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87)
제187화 소용돌이(2014.10.23.)
-반드시 무사하셔야 합니다, 주인님.초류향은 마차를 타고 가다가 들린 음성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화령…….’왜 갑자기 그녀의 기억이 떠오른 걸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다가 맞은편에 앉은 운휘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주군.”“아닙니다.”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으며 운휘를 안심시켰다.
화령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꺼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운휘 역시 신경을 쓰고 있을 테니까.
초류향은 가만히 마차 창 밖을 바라보며 다시금 화령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기억에 따르면 화령은 분명히 피투성이 상태였다.’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자신을 데리고 그녀가 얼마나 고초가 심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그랬기에 그 죽음을 헛되이 할 생각은 없었다.
초류향이 무심한 얼굴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때.
마차 안에서 척계광이 눈을 떴다.
무려 보름 만이었다.
“깨어나셨습니까?”“…….”척계광은 얼떨떨한 눈으로 주호유를 바라보았다.
주호유는 멍한 상태의 척계광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승은 어떠셨습니까?”“……내가 지금 살아 있는 건가?”“예. 제가 구했지요.”척계광은 몇 번 눈을 끔뻑거리다가 곧 탁하게 풀린 음성으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구먼.”“제가 원래 쓸데없는 일을 잘하는 편입니다.”척계광은 주호유의 넉살 좋은 대답에 대꾸하지 않으며 주변을 슬쩍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누군가? 이들은.”“아, 이쪽의 청년은 초류향입니다. 천마신교의 사람이지요.”“천마신교? 초류향?”척계광은 의외라는 얼굴로 마차 맞은편에 앉아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차츰 재미있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쪽이 수라마군인가?”“예.”“……듣던 것보다 더하구만.”무공을 잃었어도 본래 가지고 있던 감각은 과거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척계광이다.
그의 눈으로 살펴본 초류향의 무력은 자신과 필적했다.
초류향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공손천기는…… 괴물이구만.”본인 스스로의 노력으로 무위를 끌어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스스로의 노력이나 천재성이 있으면 되니까.
한데 후계자까지 이 정도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공손천기는 정말 대단한 자였다.
“뒤를 쫓는 자는 누구인가?”힘을 잃기 전이었다면 감히 추적자를 붙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목을 탐낼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걸 알고 있던 척계광이 묻자 주호유가 대답했다.
“류대오입니다.”척계광은 그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자였던 것이다.
“금의위라…….”“태 공공께서는 이번 일에 낄 수 없다고 이해해 달라고 말을 전해 왔습니다. 대신 중립을 지켜 주겠다고 했습니다.”척계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 공공.
그는 환관들의 무력 집단인 보화전(寶華殿)의 이대 수장 중 하나였다.
그가 이번 일에 개입하게 된다면 자칫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우려가 있었다.
태 공공이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침묵을 지켜 준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척계광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는 일이다.
“천마신교에 의술이 뛰어난 자가 있다고 합니다.”주호유는 척계광을 바라보다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곳에 가서 잠시 몸을 의탁해 볼까 합니다.”척계광은 주호유에게서 눈을 돌려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초류향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척계광이 자신에게 무엇을 물을지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대가 굳이 나를 데려가 위험부담을 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얻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얻을 것이 있다? 그럼 잘못 판단했네. 나는 이미 가진 것을 다 잃었네. 재산을 비롯하여 직위, 심지어 지금은 몸뚱이조차도 제대로 가누기 어렵지.”팔다리 근육은 스스로 다 잘라 내었다.
본인이 잘랐으니 그 누구보다도 상태를 잘 알았다.
이건 회복될 수 없었다.
인간의 근육이라는 것은 의외로 굉장히 섬세해서 한번 뒤틀리고 어긋나면 아무리 잘 치료해 봤자 본래대로 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치료를 받더라도 기껏해야 평범한 사람처럼 거동을 하는 게 고작일 터.
‘게다가…….’가장 중요한 문제는 팔다리 근육이 아니었다.
단전.
무인에게 있어 생명만큼 중요한 단전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는가?
내력을 보관하는 단전은 한 번 파괴된 이상 앞으로 평생 회복되지 않을 것이고, 회복되지 않는다면 자신은 그저 평범한 사람과 다름이 없다.
“일단 척계광 장군님을 저희 편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수확입니다만, 저는 그것보다 다른 쪽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다른 쪽?”“예.”초류향은 척계광 옆에 있던 주호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분은 가급적이면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분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척계광 대장군님의 신변을 제가 책임질 필요가 있었습니다.”“허어?”주호유가 순간 당황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이건 너무 솔직했다.
자신 때문에 초류향이 척계광까지 받아들였으리라는 점은 주호유도 짐작했지만 일부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척계광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데 의외로 척계광은 피식 웃으며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적이 되어 만나면 죽여야 할 것 같아서 데리고 있겠다, 이 말인가? 천하제일 진법가를?”“예. 조금 부담스럽거든요.”“부담스럽다라…… 그건 좋은 일이군.”척계광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라마군의 명성은 척계광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성보다 실제 실력이 더 높다는 것도 직접 봐서 알게 되었다.
그런 자가 인정한 것이다.
주호유는 부담스럽다고.
척계광은 주호유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말년에 자네 덕을 좀 보게 되겠구만.”“예? 예. 여태껏 대장군께서 저를 보살펴 주셨으니 이번에는 제 신세 한번 크게 져 보십시오.”“허허, 알겠네.”주호유는 척계광의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자 오히려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 주호유와는 다르게 초류향은 지금 척계광의 심정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아 극도로 편안한 상태였다.
그래서 초류향도 돌려 말하지 않고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때 척계광이 입을 열었다.
“수라마군, 그대는 주 학사 때문에 나를 도와준 것이겠지만 차후에 분명 이 빚을 갚을 일이 생길 걸세.”형형한 눈빛.
단전이 파괴되고 사지 근맥이 절단되었어도, 그의 호랑이를 닮은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그랬기에 초류향은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기대하겠습니다.”“기대해도 좋을 게야.”척계광은 그제야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사실 황제가 찾아왔을 때부터 반쯤 포기한 목숨이 아니던가?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오히려 더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그를 얽매고 있던 모든 것에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졌으니까.
척계광은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런 홀가분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주호유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장군, 여태까지 제가 보았던 얼굴 중에 지금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그런가?”“예.”“그럴지도 모르겠군.”편안했다.
그동안 제법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던 모양이었다.
척계광이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때.
마차가 정지했다.
“도착했습니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천마신교에 도착한 것이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번쯤은 등장할 줄 알았던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의외로 초류향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것을 노리고 있나?’자신과 원한이 있는 그들이라면 반드시 나타날 줄 알았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등장하지 않으니 오히려 당황스러운 마음이었다.
잠시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있던 초류향이 고개를 가볍게 저은 후 마차 문을 열며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마차 문을 열자 수없이 많은 무인들이 도열한 뒤로 천마신교의 거대한 붉은 대문이 보였다.
정말로 도착한 것이다.
천마신교에.
탁-
마차에서 내려서는 초류향의 발걸음에 서서히 강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 * *
“그 건방진 꼬맹이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북해빙궁의 적혈명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산을 올라가며 흐뭇하게 웃었다.
“형산파를 접수하면 크게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지.”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
황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자마자 그들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바로 정도맹의 거점들을 빼앗는 것이었다.
“그럼 가 볼까?”“존명.”얼마 전 노진녕에 의해 반파 직전까지 갔던 형산파였다.
전력이 다 있어도 어림없을 텐데 이미 반쯤 부서져 있던 그들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북해빙궁의 고수들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가장 전면에는 적혈명이 있지 않은가?
그 앞에서 형산파의 고수들은 그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갈 뿐이었다.
형산파를 순식간에 파괴한 후 북해빙궁은 그 자리에 자신들의 거점을 세웠다.
이곳을 거점으로 본격적인 중원 진출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때 움직인 것은 북해빙궁뿐만이 아니었다.
* * *
쾅-!
유설빈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감히…….”북해빙궁이 움직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들은 분명 초류향을 치러 간다고 통보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들의 움직임을 딱히 막지 않았다.
한데 한참을 미적미적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정도맹의 심장부에 가까운 호남성.
그곳에 있는 형산파를 집어삼킬 줄이야.
이건 뼈아픈 실책이었다.
유설빈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때.
그의 뒤에서 태극검황 백무량이 등장했다.
그리고 씩씩거리고 있는 자신의 어린 사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산파가 당했다고 했나, 사제?”“예, 사형. 북해빙궁, 그 교활한 놈들이 잔꾀를 부렸습니다.”이렇다 할 반항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형산파는 말 그대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큰일이군.”하나 큰일이라는 말과는 달리 백무량은 별다른 걱정 근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남의 일이라는 말투다.
문득 그가 품에서 문서를 하나 꺼내어 유설빈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한번 읽어 보시게.”유설빈은 백무량이 건네는 문서를 받아서 읽다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얼굴로 백무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이 개자식들이!”콰아아앙-!
결국 유설빈의 앞에 있던 탁자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유설빈은 이를 갈며 말했다.
“남만야수문 놈들까지 움직인 겁니까?”“그런 셈이지?”“이건 이놈들이 아예 작정을 하고 움직였다는 뜻 아닙니까?”“아마도 그렇겠지.”“지금 천마신교가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백무량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당장 사나운 이리 떼에게 집안을 털어 먹히게 생겼으니.”“신승께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까?”신승 공야 대사.
태극검황 백무량이 은퇴한 이후 무림맹주직을 맡은 그는 생각보다 착실하게 정도맹을 이끌고 있었다.
“신승은 오래전에 움직였네, 사제. 그 응큼한 영감은 녀석들이 이렇게 움직일 것을 이미 알고 있었거든. 사실은 정도맹의 군사인 상관중달이 미리 경고했으니까. 대비는 해 놓았지.”유설빈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자신에게도 비밀로 한 채 움직였다는 말인가?
대체 언제?
“어디로 움직인 겁니까? 신승께서는.”“남만야수문이 쳐들어온 곳. 바로 이곳으로 움직였네.”백무량이 벽에 걸린 지도를 보며 가리킨 장소.
그곳은 현재 남만야수문의 기습으로 무너진 섬서성이었다.
섬서성에는 정도맹에 소속된 유명한 두 개의 문파가 있다.
하나는 종남파, 다른 하나는 화산파다.
현재 남만야수문이 점령한 곳은 종남파였다.
“신승은 소림의 제자들을 이끌고 화산파로 향했네. 그곳에서 남만야수문을 상대할 생각이지. 우리더러 정도맹의 병력을 이끌고 형산파로 가 달라더군.”형산파에는 북해빙궁이 있었다.
형산파로 가 달라는 것은 그들을 막아 달라는 뜻일 터.
“물론 움직여야지요. 그 건방진 놈들에게 중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주겠습니다.”유설빈이 분노한 얼굴을 해 보이자 백무량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 볼까?”“예.”중원은 만만하지 않았다.
공손천기라는 희대의 천재에게 이리저리 휩쓸렸지만 아직도 중원에는 고수가 부지기수로 많았던 것이다.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은 그런 중원의 안마당에 너무 무방비하게 들어왔다.
‘후회할 것이다.’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손천기가 없었다.
그럼 정도맹으로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황실이 사라진 지금.
천하는 그렇게 다시금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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