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32)
제232화 번뇌(2015.03.30.)
“이거 참 난감하게 되었습니다.”“그렇구먼.”척계광과 주호유는 얼떨결에 이번 천마신교의 강호 정벌에 동참하게 되었다.
아무리 손님이라지만 그냥 계속 놀고먹기 뭐해서 주호유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박이 그들의 동행 준비를 마친 것이다.
“이래서는 정말 반역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구먼.”강호로 향하는 마차에서 척계광이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리자 주호유가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기분입니다. 이런 말씀이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근래에 보았던 어르신의 얼굴 중에 지금이 가장 좋아 보이십니다.”“그런가?”“예.”주호유의 말을 들은 척계광은 빙긋 웃었다.
“아마도 기해혈이 되살아나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네.”척계광의 말에 주호유는 눈을 번뜩였다.
“기해혈이 살아났다는 말씀은…… 혹 무공을 되찾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단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복구가 가능하겠지.”“오오!”주호유는 크게 탄성을 내지르며 진정으로 기뻐했다.
척계광을 보필하며 그의 강직함을 내심 존경하고 있던 주호유였다.
가망이 없는 줄 알았던 그의 내공이 돌아올 조짐이 보인다는 말은 주호유에게 있어서도 매우 즐거운 소식이었다.
“어느 정도까지 복구가 될 것 같습니까?”이건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척계광의 무공이 회복된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새롭게 짤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다시 황실로 돌아갈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주호유가 그런 기대를 가득 담아 척계광을 바라볼 때.
척계광이 입을 열었다.
“다행히 밥값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구먼.”“그렇다는 말씀은…….”“화경의 고수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걸세. 이제 삼황급은 무리겠지만.”척계광이 씁쓸하게 말하자 주호유는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가 어디입니까? 어르신께서 어떤 몸 상태였는지 벌써 잊으셨습니까?”주호유의 약간 핀잔 어린 말투에 척계광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자네는 무인이 아니라 화경의 고수와 삼황급의 고수가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모르는구먼.”“그래 봐야 다 같은 화경의 고수가 아닙니까?”“아닐세. 화경 이상의 단계를 정확하게 구분 짓지 못해서 그렇게 뭉뚱그려 부르지만 사실 삼황급의 고수라면 혼자서 화경의 고수 대여섯 정도는 능히 감당할 수 있지.”“……그렇게나 차이가 심합니까?”척계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 역시 화경에서 삼황급이라 불리는 벽에 도달하기까지 삼십 년이 넘게 걸렸네. 둘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하지.”척계광의 설명을 들은 주호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감에 저절로 수긍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신입의 경지라 불리는 공손천기는 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입니까?”“그가 소문대로 정말 신입의 경지에 들어섰다면…….”“들어섰다면?”“삼황급의 고수 대여섯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야겠지.”주호유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 불쑥 입을 열었다.
“그래서 과거에 그를 죽이기 위해 천하 사패와 힘을 합치려 한 것입니까?”“그렇다네. 아마 그래도 힘들었을지도 모르지.”“그가 사라져서 진심으로 다행입니다.”“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척계광은 편안하게 웃어 보였다.
주호유도 무언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주호유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강호에 나가면 꼭 한번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누군가?”“이름은 계속 들어 봤던 사람인데 정작 그를 만날 기회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이번에는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그 사람을 만나러 가 보고자 합니다. 어르신도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가 보시겠습니까?”척계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세.”“감사합니다.”“한데 그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대체 누군가?”주호유는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이름을 떠올렸다.
“마테오…… 리치? 바다를 건너온 색목인입니다.”주호유 역시 예전의 초류향처럼 마테오 리치를 만나 산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하나 이런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된 만남으로 인해 엄청나게 복잡한 일에 휘말리게 될 줄을 그는 이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 * *
노진녕은 천마신교가 만들어 놓은 비밀 장원에 누워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의 회복력은 정말 경이적인 수준이라 불과 며칠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움직일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도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우리 교주님은 언제쯤 오시려나…….”초류향은 아주아주 중요한 복수를 위해 그를 이곳에 남겨 두고 운휘와 함께 떠났다.
한데 그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금방 오시겠지.’처음 이틀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렸다.
한데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고, 무려 오 일이 지나는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자 이제는 노진녕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걱정이 되었다.
운휘.
그 음침하고 비리비리한 녀석에게 교주님의 목숨을 맡기고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역시 호위무사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노진녕이 그렇게 마음먹고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그때.
조용하던 장원이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졌다.
“어라?”가볍게 몸을 풀며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던 노진녕은 무언가를 예감하며 후다닥 뛰쳐나갔다.
과연 그의 짐작대로 초류향이 때마침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주군? 복수는 잘하셨습니까?”초류향을 보며 노진녕이 정말 반갑게 물었다.
노진녕의 악의 없는 직설적인 질문을 받은 초류향은 입가에 쓴웃음을 그리며 말을 돌렸다.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벌써 이렇게 뛰어다녀도 되는 겁니까?”“으흐흐, 건강한 것 빼면 시체 아니겠습니까, 제가!”운휘는 헤헤거리며 웃는 노진녕을 잠시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서 들어가서 여독을 푸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군.”“그러는 게 좋겠습니다.”운휘와 초류향이 장원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을 따라가며 노진녕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본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주군.”“무슨 연락이 온 겁니까?”“전 호법님이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교주님께 전해 달라 했습니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은, 천마신교가 드디어 천하에 발을 내디뎠다는 뜻일 터.
“드디어 시작이군요.”“예, 주군.”천마신교는 곧장 그들이 있는 섬서성으로 진군을 할 것이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그 어떤 적들이 있건, 어떤 세력이 있건 상관이 없었다.
‘모조리 다 부수며 진군할 테니까.’이 넓은 땅덩어리 전체를 효과적으로 복속시키려면 처음부터 적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것이 초류향이 내린 판단이었고, 천마신교 수뇌부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막아서는 적이 있으면 그들은 정말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소멸되어 없어질 것이다.
“잠시 혼자서 좀 쉬고 싶군요.”정말 쉬고 싶었다.
복수는 계획대로 성공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머리가 너무도 복잡했던 것이다.
‘나는 단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그렇게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역시 어딘가에서 미묘한 마음의 들썩임이 있었다.
‘번뇌인가…….’그 말이 지금의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았다.
운휘와 노진녕은 그런 초류향의 표정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주군. 그럼 푹 쉬십시오, 헤헤.”“가까운 곳에서 주군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저 꼬장꼬장한 운휘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물러서자 노진녕은 의아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초류향이 쉬고 있는 방에서 물러나와 운휘를 따라가며 물었다.
“밖에서 무슨 일 있었냐? 주군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분위기가 왜 그래?”둔감하기로 유명한 노진녕이었지만 그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새삼 놀랐다는 얼굴로 노진녕을 바라보던 운휘가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는 지금 복수가 끝나셔서 혼란스러워하고 계신다.”“응? 복수가 끝났는데 왜 혼란스러워하셔? 후련하신 게 아니고?”
노진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묻자 운휘가 입을 열었다.
“교주님도 이번만큼은 너처럼 단순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다.”운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더 이상 설명하기도 번거로웠던 것이다.
“뭐야? 어디 갔어?”노진녕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운휘를 찾았지만 이미 그는 거기에 없었다.
“젠장, 몸만 회복되어 봐라. 한 방 먹여 주마, 복면.”노진녕은 서문현아에게 입은 부상 때문에 초류향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지금 너무도 아쉬워졌다.
* * *
쾅-!
정도맹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태극검황 백무량으로 인해 크게 소란스러웠다.
백무량은 사전에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작스럽게 정도맹으로 찾아왔고, 분노한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무아미타불…….”정도맹주인 공야 신승은 자신과 마주 앉아 있는 백무량을 바라보며 염불을 외웠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요? 도군에게 사자검군이 당한 것이외까?”“…….”“답답하구려. 자초지종을 알아야 우리도 무언가 도울 수 있지 않겠소이까?”태극검황 백무량.
그는 며칠 사이에 무척이나 야위어 있었다.
과거에 마황 공손천기에게 패배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초췌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날의 패배도 속으로는 마음이 문드러질지언정 적어도 겉으로는 담담한 척 여유롭게 받아넘겼던 것이다.
‘한데…….’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도군에게 조력을 구하러 갔던 백무량이다.
도군을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천마신교와의 싸움에서 상당히 유리해질 수 있었기에 본인이 자청해서 간 것이었는데…….
‘사자검군 유설빈은 폐인이 되어서 돌아왔고, 검황 역시 정상이 아니라…….’곤란한 일이었다.
곧 있으면 천마신교와의 피할 수 없는 일전이 있는데 정도맹의 핵심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모양이 되어 버렸으니…….
공야 신승은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염불만 외웠다.
“그럼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소이다.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면 찾아오시오.”공야 신승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깥으로 나가려 할 때.
석상처럼 굳어져 있던 백무량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교주를 만났다.”“음?”걸음을 멈춘 공야 신승은 제자리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했다.
“교주라면 천마신교의 교주를 말하는 것이외까?”백무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야 신승의 눈가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그때 백무량이 짙은 회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공야 신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제는 앞으로 영원히 두 팔을 쓸 수가 없다더군. 검을 다루는 자가 팔을 못 쓰면 죽은 것과 다름이 없지. 게다가 그놈은 잔인하게도 내 사제의 단전까지 완전히 부숴 놨네.”“나무아미타불…….”“내 오만함으로 인해 사제가 그 악독한 놈의 손에 망가졌지. 나는 이제 반드시 그 복수를 해야 해, 땡중.”멈췄어야 했다.
사자검군 유설빈.
그 아이가 찜찜하다고 했을 때, 그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옳았다.
‘만약 그때 발길을 돌렸으면, 그랬다면 이런 최악의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을…….’백무량의 얼굴에 짙은 괴로움이 떠올랐다.
“……아미타불.”공야 신승은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어쩌다가 교주와 검황이 마주치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마주친 것보다 더 난감한 것은 검황이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설빈이 저런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교주가 예상보다 더욱 강하다는 말인가?’현재 천마신교 교주의 나이를 짐작했을 때.
제아무리 고수라 하더라도 검황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고 여겼다.
정도맹에 속한 모두의 생각이 그러했고, 천하의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주어진 시간 자체가 압도적으로 다르니까.
한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큰일이구나…….’공야 신승의 복잡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백무량이 계속 입을 열었다.
“이보시게나, 땡중.”“아미타불. 말씀하시오, 검황.”“나는 지금부터 교주의 배를 산 채로 갈라 그 심장을 꺼내어 사제에게 바칠 생각이네. 가장 완벽한 복수를 할 생각이지.”공야 신승은 살기가 가득한 백무량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복수는 결국 복수를 부르는 법이외다. 검황께서는 대의에 따라 행동하시는 게 좋겠소이다.”백무량은 차갑게 웃었다.
이것은 예상했던 대답이었고, 그 말에 대한 답도 이미 정해 놓았다.
“대의? 나는 이제 그런 것 따위 아무런 상관이 없네. 그놈은 본 파의 미래를 부숴 놓았고, 내 자존심과 이름을 산산조각 내 버렸네. 나는 그놈뿐만이 아니라 천마신교 자체를 아예 없애 버릴 생각일세.”백무량은 지난 며칠 동안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을 모조리 정리했다.
사실 당장이라도 교주의 소재를 파악해서 혼자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그의 사제가 당한 것도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움직였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폐인이 되어 버린 사제를 위해서라도 그럴 순 없는 것이다.
“자네, 과거에 황실 쪽에 연줄이 닿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황실?
공야 신승이 의아한 얼굴을 해 보일 때.
백무량이 입을 열었다.
“지금의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네.”“검황께서는 늑대를 쫓자고 호랑이를 집안으로 불러들일 생각이시외까? 황실 쪽은 이제야 겨우 잠잠해진 상황이외다.”황실은 지금 정치적인 이유로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정도맹만 무척 곤란해지는 것이다.
“방금 말했잖나. 호랑이든 뭐든 천마신교 놈들을 가루로 만들 수 있다면 사양하지 않을 생각일세. 원한다면 그깟 자존심, 얼마든지 굽혀 주지.”백무량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공야 신승에게 말했다.
“초류향이라고 했던가? 그 어린놈의 심장은 이제부터 내 것이다.”천마신교가 본격적으로 천하에 힘을 보이기 직전.
태극검황 백무량.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그 어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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