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22)
제222화 복종(2015.02.23.)
“대사형, 접니다. 들어가도 됩니까?”“들어와라.”공손천기는 한밤중에 불쑥 풍혈마군을 찾아왔다.
복잡한 얼굴을 한 풍혈마군은 그의 막내 사제이자 이제는 소교주가 된 공손천기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녀석을 귀여워하며 무공은 물론이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다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마음이 번잡하지 않다면 오히려 그것이 거짓말일 것이다.
어린 공손천기는 불과 십구 세에 소교주가 되었고, 벌써 수라환경이라는 극강의 마공을 이어받았다.
예전과 그 위치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다.
“나를 죽이러 왔느냐?”“그게 무슨 소립니까, 대사형?”“본 교 피의 율법을 잊었느냐?”후계자가 정해지면 소교주 외의 다른 자들은 다 죽이거나 쫓아내야만 했다.
쫓아낼 경우에도 보통 곱게 내보내진 않는다.
이미 배운 무공을 되돌려 받을 수는 없으니, 단전을 부수고 팔다리 힘줄을 도려내는 작업을 거친 후에 쫓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폐인이 된다면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이 대부분이다.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어려운 율법 같은 건.”공손천기가 능청스러운 얼굴을 해 보이며 풍혈마군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 불쑥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미안합니다, 대사형.”“무엇이 말이냐?”막상 사과는 했지만 이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공손천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밥그릇을 뺏었지 않습니까?”“그랬지. 하지만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그렇습니까?”“그래. 온전히 네 능력으로 얻은 자리다. 나에게 미안해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강한 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
패자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것이 천마신교가 가지고 있는 진하디진한 순수성이었으니까.
“하긴, 사형 말도 맞군요.”그 대화를 끝으로 공손천기와 풍혈마군은 한동안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도 역시 먼저 입을 연 것은 공손천기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탁자의 무늬를 만지며 입을 열었다.
“대사형은 늘 진지한 것이 문제입니다.”“……내가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긴 하지.”공손천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그의 대사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사형은 절 죽일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셨습니까?”풍혈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제아무리 공손천기가 두려운 재능을 지녔고, 그의 자리를 빼앗아 갔다지만 공손천기는 그의 사제다.
그랬기에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대사형은 지금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네 마음 내키는 대로 하거라.”“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물론이다. 너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니.”풍혈마군이 씁쓸한 얼굴을 해 보일 때.
공손천기가 계속 입을 열었다.
“나는 사실 대사형이 조금 더 악랄한 사람이었으면 했습니다. 제 목숨을 빼앗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했지요. 그런데 그러기엔 대사형은 너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너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느냐?”공손천기는 갑작스러운 풍혈마군의 반문에 멈칫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대사형은 너무도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서 고민인 거예요.”역대 천마신교의 과거를 돌아보면, 교주의 제자들은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이를 갈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빈틈이 보이면 주저 없이 암습을 가했던 것이다.
‘모든 욕망의 정점.’그것이 바로 교주라는 자리다.
하나 이번 지옥마제의 제자들은 달랐다.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기에 각자 자신의 무공을 상대방에게 공유하며 서로 가르쳐 주기를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셋 중에 제일 악독한 제가 소교주가 된 셈입니다.”풍혈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의외로 좋은 놈이다. 그리고 충분한 자격이 있지. 그래서 네가 소교주가 된 것이다.”“뭐 그럴 수도 있겠죠. 아무튼 저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리고 대사형을 찾아왔습니다.”“그게 무엇이냐?”“저는 대사형은 물론 둘째 사형한테도 손 하나 안 댈 생각입니다. 두 분 다 멀쩡하게 지내도록 해 드리겠습니다.”“……!”“그러니 이곳에서 사십시오.”풍혈마군은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공손천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바람 빠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럴 순 없다. 너도 알지 않느냐?”“뒷방에 있는 영감쟁이들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 문제라면 대사형은 아무것도 걱정 마십시오. 그 영감쟁이들은 제가 한 손으로 콱 그냥!”풍혈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공손천기.”“예?”“나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나는 그냥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의 위치를 위태롭게 할 거다.”“왜요?”“너도 알지 않느냐?”풍혈마군은 화경의 고수였다.
그것도 후계자가 될 것이 거의 확실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서 천마신교에 남아 있는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해선 안 되었다.
“네 손으로 나를 죽여라. 그게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이겠지.”“대사형은 제가 그럴 수 있다고 보십니까?”“교주가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이라고 생각해라, 그럼 편할 것이다.”풍혈마군은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공손천기가 입맛을 쩝 하고 다시며 말했다.
“이제 보니 대사형도 제법 사람 웃기는 법을 아십니다. 재미있네요.”“…….”“대사형 말처럼 제 위치가 아직 위태롭긴 하죠. 틀린 말이 아닙니다. 뒷방 영감쟁이들 중에는 아직 대사형한테 미련 가지고 있는 노친네들이 많으니까요.”사실은 대다수가 풍혈마군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그 빛나는 천재성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공손천기가 그것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과 돌출행동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풍혈마군을 더욱 지지하는 것이다.
“나는 방금도 말했다시피 대사형에게 손대지 않을 생각입니다.”“나는…….”풍혈마군이 뭐라 더 말하기 전에 공손천기가 손바닥을 펴서 내밀며 뒷말을 막았다.
고지식한 대사형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을 했던 것이다.
“대사형은 제가 걱정되시는 거지요?”“…….”“그렇다면 좋습니다. 저와 거래를 하죠.”“거래?”“예. 이건 거래입니다.”공손천기는 풍혈마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공손천기와 풍혈마군 사이에 평생에 걸친 약속이자 비밀이 생겼다.
* * *
초류향이 서문현아의 엄청난 잠재력 수치를 보며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운휘가 입을 열어서 초류향에게 물었다.
“혹시 이곳에 있다는 영혼이 스스로를 풍혈마군이라 하였습니까, 주군?”초류향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운휘는 심각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저 여인은 그의 제자라는 말입니까?”“그래. 이 누나가 할배의 유일한 제자다. 꼬맹아.”여인이 가슴을 펴며 당당하게 말하자 운휘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운휘는 자세를 바로 잡은 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정말 풍혈마군의 제자가 맞다면 너는 지금 당장 이곳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미친놈. 내가 왜?”운휘는 재빠르게 노진녕의 응급처치를 끝낸 후 조심스럽게 그를 들어서 저 멀리 데려가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서 서문현아의 앞까지 다가간 후 입을 열었다.
“네가 그에게 무공을 배웠다면 너 역시 천마신교의 교도. 신을 보고도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면 율법에 따라 너를 처벌할 수밖에 없겠지.”“내가 천마신교의 교도라고?”서문현아는 순간 황당하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가 이놈들이랑 한패라고?’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라는 말인가?
하나 이대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오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네 녀석이 나를 처벌하겠다는 거야? 교주가 직접 나서는 게 아니고?”비웃음을 머금으며 그녀가 도발하듯 묻자 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나로도 충분하다. 그다지 어렵지 않지.”서문현아는 운휘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 씨익 웃었다.
“교주는 어렵겠지만 너는 아직 내 상대가 아니야. 이 누나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닌 거, 저기 쓰러져 있는 네 친구를 통해 봤을 텐데?”“멍청한 질문이군. 저 바보 녀석은 내 친구가 아니다. 그리고…….”운휘는 천천히 복면을 벗었다.
그리고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난 한 번 본 무공에는 당하지 않는다.”“개소리하고 있네.”서문현아는 운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주먹을 탈탈 털며 말했다.
“방금 그 말, 목숨 걸고 나에게 증명해 볼래?”운휘는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제가 나서서 그녀를 처벌해도 되겠습니까, 주군?”초류향은 약간 곤란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가 판단했을 때도 확실히 운휘의 무력은 저 여자에게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무슨 방도가 있는 건가?’잠시 고민했지만 사실 결론은 금세 나왔다.
초류향은 운휘의 판단을 믿었던 것이다.
미미하게 초류향이 고개를 끄덕일 때.
풍혈마군 전윤수가 앞으로 불쑥 나서며 그를 막아섰다.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싸움이다.]“어째서 그렇습니까?”[저 아이가 나에게 무공을 배운 것은 맞지만 천마신교의 무공과는 무관하다. 그쪽의 것은 단 하나도 전하지 않았다.]천마신교의 무공을 전한 것이 아니라고?“그게 정말입니까? 본 교의 무공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게.”[교주도 방금 보아서 알지 않는가? 저 아이가 배운 무공은 천마신교의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내가 새롭게 만든 것뿐이지. 게다가…….]풍혈마군은 잠시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곧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건 네 스승이었던 공손천기와 오래전에 약속했던 일이다. 앞으로 평생 동안, 그 누구에게도 천마신교의 무공은 전수하지 않겠다고 했지. 나는 녀석과 그런 약속을 했고, 죽어서도 그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그런 약속?풍혈마군의 말에서 미묘한 점을 잡아낸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스승님과 당신 사이에 그것 말고 다른 약속도 있었습니까?”[…….]초류향의 질문에 풍혈마군은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피한 것이다.
‘뭔가가 있긴 있군.’초류향은 확신했다.
둘 사이에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뭘까?
‘알아봐야 하나?’스승님이 숨기고 싶어 하던 과거인 거 같아 그냥 묻어 두려 했다.
한데 가만히 들어 보니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인 것도 같았다.
그때.
운휘가 품에서 단홍소검을 꺼내들며 말했다.
“혹여 지금 풍혈마군이라는 자가 이 여자에게 교의 무공을 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주군?”영혼의 목소리와 모습이 보이지 않는 운휘였지만, 초류향의 말만으로도 대충 돌아가는 대화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대, 멍청아. 이제 어쩔래? 난 천마신교의 교도 따위가 아닌데?”서문현아가 끼어들며 약 올리자 운휘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눈치가 없구나. 나는 너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다.”“히히, 이 누나는 친절한 사람이니까 대신 대답해 준 거야. 이쁜이.”이쁜이?
운휘는 자신을 부르는 서문현아의 호칭에 불쾌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단홍소검을 가볍게 쥐며 입을 열었다.
“그가 정말 무공을 전했든 전하지 않았든, 그것은 사실 관계없습니다. 그녀가 정말 그의 제자라면,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했다면 교주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그건 그랬다.
초류향이 고개를 끄덕일 때.
서문현아가 언짢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억지 좀 부리지 마. 할배가 난 그 잘난 천마신교의 무공을 배운 게 아니라잖아?”“그가 정말 천마신교에서 배운 단 하나의 몸동작도 너에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나? 너 같으면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나?”“그건…….”확실히 애매했다.
모든 무공은 기초가 없이 생길 수 없다.
전혀 새로운 무공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맨땅에서부터 불쑥 생겨나는 법은 없었던 것이다.
그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었고,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서문현아의 얼굴이 점점 분노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을 자꾸 천마신교의 교도로 몰고 가는 운휘라는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너, 죽여 버릴 거야.”그녀가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운휘가 말했다.
“입으로 떠드는 게 너의 방식이었나?”“안 그래도 지금 혼내 주려고 했어.”분노에 가득 찬 서문현아가 주먹을 움켜쥐자 주변에 엄청난 기운이 들끓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3월. 꽃피는 봄에 사자왕 연재가 시작되겠습니다.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