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93)
제193화 화령과 만나다(2014.11.13.)
다음날 초류향은 눈을 뜨자마자 의관을 제대로 차려입고 바깥으로 나섰다.
문을 나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운휘와 노진녕이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던 노진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주군.”“예. 말씀하십시오.”“그 작은 괴물 놈은 어디 갔습니까?”막수의 행방을 묻는 것이다.
항상 초류향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쫓아다니는 그놈의 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오히려 불안해진 모양이다.
“잠깐 어딘가로 보냈습니다. 아마 한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초류향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노진녕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휴, 그거 듣던 중 참으로 반가운 소리입니다. 하하, 사실 항상 긴장하고 있었거든요.”“그러셨습니까?”“예. 헤헤.”노진녕은 헤프게 웃으며 크게 안도했고, 묵묵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운휘는 도리어 의아한 눈을 해 보였다.
“그 녀석이 주군의 말을 순순히 듣는 겁니까?”그놈의 힘은 운휘와 노진녕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초류향이 강한 것은 맞지만 막수는 그로서도 감당이 되지 않는 괴물이라는 것쯤은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어떻게 길들인 것일까?
궁금했다.
“녀석과 내기를 했습니다.”“내기요?”“예.”노진녕은 초류향의 말에 크게 감탄하며 긍정했다.
“히히힛, 하긴 내기 하면 누구도 우리 주군을 따라올 수가 없죠. 그 괴물 녀석도 별수 없었겠네요? 그것참 쌤통이다!”초류향은 노진녕의 지나치게 솔직담백한 말에 잠깐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제가 놈을 보기 좋게 속여 넘겼습니다.”운휘는 말실수한 노진녕에게 눈치를 줬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몰랐다.
그저 여전히 헤프게 웃으며 순수하게 감탄한 얼굴로 초류향을 바라볼 뿐이다.
그 악의 없는 얼굴에 운휘는 한숨을 내쉬었고, 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해 주었다.
“아마 지금쯤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우헤헤! 그것참 고소한 말씀이십니다, 주군.”노진녕은 기뻐하고, 운휘는 고개를 저으며 초류향의 뒤를 바짝 쫓았다.
운휘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이 빨라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였기에 안정을 취하게 되자 곧장 몸의 회복 속도가 올라간 것이다.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이 중원에 진출했다고 합니다.”초류향은 어제 밤늦게 찾아온 주 호법의 전언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었다.
그들끼리 내분이 일어난 것은 초류향의 입장에서 보기에 확실히 좋은 징조였기 때문이다.
“정도맹과 싸우고 있겠군요.”운휘가 말하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만야수문도 그렇고 북해빙궁도 그렇지만, 중원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도맹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제가 그들과 만나지 않고 교에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무래도 이거였던 모양입니다.”상당히 먹음직스러웠던 초류향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들이 노렸던 것.
그것은 바로 중원의 땅이었다.
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해빙궁의 오랜 숙원은 분명 얼지 않는 땅을 확보하는 것일 테니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남만야수문 역시 중원의 금은보화(金銀寶貨)를 항시 탐내고 있었으니 이해가 갑니다.”하지만 이해가 된다는 말과는 다르게 운휘의 표정은 아리송해 보였다.
초류향은 그런 기색을 읽었기에 바로 질문을 던졌다.
“다른 무엇이 궁금하십니까?”“이런 상황에서 흑월회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이라면 분명히 이득을 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요.”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냉하영이라면 지금 상황에서도 이리저리 바쁘게 저울질해 가면서 철저하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생존 방식을 찾았을 겁니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천하가 그들이 가장 원하는 형태니까요.”그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서 천하의 그림이 바뀌게 될 것이다.
잠시 머릿속으로 냉하영의 모습을 그리던 초류향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춘 후 작게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그들과의 약속대로 이곳부터는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운휘와 노진녕은 크게 당황했다.
초류향의 말이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둘은 사대 세가를 믿지 못했다.
“그건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놈들이 안에 무슨 수작을 부려 놨을지 모릅니다. 주군.”운휘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노진녕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따라가야 했다.
무슨 위험이 있든지, 아니 오히려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따라가서 초류향을 도와야 했다.
화경의 고수 셋이 움직인다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부터는 서로에 대한 신뢰의 영역입니다. 저들이 제가 제의한 것을 받아들였으니 일단 저도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 줘야겠지요. 그렇게 해서 서로 신뢰를 쌓아 가는 게 맞습니다.”이것은 차후에 교주가 된 이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초류향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운휘와 노진녕은 계속 불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하지만…….”사대 세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만약 무언가 음모를 꾸몄다면 바로 지금이 적기였다.
“저 안에서 무언가 소란이 생기면 이곳에서도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두 분은 여기에서 대기하다가 만약의 경우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이곳에서 기다려 주세요.”초류향은 운휘와 노진녕이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논할 수 없게 단호하게 말한 후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운휘와 노진녕이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초류향은 현재 이 세상에 자신을 해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알았기에 오히려 느긋했다.
사대 세가가 정한 장소.
천마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진 천마검협지(天魔劍峽地)에 들어선 초류향은 잠시 움찔했다.
‘뭐지?’초류향이 알기로 천마검협지는 천마신교 내에서는 몇 안 되는 중요한 성지(聖地, 성스러운 땅)로 통했다.
종교적인 의미로도 그렇고, 천마신교 역사적으로도 그곳은 성지가 되기에 충분했다.
천마의 유해가 이곳에 있을뿐더러, 그 외에도 그가 비밀리에 남겼다는 무공의 잔재들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장소였지만 오늘은 특별하게 장소가 개방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초류향의 표정은 점점 신중하게 변했다.
‘아무도 없다.’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대 세가에서 정한 장소였고 시간 역시 그들이 정했는데도 이곳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충분히 수상쩍은 느낌을 주었다.
‘확인해 볼까?’초류향은 자신의 실력을 믿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붉은색 거대한 눈을 머리 위로 띄웠다.
우웅-
초류향은 최대한 느긋하게 이동하며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 초류향이 막 발동한 심연술은 수라환경과 상당 부분 연계가 되는 술법이었다.
주변의 일정 범위를 ‘영역’으로 만들어 그 영역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수라환경의 기본 요체였다.
심연술은 그것을 조금 더 정신적으로 확장한 결과물.
그것으로 주변을 꼼꼼히 수색해 보았지만 근처에는 사람이 없었다.
‘역시 아무도 없다.’단순히 일찍 도착한 것일까?
사대 세가의 수뇌부들이 단지 늦게 오는 것뿐이라면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만, 마냥 그렇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서서히 약속 장소에 가까워질 무렵.
초류향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관?’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관.
그것이 지금 약속 장소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 있었다.
초류향은 정신을 집중했다.
사대 세가가 무언가 수작질을 부려 놨으리라는 점은 짐작했지만 관을 가져다 놓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란 말인가?
‘안에 무엇을 숨겨 놓았지?’무엇을 숨겨 놓았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둔 것일까?
살짝 기대가 되었다.
초류향이 서서히 정신을 집중하자 붉은색 눈 역시 관을 집중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얼마 후 초류향은 제자리에서 움찔했다.
“이건…….”초류향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 지나가자 초류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몸을 날렸다.
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대리석 관으로 순식간에 다가간 초류향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화령…….’생명의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관 안에 있는 것은 화령의 시신인 것이다.
초류향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침착해라.’결국 화령은 죽었다.
이미 그럴 것이라 예상했고, 확신하긴 했지만 막상 사실로 다가오자 처참한 마음이 들었다.
초류향은 사대 세가가 이렇게 화령의 시신을 여기에 가져다 놓은 의미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화해의 요청이 아니겠는가?
‘현명하군.’안 그래도 화령의 행방에 대해 사대 세가에게 물어보려고 했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미리 알고 이렇게 준비해 둔 것을 보면 과연 사대 세가는 우습게 볼 만한 곳이 아니다.
‘여기에서 덮자는 건가?’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의 의도대로 이 일을 여기에서 덮어야 할까?
초류향은 복잡 미묘한 심정이 되었다.
드르륵-
대리석 뚜껑을 옆으로 가볍게 밀어낸 뒤 초류향은 그 안에 누워 있는 화령을 바라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관에서 흘러나왔지만 초류향은 그것을 별로 의심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신을 부패시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냉각해 놓는 일은 흔했으니까.
평소의 초류향이었다면 여기서 한 번 정도는 이 상황을 의심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미안합니다.’초류향은 화령의 시신을 바라보며 슬픈 얼굴을 해 보였다.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없었다.
화령은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시신이라도 이렇게 깨끗하게 보존해 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초류향은 잠자는 듯이 눈을 감고 누워 있는 화령을 바라보다 문득 손을 뻗었다.
막 화령의 손을 잡기 직전 초류향은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사대 세가가 어째서 화령의 시신을 이렇게까지 잘 관리했을까?’초류향은 화령의 손을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당시의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보자면 화령의 시신은 사대 세가에게 있어서 그다지 큰 가치가 있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초류향의 행방을 알기 위해 화령에게 온갖 지독한 고문을 다 가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초류향과 최후까지 함께했던 사람은 분명 화령이었으니까.
‘너무 멀쩡하군.’살짝 곤혹스러운 느낌이었다.
화령은 전혀 고문을 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초류향의 눈에 살짝 지금 상황에 대한 의심이 떠오를 때.
터억-
초류향은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는 서늘한 손길에 심장이 떨어질 만큼 깜짝 놀랐다.
잠자는 듯이 누워 있던 화령이 초류향의 손을 강하게 움켜쥔 것이다.
뿌드드득-!
강철이라도 우그러뜨릴 듯한 엄청난 괴력.
초류향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압박감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때.
시체처럼 누워 있던 화령이 상체를 서서히 일으켰다.
이 불가사의한 광경은 평소에 냉철하고 이상한 일들을 많이 겪은 초류향에게도 심적으로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초류향이 경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게 화령을 바라보고 있을 때.
화령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번쩍-
화령이 감은 눈을 떴다.
그 진녹색의 눈과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
초류향은 두 눈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이건…….’독이었다.
그것도 끔찍할 정도로 지독한 독.
초류향은 사방이 팽글팽글 도는 듯한 착각과 함께 서서히 제자리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