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37)
제237화 불안감(2015.04.16.)
천마신교에 초류향이 합류하자 그들의 진격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감숙성을 벗어난 천마신교는 순식간에 화산파에 당도했다.
그리고 그들은 화산파 앞에서 멈춰 선 채 크게 숨 고르기를 하기 시작했다.
검은색 용이 수놓아진 고급스러운 재질의 새하얀 장포.
준수한 용모의 청년은 여유로운 얼굴로 저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교주님.”“오셨습니까?”흰색 무복의 청년.
초류향이 뒤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주 호법과 우 호법이 나란히 서 있었다.
“드디어 화산파입니다. 교주님.”“그렇군요.”과거 무림에 대해서 잘 몰랐을 때도, 화산파에 대해서만큼은 귀가 따갑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무당파에 밀려서 그 세력이 약해졌지만 예로부터 화산파는 정파에서 가장 강력한 검을 가지고 있다고 불립니다.”검종(劍宗, 천하 모든 검법의 근본)이라고 불리는 화산파다.
대대로 천하제일검을 수도 없이 배출했던 최강의 문파.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초류향은 발끝으로 가볍게 바닥을 찍으며 고개를 들었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현재는 무당파에 밀려서 점점 쇠락해 가는 문파일 뿐이었다.
“적들의 병력 현황과 경계해야 할 고수에 대해서는 알아오셨습니까?”“예, 교주님. 현재 화산파에 추가로 병력들이 증원되었지만…… 제일 염려해야 할 인물은 죽었다고 알려진 매화검선(梅花劍仙)입니다.”“매화검선이요?”조금 생소한 별호였다.
초류향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 호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전대부터 존재했던 늙은 괴물이지요. 만약 그 늙은이가 살아 있다면 아마 이번 화산파와의 전쟁에서 최대의 난적이 될 것입니다. 저보다도 한 세대 전의 인물입니다.”매화검선 소요자.
살아만 있다면 현재 백 살이 훌쩍 넘은 노검객일 것이다.
과거 구주십오객이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부터 화경의 고수였던 그는 늘 천하에서 손꼽는 검객 중의 하나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의 이목을 끌지 않고, 조용히 묻혀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화산 바깥으로 나서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실존하는, 혹은 실존했던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니까.
주 호법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주십오객에 오르지 못한 화경의 고수.
살아만 있다면 그가 제일 위협적이라는 말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차이로 어제 도군과 도협이 종남파와 함께 화산파에 합류했습니다.”초류향은 눈을 빛냈다.
이건 제법 익숙한 이름이지 않은가?
“도군 임제학이 저곳에 있습니까?”“예. 교주님.”도군 임제학과 도협 강세빈.
그들은 확실히 초류향과 인연이 깊었다.
어째서 지금처럼 위험한 시점에 그들이 화산파에 합류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초류향은 가만히 도군 임제학의 얼굴을 떠올려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도군이 드디어 죽을 자리를 찾은 모양이군요.”“예. 아마 이번에는 결코 살아서 돌아갈 순 없을 겁니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저항하기로 마음먹은 적들이다.
그러니 철저하게 짓밟아 줘야 했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전쟁이었으니까.
지금 초류향이 걷기로 한 길은 단 한 번의 자비도 허용되지 않는, 그런 아수라의 길이었다.
‘반항한다면…… 모두 지운다.’잠시 적들의 전력을 가늠하던 초류향은 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들이 제법 거칠게 반항할 것이라 예상되니 오늘은 일단 푹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예.”“저들을 지도에서 지우는 것은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곧장 움직이겠습니다.”“존명!”초류향의 말을 들은 우 호법과 주 호법은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감각에서 사라지고 나서 초류향은 입을 열었다.
“노진녕 호위 무사님은 몸 상태가 어떻습니까?”[아직 최상의 상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전력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듯합니다.]몸을 숨기고 있던 운휘가 말하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초류향이 작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적들을 미리 한번 보고 올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매화검선이라는 자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화경의 고수라는 것 외에는 정보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잠행을 하시겠습니까?]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어두워지면 움직이도록 하지요. 저번에 제가 부탁했던 물건을 준비해 주세요.”[알겠습니다.]운휘는 초류향의 명령을 듣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밤은 금세 찾아올 테니까 빨리 준비를 해야 했다.
* * *
도군 임제학.
그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지금은 화산파의 장문인이 된 현천도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현천도인은 앞에 놓여 있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씁쓸하게 말했다.
“자네는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되었어. 괜히 죽을 필요는 없지 않나?”“나는 빚을 갚으러 온 거다.”화산파의 장문인.
현천도인은 임제학의 말에 허허로운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빚은 이미 갚았지 않나? 돈은 그때 돌려받은 것으로 아네만.”과거 천마신교에 사로잡힌 도협 강세빈의 몸값.
당시의 도군 임제학에게는 그것을 지불할 여력이 없었다.
그때 임제학을 도와준 것이 바로 화산파였다.
“내가 진정으로 힘들었을 때 도와주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것을 이제 갚을 때가 된 것뿐이니 너는 마음 쓰지 마라.”현천도인은 너무도 꼿꼿하고 꼬장꼬장한 자신의 오랜 친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젊었을 때도 그러했지만 이 녀석은 나이가 들어서도 한결같았다.
녀석의 이런 꼿꼿함을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자네를 이런 곳에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네. 그건 결코 안 될 말이지. 화산파는 자네가 죽을 곳이 아니네. 그러니 제발 돌아가시게.”“쫓아내려 해도 소용없다. 이미 각오를 하고 왔으니까.”현천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그렇다 쳐도 자네 제자는 어쩔 텐가? 자네가 이곳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 아이도 떠나지 않으려 할 걸세. 그렇게 아까운 아이가 이곳에서 죽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도군 임제학은 제자 이야기에 잠시 멈칫거렸다.
도협 강세빈.
그가 언급되자 강철처럼 강인한 임제학의 얼굴에 처음으로 곤란함이 떠올랐다.
“……나도 그 녀석은 돌려보내고 싶었다. 한데 녀석이 고집을 부리니…….”그의 표정에 떠올라 있는 복잡한 감정을 읽은 현천도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처럼 고집이 쇠심줄인 모양이구먼. 하긴, 자네 제자니까 당연한 것이겠지.”“그 아이는 알아서 잘할 것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할 능력은 되니까.”도군 임제학의 말을 천천히 곱씹던 현천도인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제자와 함께 돌아가시게. 나야 화산파의 사람이니 운명을 함께해도 어색하지 않지만 자네는 아니지 않나?”“신경 쓰지 마라.”그렇게 둘은 한참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포기하는 것은 현천도인이었다.
“마음대로 하시게. 나는 정말 할 만큼 했으니.”“안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도군 임제학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현천도인이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깥으로 나가려 할 때.
임제학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한데 어르신은 정말 살아 계신 건가?”“사백님을 말하는 건가?”“그래. 매화검선 어르신을 말하는 거다.”현천도인은 잠시 동안 공허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살아 계시지. 다만 여전히 그렇듯이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으실 뿐.”매화검선 소요자.
그가 세속의 일에 완전히 관심을 끊어 버린 지도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세상 사람들은 매화검선이라는 존재를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을 정도니까.
“이번에는 움직여 주시겠지…….”이번 일은 정말 화산파의, 나아가 정도 무림 전체의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아무리 세속을 벗어났다지만 이번은 도와주실 것이다.
하나 아직까지도 뚜렷한 말이 없는 소요자의 태도 때문에 초조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현천도인이었다.
* * *
저녁이 되었다.
초류향은 검은색 무복을 입은 상태로 발목 끈을 꽉 조여 매며 생각했다.
‘화산파가 분수령이다.’화산파는 정파에 있어서 굉장히 상징적인 문파였다.
가장 오래된 대문파 중의 하나였고, 그 오랜 시간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었다.
게다가 외부의 침입에 여태껏 단 한 차례도 무너져 본 적이 없는 단단한 문파.
‘넘어선다.’화산파를 넘기만 하면 정도맹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하남성은 지척이다.
이곳에서 빠른 말을 타고 쉬지 않고 이동하면 불과 열흘 거리에 있는 것이다.
초류향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운휘가 유령처럼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준비가 되었습니까?”“여기 있습니다, 주군.”운휘는 초류향에게 작은 향낭(香囊,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는 향기 나는 주머니) 하나를 건네었다.
“저만 맡을 수 있도록 특별하게 제조된 천리향이 들어 있습니다.”향낭을 건네받은 초류향은 허리춤에 그것을 단단히 묶었다.
운휘에게 따로 부탁했던 물건은 바로 이것이었다.
초류향이 기둔술을 사용해서 움직이면 운휘조차 그가 어디 있는지 식별할 수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물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있는 한 운휘만큼은 초류향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준비는 끝났군요.”“예, 주군.”“가 볼까요?”“존명.”초류향이 말을 마치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의 모습이 운휘의 시야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매번 이럴 때마다 난감했던 운휘다.
하나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운휘는 천천히 호흡을 고르면서 후각에 감각을 집중했다.
그러자 느껴졌다.
독특한 향기가 앞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 운휘의 그물에 잡힌 것이다.
운휘는 그것을 뒤따르며 생각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주군께 기둔술을 배워 둘 필요가 있겠다.’아무리 연구를 해 보아도 저것이 어떤 원리로 발현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은신술과는 그 바탕부터가 다른 기술이기 때문이다.
초류향은 자신을 잘 따라오고 있는 운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매번 움직일 때마다 기둔술을 펼쳐서 기척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나 그럴 때마다 운휘가 자신을 찾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을 보완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나온 해결책이 바로 이 천리향이었다.
‘속도를 올린다.’운휘가 자신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졌으니 초류향은 조금씩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렇게 쏘아진 화살처럼 빠르게 화산파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초류향은 화산파의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초류향의 모습을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면에 초류향의 뒤를 바짝 따르던 운휘는 화산파가 가까워지자 속도를 급격하게 죽였다.
‘주군과 조금 거리를 둔다.’초류향이 지니고 있는 천리향은 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확실하게 그의 행방을 알려 주는 물건이었다.
때문에 운휘는 무리하지 않고 완벽하게 기척을 지워 가며 안전한 장소로만 이동했다.
‘이게 최선이다.’초류향은 저번에 태극검황을 만난 이후 그의 기둔술이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거라는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운휘는 달랐다.
자신과 엇비슷한 경지의 고수를 만난다면 장담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천히 이동을 하던 운휘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빠르다.’초류향의 이동 속도가 생각보다 지나치게 빨랐다.
운휘는 화산파의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차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는데 초류향은 아니었다.
처음 그대로의 속도를 유지하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쫓아가야 할까?’잠시 고민했던 운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무리해서 그를 쫓을 필요는 없었다.
초류향의 기둔술은 완벽했으니 별다른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움직이던 운휘였다.
그러던 그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도협 강세빈?’운휘는 움직이는 속도를 더더욱 줄였다.
화경에 이른 고수의 감각은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그의 영역에서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지금 당장 들통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운휘가 그를 먼저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운휘는 그래도 최대한 신경을 써서 강세빈의 영역을 스치듯이 지나쳤다.
끝까지 강세빈이 눈치채지 못한 듯하자 안도하며 다시 초류향의 기척을 쫓으려던 운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멈췄다?’저 먼 곳.
화산파의 최정상에 가까운 부분에서 초류향의 향기가 멈춰 서 있었다.
운휘는 다시 속도를 올려 그곳을 향해 부지런히 올라가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갑자기 초류향이 폭발적인 속도로 이동했던 것이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운휘의 전신을 내리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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