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36)
제236화 행복(2015.04.13.)
천마신교가 천하에 나와서 정도맹과 싸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속도’였다.
‘전격전(電擊戰, 갑자기 들이쳐서 순식간에 끝내는 싸움)이다.’맨 처음 초류향과 팔대 호법들이 모여 상의한 결과 이번 싸움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제시된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현재는 뒤로 물러서서 관망만 하고 있는 다른 세력들이 개입을 하려 들지도 몰랐다.
그것은 좋지 않았다.
그들이 아직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순식간에 몰아쳐서 끝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다른 일들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일만큼은 초류향에게 있어 그 어떤 것들보다 우선순위에 있었다.
때문에 초류향은 모든 업무를 뒤로 미뤄 두고 선우조덕의 안내를 받아 화령을 만나러 갔다.
후원에 있는 작은 숙소에 들어선 초류향은 그녀의 변화를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화령…….”“오랜만에 뵙습니다, 주인님.”화령은 침상에서 일어나 바닥에 엎드려 초류향에게 예의를 차렸다.
하나 초류향은 잠시 동안 멍한 얼굴로 화령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무공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뒤에 서 있던 선우조덕이 죄송스럽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단전이 너무 오랫동안 혹사를 당해서 완전히 말라붙었습니다.”“…….”사실 이렇게 무사히 기억이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웠다.
선우조덕은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 초류향의 표정을 보니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었다.
잠시 멍한 얼굴로 화령을 바라보고 있던 초류향이 문득 이상한 점을 느끼고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볼에 손을 올려놓은 초류향이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눈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눈은 인간의 몸뚱이에서도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교주님.”선우조덕이 안타까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독기가 빠져나가며 화령의 시력을 녹여 버렸던 것이다.
그때 초류향이 갑자기 손을 오른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오른쪽 벽에 숨죽이고 붙어 서 있던 갈문적이 초류향의 손으로 주르륵 딸려 왔다.
“컥!”갈문적의 목줄을 움켜쥔 초류향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네가 원하던 게 이런 것이냐? 이래 놓고도 내 앞에서 감히 살기를 바라진 않겠지?”“……!”초류향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악한 기세에 갈문적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진심으로 분노한 것이다.
조기천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때.
당시에 느꼈던 분노만큼 지금 초류향의 전신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매우 순도가 높았다.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화령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라도 주인님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저는 만족합니다.”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었다.
단순히 그녀가 무공만 잃었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빛을 잃었다.’이런 끔찍한 고통이 또 있을까?
다시는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없다.
이건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때 화령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다시 주인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저는 기쁩니다. 그러니 단지 이 문제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것이라면 거두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어째서…… 어째서 그렇게까지 담담할 수 있는 겁니까?”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는 초류향도 분하고 억울한데 본인은 얼마나 더 답답하고 암담하겠는가?
한데 어째서 저토록 초연한 얼굴일 수 있는 것일까?
그때 화령이 초류향의 말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본래 죽어야 할 목숨이었습니다. 그것을 주인님께서 거두어 주셨고, 최후에는 주인님의 목숨을 구했으니…… 이 이상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화령은 진정으로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그녀는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동공을 들어 초류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전 지금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주인님.”“……!”행복하다.
그 말이 초류향의 가슴에 너무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갈문적의 목줄을 쥐고 있던 초류향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풀렸다.
“컥, 커헉!”초류향의 손에서 겨우 풀려난 갈문적이 뒷걸음질 치며 호흡을 고르고 있을 때.
초류향이 화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화령 님에게 제가 모르는 다른 이상이 있다면 지금 말해 주십시오. 선우 호법님.”“그것이…….”선우조덕이 씁쓸한 얼굴로 화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궁이 완전히 녹아내렸기에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초류향은 다시 한 번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이를 갖지 못한다?
잠시 동안 그 말뜻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초류향이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이 늙은이가 재주가 부족한 탓에…….”선우조덕이 정말로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초류향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건 아니었다.
선우조덕의 의술을 책망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초류향은 서둘러 선우조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선우 호법님은 최선을 다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러시지 마세요.”“죄송합니다, 교주님.”“아닙니다.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봅니다.”씁쓸함이 입안 전체에 가득해졌다.
세상에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도 있는 법이다.
초류향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저 복잡한 마음으로 화령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초류향은 겨우 들끓는 감정을 진정시킨 채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다가 화령을 보며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습니까, 화령 님?”“제가 말입니까, 주인님?”“예. 당신은 나에게 뭐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내 생명의 은인이니 그건 당연히 권리입니다.”화령은 초류향이 있음 직한 곳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어 더듬더듬 의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 후 스스로의 힘으로 의자를 찾아 그곳에 앉은 다음 화령이 입을 열었다.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까, 주인님?”“그렇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화령은 씁쓸하게 웃었다.
초류향은 모른다.
아니,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사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다.
초류향은 무사히 교주가 되었고, 이렇게 건강하기까지 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화령에게는 정말 이것이면 충분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화령은 초류향과 함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하나 이런 위험한 감정을 누구에게도 들킬 수는 없었다.
평생 숨겨야만 하는 그런 마음인 것이다.
“제가 주인님에게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지금 화령에게 아쉬운 게 있다면 다시는 초류향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니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화령 님.”초류향은 화령을 바라보며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 때문에 멀쩡했던 사람이 저렇게 된 것이다.
그를 지키려고 그녀가 대신 희생된 것이니까.
과거에 그녀의 삶을 구해 주었다고 여겼는데 그것은 오만한 생각이었다.
도리어 더 비참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죄책감이 초류향의 전신에 가득해졌다.
“굳이 소원이 있다면…….”화령의 낮은 음성에 초류향은 상체를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말씀하십시오.”그녀의 소원이 무엇이든 들어줄 생각이었다.
이제 초류향에게는 그 정도의 힘이 생겼으니까.
아니, 천하에서 초류향만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화령이 초류향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주님의 얼굴을…… 한 번 만져 보아도 되겠습니까?”“예?”초류향이 의아한 표정을 해 보일 때.
화령이 머뭇거리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저와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교주님이 그동안 어떻게 변하셨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설마 고작 그것이 소원이십니까?”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그런 것 말고…… 조금 더 거창해도 됩니다.”화령은 초류향이 어떤 마음에서 저렇게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다시 한 번 말했다.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교주님.”“…….”초류향은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화령의 앞까지 다가갔다.
그 후 화령의 두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올리며 말했다.
“이것은 소원이 아닙니다. 그저 안부 인사 정도겠지요. 차후에 조금 더 근사한 소원이 생긴다면 그때 말하세요. 들어 드리겠습니다.”“…….”화령은 손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치 값비싼 조각상을 만지듯이 초류향의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장님이 되어서인지 다른 감각들은 놀랍게도 더욱 생생해져 있었다.
화령은 마치 잘 깨지는 물건을 만지듯 초류향의 얼굴 전체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쓰다듬은 후 손을 떼었다.
“다 되었습니다. 주인님.”“…….”초류향은 몸을 일으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도 말했다시피 언제든 소원이 생각나면 말하세요.”“네.”잠시 초류향은 복잡 미묘한 얼굴로 화령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쉬세요.”“알겠습니다, 교주님.”화령은 다들 바깥으로 나가고 나자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충분해.’이것이면 되었다.
아니, 과했다.
조금 욕심을 부려 본 것이다.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침상에 누웠다.
그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몸은 좀 괜찮으냐?”“……!”선우조덕이었다.
그가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기척이 전혀 없었다.’화령은 급하게 표정 관리를 하며 조마조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선우 호법님. 몸은 괜찮습니다.”“그러하냐? 다행이구나. 그냥 누워 있거라.”선우조덕은 몸을 일으키려는 화령을 눕혀 놓고 손목의 맥을 짚어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조심하거라. 잘못하면 들킬지도 모르니까.”“…….”화령의 전신이 화석처럼 굳어졌다.
그녀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선우조덕의 목소리가 들린 곳을 응시하고 있을 때.
선우조덕이 씁쓸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아직 나 외에는 눈치챈 사람이 없는 것 같다만…… 한 걸음 더 나갔다면 들켰을 것이다.”“저, 저는…….”“알고 있다. 나는 그저 네가 걱정스러워서 하는 소리다. 그런 종류의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억제하기 어려운 법이니…….”화령은 이 순간 확신했다.
선우조덕은 지금 자신의 위험한 감정을 분명하게 눈치챈 것이다.
그녀는 아직 불편한 몸을 움직여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침상에 이마가 닿도록 절을 했다.
“부디 용서를…….”선우조덕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안쓰러운 얼굴로 화령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말했다.
“그게 어디 용서를 구할 일이겠느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인데. 그것이 본인의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느냐. 너무 염려하지 말거라.”“죄송합니다, 선우 호법님.”화령은 필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욕심이 지나쳤다.
마음속에서 자라난 욕심이라는 것이 그만 겉으로 드러나 보인 모양이다.
화령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두려움에 전신을 떨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선우조덕이 입을 열었다.
“힘들겠지만 그저 지금처럼 바라만 보거라. 그건 할 수 있겠느냐?”“…….”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화령이 가장 바라던 일이었다.
더 이상은 그녀에게도 무리다.
“교주님은 태양과도 같으신 분이다. 전대의 공손천기 교주님과도 비슷하지만 그분과는 또 다른, 빛나는 태양이시지.”“…….”화령은 숨을 죽이고 선우조덕의 말을 경청했다.
선우조덕 역시 그녀의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닌지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그렇게 빛나는 사람은 스스로의 빛 때문에 생긴 그림자를 쉽게 놓치고 지나가기 마련이다.”빛 때문에 생긴 그림자.
그 말이 화령의 가슴에 아릿하게 새겨졌다.
“나는 너를 탓하기 위해 이 말을 꺼낸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처럼 지켜만 보아라. 네가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너도 교주님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그분은 다행히도 이런 감정에 무척이나 둔감하신 분이시니까.”화령은 침상에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되시는 부분이 그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우 호법님.”“할 수 있겠느냐?”“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저는 교주님의 그림자로 살아갈 것입니다.”선우조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령에게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이것은 선우조덕으로서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너에게 힘든 일을 시킨 듯하여 미안하구나. 나를 원망해도 좋다.”“아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로 행복하니까요. 선우 호법님.”화령은 선우조덕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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