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1)
제21화 정마대전의 불씨(2013.03.25.)
천마신교를 처단하기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정도맹의 인원들은 현재 5천 명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계속 추가적으로 인원들이 보충되고 있었기에 격전의 날이 되면 8천 명은 족히 될 거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 많은 인원 덕분에 정도맹의 감숙분타는 지금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분타 내에 머물 수 있는 인원은 한정적이었고, 현실적으로 그들 전부를 수용할 수 없었다.
때문에 감숙분타는 근방의 객잔을 통째로 빌려서 밀려드는 인원들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힘들게 되었다. 인원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파의 협의지사라는 인간들이 몽땅 몰려들고 있으니 이제는 아예 천막을 쳐놓고 인원을 받는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일 년간 봉문을 선언한 제갈세가를 제외하고 정도맹에 소속된 모든 문파에서 정예들을 보내왔습니다. 현재까지 5천 명의 고수가 맹주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고, 사흘 후 그날까지 추가적으로 2천 명 이상은 확보될 듯합니다.”정도맹 총군사.
신기묘수(神技妙手) 상관중달.
이제 육십 줄에 접어든 노학사인 그가 공손한 태도로 누군가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현 강호에서 그가 이렇게 예의를 갖춰야 할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그리고 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눈앞에 있는 사람은 아주 특별했다. 그가 바로 현 정도맹의 맹주이자 삼황의 하나인 태극검황 백무량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번거롭게 했어. 미안한 일을 했네.”“사마를 척결하는 일입니다. 다들 맹주님의 결정을 존중하고 있을 겁니다.”“그러려나…….”백무량.
신선처럼 허허로운 분위기의 그가 갑자기 입술을 비죽거리며 웃었다.
“헌데 과연 그들이 내 명령 때문에 움직인 걸까? 그러기엔 너무 정예들만 데려왔구만.”상관중달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다른 노림수가 있겠지요.”“자네가 꾸민 일인데 어련하시겠는가.”“전 그들에게 숨겨진 진실을 조금 알려주었을 뿐입니다.”숨겨진 진실. 그것은 바로 마교가 과거 천하제일인이었던 도마 악중패의 무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극비 사항을 일부러 조금 흘렸다. 그러자 반응이 아주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정도맹 소속 문파들이 최정예 무인들만 고르고 골라서 보내왔던 것이다. 분명 마교의 척결 보다는 비급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정도맹에서는 그것을 모르는 척 눈감아 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천마신교에서는 누가 나왔는지 아직 밝혀진 게 없는가?”“예. 그쪽이 워낙에 첩자가 잠입하기 어려운 조직체계이다 보니 내부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쯧, 그 부분이 늘 문제란 말이야.”천마신교는 사교집단의 특성상 외부의 인력이 잠입하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어찌어찌 잠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맴돌 뿐, 내부로 들어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천마신교만이 지닌 폐쇄성은 이런 식의 정보차단에도 유용했던 것이다.
“지금쯤이면 흑월회도 눈치 챘겠지?”“예. 그들도 아마 눈치 챘을 겁니다.”“그쪽에선 누가 나섰는가?”“추혈군이 온다더군요.”“호오? 상동하, 그 친구가 직접 말인가?”“예. 맹주님.”“이거 일이 재미있어지겠구먼.”태극검황 백무량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경쾌하게 탁탁 두들기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나?”상관중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맹주님께서는 이런 일이 언제 계획대로 되는 걸 보셨습니까?”“그렇겠지? 그럼 이번에는 또 어떤 문제가 터지려나. 자네가 예측 못 할 변수가 뭐가 있을지 궁금하구만.”“다른 변수들은 둘째 치고 현재 시점에서 예측 가능한 최악의 상황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최악의 상황이라…….”백무량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그의 존재를 말하는 건가?”“예.”“나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이거겠지?”“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총군사의 대답에 백무량은 섭섭한 얼굴을 해보였다.
“같은 삼황 중 하나인데 내가 어째서 그보다 약할 것이라 생각하는가?”그들이 말하고 있는 인물.
그것은 바로 암흑마황 공손천기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맹주님이 질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를…….”“그런데?”“다만 둘이 만나서 승부를 겨루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된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그냥 내가 그를 꺾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그것도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만 최악의 경우는 그리하셔야겠지요.” “복잡하구먼.”상관중달은 흐릿하게 웃었다.
하긴 천생 무인인 백무량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싸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대국을 주관하는 식견은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맹주라는 제일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백무량이 가진 압도적인 무력 때문이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저렇게 강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무력이 그의 명분이고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천마신교의 공손천기는 정말 대단한 자다.’압도적인 무력을 지녔고, 대국을 주관하는 식견 역시 가지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공손천기의 행보 하나하나가 그 모든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가 천하를 어둠속에서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확실히 경계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천하삼분지계.
그것을 생각한 것이 자신 말고 또 있었을 줄이야.
대단한 충격이었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게 본인이 아니라 천마신교였다니…….
이것은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사로써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것이다.
‘이건 확실하게 확인해 봐야 될 문제였다.’이번 일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획한 것이 바로 상관중달이었다. 맹주를 설득해 직접 움직이게 하고 각 문파에 정보를 흘렸다. 그래서 이 어마어마한 판을 벌인 것이다. 단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만약 정말로 천마신교의 공손천기가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면 이번 싸움을 어떻게든 피하려할 것이다.’하지만 이젠 그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걸려 있는 판돈이 너무 커져 버린 탓이다.
최악의 경우. 둘 중의 하나는 회복 불능의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균형은 무너진다. 그건 용납될 수 없는 일.
흑월회는 그걸 대비해서 끌어들였다. 둘 중 하나만 일방적인 타격을 받는다면 분명 균형은 무너진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셋 모두가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는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균형은 유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흑월회라는 존재 자체가 천마신교와 정도맹, 둘 모두를 함부로 움직이게 하기에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보여 봐라. 암흑마황 공손천기. 그대가 진짜 천하의 주인인지 나에게 보여 봐라.’만약 공손천기가 싸움을 피하려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맹 전체를 움직여서 이 싸움을 취소시킬 생각도 가지고 있는 상관중달이었다.
***
“재미있는 정보가 있다고?”신기묘수 상관중달.
그는 맹주를 만나고 나와서 피곤한지 미간 사이를 문지르며 백호대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백호대주.
상관중달의 조카인 상관진걸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예, 흑월회 측에 심어둔 저희 측 요원이 아주 흥미로운 정보를 물어왔습니다.”“흑월회?”“예. 숙부님께서 유심히 살펴보라고 지시했던 냉하영에 관한 보고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이렇게 달려왔습니다.”“냉하영이라…….”피곤해보였던 상관중달의 얼굴이 대번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암중으로 흑월회의 내분을 끊임없이 조장하고 있던 상관중달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 먹혀서 흑월회는 지금 보이지 않는 내분 때문에 이리저리 균열이 나 있는 상태였다.
장로파의 수장인 추혈군과 현재 흑월회주 직을 맡고 있는 냉파천의 대립각. 그것이 지금 한계점까지 도달한 상태다. 냉무기가 없는 지금, 당장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현재의 흑월회였다.
헌데 그 균열을 절묘하게 막고 있는 것이 바로 냉하영이다. 고작 열다섯의 나이. 그 나이대의 어린 계집이면 집에서 자수를 놓거나 어여쁜 장신구들을 모으기 바쁠 텐데 냉하영은 아니었다. 암중에서 드러내지 않고 양측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단순히 어린 계집이라 생각하면 곤란했다.
“어떤 정보냐?”숙부의 변한 표정을 살펴보던 상관진걸은 만족한 웃음을 그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사람?”“예. 냉하영이 직접 특급 지령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흑월회에서 지금 모든 촉각을 세우고 정보를 모으고 있었습니다.”“그래? 누구를 찾고 있었느냐?”“바로 이 녀석입니다.”상관진걸이 내미는 문서를 받은 상관중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 장부터 처음 보는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초류향? 창천표국?”“예. 창천표국의 후계자입니다. 이제 열한 살이 되었지요.”두툼한 분량의 보고서를 받은 상관중달은 곧 그것을 덮으며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고작 꼬맹이 하나를 왜 냉하영이 찾고 있다는 말이냐.”“그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그 보고서에 필요한 내용을 다 적어놓았습니다.”“지금 한가하게 이런 보고서를 읽고 있을 시간은 없지. 네가 직접 말해봐라.” 상관진걸은 숙부의 재촉을 받고 당황한 얼굴을 해보였다. 늘 절차를 밟고 일을 진행하는 숙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재촉하다니? 그건 그만큼 이 사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닌가? 상관진걸의 얼굴이 한껏 신중해졌다.
“냉하영은 초류향이라는 아이가 천마신교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천마신교?”“예.”“왜?”갑자기 왜 천마신교가 나온다는 말인가? 상관중달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카의 이어지는 보고를 받고는 얼굴을 굳혔다.
“그녀는 아무래도 천마신교와 모종의 접촉을 한 것 같습니다.”상관중달의 얼굴색이 급변했다. 이건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닌 것이다.
“천마신교와 흑월회가 접촉을 했다? 확실하더냐?”“여기에 제 목을 걸 수 있습니다.”상관진걸의 확신 어린 보고에 상관중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속 말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숙부의 행동에 상관진걸은 잠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들 중 중요한 것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말했다.
“천마신교의 인물들과 접촉을 했던 냉하영은 곧장 감숙분타로 돌아가 그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력을 다 동원해서 초류향이라는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움직임이 제법 소란스러웠기에 본맹의 첩자도 수월하게 그것과 관련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지요.”“외부에 알려질 것도 감수한 채 정보를 모은다? 꽤나 급한 일인가 보군.”“예.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서두르고 소란을 피운 것에 비해서 정보량은 대단히 적을 겁니다. 저희 측에서 계속 공작을 하고 있거든요.”“그건 네가 내린 지시더냐?”“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제 판단으로 그렇게 지시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인지…….”“아니다. 제법 잘했구나.”상관진걸은 숙부의 칭찬에 밝은 얼굴을 해보였다. 평소 칭찬에 대단히 인색한 숙부였기 때문이다.
“초류향이라…….”뜬금없는 꼬맹이의 등장이었다. 상관중달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곧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냉하영이 지금 감숙분타에 있다고 했느냐?”“예. 흑월회의 감숙분타에 와 있습니다.”“그럼 기련산의 일 때문에 직접 왔다 이건가? 본맹의 영역으로 들어오다니 무모하구나.”“무슨 용무 때문에 온 것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조사해보겠습니다.”“시기상으로 보면 천마신교 때문인 게 맞을게다. 아무래도 추혈군 상동하 장로와 따로 움직인 모양이군.”“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상관중달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변수는 되도록 줄여 놓는 게 좋겠지.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을 상동하 장로 측에 흘려라. 그리고 추가적으로 그녀가 알아보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게 좋겠지.”“알겠습니다.”“대세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건 없애는 게 좋으니까.”“서둘러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그래. 어서 가 보거라.”“예. 숙부님.”상관중달은 이때까지도 이 보고서에 적혀 있는 초류향이라는 아이가 차후에 어떻게 자신과 얽히게 될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
“검황기가 확실히 좋긴 좋은 모양일세. 일 년에 한번 보기 어려운 얼굴들을 이렇게 다 보게 되다니. 허허…….”태극검황의 말에 정도맹에 속한 문파의 주인들이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뭐 다들 바쁘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뒷방 늙은이를 만나러 한 번도 와보지 않는 걸 서운하게 생각하면 옹졸한 늙은이라고 뒤에서 욕먹을 게 아닌가?”“맹주님의 입담은 여전하십니다그려.”늙은 거지.
강호의 모든 거지들의 왕이자 개방의 방주인 태을신개가 대꾸하자 대전 안의 무거운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맹주는 그런 태을신개를 힐긋 본 후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많이 늙었구먼.”“같이 세월을 먹는데 저만 안 늙겠습니까? 맹주님.”“코흘리개 때 본 것이 어제 같은데 정말 많이 늙었어.”“……또 언제적 이야기를 하시려고 분위기를 잡으시는 겁니까?”맹주는 애잔한 눈길로 태을신개를 한번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자네를 보면 구화산에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어떤 거지가 갑자기 떠오르는구먼. 그때는 그래도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는데…….”“아놔…… 왜 갑자기 삼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꺼내시는 겁니까?”태을신개가 얼굴이 벌게지며 항의했지만 맹주는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허어, 이제는 늙었다고 목숨을 구해준 은인도 몰라보고 대드는 것을 보니 세월이 참 무심하네그려.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함부로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옛말이 틀리지 않군그래.”“맹주님 제발……장난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갑시다.”태을신개는 애원하는 얼굴로 맹주에게 빌었다. 이래서 이 자리에 나오기 싫었던 것이다. 여기 있는 일파의 대표자들은 모두 맹주와 과거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대부분 남에게 밝히기 싫은, 어둡거나 부끄러운 과거라는 게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맹주는 잠시 태을신개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곧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거지가 저렇게 원하니 그럼 장난은 이쯤 하겠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그 장난을 왜 자기한테만 치는 걸까? 태을신개가 목구멍 바깥으로 볼멘소리가 튀어나가려는 걸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을 때 맹주가 입을 열었다.
“다들 천마신교 때려잡으러 이 먼 곳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네. 맹주로써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일세.”일파의 대표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검황기를 움직였기에 이곳에 왔지만 다들 속셈은 따로 있었다.
‘악중패의 월인도법.’모두가 겉으로 말하지 않고 있었지만 다들 그것을 노리고 여기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천마신교는 그 와중에 때려잡을, 일종의 구실에 불과했다.
“다들 이렇게 본맹을 위해 고생하는데 내가 그대들에게 딱히 해줄 것은 없고……. 한 가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하도록 하겠네. 이건 군사와도 따로 상의가 되지 않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결정이지. 하지만 자네들 모두 만족할 만한 제안일걸세.”회의에 참석해서 맹주의 뒤에 서 있던 상관중달의 얼굴이 곤혹스러움으로 물들어갔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일까?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난 솔직히 자네들이 본맹의 검황기보다 개인적인 목적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걸 알고 있네. 씁쓸한 이야기지만 이게 현실이겠지. 이해하네.”대전 안에 있던 대표자들의 얼굴에 저마다 묘한 표정들이 떠올랐다. 서로가 은밀하게 월인도법의 행방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건 아무래도 밖으로 공개하기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라 서로가 쉬쉬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래서 맹주의 권한으로 제안을 하나 하지. 솔직하게 말해서 자네들은 월인도법 때문에 이곳에 왔겠지? 그럼 그걸 주겠네. 가져가시게나.”“……!”“가장 먼저 그것을 발견하고 차지하는 문파에게 그 소유권을 인정해주겠다는 말일세. 어떤가? 이 정도면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닌가?”“오오! 맹주님 지금 그 말이 사실이오?”태을신개가 묻자 태극검황 백무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네. 자네는 알잖은가? 내가 얼마나 진솔한 사람인지.”태을신개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수긍했다. 생각해보니 그가 거짓을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하북팽가의 가주 팽무천(彭蕪淺)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핫! 맹주께서 화끈해서 좋구려. 이 팽모는 오늘 맹주님을 다시 보게 되었소이다.”“내가 예전부터 좀 대범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네. 허허허.”상관중달은 뒤에 서서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고 있었던가.’지금의 맹주는 단순히 무공만 잘하는 식견이 짧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정황을 바라보고 있었고, 또 그 정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그는 교활한 모습까지 가지고 있었다. 싸움에 소극적이었던 대전 안의 분위기가 어느샌가부터 천마신교과 죽기 살기로 싸우자는 것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용인술(庸人術)의 대가였군 맹주는…….’맹주는 대전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한 열기를 느끼며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창백한 얼굴의 상관중달이 서 있었다.
[자네가 그 동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가는 이제 상관이 없게 되었네. 사실 그동안 강호가 너무 평화스러웠지 않나? 나는 그런 강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네. 강호는 결국 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 맞겠지.]맹주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던 모양이다.‘나는 헛똑똑이었군.’상관중달은 맹주의 전음을 들으며 깨끗이 포기한 듯 입가에 쓴 웃음을 그렸다. 맹주는 부처님 손 안의 손오공처럼 그가 꾸미고 있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계속 지켜보다가 가장 적절한 시기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것이다. 그것은 상관중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좋은 공부를 했다.’상관중달은 씁쓸한 패배감을 느끼며 맹주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가르침을 내려준 것에 감사하다는 의미다.
그 모습을 보며 맹주는 웃었다. 이제 드디어 강호에 힘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나.’고인 물은 언제고 썩기 마련이다. 한번쯤은 무리해서라도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맹주의 생각이었고, 그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엄청난 피바람이 강호에 몰아치게 될 것이다.
제1차 정마대전은 그렇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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