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숨겨진 진실(2013.04.08.)
추혈군 상동하.
구주십오객의 한 명이자 흑월회에 현재 남아서 활동하고 있는 자들 중 최고의 고수였다. 그는 지금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지금 누굴 만나러 왔다고?”“할아버지요.”“야황?”“예.”냉하영의 차분한 대답에 상동하는 식은땀을 흘렸다.
야황이라니? 갑자기 이 무슨 빌어먹을 소리인가? 흑월야황 냉무기는 진즉에 은퇴한 것 아니었던가?
“넌 이번에 천마신교의 일 때문에 기련산에 온 것이 아니었느냐?”상동하 장로의 질문에 냉하영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제가 왜 그런 일 때문에 기련산까지 오겠어요?”“그야…….”상동하 장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냉하영이 그런 일로 굳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상동하 장로에게 중요한 일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만났느냐?”상동하 장로의 다급한 질문에 냉하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야릇하게 웃으며 상동하 장로의 등 뒤로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그 시선에 상동하 장로는 어떤 섬뜩함을 느꼈다.
그 느낌을 따라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초로의 노인이 탁자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무런 기세도 기운도 내뿜지 않는 그런 평범한 인상의 노인.
하지만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화경의 고수인 상동하 장로는 마치 뱀을 마주하고 있는 개구리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대체 언제?’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이후로 그 누구에게도 등 뒤를 내준 적이 없는 상동하 장로다.
하지만 그것도 예외가 있는 법이다. 눈앞에 있는 노인에게라면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오랜만이군.”“회, 회주님.”상동하 장로는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다 곧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는지 서둘러 읍을 해 보이며 말했다.
“장로 상동하가 회주님을 뵙습니다.”“회주는 무슨, 은퇴한 노인에게 너무 과분한 예의를 차리는군.”새하얀 백발과 무료한 듯한 시선. 그가 바로 현재 강호제일고수라 칭송받는 삼황의 한 명이자, 죽음의 사신으로 통하는 흑월야황 냉무기였다.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상동하.”“거, 걱정해주시는 덕분입니다.”상동하 장로는 잔뜩 주눅 든 얼굴로 냉무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억눌린 신음 소리를 흘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눈앞의 늙은 괴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강했다.
그리고 그 특유의 존재감. 사방에 은은하게 뿌려지는 그 존재감이 상동하 장로를 지금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천마신교 때문에 이곳까지 왔나?”역시 알고 있었던가?
상동하 장로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그럼 헛걸음을 했군.”“예?”상동하 장로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을 때.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가 앉으며 냉무기가 입을 열었다.
“헛걸음을 했다고 했다.”“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이곳에서 무얼 얻고자 왔나?”“그것이…….”상동하 장로가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냉무기가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월인도법 때문이겠지.”“허억!”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그도 아주 힘들게 조사해서 알아낸 정보를?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상동하.”상동하 장로는 고개를 숙였다.
늘 냉무기는 옳은 판단을 했다. 여태껏 그가 내린 결정은 단 한 번도 틀림이 없었고, 그가 뱉은 말은 단 한 번도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월인도법이다! 그 월인도법이라고!’강호에는 수없이 많은 고수가 그 이름을 떨친다. 허나 백 년이 지나도 그 이름이 기억되고 회자되는 고수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그 드문 고수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게 바로 도마 악중패. 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었다.
그가 세상에 보여주었던 그 말도 안 되는 도법. 그것은 현재까지도 최강의 도법이라 불리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어떻게 포기하라는 것인가? 설령 그게 있는 곳이 지옥의 불구덩이 속이라 하더라도 무인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표정을 보니 포기하지 않을 것 같군.”“…….”사람에게 욕심이란 때로는 용기를 가져다주는 모양이다. 예전에 냉무기가 이렇게 물어보았으면 당장이라도 엎드려서 그의 뜻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 역시 과거의 내가 아니다.’상동하 장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결코 돌아간다는 소리는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냉무기는 그 모습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말했다.
“가끔은 욕심을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상동하 장로는 냉무기의 중얼거림에 밝은 얼굴을 해 보였다. 그가 승낙한 것이라 여긴 것이다.
“감사합니다.”냉무기는 기쁜 얼굴의 상동하를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를 조심하도록.”“알겠습니다.”천마신교는 굳이 냉무기가 주의를 주지 않아도 조심할 것이다. 흑월회가 삼패 중 하나로 그 덩치가 크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그 내실의 단단함은 천마신교에게 미치지 못했다. 상동하 장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난 분명히 경고했다. 상동하.”상동하는 냉무기의 조언을 들으며 흐릿하게 웃었다. 늙은 괴물도 나이가 드니 별수 없는 모양이다. 별 쓸데없는 걱정까지 다 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상동하 장로는 속으로 냉무기의 모습에 만족하며 서둘러 읍을 해 보였다.
“손녀 분을 만나 하실 말씀이 많으실 텐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냉무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동하 장로는 그것이 그만의 허락 방식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문밖으로 향했다.
그가 사라지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냉하영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할아버지?”냉무기는 그때까지의 딱딱한 표정을 살짝 풀어내며 슬쩍 웃었다.
“뭐가 말이냐?”“천마신교를 조심하라는 말이요.”“말 그대로다.”탁자에 놓여 있던 찻주전자를 찻잔에 기울이며 냉무기가 무심하게 말했다.
“지금 기련산에는 그 녀석이 와 있다.”“그 녀석이요?”“공손천기.”천마신교의 교주.
그가 이곳까지 나와 있었던가?
냉하영은 이 새로운 정보에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교주요? 하지만 정도맹에서도 태극검황이 나왔잖아요?”“그렇지.”“어? 그러고 보니 삼황이 이렇게 가까이 모인 것은 처음이네요?”냉무기는 흐릿하게 웃었다.
“그렇게 되는 건가.”“그렇죠. 어? 설마, 할아버지 전에 삼황을 만난 적이 있어요?”세상에 알려진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삼황은 서로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그랬다. 냉하영이 그들의 행보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았을 때 늘 이 부분이 신기했었다.
‘사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사십 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다. 그랬기에 확실히 이 부분은 의문을 품을 만한 대목이었다. 고의적으로 서로가 만남을 회피하지 않는 이상 이것은 분명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냉하영은 호기심 때문에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놀랍게도 그들이 고의적으로 만남을 회피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여태까지 그들의 고유 영역이 서로 너무도 달랐기에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았을 뿐이었다.
무림 역사상 이토록 서로 간의 색깔이 극명하게 다른 절대고수들이 충돌하지 않고 한 시대에, 공존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삼황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늘 지금의 이 미묘한 관계가 신기했던 냉하영이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삼황의 세 명. 정말 그들 중 단 한 명도 상대방의 실력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그들도 인간이 분명할 텐데 다른 자들에게 단 한 번도 호기심을 가져보지 않았을까?
‘하지만…….’누구 하나라도 그런 의문을 품고 상대방을 만나려 했다면 지금의 균형은 진작 깨어졌을 것이다. 그들이 만나게 되었더라면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냉하영의 생각은 거기에서 늘 막혔다.
그때 그녀의 할아버지인 냉무기가 입을 열었다.
“네가 보기엔 어떻더냐? 우리가 정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을 것 같으냐?”그들이 만났더라면 최소한 셋 중에 한 명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냉하영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설마 만난 적이 있는 건가요?”냉무기는 대답하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무언의 긍정. 냉하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특유의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땠어요, 할아버지?”“뭐가 알고 싶으냐?”“보고 느낀 것 그대로를 알고 싶어요.”“항상 너무 어려운 것을 알고 싶어 하는구나.”“할아버지를 찾아온 이유 중에 하나라고요, 이건.”“나를 찾아온 이유?”“예. 사실 조금 골치 아픈 일을 떠맡아 버렸거든요.”냉하영은 강호서열록에 관한 이야기를 냉무기에게 해주었다. 그 볼멘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냉무기의 얼굴이 조금 심각하게 변했다.
“강호서열록이라…… 그건 제법 위험한 발상이구나.”“그래요?”대체 어디가 위험하다는 것일까?
냉하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냉무기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그답지 않게 약간은 망설이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현 강호에서 그것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은 단 두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누구예요, 그게?”“나와 공손천기.”냉하영은 잠시 멈칫거렸다. 순간 할아버지의 지금 대답에서 무언가 중대한 것을 놓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게 뭐지?’뭔가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것 같은데? 그렇게 고민하며 조금 전의 말을 되새김질하자 문득 뇌리에 번갯불처럼 한 가지 가정이 스쳐 갔다. 동시에 냉하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 할아버지 설마?”흑월야황 냉무기.
그는 손녀를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손녀는 예전부터 너무 똑똑한 게 흠이었다. 항상 몰라도 될 것을 알아 버리곤 했다. 그런 손녀기 때문에 그녀의 의문에 정확하게 대답을 해줘야 했다.
“맞다. 나는 과거에 그들 모두를 한 번씩 만난 적이 있다.”비공식적인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 때문에 흑월야황 냉무기. 그는 은거를 결심하게 되었다.
냉무기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던 냉하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때 있었던 일을 저에게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냉무기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냉하영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지금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비밀’은 강호의 그 누구도 모르는 숨겨진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알아야 했다. 그녀는 지식과 정보를 되도록 많이 알고 있어야 이 험난한 강호에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숨겨진 진실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명확하고 분명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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