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29)
제229화 이자(2015.03.19.)
“교주님, 지금 그와 마주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초류향의 명령이라면 언제나 묵묵히 수행했던 운휘는 그답지 않게 처음부터 이 계획을 강하게 반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삼황 중의 한 명.
태극검황 백무량.
그의 존재 때문이었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무조건 말려야 한다.’삼황이라는 존재는 강호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천하제일.’그것과 동급인 단어가 바로 삼황이 아니었는가?
물론 공손천기가 검황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며 천하제일임을 입증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손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휘가 보았을 때 초류향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제가 걱정이 되십니까.”“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초류향의 재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었다.
‘게다가…….’이것은 그저 걱정의 문제가 아니다.
위험하다는 게 너무도 명백하지 않은가?
단순히 사자검군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사자검군이 혼자 있을 때를 노리는 것이 좋겠습니다.”초류향은 운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운휘의 표정은 결연했고, 거기에 담겨 있는 진심은 초류향도 충분히 이해했다.
또 지금 상황에서는 그의 말대로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초류향은 슬쩍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한 번 위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저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운휘 님.”운휘는 진지한 태도로 초류향의 이야기를 들었고, 마침내 이번 일을 준비하게 되었다.
* * *
“오랜만이다, 유설빈.”“응?”태극검황은 갑작스럽게 옆에 등장한 초류향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방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뭐지, 이것은?’태극검황에게 이건 매우 생소한 경험이었다.
천하에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이렇게까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존재할까?
잠시 머릿속으로 의문을 가졌던 태극검황은 초류향을 바라보며 미심쩍은 얼굴을 해 보였다.
“너는 흑월야황과 무슨 관계가 있는 아이냐?”태극검황이 생각하기에 이런 짓이 가능한 사람은 천하에 단 한 명.
흑월야황 냉무기뿐이었다.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순 없지만, 흑월야황의 기둔술이라면 어찌어찌 자신의 감각을 속일 수도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초류향이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서 있을 때.
사자검군이 처음부터 자신만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초류향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 나를 아는 거냐?”초류향은 웃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육 년 전.
조기천 스승님이 저놈의 손에 돌아가셨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너무도 간절하게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물론이지.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어 본 적이 없다.”초류향은 시원하게 말을 했다가 잠시 멈칫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후 조금 전 내뱉은 말을 정정했다.
“물론 기억이 온전할 때를 말하는 거다.”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사자검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초류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수상쩍은 놈이었지만 분명 낯익은 얼굴이긴 했다.
하지만 딱히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뭐지?’객관적인 눈으로 봤을 때 이놈은 대단히 잘생긴 얼굴이다.
보통이라면 얼굴만 마주해도 호감이 절로 생길 만큼 준수한 용모다.
하나 사자검군 유설빈은 놈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알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불편함에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 갈 때쯤.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월인도법을 기억하나?”“월인도법……?”그걸 왜 갑자기?
그러던 어느 순간.
사자검군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검 손잡이를 잡아 갔다.
“네놈이 그때 그 꼬맹이?”“바로 맞췄다. 유설빈.”초류향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드디어 놈이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기억한 모양이다.
오랜 기다림의 끝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기억난다.”사자검군은 검 손잡이를 만지며 코끝을 찡그렸다.
“그 영감을 죽이고 네놈을 죽이려 했는데 실패했지. 그때 네놈이 공손천기의 후계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죽여 없앴을 텐데…….”초류향은 사자검군의 아쉽다는 말에 서늘한 눈빛을 해 보였다.
“아쉬운가?”사자검군 유설빈.
그는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 상관없다. 지금 여기서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단지 일이 조금 번거로워졌을 뿐이지.”저놈이 수라마군이랍시고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사자검군 유설빈은 그저 코웃음만 쳤었다.
‘그때의 눈물 콧물 질질 짜던 꼬맹이가 많이 크긴 했구만.’단지 그뿐이다.
유설빈의 기억 속에서 초류향은 아직도 코흘리개 꼬마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착각이었다.
초류향이 한 발자국 걸어서 사자검군에게 다가가려 할 때.
그의 앞을 막는 그림자가 있었다.
“교주는 내가 보이지도 않는가? 이거 몹시 서운하구만.”태극검황이었다.
그는 유설빈의 앞을 막아서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내 사제에게 빚을 받으러 온 건가, 교주?”초류향은 태극검황을 힐긋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태극검황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팔십구.’잠재력의 수치가 진정 어마어마했다.
하나 무서운 것은 단순히 잠재력뿐만이 아니었다.
태극검황의 전신에서는 너무도 위험한 기운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극검황 백무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사람인 것이다.
초류향이 말없이 그를 응시하고 있을 때.
태극검황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교주와 내 사제가 얽힌 옛이야기는 예전부터 흥미롭게 듣고 있었지. 교주는 내 사제에게 충분히 원한을 가질 만해.”“…….”초류향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긴장했다.
태극검황은 조금 전과 변함이 없이 웃고 있었지만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위험한 기운이 한층 더 짙어졌기 때문이다.
“하나 교주는 알고 있는가? 나 역시 그대에게 빚이 있음을.”빚?
초류향이 머릿속으로 의문을 품는 그 순간.
태극검황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스승의 빚은 제자가 갚을 의무가 있지. 내가 그대의 스승에게 받은 굴욕은 그대가 감당해야 할 게야.”“……!”초류향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태극검황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의 정면을 덮쳐 왔던 것이다.
‘늦었다.’그 어떤 예고도 없는 갑작스럽고도 일방적인 공격.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초류향의 몸은 상대방의 공격에 차분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주먹을 허공에 짧게 끊어 쳤던 것이다.
‘패력수라권.’천하에서 가장 강한 주먹질.
그것과 정면에서 오는 기운이 빠르게 부딪쳤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
초류향과 태극검황.
둘 사이의 빈 공간이 일그러지며 바닥이 사방으로 갈라졌다.
콰드드득-!
단번에 황폐화가 된 주변을 둘러보던 태극검황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과연 공손천기. 정말 대단한 후계자를 얻었군.”“…….”초류향은 서 있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깊은 고랑을 만들며 뒤로 삼 장(약 구 미터) 가까이 밀려났다.
누가 봐도 초류향이 압도적으로 밀린 것이다.
엄청난 힘의 차이.
하나 태극검황은 속으로 은근히 감탄했다.
‘놈은 충격을 완전히 해소했다.’기습에 가까운 일격이었다.
그것을 저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게다가…….’저놈이 저렇게 뒤로 힘없이 밀려난 것은 결코 버티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몸 안으로 충격이 흡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저항하지 않고 뒤로 밀려간 것이다.
‘죽여야겠군.’처음부터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진심으로 저놈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극검황이 마음속으로 크게 살기를 일으킬 때.
뒤로 밀려 나간 상태로 서 있던 초류향이 주먹을 가볍게 털어 내며 입을 열었다.
“빚은 이걸로 갚은 건가? 검황?”과거 반야평 전투.
그곳에서 공손천기의 패력수라권에 맞아서 실신했던 태극검황이었다.
단 한 방.
그것을 막지 못해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엄청난 굴욕을 당했다.
태극검황은 그때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금은 그것으로 갚았지만 이자는 아직 남아 있네. 교주.”쿵-
태극검황 백무량.
그가 한 걸음 앞으로 강하게 내딛자 땅바닥이 사방으로 쩍쩍 갈라져 나갔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 새하얗게 불타는 기운이 가득해졌다.
쿠그그극-
공기가 괴로운 비명을 질러 대며 백무량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는데 원금만 갚으면 도둑놈이겠지. 안 그런가?”“…….”초류향은 입가에 고여 있던 피가 섞인 침을 옆으로 뱉어 낸 후 피식 웃었다.
“아무리 봐도 이자가 원금보다 커 보이는데 내 착각인가?”“크크크, 착각일세, 교주.”백무량은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과거 공손천기에게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한 뒤, 겉으로 한 번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그때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공손천기에게 대항할 만한 무공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그것을 공손천기 본인도 아니고 그의 어린 제자가 받아 내었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지금의 백무량에게 초류향이라는 존재는 하늘이 공손천기를 대신하여 보낸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가 흥분한 얼굴로 기운을 끌어올릴 때.
초류향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쪽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착각?”“내가 볼일이 있는 것은 그쪽이 아니라 저쪽이다.”초류향이 시선을 유설빈에게 주자 백무량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일세, 교주.”“순서는 그쪽이 정하는 게 아니야. 그건 내가 정해.”백무량은 껄껄 웃었다.
당금 천하에 자신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고 무례할 수 있는 놈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래도 저것은 철부지의 어리광일 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가?”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푸헐!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나를 한번 넘어가 보시게나, 교주.”백무량이 양손을 옆으로 한껏 벌리며 말하자 초류향은 뒤에 서 있는 유설빈을 바라보고 검지를 들어 올렸다.
유설빈의 눈가에 의구심이 떠오를 때.
초류향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허튼소리를 하지 않아. 순서는 내가 정하는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검황.”백무량은 지나칠 정도로 당당한 초류향의 모습에 살짝 찜찜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슬그머니 유설빈에게로 다가가 그의 정면을 완벽하게 막아섰다.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상대적으로 만만한 유설빈에게 무슨 수작질을 부릴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봐라.’이건 대단히 재미있는 승부였다.
백무량은 유설빈만 지키면 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초류향이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운휘!”“……음?”백무량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옆으로 돌릴 때.
어느샌가 저 먼 곳에 떨어져 있던 운휘가 바닥에 있던 돌멩이 하나를 주먹으로 깨부쉈다.
콰직-
백무량이 얼굴을 찡그렸다.
저 복면을 쓴 수상한 놈은 언제 저기까지 슬금슬금 기어간 것일까?
그리고 저놈이 부순 돌멩이는 또 뭐고?
그런 의문들을 떠올리려는데 초류향이 빙긋 웃으며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바닥에 박아 넣었다.
“그럼 순서를 정해 보자, 검황.”그 말을 마지막으로 초류향과 검황, 그리고 유설빈.
이렇게 세 명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