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09)
제209화 솔직한 마음(2015.01.08.)
선우초린은 숙소에 들어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녀가 갑자기 짐을 싸는 이유는 간단했다.
공손아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나쁘지 않아. 아직 늦지 않았어.’초류향이 어째서 이번 사건에 끼어들게 된 것인지, 자세한 경위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선우초린은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까.
그녀는 행낭에 짐을 다 챙긴 다음 허리춤에 매여 있는 채찍을 한 번 만지작거렸다.
‘지금 갈게요, 소군주님.’선우초린은 공손아리가 천마신교를 떠나려고 마음먹은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간에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짐을 다 싸고 방을 나가려고 할 때.
그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뭐예요?”“어딜 그리 급하게 가냐?”“아빠가 무슨 상관이에요?”선우초린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그녀의 아버지이자 선우세가의 가주.
선우강진의 옆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선우강진이 재차 그녀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조만간 소교주님의 즉위식이 있다. 알고 있지?”“예. 그게 왜요?”조금이라도 빨리 공손아리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한데 선우강진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꺼내며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너도 준비해야 한다.”준비?
대체 무엇을?
선우초린이 의아한 얼굴을 할 때.
선우강진이 흐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몰랐냐? 이번에 소교주님의 교주 즉위식 이후에 곧장 마후 간택식이 있을 예정이다.”“……마후 간택식이요?”선우초린이 순간 어이없는 얼굴을 해 보였다.
마후 간택식이 무엇인가?
교주의 배필이자 천마신교의 안주인을 고르는 중요한 행사가 아닌가?
“그 행사, 공손천기 교주님이 없애지 않았어요?”“그랬지. 그런데 이번에 다시 부활했다.”“……소교주님이 그걸 다시 만든 거예요?”“응. 우리가 간청했거든.”선우초린의 눈가에 짙은 분노가 떠올랐다.
“……이 양심도 없는 놈!”공손아리가 초류향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선우초린이다.
초류향 역시 공손아리에게 마음이 있지 않았던가?
그녀가 잘못 판단했던 걸까?
‘아니, 잠깐만. 이건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외부에 나가 있는 공손아리는 분명 이 소식을 아직 전해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 말을 전해 준다면 공손아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잠시 여러 가지를 생각하던 선우초린은 히죽 웃었다.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올 거라 여긴 것이다.
그녀의 음흉한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한 선우강진이 입을 열었다.
“교주가 배필을 직접 고른다면 아무래도 우리가 가장 확률이 높지 않겠느냐? 으하하핫!”“……설마 지금 저랑 소교주님을 말하는 거예요?”“그렇지. 우리 딸이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니까.”선우초린은 비웃었다.
“꿈 깨요, 아빠. 난 그런 놈한테 쌀 한 톨만큼도 관심 없으니까.”선우강진은 이 반응을 사전에 예상했기에 목소리를 낮게 깔고 근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문을 위해서다. 때론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해야 할 경우가 있는 법이지.”선우초린의 입가에 그려져 있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가문 같은 건 더 관심 없어요. 그리고 나 바쁘니까 그만 좀 비켜 줄래요?”선우초린은 말을 끝내자마자 선우강진을 옆으로 밀치며 서둘러 문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녀를 당황한 얼굴로 지켜보던 선우강진이 입을 열었다.
“딸! 너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래? 이러면 이 아비도 무력을 쓸 수밖에 없어.”선우초린은 멈칫했다.
드디어 자신의 말이 먹혔다고 생각하며 선우강진이 기쁜 얼굴을 할 때.
선우초린은 등에 메고 있던 행낭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음침하게 웃었다.
“원하는 게 무력이라면 사양하지 않죠, 저야.”그녀가 스스럼없이 허리춤에 둘둘 감고 있는 채찍에 손을 가져다 대자 선우강진이 크게 분노한 얼굴로 전신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감히 아비를 칠 생각이냐! 네가 결국 패륜까지 저지를 셈인 게냐!”선우초린은 아버지의 분노에 잠시 움찔했다.
그리고 채찍에서 손을 내려놓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그 막 나가는 선우초린도 이건 좀 지나치다 여긴 것이다.
그녀는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던 행낭을 등에 걸쳤다.
“아빠, 저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마요. 저 남자한테 관심 없는 거 아빠가 더 잘 알잖아요.”선우강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것은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는 문제 아닌가?
“상대는 교주다. 우리 선우가가 단번에 제일 가문이 될 수 있는 기회야, 이건. 딸,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 응?”간절한 부탁.
선우초린은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미안해요, 아빠.”선우초린은 행낭을 등에 걸친 채 전속력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잠시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선우강진의 얼굴에 차츰 짙은 분노가 피어올랐다.
“내 이번 것은 절대로 그냥 못 넘어간다! 아빠가 반드시 너를 교주의 배필로 만들 테다!”선우강진은 혼자서 씩씩거리다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주의 즉위식이 시작되기 전에 일을 마무리해야 했으니까.
* * *
화령의 상태가 궁금해진 초류향은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상태가 너무도 궁금했던 것이다.
한데 화령을 찾아가는 도중에 전박을 만나 버렸다.
때마침 전박은 초류향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던 중이었던 터라 그의 보고를 길 위에서 듣게 되었다.
“즉위식 준비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사흘 정도는 더 빠르게 완료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다행이군요.”초류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마신교의 팔대 호법들과 사대 가문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즉위식 준비를 하고 있으니 시간 단축이야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한데 즉위식이 끝난 후에 이어질 간택식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초류향은 잠시 멈칫했다가 곤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전박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도 사실 그 부분이 걱정입니다. 좋은 수가 없겠습니까?”혼자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무작정 간택식을 거절하자니 마땅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전박은 잠시 동안 초류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초류향의 얼굴은 정말로 곤란해 보였고, 전박은 그가 이렇게까지 곤란해하는 이유를 얼핏 짐작했기에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앞에 나서서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그럼 그들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겁니다.”“몇 번이나 곤란하다고 정중하게 말했는데 그들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막무가내더군요.”전박은 미소 지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생사가 걸린 일이니까.
어떻게든 자기 가문의 여식과 초류향을 엮어 보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하지만…….’아직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단지 초류향으로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게 솔직한 대답이 아닌 것을 그들도 알고 있으니 그런 겁니다.”“곤란하다는 것이 어째서 솔직하지 않은 대답입니까?”전박은 초류향의 진지한 대답에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 곤란하신 겁니까?”“그야……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그랬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조기천 스승님의 복수도 해야 하고, 그 복수를 위해서는 정도맹을 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강호 전체를 상대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런 큰 싸움이 있는데 다른 것을 돌아볼 여력따윈 없었다.
전박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설마 앞으로의 대업에 여자가 방해될까 봐 그러신 겁니까?”“예. 그렇습니다.”이 이유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여자에게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앞으로 위험하겠는가?
전박 역시 누구보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굳이 물어보는 것인지 초류향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전박이 약간 씁쓸한 얼굴로 초류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공손아리에게도 그리 말하신 겁니까?”“……!”초류향이 너무도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전박의 입에서 공손아리의 이름이 튀어나오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초류향이 석상처럼 굳어서 눈도 깜빡이지 못할 때.
전박이 소매 속의 주판을 만지작거리며 허허롭게 말했다.
“그 아이, 겉보기보다 더 불쌍한 아이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봐 와서 잘 알고 있지요. 지금껏 어미의 사랑도 받지 못했고, 친구조차도 없이 지내 온 아이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유일하게 그 아이를 지켜 주던 버팀목까지 사라진 상태지요.”“…….”오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크게 오해하고, 멋대로 넘겨짚고 있는 것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초류향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멍청한 얼굴만 해 보일 뿐.
그런 모습을 보며 전박이 입을 열었다.
“진심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소교주님. 이건 저도 알고, 아마 사대 세가의 늙은 너구리들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다들 이렇게 일을 더 서두르는 거겠지요.”눈치채고 있다고?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거기까지 생각하던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속에서 끓어오르는 여러 가지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전 호법님께서는 지금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방금 전에도 이 늙은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소교주님?”“무엇을…….”의아한 표정으로 전박에게 되물으려던 초류향은 입을 다물었다.
전박이 이야기했던 게 무엇인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앞에 나서서 솔직하게 말하라고?’이것을 어떻게 말하라는 말인가?
초류향이 복잡한 얼굴을 해 보일 때.
전박이 스쳐 가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살다 보니 때로는 자기 감정을 본인이 잘 모를 때도 있더군요. 그럼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초류향은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전박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가 무엇을 물어볼지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전박이 그런 초류향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께서는 공손아리, 그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저는…….”초류향은 잠시 머뭇거렸다.
여기서 무엇을 말해야 할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지?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말이라 그런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박은 그런 초류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솔직해진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소교주님. 그리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때 솔직해지셔야 하지요.”“…….”초류향은 전박의 말에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공손아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
그동안 공손아리는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녀의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제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와 함께했던 짧지만은 않은 여행 등등.
그 모든 기억 속에서 공손아리는 참으로 특별한 존재였다.
‘특별하다?’초류향은 잠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특별하다고 생각했을까?
한 가지 의문이 들자마자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해답들이 떠올랐다.
공손아리가 웃는 얼굴도, 그녀가 막수와 함께 장난을 치는 모습도 특별했다.
초류향에게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다 특별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스치는 듯한 시선조차 신경이 쓰였고,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올 때는 긴장해서 온몸의 근육이 뻣뻣해질 정도였다.
그런 감정은 태어나 지금까지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나는…….’초류향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전박을 바라보았다.
전박은 소교주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은 채 인내심을 가지고 그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전박이 차분한 눈길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초류향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는 얼굴.
그런 얼굴로 초류향은 평소답지 않게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나는…… 그녀를 좋아합니다.”
초류향은 스스로가 말을 해 놓고도 멍한 얼굴을 해 보였고, 그의 말을 들은 전박은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솔직해지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소교주님.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더더욱 그렇지요.”초류향은 가만히 전박의 말을 들고만 있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았기 때문이다.
전박을 바라보는 초류향의 얼굴에 차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작가의 말
수라왕이 미리보기 300화로 완결이 되었습니다(우오오!) 본편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것은 곧 올라갈 외전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될 거예요.^^; 외전은 총 4화입니다. 음, 총 304화 완결이네요? 기나긴 여정이었고 끝까지 보아주신 독자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종이책 작업을 하며 다시금 전체적으로 교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만든이 한 마디
자 300화 완결이다. 지금 209화지?
어떻게 전개 될 건지 천천히 지켜봐야겠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