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20)
제220화 노인의 정체(2015.02.16.)
초류향은 왼쪽 발을 반걸음 정도 뒤로 뺐다.
그리고 느슨한 자세로 서서 여인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위협도 하지 않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듯한 묘한 자세.
주먹을 쥐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여인의 입가에 차츰 득의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이겼어.’이 녀석, 뭔가 있는 척하더니 결국 별거 아니었다.
일단 자세에서부터 글러먹은 것이다.
상대방과 나를 잇는 가장 짧은 최단거리.
‘이것만 지켜도 지지는 않지만…….’놈은 방금 그 중심선을 자신에게 넘겨주었다.
이제부터는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박살 내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 교훈을 줘 볼까….’실질적으로는 상대방에게서 이 중심선을 빼앗고, 내 것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가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된다.
한데 이건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가 나온 셈이 아닌가?
여인이 히죽 웃으며 슬그머니 다리에 힘을 주려고 할 때.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나타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할배, 왜?”[거기까지 해라.]“어째서? 내가 다 이긴 건데!”중심선을 가져왔으니 이건 거의 끝난 승부나 마찬가지였다.
붙는 순간 완벽하게 상대방을 박살 낼 수 있을 테니까.
결과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할배도 알고 있을 텐데 왜 갑자기 말릴까?
여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쯧, 여전히 너는 동태 눈깔이구나. 너에겐 상대방과 너의 격차가 보이지 않느냐?]“그게 무슨 말이야?”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영혼의 얼굴이 가볍게 일그러졌다. [이것보다 더 쉽게 설명해 주랴?]“응.”[붙으면 네가 진다는 뜻이다.]“말도 안 돼!”여인이 강하게 부정했지만 할배의 영혼은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초류향을 바라보며 낮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는 지금 이 아이를 죽일 생각이었겠지?]“…….”[너는 지금 이 아이에게 가벼운 훈계만을 내릴 생각이 아니었을 게야. 그렇지?]초류향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고요한 안색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영혼을 바라볼 뿐이다.
초류향이 그렇게 가만히 있자 할배는 여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만하고 가자.]“싫어.”여인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불만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왜?]“그냥 싫어.”할배는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붙으면 진다니까? 저 녀석은 이미 ‘별’을 본 녀석이다. 지금의 너와는 현격한 격차가 있지.]“아니야. 할배가 뭔가 착각한 걸 거야. 내가 이길 수 있어, 저 정도 녀석쯤은.”여인은 강한 호승심을 보이며 초류향을 바라보았다.초류향은 그런 살기등등한 여인의 눈빛을 보며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우습군.”“뭐가?”여인이 발끈한 얼굴로 대꾸하자 초류향이 스스로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애초부터 나는 널 그냥 보내 줄 생각 따윈 없었다.”노진녕을 저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멀쩡하게 그냥 가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방금 전 저 영혼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저 여인은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힘을 조절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으니까.
‘적어도 받은 만큼 돌려준다.’저 여인이 보고 있는 중심선.
그런 것은 초류향에게도 보였다.
하나 지금의 초류향에게는 그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을 뿐이다.
여인의 눈이 중심선을 좇기에 초류향은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다.
그래서 덤벼들기 편하라고, 조금 전에 그것을 일부러 내어 준 것이다.
‘아쉽다.’조금만 더 시간을 주었다면 여인은 노진녕에게 했던 것처럼 주먹을 뻗어 왔을 테고, 그러면 초류향 역시 그 주먹을 똑같이 맞받아쳐 줄 생각이었다.
노진녕이 당했던 것처럼 똑같이 딱 한 방만.
그 한 방이면 충분했을 터.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할 텐데? 자비를 베푸는 것도 더욱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할배의 영혼이 다시금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하자 초류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방해하지 마라.”우우웅-
갑자기 초류향의 머리 위로 붉은색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떠올랐다.
심연술을 발휘한 것이다.
“어?”여인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붉은 눈동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라는 얼굴을 해 보였고, 할배의 영혼은 심연술을 보는 순간 표정을 확 바꾸며 초류향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이것을 어디에서 배웠느냐?]“그걸 그쪽이 알 필요가 있을까?”[내가 설마 아무것도 모르고 너에게 물어보는 것 같으냐?]초류향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아무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 무엇을 알고 있지? 알고 있는 게 무엇이냐?”말을 하며 초류향이 한 걸음 성큼 다가가자 노인은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네 녀석들은 천마신교에서 나온 놈들이 아니더냐?]초류향은 멈칫했다.그리고 묘한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확실히 저 여인은 관심 밖이었지만 이 노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궁금해졌다.
스승님에게 직접 은밀하게 전수받은 심연술이다.
그리고 초류향이 알기로 이것은 외부에 드러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놓칠 수는 없지.’초류향은 심연술을 움직여 노인의 영혼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그러자 타오를 듯한 붉은 눈이 노인의 영혼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완전히 포박해 버렸다.
“본 교를 아는가?”노인은 살짝 괴로운 얼굴을 해 보였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지. 내가 살아 있었을 때도 그곳에는 위험한 놈들이 득실거렸으니까.]“그런가? 당시 본 교에 누가 있었지?”노인은 입을 다물었다.말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하나…….
‘무의미한 짓이다.’초류향에게는 심연술이 있었다.
“말해라.”질문을 하면서 동시에 초류향이 심연술을 강하게 일으키자 노인의 전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쩌어어엉-!
평범한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엄청난 소리가 사방에 퍼져 나갔다.
[크으으…….]살아 있는 인간도 심연술의 막강한 힘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영혼에 직접적으로 제약을 거는 것이니까.
당연히 죽어서 영혼밖에 없는 노인은 더더욱 강한 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버티고 버티던 노인이 나지막이 괴로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지옥마제…… 그가 교주로 있었다.]초류향은 눈을 반짝였다.지옥마제라면 공손천기 스승님의 사부가 아닌가?
그렇다면 불과 백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잠시 침묵을 지킨 채 서 있던 초류향이 노인을 강하게 압박하며 물었다.
“당시 교주를 직접 본 건가?”[그건…….]“이 나쁜 놈! 거기까지 해!”여인이 노인의 앞을 가로막으며 초류향을 쏘아보았다.
그녀의 전신에서는 노진녕을 상대할 때와 똑같은 맑은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초류향은 얼굴을 찌푸렸다.
중간에 방해를 받는 바람에 노인에게 걸었던 심연술의 속박이 풀렸던 것이다.
[비켜라. 이건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노인이 괴로운 얼굴로 입을 열자 여인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다 죽어 가면서 센 척하지 마, 할배. 이놈은 나한테 맡겨.”여인의 말에 노인은 작게 침음을 삼키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녀석은 여태까지 네가 상대해 왔던 그런 평범한 놈이 아니다.]“알아. 이제는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니까.”귀신을 속박하고 제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게다가 무력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분명 할배가 별을 보았다고 했지?’여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별이라는 단어는 어떤 추상적인 것을 말했다.
그녀가 알기에 같은 화경의 고수라도 별을 보았다고 알려진 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삼황이라 불리는 자들이 아마 거기에 속하겠지.’한데 눈앞에 있는 저렇게 젊은 사내가 별을 보았다?
아직 그녀도 보지 못했는데?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중심선을 빼앗겼어.’자신이 할배 앞을 막아서자마자 분명 저 녀석은 자신의 중심선을 도로 되찾아 갔다.
그녀에게 까불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한 것이다.
덕분에 여인도 한껏 신중한 얼굴로 초류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노인이 앓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저 녀석은…… 당대의 교주일 게다.]“……뭐?”긴장하고 있던 여인의 얼굴에 황당함이 떠올랐다.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야? 교주라고? 천마신교의 교주?”[그래. 내 생각이 맞을 게야.]“교주가 왜 수하들도 없이 이렇게 다녀? 게다가 내가 아는 교주는 분명 삼황의 한 명인 암흑마황이라고…… 그 왜 있잖아? 정도맹의 맹주를 한 방에 보내 버렸다는 그 천하제일고수. 근데 그 사람은 분명 전 시대의 사람이었어. 저렇게 젊을 리가 없다고.”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초류향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은 교주가 맞다. 그러니 전대의 교주들을 저렇게 편하게 부를 수 있었겠지. 일반적인 교도들은 죽은 교주들이라고 하더라도 존칭을 사용하거든.]초류향은 노인의 예리한 분석력에 고개를 끄덕였다.저 노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천마신교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점점 더 정체가 궁금해지는군.’초류향이 노인의 정체에 의구심을 품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 그럼 설마 암흑마황이라는 사람이 반로환동을한 건가?”그러면 모든 이야기의 앞뒤가 딱딱 들어맞았다.
여인이 자신의 엄청난 추리력에 스스로도 화들짝 놀라는 얼굴을 해 보이며 초류향의 눈치를 살필 때.
초류향은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하는 그분은 내 스승님이시다.”여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리고 초류향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정말 교주야?”“그래.”선선히 인정한 초류향은 심연술을 풀며 낮고 힘 있는 어투로 말했다.
“내 정체를 알았으니 그쪽도 정체를 밝혀라.”“내 이름은 서문현아(西門泫娥)야.”여인이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말했지만 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궁금한 쪽은 그쪽이 아니다. 이쪽이지.”서문현아.
그녀가 무안한 얼굴을 하든 말든 초류향은 노인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의혹에 가득 찬 시선을 받으며 노인은 고민했다.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말하기가 꺼려졌던 것이다.
아직 여인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었으니까.
‘게다가…….’그 상대가 당대 천마신교의 교주라면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노인이 고민하고 있을 때.
초류향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고민하라고 물어본 질문이 아니다. 전부 다 말해라. 하나도 숨김없이.”[…….]노인이 초류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문현아.
그녀도 궁금한 얼굴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아직 그녀도 노인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자신에게 이것저것 좋은 것들만 가르쳐 주어서 정체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녀도 지금에 와서야 갑자기 궁금해진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말하기 곤란한 거야, 할배?”[……말하기가 쉬운 거였으면 진즉에 너에게 이야기했겠지.]서문현아의 철없는 질문에 노인은 너털 웃어 버렸다.
그리고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초류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정체에 대해 무언가 의심을 하고 있는 건가? 당대의 교주여.]“아주 많은 의심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있지.”외부의 사람이 천마신교에 대해 저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을 리가 없다.심연술도 그러했고, 천마신교 내부의 사정에 대해서도 무언가 굉장히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건 의심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초류향이 그렇게 나름의 가능성들을 재고 있을 때.
노인이 설핏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나의 정체에 대해 전혀 예상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과연 그럴까?”초류향은 본능적으로 상대가 진실을 말할 자세가 되었음을 깨달았다.그래서 담담한 얼굴로 그것을 들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분하게도 상대방의 말처럼 그의 정체는 초류향이 예상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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