 좋은 위치들을 선점했겠지요.”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황실이 갑작스럽게 심해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강호가 재미있어지겠군.’맨 처음 천하 사패는 천마신교라는 강대한 적 때문에 그들끼리 연맹을 맺고 천마신교와 싸우기 시작했다.
한데 천마신교가 갑작스럽게 봉문을 선언하고, 그 뒤 황실이 천하 사패의 뒤통수를 치며 천하를 쥐락펴락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는 그 황실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새 시대가 왔군.’구주십오객이 주도하던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이 났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인가?
백무량은 식어가는 찻잔을 집어 들며 희미하게 웃었다.
만든이 한 마디
백무량 비중 졸라게 없어요.
한 방에 나가떨어진 이후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