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38)
제238화 백록(2015.04.20.)
처음에 초류향의 눈에 보인 것은 흰색 사슴이었다.
아주 먼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흰 사슴.
그 사슴이 어째서 눈에 들어온 것인지, 초류향도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그 사슴을 본 순간부터 초류향은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건…….’저 사슴은 막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인간이 아닌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들게 하는 사슴.
‘그래도 막수보다는 덜하군.’저 사슴은 막수보다 비교적 거부감이 적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시 우두커니 사슴을 바라보고 있는데 놈의 입가에 익살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그 친구의 말대로 오만한 인간이구나. 내 정체를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없다니…….]사슴이 말을 했다는 사실에도 초류향은 무덤덤했다.이제는 이런 경험이 처음도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초류향은 평온한 음성으로 사슴에게만 들리게 전음을 날렸다.
[너는 뭐지?][나? 이 몸은 산의 주인이다.]흰 사슴은 자신의 크고 우람한 뿔을 가볍게 흔들며 거만하게 말했다.하나 초류향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사슴을 보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볼일이 없다. 비켜라.][나에게 볼일이 없다? 그럴 리가. 네놈은 지금 소요자라는 인간 친구를 만나러 온 게 아니었느냐?]흰 사슴의 말을 듣고 있던 초류향의 눈이 가늘어졌다.저놈은 자신을 알고 있다.
목적도, 정체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안 것일까?
게다가 조금 전에 한 말…….
[소요자가 살아 있나?][그럼 살아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찾아온 건가?]흰 사슴이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자 초류향은 팔짱을 끼었다.최초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여기에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호기심이 생겨 버렸다.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괴물은 항상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법이다.
[내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뭐지?]초류향이 질문하자 흰 사슴이 앞발로 바닥을 가볍게 긁으며 비웃었다. [만나 보겠나?]소요자를 만나 본다?지금?
초류향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면.][흐흐, 내가 어떤 함정을 파 놓았을지도 모르는데 따라오겠다는 거냐?]흰 사슴의 말에 초류향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소요자를 만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만에 하나 내일 진짜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때 생길 수 있는 변수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했다.
생각해보면 소요자는 전전대에 이미 화경에 도달한 어마어마한 검객이다.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지만, 정말로 살아 있다면 그의 무력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과연 어느 정도의 고수일까?’초류향은 머릿속에 떠오른 복잡한 생각들을 훌훌 털듯이 앞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스스로의 무공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소요자에게 안내해라, 사슴.][크크, 인간의 만용이란 참으로 무섭구나.]흰 사슴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 움직였다.그러자 놈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이것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축지법.’막수가 사용하던 그 괴상한 술법이 아니던가.
흰 사슴의 기척을 찾던 초류향은 멀찍한 곳에서 기운을 감지하자마자 움직였다.
슈아아악-!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간 것이다.
뒤에 있는 운휘와의 거리가 급격하게 벌어졌음은 알았지만 그가 알아서 잘 쫓아올 것을 믿었다.
그랬기에 초류향은 안심하고 속도를 더욱 높였다.
파아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열음.
초류향이 내달리는 엄청난 속도에 흰 사슴.
백록(白鹿)은 자신도 모르게 뜨악한 얼굴을 해 보였다.
‘미리 듣긴 했지만 정말 괴물 같은 놈일세.’소요자는 백록의 평생에 유일한 인간 친구였다.
그는 여태껏 외부에 단 한 번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만나고 싶다고 한 인간이 바로 저 청년이었다.
그리고 소요자가 예언한 것처럼 저 청년은 정말 혼자서 이곳까지 찾아왔다.
‘정말 이런 괴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인간 친구?’걱정이 되었다.
그가 부탁했으니 데려가긴 하겠지만 이 괴물을 소요자가 맞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불안한 얼굴을 하며 백록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더더욱 빠르게 축지법을 사용한 것이다.
* * *
백발이 성성한 인자한 얼굴의 노인.
그가 바로 매화검선 소요자다.
화산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소요자는 독특하게도 평생 동안 단 하나의 검법만 익히고 있었다.
‘매화칠검…….’화산파에 입문하면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검법이었다.
기초 중의 기초.
하나 그는 그것만으로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
‘……왔는가.’그는 백의무복을 걸치고 눈을 감은 채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눈을 뜨며 아래를 응시했다.
저 먼 곳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가오는 백록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바짝 따라오는 불안정한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소요자는 헐떡거리며 자신의 옆까지 다가온 백록에게 고마운 얼굴을 해 보였다.
“사슴 친구. 자네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그려.”[……그보다 저 괴물, 어쩔 거야?]백록은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따돌리지 못한 초류향을 바라보며 작게 경련을 일으켰다.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전력을 다해 뛰었는데도 떨쳐내지 못했다.
백록이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소요자는 공허한 눈으로 백록의 뒤쪽을 응시했다.
그러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교주는 참으로 좋은 눈을 하고 있구려.”“…….”초류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찡그렸을 뿐이다.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아무리 정관법을 집중해서 사용해도 소요자의 수치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류향이 복잡한 얼굴로 굳어 있을 때.
소요자가 탁자에 놓여 있는 찻잔을 들어 초류향에게 내밀었다.
“준비해 둔 차가 식겠소이다.”초류향은 움직이지 않고 소요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초류향은 기둔술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랬기에 약간의 의심이 들었다.
‘이자는 정말 내가 보이는 건가?’한번 시험해 볼 필요는 있었다.
그랬기에 초류향은 천천히 옆으로 몇 걸음 움직여 보았다.
그러다 곧 머쓱한 얼굴로 기둔술을 풀어 버렸다.
소요자의 시선이 정확하게 그를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쪽은 대단한 사람이었군.”“오래 살면 자연스럽게 얻는 게 있소이다.”초류향은 소요자가 내민 찻잔을 받아만 들고 마시지는 않았다.
이런 곳에서 상대방의 호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니까.
그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소요자가 특유의 허허로운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교주는 신중한 사람이구려.”[독은 없다, 오만한 인간. 저 녀석은 그런 짓을 할 정도로 비겁한 녀석이 아니야.]초류향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많기에 무작정 남을 믿을 수는 없거든. 마음만 받겠다.”초류향은 그렇게 찻잔을 든 채로 화제를 돌렸다.
“한데 도사는 내가 올 것을 어떻게 알았지?”눈앞에 있는 자는 여러모로 이상했다.
수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했고, 자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신경 쓰이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암습을 해야 하나…….’잠깐 거기까지 생각하던 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암습을 할 생각이었다면,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마주쳤던 화산파의 주요 인물들을 죄다 죽였을 것이다.
하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 전쟁을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하게 정면에서 찍어 누른다.’그래야 이 싸움에 의미가 있었다.
적들을 완벽하게 압도할 수 있는 힘을 보여 주어야 했다.
초류향이 그렇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소요자가 입을 열었다.
“그냥 보였소이다. 그대가 오늘 이곳까지 나를 찾아올 것이. 딱 거기까지는 보였소.”“그냥 보였다?”“그렇소.”초류향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어이없는 대답이었지만 왠지 이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신통술이 제법이군, 도사. 하면 그쪽이 죽는 순간도 보이는가?”소요자는 초류향의 도발을 듣고 그를 물끄러미 살펴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눈에는 본 파의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교주가 내 목숨을 앗아갈 저승사자처럼 보였소. 그래서 그대와 이야기해 보고 싶었소이다.”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선선히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는 상대방을 만나니 기분이 묘해진 것이다.
초류향은 잠시 소요자를 지켜보다가 말했다.
“분명 당신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초류향은 결국 자신의 찻잔을 옆에 있는 탁자에 올려놓고 자세를 바로잡은 뒤 진지하게 말했다.
“내일 그쪽과 나는 화산파의 운명을 걸고 싸우게 될 거다. 사실 그쪽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쓰고 싶지만…… 작은 것을 얻자고 큰 것을 잃을 순 없겠지.”“교주는 나를 죽일 수 있겠소?”불쑥 들어오는 질문에 초류향은 입을 다물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애매했다.
소요자와 같이 정관법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겪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이상하리만큼 걱정이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눈앞에 있는 소요자를 자세히 살펴보던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이 사람…….’자신이 왜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초류향은 팔짱을 끼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야 알겠다. 도사는 이미 절반은 이쪽 사람이 아니었군.”초류향이 의식을 집중해서 보자 소요자의 신체가 반투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소요자와 비슷한 경우를 과거에도 본 적이 있었다.
공손천기 스승님도 그렇지 않았던가?
‘하지만…….’소요자는 공손천기 스승님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스승님은 스스로의 의지로 지상에 남아 있었던 것이고, 소요자는 그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강제적으로 남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유가 뭐냐?’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세속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도를 얻어 절반은 신선이 된 사람이 세속의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유가 뭐지?”[너를 만나기 위함이지. 오만한 인간.]“나를?”초류향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백록은 앞발로 자신의 콧잔등을 긁어 대며 모른 척했다.
거기까지는 대답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초류향이 시선을 돌려 소요자를 바라보자 그는 묘한 미소를 입가에 그린 채 화제를 바꿨다.
“그대와는 한번 천천히 이야기를 하고 싶었소. 내일은 아마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을 테니.”그랬다.
내일은 서로 한가하게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들의 싸움을 시작으로 화산파가 전력을 다해서 저항할 테니까.
바야흐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교주는 천하 통일을 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오? 단순히 천하인들의 위에 서는 것이 그 목적이오?”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대업은 단순한 천하 통일이 아니었다.
“평화다.”“그건 모순이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서 얻는 평화가 어찌 평화라는 말이오?”초류향은 소요자의 질책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그리고 이런 시시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면 나와 만난 것은 시간 낭비다. 나는 그쪽과 이런 화제로 담소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으니까.”“어째서 그렇소?”초류향은 서늘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내일 죽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니까.”[이 건방진 놈!]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백록이 버럭 화를 내며 힘을 내뿜었다.
쿠그그극-!
어마어마한 힘.
산천초목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강대한 힘에 주눅이 들 법도 하건만 초류향은 단 한 점의 두려움 없이 그런 백록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너와 같은 종류의 녀석을 하나 알고 있지.”[나와 같은 종류?]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수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말했다.
“한데 그 녀석에 비하면 너는 정말 새 발의 피로구나. 그 녀석이 강한 건가? 아니면 네가 약한 건가?”[이, 이 미친 인간! 네가 진짜 죽기를 각오했구나!]“그 정도의 힘으로 날 죽일 수 있다고 보나?”초류향이 비웃자 백록이 참지 않고 뿔을 크게 흔들었다.
[뒈지거라!]콰아아아-!엄청난 바람이 초류향의 전신을 덮쳤다.
백록이 내뿜은 기운이 돌개바람이 되어 초류향의 전신을 박살 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초류향은 가볍게 주먹을 내뻗었다.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주먹질.
‘패력수라권.’쾅-!
주먹질 한 방으로 돌개바람을 박살 낸 초류향은 단숨에 달려들어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백록의 목줄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까불지 마라, 사슴. 도사는 지금 이곳에서 죽일 수 없지만 너는 아니다.”[크, 크흑!]“그만하시오, 교주. 그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초류향은 잠시 소요자를 바라보다 어이없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우습군, 내가 왜 그대의 말을 들어야 하지?”우드득-!
[컥, 커헉!]백록의 입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나왔다.그 모습에 소요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릴 때.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도사는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나? 착각하지 마라.”적에게는 한없이 무정하게.
그것이 초류향이 적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소요자는 초류향을 바라보다 입술을 꽉 깨문 후 입을 열었다.
“그 친구를 놓아 주시오, 교주!”엄정한 기운이 소요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바다처럼 넓고 장엄한 그 기운은 초류향의 전신을 완벽하게 덮어 왔다.
작가의 말
백록… 개인적으로 야차왕에서 제일 좋아했던 캐릭이었네요. ^^;
만든이 한 마디
자꾸 한 마디 쓰느라 죄송? 작가 대체 이런 내용에 전혀 필요도 없는 캐릭터들 왜 넣는지 모르겠다.
토끼와 거북이 더불어 사슴까지 차라리 그냥 동물농장으로 책 하나 내지? 수라왕이 처음 접한 건데 나머지 야차왕이라던가 읽어봐야겠다. 들어보니 죄다 용두사미라고하더구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