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08)
제208화 선우초린과의 거래(2015.01.05.)
“단지 침술만으로 이 괴물을 재워 놓다니 과연 약제당주는 대단하네.”갈문적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마의 선우조덕의 의술이 하늘에 닿았다더니 과연 그러했던 것이다.
막 화령의 어깨에 손대려는 그 순간.
갈문적은 누군가가 자신의 멱살을 확 움켜쥐는 것을 느꼈다.
“컥!”숨이 턱하고 막히며 두 다리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갈문적이 발버둥을 칠 때.
그의 귓가에 낮고 으스스한 음성이 들려왔다.
“다시 한 번 말해 봐라.”“……네?”“방금 전에 한 말, 다시 한 번 말해 보라는 말이다.”초류향의 질문에 갈문적은 자신이 조금 전에 내뱉은 말에 실수가 있었나 필사적으로 돌이켜 보았다.
다행히 어느 부분에서 실수했는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괴, 괴물이라 부른 것은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소교주님.”초류향의 눈가에 시퍼런 귀화가 일렁거렸다.
“화령이다. 이 사람의 이름은.”“……예, 옙!”“다시 한 번 괴물이라 부른다면 목을 비틀어 주겠다.”뿌드득-!
“컥!”초류향의 눈동자가 마치 도깨비의 그것처럼 번뜩이자 갈문적은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소교주 초류향.
이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갈문적이 눈동자로 살려 달라고 얼마나 말했을까.
마침내 초류향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턱-!
“컥, 커헉!”바닥에 발이 닿자 곧장 주저앉은 갈문적은 잠시 동안 괴로운 얼굴로 숨을 골랐다.
그때.
그의 귓가에 초류향의 낮고 냉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를 반드시 본래대로 치료해 놓아라. 그게 너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갈문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뜻이 전달되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제 목숨은 화령에게 달렸다는 말입니다.”“정확하게 들었다.”지금 소교주의 말뜻을 못 알아듣는다면 그건 저능아이거나 머저리뿐일 것이다.
‘죽는다.’소교주는 그를 정말로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어떻게든 죽이려고 틈을 노리고 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그런 느낌.
상위의 포식자가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래에 있는 초식동물의 멱줄을 찍어 누르고 있는 듯한 흉흉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곁에서 은신하고 있던 운휘와 선우조덕도 초류향의 거친 태도에 깜짝 놀랐다.
‘변하셨다.’항상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왔던 초류향이었다.
그것은 설령 적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최소한의 선은 지켰던 것이다.
그것이 초류향이었다.
‘한데…….’방금 그것이 무너졌다.
초류향은 약탈자처럼 무례했고, 그의 그런 야성적인 행동은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자연스러웠다.
진정으로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운휘와 선우조덕은 오히려 초류향을 걱정하게 되었다.
[……괜찮으십니까, 주군?]운휘가 초류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평소에 이 정도로 화를 표현하지 않던 사람이 이렇게 과격한 행동을 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화령에 대한 염려나 미안함이 이 정도나 되었던가?’안타까웠다.
초류향은 그동안 속으로 끊임없이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 때문에 화령이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갈문적에게 이런 사나운 모습을 보인 것은 그가 초류향이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진정하자.’이것은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은가?
초류향은 속으로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운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 후 갈문적에게 고개를 돌리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 그때까지 정확하게 화령의 상태를 진단해서 알려 주도록.”“아, 알겠습니다. 소교주님.”갈문적이 겁에 질린 얼굴로 대답하자 초류향은 곧장 바깥으로 나갔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갈문적을 죽이게 될지도 몰랐던 것이다.
바깥에 나와 바람을 쐬자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가 천천히 식어 가기 시작했다.
선우조덕이 서둘러 따라오는 것을 보며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선우 호법님께서는 화령을 곁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잠시 볼일을 마치고 오겠습니다.”“알겠습니다.”선우조덕은 잠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가 관두었다.
사실 선우조덕은 조금 전 초류향이 흥분했을 때, 처음에는 그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격한 변화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그동안 초류향은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며 지내 왔다.
화가 나도 그것을 참고 머리로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고, 이성적인 차가운 마음으로 모든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얼핏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화는 만병의 근원이지.’가끔은 이렇게 겉으로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소교주 본인을 위해서도 좋았다.
초류향은 선우조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우 호법님.”“알겠습니다, 소교주님.”초류향은 선우조덕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렇게 초류향은 약제당을 벗어났다.
화령의 치료를 부탁해 놓았으니 이제 다른 일을 마무리할 순서였다.
‘선우초린을 만나야 한다.’천자후의 부탁을 받았으니 이 부분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선우초린 성격상 시간이 길어지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초류향은 급한 마음에 빠르게 이동하는 도중에 심연술을 발동했다.
본래 심연술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기에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면서 사용하는 것은 초류향으로서도 처음 해 보는 새로운 시도였다.
다행히 심연술은 정상적으로 발동이 되었다.
‘된다.’초류향은 슬쩍 웃었다.
그의 머리 위로 붉은색의 거대한 눈이 떠올랐고, 그것은 곧장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선우초린의 행적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 있지?’심연술로 주변을 파악할 수 있는 범위가 확실히 가만히 있을 때보다는 좁았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초류향은 저 먼 곳에서 누군가를 두들겨 패고 있는 선우초린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류향은 심연술을 해제하고 달렸다.
방향이 정해졌으니 속도를 더더욱 높였던 것이다.
운휘 역시 그림자 속에 숨어서 초류향에게 따라붙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초류향은 천마신교에 와서 처음 와 보는 황량한 산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궁지에 몰려 있는 피투성이의 사내를 발견했다.
탁-
선우초린은 뒤에서 들린 발자국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미 그녀의 눈빛은 광기에 번들거리고 있었고, 채찍 끝에는 사람의 피와 살점이 묻어 있었다.
기척도 없이 다가온 초류향을 보며 선우초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소교주님?”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
그녀의 얼굴에도 역시 핏방울이 튀어서 묻어 있었다.
선우초린은 잠시 초류향을 바라보다가 손에 들린 채찍을 허공에 털어 잡스러운 것들을 떨쳐 낸 후 허리에 휘감았다.
“보시다시피 본 궁에 죄를 범한 놈들을 처벌 중이었습니다. 소교주님.”초류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화궁에서 나온 열 명의 고수들.
거기에 선우초린까지 해서 모두 열한 명의 여인들은 피투성이의 노인을 포위하고 있었고, 노인은 저항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묵묵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고문을 해도 소속된 가문을 불지 않아서 이제 막 죽이려던 참이었습니다.”이 영감은 분명히 사대 세가 중 어딘가에 소속된 것이 분명했다.
각 가문에서 은밀하게 기른 사냥개들.
그놈들 중의 하나임이 확실했던 것이다.
‘내가 그런 놈들을 부려 봤으니 확실하다.’이런 놈들은 이런 놈들만이 가지는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선우초린은 그런 자들을 다뤄 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놈이 과연 어느 가문의 녀석일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사대 가문은 끊임없이 서로 반목해 왔다.
물론 필요에 의해 서로 협력한 적도 많지만, 서로가 서로를 은밀하게 견제해 온 시간이 더 길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너무 앞서가는 가문이 있으면 곤란했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이화궁을 습격한 가문이 걸리게 된다면 단단히 각오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녀가 막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초류향은 바닥에 무릎 꿇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이화궁주님.”“예. 소교주님.”“잠시 저와 따로 이야기를 하실 수 있겠습니까?”단둘이?
무슨 의도일까?
선우초린은 궁금했지만 그것을 꾸욱 눌러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분명 자신에게 급한 용무가 있어서일 터.
선우초린은 여러 가지 짐작 가는 일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딱히 어느 것 때문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건 둘은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찾아 깊은 산중을 헤매기 시작했다.
“여기가 좋겠군요.”초류향이 입을 열자 선우초린도 대답했다.
“예. 아무도 없군요.”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그들을 엿들을 귀도 없을 것이다.
뭐 초류향의 호위 무사인 운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존재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자의 입에서 비밀이 외부로 새어나갈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선우초린은 잠시 흥미 어린 눈빛으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의 의도가 슬슬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초류향은 그런 선우초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이화궁주님께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저에게…… 부탁이요?”“예.”선우초린은 무슨 부탁이냐고 곧장 묻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하는 부탁이라니?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잠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설마…….’이화궁을 침범했던 인물들의 배후에 소교주가 있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소교주가 지금 이곳까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딱 들어맞는다.
거기까지 생각했던 선우초린은 곧 고개를 저었다.
소교주가 만약 이 모든 일의 배후라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일을 처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 단순하지.’선우초린이 알고 있는 소교주 초류향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단순무식하게 일을 처리할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무렵.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이쯤에서 덮었으면 합니다.”“……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이화궁이 습격당한 일을 말하는 겁니다.”선우초린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놀랍게도 그녀의 짐작이 맞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 일의 배후에 소교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흥분하지 마.’선우초린은 지금 상황에서 흥분하면 불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몸 안에서 들썩거리는 광기를 억지로 내려누르며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은 소교주님께서도 관여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전적으로 저희 이화궁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지요.”“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래를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거래…… 말씀이십니까?”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저 역시 이화궁주님의 부탁을 하나 들어 드리지요. 어떻습니까?”선우초린은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이런 것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사실 선우초린의 입장에서는 이건 대단히 남는 장사였다.
천리향을 쫓아 놈들을 추적한 것까지는 좋았다.
금방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한데 막상 뒤를 잡고 보니 한 놈뿐이었다.
분명히 도망친 놈은 총 여섯 놈이라고 들었는데 최종적으로 찾아낸 놈은 저 영감 하나가 다였다.
이놈들이 중간에 눈치를 챘는지 다들 뿔뿔이 흩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말해 줄 수 없지.’선우초린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그린 채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이건 제법 해 볼 만한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