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26)
제226화 팽가호와 만나다(2015.03.09.)
“어? 누가 있나 본데?”“그러게.”팽가호와 남궁옥빈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조금 더 이동 속도를 높였다.
멀리서 전해져 오는 사람의 기척이 어딘가 이상했던 것이다.
수풀들을 헤치고 그곳으로 다가가자 웬 여자 하나가 지친 얼굴로 나무에 기대어 늘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쳤습니까?”남궁옥빈이 묻자 여인이 힘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현아는 초류향 일행이 사라지자마자 억지로 어긋나 버린 팔다리를 끼워 맞췄다.
그렇게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하긴 했지만 내상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상황을 팽가호와 남궁옥빈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무림인이었군. 싸우는 도중에 내상을 입었나 보지?”팽가호가 말하자 서문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입을 열어 자세히 설명해 줄 힘도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전부였다.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던 남궁옥빈이 살짝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혹시 그쪽을 그렇게 만든 게 마교입니까?”“뭐? 마교?”팽가호는 남궁옥빈의 질문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깜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자 초조한 얼굴로 서문현아를 바라보았다.
“정말 마교가 맞아?”서문현아는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조금 의아해졌다.
이 녀석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격렬한 것이다.
‘마교가 무서워서 이러는 건가?’하나 잘 살펴보면 그것과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오히려 잔뜩 흥분한 듯한 느낌.
서문현아가 의문을 품을 무렵.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팽가호의 귓가에 누군가의 전음이 들렸다.
[오랜만이다. 팽가호.]“……!”팽가호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었다.남궁옥빈은 미처 거기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채 소매에서 내상약을 꺼내 서문현아에게 내밀며 말했다.
“드시겠습니까? 독약 같은 것은 아닙니다. 전 남궁세가의 사람입니다.”남궁옥빈이 소매에 새겨진 벽력 무늬를 보여 주며 말하자 서문현아는 망설이다가 약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서문현아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옆에 서 있지만 남궁옥빈과 팽가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풍혈마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풍혈마군이 진지한 얼굴을 한 채 어딘가를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풍혈마군이 그녀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놈이 다시 돌아왔다.]그놈?서문현아가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풍혈마군이 재차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의 교주. 그 녀석이 돌아왔다.]어째서?서문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나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멍청하게 서 있던 팽가호가 갑자기 그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나 잠깐 저쪽에 좀 다녀올게.”“응? 어디 가게?”남궁옥빈의 질문에 팽가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서문현아에게 시선을 준 뒤 대답했다.
“볼일 좀 보게. 아무리 그래도 숙녀 앞에서 볼 순 없잖아? 부끄럽게 왜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아, 미안. 내가 괜한 것을 물어보았다.”남궁옥빈이 민망한 얼굴로 사과하자 팽가호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히죽 웃으며 재빨리 몸을 날렸다.
“큰 볼일이니까 시간이 걸려도 이해해라.”“……부끄럽다는 놈이 별걸 다 말하네.”팽가호가 그렇게 사라지자마자 남궁옥빈이 붉어진 얼굴로 서문현아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워낙에 격의가 없는 친구라서…….”서문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멀리 사라져 버린 팽가호의 뒤를 눈을 번뜩이며 좇을 뿐이다.
[저 덩치 좋은 녀석이 교주를 따라갔다.]풍혈마군의 말이 그녀의 정신을 어지럽혔다.교주와 저 덩치 좋은 녀석은 대체 무슨 사이일까?
지금 서문현아의 머릿속에는 그 의문만이 가득했다.
* * *
팽가호는 재빠르게 몸을 날려 초류향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그가 기억하던 초류향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팽가호는 확신했다.
‘녀석이다.’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는지는 팽가호 자신도 잘 몰랐다.
하나 지금 이 순간 초류향이 그를 불렀고, 팽가호 역시 개인적으로 녀석을 만나고 싶었기에 그 부름을 사양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작은 옹달샘 앞.
거기에 키가 훌쩍 큰 미남자가 그림처럼 서 있었다.
팽가호가 알고 있던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다.
과거의 그 조그맣고 여리여리하던 작은 아이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를 보자 팽가호는 확신했다.
오히려 속도를 더욱 높여서 달려갔다.
“초류향!”팽가호가 소리쳤다.
그러자 녀석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팽가호는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녀석에게 달려가서 그대로 거칠게 끌어안았다.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격하게 안은 것이다.
꽈아악-!
그렇게 격한 포옹을 하며 팽가호가 말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이놈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너는 모를 거다. 정말 웬수 같은 놈이다, 너는.”초류향은 진심이 가득한 팽가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그리고 두 팔로 녀석을 가볍게 마주 안아서 등을 툭툭 쳐 주며 말했다.
“예전보다 몸이 더 두꺼워졌네, 너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힘이 더 엄청나졌다.”“후후후, 어떠냐?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단하지?”“그래. 대단한 몸뚱이다, 정말.”이 녀석을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너무도 쉽게 이야기가 입에서 흘러 나왔다.
팽가호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품에 안겨 있던 초류향을 풀어 주며 말했다.
“보고 싶었다, 이놈아.”초류향은 팽가호의 말에서 뜨거운 진심을 느꼈기에 희미하게 웃었다.
이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자신이 이미 마교의 교주가 되었음을 분명 알았을 텐데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어디 다친 곳은 없냐?”“응. 멀쩡해.”초류향이 대답하자 팽가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꼬맹이, 안 본 사이에 키가 제법 컸는데?”“조금 있으면 너도 따라잡을걸?”“어? 그건 곤란한데?”둘의 눈높이는 이제 비슷했다.
아직 팽가호가 조금 더 크긴 했지만 초류향 역시 급성장을 했기 때문에 키는 엇비슷한 것이다.
“일단 앉자.”초류향이 옹달샘 옆에 있는 작은 돌무더기를 가리키자 팽가호는 스스럼없이 거기에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초류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문으론 네가 마교의 교주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겠지?”이건 만나자마자 본론이었다.
팽가호가 평소 성격대로 직선적인 질문을 던지자 초류향 역시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답해 주었다.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부정하지 않는 초류향을 보며 팽가호가 잠시 입맛을 다셨다.
“너 처음부터 강호에 흥미가 있었던 거냐? 난 전혀 몰랐는데.”약간 서운한 표정.
초류향은 그런 팽가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는데 정말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진다.”“괜찮아, 나 시간 많아. 다 들어 줄 수 있다.”팽가호의 말에 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너 큰 거 보러 간다고 하고 온 거잖아? 그 시간 동안 해 줄 수 있는 짧은 이야기가 아니야.”“괜찮아. 변비라고 하면 돼.”팽가호가 그 특유의 뻔뻔함으로 당당하게 말하자 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너무 길어. 오늘은 그냥 짧게 말하고,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이야기해 줄게.”“다음에 우리가 또 만날 수는 있는 거냐?”“…….”팽가호의 질문에 초류향은 멈칫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대답하지 않고 팽가호를 바라보았다.
장난기가 가득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팽가호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얼굴에 담겨 있는 뜨거운 무언가가 지금은 농담으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직감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솔직한 놈이다.’과거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은 좋았다.
하나 그 덕분에 힘든 것 역시 사실이었다.
초류향은 바람 빠진 듯한 웃음을 흘리며 잠시 어깨를 주물럭거렸다.
“좀 천천히 가자. 나도 너에게 다 이야기해 주려고 했어.”“정말 그랬던 놈이 왜 연락도 한 번 없었냐? 무려 육 년이다. 육 년 동안 너는 나에게 연락 한 통 없었어.”팽가호의 물음에 초류향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내 마음은 이렇게 번뇌로 가득 차 있는데…….’초류향은 속으로 가볍게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진지해져야 했다.
이제부터는 해 줄 이야기에는 그 어떤 꾸밈이나 거짓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혹시나 네가 나 때문에 피해를 받을까 봐, 그게 두려웠다.”사실 연락하려면 얼마든지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단지 둘의 관계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팽가호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것은 결단코 초류향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옥빈이 녀석과 같은 이야기를 하네.”“남궁옥빈?”“그래, 그 녀석.”약간은 뾰로퉁한 얼굴이 된 팽가호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툴툴거리며 말했다.
“내가 네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어야겠냐? 응?”초류향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어쩌다 보니 일이 너무 커져 버렸어. 나도 설마 내가 천마신교의 교주가 될 줄은 몰랐지.”그래.
정말 몰랐던 일이었다.
어떻게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초류향의 말을 듣고 있던 팽가호가 혀로 입술을 적신 후 물었다.
“그럼 너와 나는 무슨 사이냐? 적이냐, 아군이냐?”이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팽가호는 그 특유의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초류향을 바라보았고, 초류향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너와 나는 적도 아군도 아니야.”“그럼?”“그냥 친구지, 뭐. 별거 있어?”“친구…….”가슴 한편이 무거워졌다.
팽가호는 오히려 초류향이 다른 말을 해 주길 바랐는데, 녀석이 가장 우려하던 말을 내뱉자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답답했다.
“왜? 내 말이 틀렸어?”팽가호는 고개를 저었다.
맞았다.
초류향과 자신은 친구였다.
적과 아군.
이런 단순한 잣대로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아닌 것이다.
팽가호는 잠시 복잡한 얼굴을 하다가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옆구리에 차고 있는 칼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 전에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어.”“뭘?”“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 봐야지? 우리 마교 교주님.”‘우리 마교 교주님’이라는 장난스러운 호칭에 초류향은 씨익 웃어 보였다.
“보면 아마 깜짝 놀랄 텐데…… 감당할 자신이 있나? 정파의 후예여.” 스르릉-
팽가호는 칼을 뽑아 들었다.
거무튀튀한 태도를 꺼내 들며 팽가호는 말했다.
“이 형님의 칼이 너무 무정하다 욕하지 마라, 친구. 난 이제부터 천하의 대악당을 죽인 절세 미남 영웅이 되기 위해 최대한 힘을 쓸 테니까.”초류향은 절세 미남이라는 단어에서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항상 말했던 천하의 대악당이 내가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생각할수록 참 재미있는 세상인 거 같지 않나, 친구?”“닥치고 내 칼을 받아라, 천하의 대악당.”웅웅-
팽가호의 태도에 청강빛이 번뜩이며 초류향의 옆구리를 거칠게 베어 왔다.
하북팽가의 자랑.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팽가호가 그 동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정진했음을 이 한 번의 칼질을 통해서 알아봤던 것이다.
‘하지만…….’팽가호도 이미 알고 있고, 초류향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무공으로는 둘 사이에 너무도 엄청난 격차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초류향은 최대한 돌려서 이야기해 주는 길을 선택했다.
‘이제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겠지.’그러기엔 너무도 멀리 와 버렸다.
작가의 말
수라왕은 작년 12월 말에 완결을 내고, 1월에는 수정 작업을 한 작품입니다. 사자왕은 그 이후에 작업했어요! 혹시 오해하실까봐 글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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