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01)
제201화 침입자(2014.12.11.)
검버섯 노인은 이를 악물고 도망쳤다.
그가 천자후가 가르쳐 주었던 그 비밀 장소에서 빠져나오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 죽어.’본능이 그렇게 경고해 왔던 것이다.
검버섯 노인.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있어도 천자후는 자신의 목숨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계획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도망쳐야 했다.
더 이상 이용당하는 것은 사양이니까.
판단은 빨랐고, 행동은 그것보다 더 신속했다.
검버섯 노인은 간단하게 챙긴 행낭을 들고 비밀 장소에서 빠져나와 무작정 천마신교를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천마신교의 경비는 정말로 두터웠다.
어설픈 무공을 지닌 그가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꼬박 이틀을 서성거리며 도망칠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검버섯 노인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외부로 탈출하기 위해 애쓸 때.
사대 세가.
그중에서도 특히 천씨 세가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 * *
“영감을 잡아 와. 산 채로.”천자후의 명령을 받고 천씨 세가의 추적대가 움직인 것은 천자후가 초류향에게 충성을 맹세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들은 이쪽 방면의 전문가들이었고, 그들이 검버섯 노인의 행적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추적대는 정확히 반나절 만에 노인의 행적을 발견하고 뒤쫓기 시작했다.
토끼몰이라도 하듯이 느긋하게 검버섯 노인을 쫓던 그들은 의외의 난관에 봉착했다.
공교롭게도 검버섯 노인이 지금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이 이화궁의 관할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추적대를 지휘하는 자.
마노(魔老)라 불리는 중늙은이는 가래침을 바닥에 내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소가주의 명령은 절대적이기에 검버섯 노인을 반드시 데려가야만 했다.
하나 저곳에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이화궁은 남자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괜히 그들과 얽힌다면 뒤끝이 좋지 않을 게 뻔했다.
“어떻게 할까요?”수하들의 물음에 마노는 얼굴을 찡그린 채 고민했다.
저 멍청한 계집년들은 자기들 관할 구역에 침입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검버섯 영감탱이는 운이 좋아서 어떻게 저기까지 간 것 같긴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가서 소가주님께 보고하고 와라.”아쉽지만 이것은 혼자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괜히 무리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다 보고를 하고 위의 판단을 기다리는 게 옳았다.
마노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천자후를 만나러 갔던 수하가 돌아왔다.
수하는 혼자 돌아오지 않고 천자후와 함께였다.
“저곳에 있다고?”“예, 소가주님.”성인 남자 키만 한 담벼락.
그 너머부터는 완전한 이화궁의 영역이었다.
교주의 허락 없이는 남자들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땅.
천자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담벼락 너머를 바라보았다.
순찰을 도는 이화궁의 고수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런 것들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몰래 들어가서 영감을 빼 올 방법은 없나?”“예.”“그럼 그 영감은 대체 어떻게 저길 들어간 거야? 우리가 무능한 거냐, 아니면 영감이 뛰어난 거냐?”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무공도 거의 모르는 영감이 아니던가?
이화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행히 준비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소군주님이 실종되셨을 때, 선우초린 궁주가 이화궁을 한바탕 뒤집어 놨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때 운 좋게 침입한 모양입니다.”“……정말 운이 좋군.”속이 쓰렸다.
운이 좋아도 너무 운이 좋은 것 아닌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저 안에 영감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마노는 이 분야에 있어서는 충분히 신뢰할 만한 자니까.
문제는 이화궁이었다.
이화궁 내부에는 천씨 세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
저곳은 현재 선우 세가의 영향을 가장 강력하게 받는 곳이 아니던가?
‘선우 세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그러기엔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게다가 자존심과는 별개로, 이번 일이 바깥으로 새어 나갈 염려가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선우 세가에서 저 검버섯 영감의 신병을 확보하고 그들이 찾아낸 양 초류향에게 갖다 바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곤란하지.’사실 천자후는 이번에 아주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저 영감이 도망친 덕분에 그들 가문이 살았던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역설적이게도 검버섯 노인의 배신에 대해 일정 부분 감사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그것과는 별개로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가문에서 얼마나 많은 편의를 봐 주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따끔하게 훈계를 내리고 소교주에게 넘길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런 식으로 꼬여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천자후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천마신교에서 이화궁이 가지는 위치는 참으로 묘했다.
교주 직속의 무력 단체이자 유일하게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
때문에 그녀들은 지나치게 도도했고,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가진 능력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한번 혼을 내줘 볼까?’선우초린은 사대 세가 중 선우가의 사람이었다.
평소에 얼굴이 제법 반반하다고 건방지기 이를 데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콧대를 눌러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뒷감당은 어디까지 될까?’일을 벌이기 전에 미리 세세하게 뒷일을 생각해 두는 것은 천자후의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였다.
천자후는 침착하게 계산을 해 보았다.
일단 일이 잘못되어 발각될 경우.
이화궁에서 곧장 추적대가 꾸려질 것이다.
하나 그녀들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무능하니까.’사실 이화궁의 힘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들이 추적을 해 봐야 이쪽이 그 방면에서는 압도적이니까 완벽하게 따돌릴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화궁이 아니다.
‘선우 세가…….’선우 세가가 움직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 역시 오랜 시간 천마신교 내에서 살아남은 거목이 아니던가?
그들이 이번 일에 개입하게 된다면 일은 아주 복잡해진다.
추적의 전문가들이 나설 테고, 그들 역시 전문가들이니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이 천자후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천자후는 마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저 안에 돌입하게 된다면 놈을 찾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반 시진(한 시간)이면 놈을 잡아다가 가죽까지 벗길 수도 있습니다.”“확실해? 지금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야.”마노는 소가주의 질문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의 칼을 뽑아 손잡이를 내밀며 말했다.
“제가 말한 시간보다 조금이라도 지체될 시 제 목을 쳐도 좋습니다, 소가주님.”“쯧, 네 목숨으로 일이 덮어질 수 있었다면 백 번이라도 더 시도했다.”하나 말과는 달리 천자후는 마음을 굳혔다.
이번 일은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설령 최악의 경우, 일이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검버섯 노인의 목숨을 이쪽이 쥘 수 있게 된다.
‘지금의 소교주는 검버섯 노인의 목숨을 최고로 중요시한다.’천자후가 판단하기에 지금의 소교주는 화령이라는 계집을 치료하기 위해 분명 어떤 것이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검버섯 노인의 신병을 확보하고 그를 소교주에게 바친다면 다른 세가들보다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사대 세가는 모두 소교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지.’이것이 수치스럽냐고?
전혀 아니다.
이번에 소교주가 보여 준 것은 단순한 힘과 능력의 증명만이 아니었다.
그는 공손천기조차도 하지 않았던 ‘징벌’을 사대 세가에 내리려고 했고, 그것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멸문의 위협이었다, 그것은…….’천자후는 그때 느꼈던 공포가 아직도 선명했다.
사대 세가는 이번 사건 이후로 확실한 결단을 내렸다.
소교주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꾼 것이다.
지금 소교주에게 반발했다가는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소교주의 주변에는 고수가 너무 많지.’공손천기 때부터 쌓여 왔던 엄청난 힘의 대다수가 그쪽에 있었다.
만약에 소교주가 마음을 먹는다면 사대 세가라 하더라도 뿌리째 뽑혀나갈 수 있었다.
“돌입할 준비를 해.”“알겠습니다.”“나도 같이 간다.”“존명.”천자후는 느긋하게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환한 대낮보다는 밤에 일을 치르기가 편하니까.
그렇게 그들은 조용히 숨죽인 채 이화궁의 담벼락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선우초린은 요새 계속 기분이 언짢았다.
공손아리가 자리를 비우고 도망친 이후로 내내 이랬다.
그녀가 없는 이화궁 따위는 조금도 의미가 없었고, 선우초린은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대체 왜 막는 거야?’소교주 초류향.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이 자신을 막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였다.
공손아리는 특별했다.
그런 그녀가 강호에 나가서 어떤 위험에 빠져 있는지 모르는데 그녀를 찾지 말라니?
이건 너무 부당하지 않은가?
다행히도 그녀의 행방은 곧장 알 수 있었다.
똑똑하게도 린이 흔적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때문에 조금 안심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니 걱정도 그만큼 늘어만 갔다.
‘아무래도 직접 나가 봐야겠다.’소교주가 막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편법이야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선우초린이 그런 생각들을 하며 여러 가지 계획들을 짜고 있을 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냐?”선우초린이 언짢은 기색으로 묻자 곁에서 그녀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중년 여인이 후다닥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온 중년 여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쪽 경계선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문제?”“예.”“무슨 문제? 설마 침입자라도 생겼나?”선우초린이 반장난 식으로 묻자 중년 여인은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게 선우초린의 심기를 건드렸다.
쫘악-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채찍을 푼 선우초린이 살기가 일렁거리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똑바로 말해. 침입자야?”“네, 아무래도 침입자가 생긴 것 같습니다.”중년 여인이 진땀을 흘리며 인정하자 선우초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웃었다.
“잘되었다. 안 그래도 짜증이 쌓였는데…….”이화궁에 침입자가 발생하는 것은 드물기는 하지만 종종 있었던 일이다.
실수든, 고의든 꼭 이화궁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는 놈들이 있었다.
그 뒤처리는 온전히 이화궁의 몫이었다.
놈을 잡아서 죽이든지 살리든지, 오로지 이화궁이 재량껏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피 맛을 보겠구만.’선우초린은 이번 일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다수 이화궁의 담을 넘는 녀석들은 여색에 미쳐서 욕정을 억누르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런 놈들은 애초에 그다지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기분도 더러웠는데 마침 잘됐다.’그렇게 선우초린이 흥분한 얼굴을 한 채 서쪽 경계선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서쪽 경계선에 도착한 그녀가 본 것은 처참하게 박살 난 이화궁의 여자들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두 명이 죽었다.
그리고 건물 한 채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그 흔적들로 미루어 봤을 때.
이번에 들어온 침입자들은 보통내기들이 아니었다.
선우초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무슨 일이냐? 놈들은 몇 명이지?”선우초린의 질문에 팔을 다쳐서 부상을 당한 여자 하나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놈들은 복면을 하고 있었고…… 숫자는 모두 다섯 명이었습니다, 궁주님.”“고작 다섯? 다섯 놈에게 이 지경이 됐다고?”담벼락 마다마다 일정한 경비 구역이 있었고, 그 경비 구역은 스무 명의 인원이 한 조가 되어 그곳을 지켰다.
그 말은 다섯 명이서 스무 명을 상대했다는 말이 아닌가?
“다섯 모두 절정 고수였습니다.”“절정 고수…….”절정 고수는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정도 되는 고수들은 단순히 욕정에 미쳐서 목숨을 걸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그럼 이건 계획적이라는 말인데…….’선우초린은 이번 일이 생각보다 제법 흥미롭게 돌아간다고 여겼다.
대체 무얼 얻으려고 목숨을 걸고 이화궁의 담을 넘었을까?
“추적대를 꾸려. 지금 당장. 내가 선두에 선다.”“존명.”이건 상당히 신 나는 일이었다.
추적을 빌미로 정정당당하게 천마신교를 휘젓고 다닐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니까.
수하들에게 명령하며 선우초린이 막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조금 전에 보고를 했던 팔을 다친 부상자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궁주님.”“왜? 보고할 게 더 남았나?”“예. 아무래도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선우초린이 말해 보라는 눈짓을 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복면을 하고 놈들이 담을 넘어 들어올 때는 분명히 다섯 명이었는데, 나갈 때는 여섯이었습니다.”“뭐?”그럼 납치를 했다는 소린가?
감히 이화궁의 여자를?
“이 개새끼들이…….”선우초린의 눈가에 분노의 기색이 떠오를 때.
부상자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잡혀간 인원은 저희 측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노인이었습니다.”“노인이었다?”“예. 복면을 하지 않고 끌려가던 사람은 분명히 남자였습니다.”“……?”선우초린은 순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고?”“예.”“……잘못 본 것이 아니냐?”“아닙니다. 저희 측 인원들도 다 점검해 보았지만 빈 인원은 없었습니다.”선우초린은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그녀는 이번 일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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