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11)
제211화 간택식(2015.01.15.)
초류향이 교주로 즉위하던 그 시각.
강호에서는 한동안 치열했던 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정도맹이 남만야수문과 북해빙궁의 병력들을 막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인 결과, 그 싸움이 서서히 결말을 보였던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정도맹도 제법 하는구만.”“이제 어쩌죠?”“어쩌긴? 일단 사부님이 오실 때까지 기회를 엿봐야지.”북해빙궁의 후계자.
적혈명은 북해빙궁의 부상자들을 앞에 두고 작게 투덜거렸다.
그의 사매인 주다혜는 잠시 형산파에서 정도맹의 정예들과 부딪쳤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고 보니 하마터면 목을 두고 올 뻔했네요?”“그렇지. 설마하니 태극검황, 그 괴물 같은 영감이 직접 왔을 줄이야…….”맨 처음 적혈명이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은 사자검군 유설빈을 보았을 때였다.
정도맹에서도 어느 정도 정예를 보낼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사자검군이 움직인 것은 제법 신선했다.
그놈과 더불어 엄청난 숫자의 무당파 고수들까지 함께.
그래, 솔직히 거기까지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마침 따분하던 차에 일이 조금 흥미진진해졌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애초에 적혈명은 사자검군 따위에게 주눅 들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실 쪼개며 사자검군의 목을 따려고 들었다.
하지만…….
사자검군의 뒤쪽에 느긋한 얼굴로 서 있던 노인.
그를 사자검군에게 달려들기 전에 먼저 발견했던 것은 정말 적혈명에게 천운이었다.
“운이 좋았지.”태극검황 백무량.
이미 은퇴하기로 한 전대 최강의 검객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슬쩍슬쩍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북해빙궁의 정예들이 도살당했다.
그와 더불어 길길이 날뛰는 사자검군 때문에 북해빙궁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고, 적혈명도 살아남은 병력을 추슬러 그 자리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뭐, 그래도 내가 살았으니 됐지. 그럼 우리는 지지 않은 거야.”주다혜는 적혈명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분기탱천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기가 살았으면 되었다니, 그게 말이 돼요? 궁에서 데려온 전력의 반을 잃어 놓고 그게 대장으로서 할 소리예요?”“응. 왜? 걔들 목숨 전부 더한 것보다 내 목숨 하나가 더 가치 있어. 그건 사매도 알 텐데?”주다혜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대사형, 가끔 말하는 게 너무 얄미운 거 알아요?”
적혈명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 정도 되는 고수가 이번처럼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을 일은 별로 없거든. 이건 분명 내 성장에 엄청난 밑거름이 되어 줄 거야. 그럼 이 정도 희생을 아깝게 생각하면 안 돼. 차후에 본 궁이 더 높게 도약하기 위해서라도.”“예에.”“한 명의 가치 있는 인간이 수만 명의 목숨을 먹여 살리는 세상이잖아? 나에게는 이 정도의 희생에 맞먹는 가치가 있거든.”주다혜는 적혈명의 말을 듣고 뾰로통한 얼굴을 해 보였다.
대사형의 말대로, 그녀의 사부인 북해빙궁주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대사형의 성장을 항상 우선시했다.
아마 이번처럼 엄청난 양의 병력을 잃어도, 대사형이 무사하고 그가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다면 크게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근데 정말 이게 말이 되는 거야?’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사형도 그렇고 그의 사부도 그렇고, 너무도 당연하게 이렇게 생각하니 할 말이 없을 뿐이었다.
“어쨌든 이번 부딪침으로 검황 백무량의 기세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어.”“그래요? 어느 정도인데요?”“이건 내 예상이지만…… 아무래도 사부님이 이쪽으로 오셔도 힘들 것 같아.”주다혜는 적혈명의 말에 눈을 크게 깜빡거리다가 놀란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 돼요? 지금 대사형은 설마 우리 사부님이 태극검황 따위에게 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응, 그거야. 그리고 태극검황 따위가 아니야. 그 늙은이는 괴물 중의 괴물이라고.”적혈명은 작게 얼굴을 찡그리며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태극검황 백무량.
그가 딱히 검을 뽑아 무언가를 보여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혈명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돌리면 몸이 두 동강 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선에 닿는 모든 사람들을 베어 버리는 검.’태극검황 백무량 주변에 있던 북해빙궁의 고수들.
그들은 모조리 검날에 베인 것처럼 두 조각이 나서 죽어 나갔다.
절정 고수건 일류 고수건.
백무량의 범위 안에 머물던 자들은 모조리 학살당했던 것이다.
‘그런 괴물 같은 늙은이를 박살 낸 사람이 있었다는 거지?’수하들을 희생해서 겨우겨우 그곳을 빠져나오며 적혈명은 혀를 내둘렀다.
저런 괴물을 부숴 버린 절세신마 공손천기가 얼마나 엄청난 괴물이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적혈명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주다혜가 수하들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더니 깜짝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대사형, 남만야수문도 저희랑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인데요?”“왜?”“그쪽도 공야 신승이 백팔나한을 이끌고 화산파에 오는 바람에 더 이상 진출을 하지 못했대요. 섬서성에서 발이 묶인 모양이에요.”“공야 신승이랑 백팔나한이 왔다고?”“예.”“정도맹이 아주 미쳤구만. 지키고 있어야 할 전력들까지 다 끌고 밖으로 나왔네? 그래도 공야 신승이랑 소림사 놈들은 그나마 인간적이기라도 하지…….”태극검황 백무량에 비한다면 저 정도 병력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적혈명이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을 때.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찾아왔다.
중후하고 묵직한 인상의 노인.
북해빙궁의 주인, 빙백대제 담천후가 찾아온 것이다.
“일이 생겼다고 들었다.”“예, 사부.”“태극검황이 나왔다던데 사실이냐?”“예. 제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담천후는 자신이 각별히 아끼는 수제자 적혈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놈을 보니 어떻더냐?”“어렵습니다.”어렵다.
그 말에 담천후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적혈명의 말이 어떠한 의미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이다.
조금 후 감정을 가라앉힌 담천후가 냉정하게 말했다.
“너의 그 판단을 확신할 수 있겠느냐.”“예. 목을 걸 수도 있습니다.”적혈명이 확신에 가득 차 입을 열자 담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구나. 철수하도록 하자.”“예? 이렇게 쉽게요?”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다혜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자 담천후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피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태극검황을 막을 수 없다면 물러나는 게 옳다.”“하, 하지만 중원의 얼지 않은 땅을 얻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요?”“고작해야 이 정도를 아까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얼지 않은 땅은 차후에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 지금은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는 게 우선이다.”“옳은 판단입니다, 사부.”“그럼 명아, 너는 철수 준비를 하거라. 나는 잠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예, 알겠습니다.”담천후가 그들이 머물고 있는 야영지를 벗어나 어디론가 곧장 사라지자 주다혜가 적혈명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대사형은 아깝지도 않아요? 본 궁의 평생 숙원이 눈앞까지 왔는데 이렇게 간단히 포기하게?”적혈명은 잠시 어이없는 얼굴을 해 보였다.
“너는 사부가 태극검황이랑 싸우다가 죽었으면 좋겠냐? 이건 결과가 확실한 거야.”“그건…….”“욕심부리지 마. 어차피 이 정도 땅이야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으니까.”주다혜는 적혈명의 말에 볼을 팅팅 부풀리며 말했다.
“그게 대체 언젠데요.”“내가 본 궁의 주인이 되면 언제든지. 그때는 나를 막을 수 있는 놈은 천하에 없을 테니까.”자신만만하고도 오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주다혜는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알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태극검황의 위세에 눌렸지만 이것조차도 적혈명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적혈명은 복잡한 표정의 주다혜는 신경쓰지 않으며 북해빙궁의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 * *
초류향이 교주가 되고 곧장 벌어진 연회식은 수뇌부 모두가 알다시피 마후의 간택식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때문에 연회식에는 엄청난 숫자의 여인들이 들어와 앉아 있었는데, 초류향은 의자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대 세가의 가주들은 초조해졌다.
초류향이 단 한 번도 주변의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그저 복잡 미묘한 얼굴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듯했다.
아예 연회 자체에 흥미가 없는지 초류향은 연회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가고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초류향을 살피고 있던 사대 세가의 가주들 중 한 명인 용무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주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표정이 즐거워 보이지가 않습니다.”초류향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오는 용무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법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재미있게 지켜보는 중이라고?
그 모습이?
용무화는 당황했지만 재빨리 표정 관리를 하며 재차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는 아이는 찾으셨습니까?”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용무화는 초류향의 말에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본 가를 비롯한 사대 가문에 소속되어 있는 검증된 아이들입니다. 출신도 그렇고, 미모도 저희가 고르고 고른 아이들입니다만…… 만약에 이 아이들로 부족하다면 차후에 저희가 더욱 신중하게 아이들을 골라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이번에도 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용무화 가주님.”“예? 하나…….”분명 배필을 맞이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설마 약속을 어길 생각일까?
용무화가 당황하고 있을 때.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저는 이미 마음으로 정해 둔 여인이 있습니다.”“……!”“그러니 이런 자리는 더 이상 저에게 무의미한 것이 되겠지요.”용무화를 비롯해서 사대 가문의 주인들이 곤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그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소교주 초류향이 누구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들이 이렇게 강하게 밀어붙였던 것은, 지금이라면 그래도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무화는 애써 침착한 얼굴을 한 채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초류향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반드시 물어봐야 할 질문이 남아 있었다.
그랬기에 용무화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음에 담고 계신 분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사대 세가의 사람들은 속으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하나 그들의 바람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공손아리입니다.”“……소군주님을 마음에 담고 계셨습니까…….”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사전에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서 뭐라 드릴 말이 없군요.”초류향의 말에 사대 가문 수뇌부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들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초류향 본인이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데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순순히 인정할 줄은 몰랐기에 지금 몹시 곤혹스러워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아무리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쉽게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선우강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로 소군주님은 이미 본 교를 떠나셨습니다. 거기에 교주님의 허락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까?”초류향은 그의 질문에 선선히 긍정했다.
“맞습니다.”“……저희는 그 일 때문에 소군주님과의 관계는 정리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초류향은 선우강진의 푸념을 들으며 씁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안 그래도 지난 며칠 동안 그녀가 떠난 것 때문에 후회 중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되었지요.”“그 확실해진 한 가지가 무엇인지 저희도 알 수 있겠습니까?”선우강진이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묻자 초류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강호에 나가게 되어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그 기회가 다시 저에게 찾아온다면, 이번에는 결코 그녀를 놓칠 생각이 없습니다.”“……그럼 이미 소군주님을 교주님의 배필로 삼겠다고 결심하신 겁니까.”“예. 그녀가 받아 준다면 그리할 생각입니다.”“끄응…….”초류향은 낮게 신음을 터트리는 사대 세가의 주인들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 앉아 있는 내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초류향은 더더욱 확실하게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제가 그녀를 붙잡아야 할 차례입니다.”초류향에게 이제 망설임은 없었다.
마음이 확고하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초류향을 바라보는 사대 세가의 주인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작가의 말
수라왕에 대한 차후의 윤곽이 그려졌습니다. 일단 후속작인 ‘사자왕’의 경우 수라왕의 ‘0(제로)부’ 버전이 될 거구요. 공손천기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작품 ‘미공개’의 경우 수라왕의 ‘2부’ 버전이 될 예정입니다. 연대기가 될 예정이지요. ^^;; 자세한 이야기는 제 카페와 블로그에 적어 놓았으니 읽어봐 주셨으면 합니다!
만든이 한 마디
와……..2부도 나와? 작가 잘 되었네 ㅋㅋ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