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18)
제218화 뜻밖의 만남(2015.02.09.)
“팽가호, 소문은 들었겠지?”“대체 무슨 소문이신데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걸까, 우리 빈이가?”“수라마군에 관한 소문.”구릿빛 피부에 우락부락한 근육의 청년.
그는 곱상하게 생긴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 녀석이 교주가 되었다는 소문 말하는 거냐?”“응.”“나도 들었어. 재미있는 소문이더구만.”팽가호는 자신을 찾아온 남궁옥빈에게 차를 따라 주며 말을 이었다.
“그 녀석, 너무 멀리 가 버렸네.”약간 김빠진 듯한 음성.
남궁옥빈은 그런 팽가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교주가 되었을 때부터 이미 녀석이 교주가 될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빨라.”팽가호가 따라 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남궁옥빈은 얼굴을 찡그렸다.
팽가호 역시 과거의 초류향을 머릿속으로 잠시 떠올려 보며 작게 투덜거렸다.
“그놈은 뭐가 되도 크게 될 놈이라 생각하긴 했지. 하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좀 아쉽다.”그랬다.
아쉬웠다.
이런 식으로 그 녀석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쳇! 망할 놈, 연락이라도 주지…….”팽가호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남궁옥빈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웃었다.
“지금 연락을 할 수나 있겠어, 그 녀석이?”“왜 못 해? 하려면 방법이야 많지.”남궁옥빈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너도 나도 위험해져. 무소식이 희소식인 거야, 지금은.”“젠장.”팽가호는 그래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그런 팽가호를 지켜보던 남궁옥빈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이랑 너무 격차가 많이 벌어져 버렸어. 조금만 있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남궁옥빈의 중얼거림에 팽가호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나는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 젠장, 내 두 눈으로 그 녀석을 직접 봐야 믿을 수 있겠다.”팽가호의 투덜거림에 남궁옥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기 어려울 것 같아.”남궁옥빈이 동조하자 팽가호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
“그럼 보러 갈까? 우리 눈으로 직접 그 녀석이 교주가 되었는지 확인하게.”“응? 어떻게? 방법이 있나?”초류향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남궁옥빈도 진즉에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팽가호는 이미 그 해답을 찾았다는 말인가?
남궁옥빈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팽가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팽가호는 남궁옥빈의 어깨를 툭툭 털어 주며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입가에 가득 그렸다.
“우리 빈이…… 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발전한 게 없구나.”발전한 게 없다?
팽가호의 말에 남궁옥빈은 자기 몸을 한 번 내려다보며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그, 그래? 변한 게 없나?”“후후, 참으로 가련한지고…… 너는 이 형님이 없으면 이 험한 세상 어찌 살 생각이냐? 나는 걱정이 태산 같다.”“…….”팽가호가 너무도 안타깝다는 듯이 입을 열자 남궁옥빈은 무안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남궁옥빈을 잠시 애잔하게 바라보던 팽가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리석은 우리 빈이, 너는 그냥 이 형님만 믿고 따라와라.”“으음…….”팽가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문밖에서 뒤를 돌아보며 의아한 얼굴을 해 보였다.
“거기서 뭐 해? 안 가?”“어? 어딜?”“어디긴? 그놈 만나러 가는 거지.”지금?
당장 그 녀석을 만나러 가자는 소리인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추진력인가?
남궁옥빈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바로 가자는 거야?”“그럼 언제 가게? 집안의 영감쟁이들한테 일일이 다 보고하고 갈 생각이냐?”“그건 아니지…….”남궁옥빈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을 때.
팽가호가 자신의 두꺼운 팔뚝을 들어 보이며 호쾌하게 말했다.
“남자는 말이야, 이럴 때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결단력이. 망설이지 말고 가자. 그놈 만나러. 우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야.”“…….”무언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걸리는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았다.
평소에는 이성적이고 사리분별이 확실한 남궁옥빈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팽가호만 만나게 되면 녀석의 요상한 분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휩쓸리고 만다.
‘그래도 이번에는…….’초류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남궁옥빈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심어 주었던 소년.
비록 무공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에게는 한 번 진 뼈아픈 기억이 있다.
생애 최초로 패배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아이.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데 내가 지금 무엇을 망설이는 거지?’보고 싶었다.
어떻게 변했는지, 어찌하다가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나도 모르겠다.”남궁옥빈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팽가호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짜식. 진즉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튕기기는.”“튕긴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신중하게 고려한 거야.”“그게 그거지.”무언가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를 듯 말 듯했지만 남궁옥빈은 포기해 버렸다.
‘별거 아니겠지.’남궁옥빈은 고개를 휘휘 저어 망설임을 떨쳤다.
히죽거리는 얼굴로 앞선 팽가호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말들이 세워져 있는 마구간이었다.
그렇게 두 마리의 말들이 마구간에서 꺼내지고 소년에서 청년이 된 그들은 서쪽으로 말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궁옥빈은 차후에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 가물가물하게 떠올랐던 의문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 * *
사천성을 벗어난 초류향 일행은 이제 막 섬서성에 이르렀다.
마차를 타고 겨우 닷새 만에 성도를 지나 섬서성에 도착한 것이다.
정말 엄청난 속도로 쉼 없이 달려왔다.
‘이 정도면…….’운휘가 보았을 때 이 정도 속도로 움직였으면 소군주님 일행과 생각보다 많이 가까워졌을 터였다.
운휘는 얼마 전에 듣게 된 정보를 머릿속에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정보원이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소군주님 일행은 지금 섬서성 가장 끝에 있는 사북성 근방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이곳에서부터는 조금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섬서성은 완전한 정도맹의 영역.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만야수문과 정도맹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남만야수문과 정도맹이 전력을 다해 치열하게 싸웠지 않은가.
‘조심해야겠군.’번거로운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운휘는 빠르게 이동하면서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노진녕 한 사람이 신법을 펼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진녕 혼자서 신법을 펼쳐 이동하고 있는 것은 맞다.
단지 그 곁에서 초류향이 기둔술을 사용해 몸을 숨긴 채 이동하고 있었고, 운휘 역시 그림자 속에 몸을 파묻은 채 움직이고 있을 뿐.
‘기둔술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지금 초류향이 사용하고 있는 기둔술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보통의 평범한 은신술과는 그 격이 달랐다.
나름대로 은신술에 일가견이 있는 운휘였지만 그가 아무리 시도해 보아도 초류향의 기척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라면…….’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노진녕이야 어차피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들은 최대한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길을 통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샤샤샥-
노진녕은 죽어라 내달리며 주변을 힐끔힐끔 살펴보았다.
‘이건 나 혼자 다니는 거 같잖아, 아무래도…….’주변에 초류향과 운휘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물론이고, 감각에도 전혀 걸리지가 않았다.
간혹, 엄청나게 집중했을 때 운휘의 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나마 그것도 금세 사라지긴 하지만…….’이런 여행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도 쓸쓸하고 외로웠던 것이다.
‘보고 싶어, 선우초린.’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속으로 떠올리며 노진녕은 쓸쓸함을 달랬다.
그때 뒤쪽에서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잠시 멈추지요.”“예?”초류향의 음성에 노진녕이 제자리에서 우뚝 멈춰 서자 그의 옆 빈 공간에서 난감한 음성이 들려왔다.
“전방에 누가 있습니다.”“이 산속에요?”“예. 인원은…… 한 명이군요.”초류향은 저 먼 곳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이 근방에는 문파가 없을 텐데?’왜 이런 산속에 사람이 있는 걸까?
그가 의아한 얼굴로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운휘와 노진녕 역시 빠르게 감각을 넓혀서 주변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그들의 영역에는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초류향은 그들보다 훨씬 위의 고수였던 것이다.
운휘와 노진녕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초류향의 경지에 대해서 새삼 감탄하고 있을 때.
노진녕의 좌측에서 초류향이 기둔술을 풀며 불쑥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얼굴에는 곤란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저쪽에 있던 사람이 곧장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눈치챈 건가? 어떻게?
운휘가 의아한 얼굴을 해 보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가 도착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주군?”“아마…… 곧 보일 겁니다.”과연 잠시 후 운휘와 노진녕의 감각에도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멀리서부터 전해지는 상대방의 기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건?”노진녕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동시에 운휘가 짧게 말을 이었다.
“화경의 고수.”쿠콰콰콰콰-!
그랬다.
상대방은 화경의 고수였다.
그것도 스스로의 기척을 전혀 숨기지 않고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며 곧장 이곳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직선거리로 뛰어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저쪽은 이쪽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체 어떻게?’아무리 저자가 화경의 고수라 하더라도 눈치챌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초류향은 그 부분에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닌 것이다.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는 사람을 보며 노진녕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요?”“……제법 강한 놈입니다.”운휘는 작게 중얼거리며 일단 몸을 숨겼다.
어느새 초류향 역시 기둔술을 사용해서 몸을 숨긴 뒤였기 때문이다.
“슬퍼지네.”노진녕은 몸을 숨길 재주가 없으니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상대방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자신만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노진녕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이런 산중에서 화경의 고수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하지만 이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저놈이 적이었으면 좋겠다.’마침 손이 근질근질하지 않았던가?
노진녕이 내심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상대방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노진녕은 헛바람을 들이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뭐, 뭐야? 여자였어?”“어라? 왜 너 혼자야?”막 공터에 도착한 화경의 고수는 놀랍게도 여자였다.
‘여자가 화경의 고수라고? 말도 안 돼!’여자가 화경의 고수라는 것.
이것은 몸을 숨기고 있는 운휘와 초류향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강호에 이런 여고수가 있다는 정보는 아직 초류향에게조차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정체가 뭐지?’초류향이 깊게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던 여자는 곧 신경질적인 얼굴로 산발이 된 긴 흑발을 뒤로 올려 묶으며 물었다.
“야! 너.”“으응? 왜?”“왜 여기 너 혼자 있어? 내가 듣기론 분명히 셋이었는데?”“셋?”노진녕은 이번에는 정말로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순간 대답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