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52)
제252화 연합(2015.06.08.)
“이거 꼴이 아주 우습게 되었구만.”백무량은 피투성이가 된 겉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입을 열었다.
“놈들의 피해는?”“제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적습니다. 대략 사천 명 정도를 죽였습니다.”상관중달이 보고하자 백무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면 꽤 괜찮은 것 아닌가? 부상자는?”항상 어떤 질문이든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오던 상관중달이었지만 이번 질문에는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었다.
“왜? 무슨 일이 있나?”백무량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상관중달이 쓴웃음을 그리며 입을 열었다.
“……부상자는 없습니다.”“응? 부상자가 없다니? 사로잡은 놈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그게 말이 되나?”통상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면 사망자보다 부상자가 더 많은 법이다.
“예. 가벼운 부상을 입은 자들은 이미 도주했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는 놈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서 자결했습니다.”백무량은 잠시 멍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늘 여유롭고 느긋했던 그였지만 방금 전 상관중달이 한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거참 지독한 놈들이구만.”“예. 저도 놀랐습니다. 사망자의 절반 이상은…… 스스로 자결한 자들입니다.”“허어…….”“충성심이 대단한 자들입니다.”“충성심이 아니라 그냥 미친놈들인 거지.”죽음이라는 것을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무림인들이지만 막상 죽음에 내몰리게 되면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악하는 법이다.
한데도 마교의 잔당들은 사로잡힐 바에는 전부 죽음을 택했다.
그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에 뒷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우리 쪽 피해는 어떤가?”“사망자 육천오십이 명에 부상자가 칠천삼백사십일 명입니다. 그중에서 거동조차 불가능한 자들은 이천구백오십칠 명 정도 됩니다.”“클, 예상은 했지만 피해가 아주 심각하구만.”“예. 제 명령대로 추격을 하다가 오히려 당했습니다.”“추격을 하다가 당했다니?”상관중달은 씁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마라천풍대가 가장 마지막까지 뒤에 남아서 추격하는 자들을 막아섰던 모양입니다. 워낙에 강한 자들이라 추격대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뭐, 그 아이들이 마교의 최정예들이니까. 이름값을 했겠지.”“예. 뒤늦게나마 소림사의 백팔나한이 그들을 밀어내지 않았다면 추격하다가 도리어 피해를 입을 뻔했습니다.”“흠…….”백무량은 아쉬운 얼굴을 해 보였다.
본래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천마신교는 이곳에서 절반 가까운 병력을 잃었어야 했다.
한데 겨우 십분지 일 정도만 피해를 입은 게 아닌가?
‘아니, 그것도 안 되나?’천마신교가 확실히 정예는 정예인 모양이었다.
후퇴할 때 보여 주었던 질서정연하고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면 그들이 평소에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아쉽게 되었지만 기회는 아직 있지.”백무량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히죽 웃었다.
그러자 상관중달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어 보였다.
“예. 십만대산까지 가는 길은 멀지요. 거기다 길도 아주 험난할 겁니다.”“게다가 놈들은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니까…… 늑대들이 달려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부상당한 호랑이는 늑대들에게도 잡아먹히는 법이다.
자세한 속사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지금의 천마신교는 분명 정도맹에게 패했고 부상자들을 데리고 후퇴 중이었다.
이건 참으로 맛있는 먹잇감이 아닌가?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 흑월회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되는구만.”“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이 마교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 것입니다.”상관중달의 계책.
그것은 바로 마교의 멸살이었다.
단순히 천마신교를 강호에서 쫓아내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본거지까지 싹 밀어 버릴 작정인 것이다.
“삭초제근(削草制根, 일단 한번 손을 쓰면 뿌리까지 뽑음)은 다음 세대를 위해 아주 중요한 작업이지. 훌륭한 계책을 생각해 주었네.”백무량의 칭찬에 상관중달은 겸손한 얼굴을 해 보였다.
“천 년의 역사가 있는 마교입니다만…… 저희 세대에서 사라지게 되겠군요. 모두 검황께서 손수 나서 주신 덕분입니다.”백무량은 상관중달의 들뜬 음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만 잘 진행된다면 이번 일은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업적이 아닌가?
천마신교의 완전한 소멸.
무림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임이 분명했다.
“추격은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겠는가? 바로 움직일까? 나는 괜찮네만.”“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을 테니까요.”천마신교의 고수들이 어찌어찌 추격을 피해서 십만대산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이미 과거에 철옹성이라 불렸던 십만대산이 아닐 것이다.
‘황실에서 나온 고수들에게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겠지.’이제 천마신교는 멸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상관중달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는 미처 보고 드리지 못했지만 도제 엽낙천이 죽었습니다.”“아아, 들었네. 흑살마군이라는 애송이에게 죽었다면서?”“예.”“거참 좋은 세상이 되는 걸 보지 못하고 가게 되어 아쉽구만.”“예. 그리고…… 이것은 대외비입니다만 신승께서도 부상을 당하셨습니다.”“허? 그럴 리가? 그의 진짜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군사도 알지 않는가?”“아무래도 실력을 숨기고자 하다가 당하신 것 같습니다만…….”“바보 같은 땡중이로군.”백무량의 얼굴이 씁쓸해졌다.
신승 공야 대사는 현재 정도맹의 맹주였다.
그리고 그가 대외적으로 실력을 숨기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이미 삼황급에 다다랐다는 것은 백무량과 상관중달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중요한 시점에서 그가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앞으로의 일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
“상태는 어떤가?”“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몇 주 정도는 요양을 하셔야 합니다.”백무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득 드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교주를 제외하고 신승에게 부상을 입힐 정도의 고수가 천마신교에 있었던가?”“화경의 고수 두 명이서 갑작스럽게 협공을 했다고 합니다. 벽력마군 우규호와 패천마군이라는 신진고수가 동시에 달려들어서 신승께서도 당하신 모양입니다.”“화경의 고수 두 명의 협공이라……. 뭐, 그럼 방심하다가 당할 만도 하겠군.”백무량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맛을 다셨다.
“마교에 있는 화경의 고수들은 멀쩡한가?”“예……. 아쉽게도 손을 보진 못한 것으로 압니다.”“정말 아쉽구만.”나중을 위해서라도 이번 싸움에서 화경의 고수 숫자를 줄여 놓을 필요가 있었거늘…….
그 부분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하면 이제부터 나는 무얼 하면 되나?”“기다리시면 됩니다. 변화가 생길 때까지.”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비록 그것이 상관중달이 기대하던 형태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 * *
초류향은 침통한 표정으로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릇을 챙겨 들고 그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운휘가 입을 열었다.
“뭔가를 드셔야 합니다, 주군. 이러다가 몸 상하십니다.”“……생각이 없습니다.”
운휘는 초췌한 얼굴을 한 그의 주군을 바라보다가 초류향의 맞은편에 가서 섰다.
나흘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그동안 정도맹을 박살 내며 당당하게 지나왔던 길을 쫓기듯이 도망쳐 와야만 했던 것이다.
운휘는 식어 버린 음식을 내공을 사용해 데우며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식사를 드셔야 합니다. 교주님께서 흔들리시면 저희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초류향은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운휘는 그런 초류향의 손에 억지로 젓가락을 쥐여 주고는 입을 열었다.
“시련이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주군. 주군께서 가진 열망이 크신 만큼, 그것에 도달할 때까지의 시련 역시 클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 견디셔야 합니다.”“저는…….”초류향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밥과 음식들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직까지도 제 선택에 확신이 없습니다.”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류향은 정도맹과의 싸움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이대로 정도맹을 몰아붙이느냐. 아니면 후퇴를 하느냐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초류향은 그 순간 뒤로 물러서는 것을 선택했다.
전력을 최대한 보존한 채 물러서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 한 번의 선택이 모든 것을 갈라놓았다.
“지금에 와서는 제가…… 검황의 농간에 당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그 순간에는 태극검황 백무량의 말만 믿고, 십만대산이 위기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나 후퇴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검황의 말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단순한 짐작이다.’초류향은 자신의 판단 때문에 죽어 간 수없이 많은 천마신교의 고수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저는 주군의 판단을 믿습니다.”“…….”“황실은 분명 십만대산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주군의 판단은 옳았습니다.”초류향은 퍽퍽해진 밥을 젓가락으로 떠 올리며 서글픈 얼굴을 해 보였다.
“설혹 제 판단이 옳았다 하더라도 이미 늦었을 겁니다. 백무량이 그 정도로 여유롭게 말한 것을 보면 이미 황실은 십만대산 지척까지 도착했겠지요.”“십만대산은 주군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황실이 그곳에 있는 본 교의 고수들을 죽일 수야 있겠지만 일반 교도들 전부를 죽일 순 없을 겁니다.”초류향은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밥을 입으로 가져가 천천히 씹었다.
‘확실히 지금은 무언가 판단을 내릴 때가 아니다.’운휘의 말이 옳았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실하지가 않았다.
외부에 나가 있는 정보원들이 돌아와 봐야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초류향은 모래알처럼 까끌까끌한 밥알을 꼭꼭 씹으며 무너져 가려는 의지를 붙잡기 위해 애썼다.
겨우 밥알을 씹어서 목 뒤로 넘기려는데 자결하던 천마신교의 무사들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미안합니다…….’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결한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초류향이었다.
비통하고도 괴로웠지만 운휘의 말처럼 지금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시점이었다.
‘최대한 침착해야 한다.’안 넘어가는 밥을 억지로 삼키며 초류향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번 사태로 초류향은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자신의 교만함과 어리석음을 몸서리쳐질 정도로 잘 알게 되었다.
‘울면 안 된다.’울어도 소용없었다.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쉽게 울지도 못하는 위치가 아닌가?
초류향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하늘을 보며 억지로 조금씩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전면이 소란스러워졌기에 초류향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젓가락을 바닥에 떨궈 버렸다.
“교주님, 수상한 놈이 교주님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붕대로 상체를 칭칭 동여맨 우 호법이 누군가의 목덜미를 잡은 채 대롱대롱 끌고 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초류향은 입을 열었다.
“흑월회의 안휘 분타주?”“하하…… 다행히 저를 기억하시는군요.”“허엇? 정말로 교주님께서 아는 사람인 겁니까?”초류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 호법이 곧장 중년인의 목덜미를 놓아 준 후 옷을 가볍게 털어 주며 말했다.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미안하오. 허허…….”“괜찮습니다. 죽이지만 않으시면 되죠.”“거참, 화통한 분이라 다행이오. 푸허허헛!”안휘 분타주도 마주 웃다가 곧장 정색하더니 초류향을 향해 넙죽 엎드려 보였다.
“본 회의 군사께서 보내 주신 서찰을 가지고 왔습니다, 교주님.”“…….”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대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나?”“예, 교주님. 그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 제가 온 것입니다.”초류향은 안휘 분타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지금 냉하영의 말을 듣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은 사실이 있다. 알려 줄 수 있겠나?”“예. 물어보십시오.”초류향은 흑월회의 안휘 분타주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지켜보고 있던 운휘와 우 호법 역시 진지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들 역시 초류향이 무엇을 물어볼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황실은…… 정말 십만대산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실한가?”이게 핵심이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흑월회의 안휘 분타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마신교 고수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예, 교주님. 황실은 십만대산을 목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병력은 대략 칠백 명입니다만 숫자는 아주 조금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최정예로, 화경의 고수만 무려 네 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초류향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조용히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운휘가 천천히 다가가 초류향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주군의 판단은 역시 틀리지 않았습니다.”“…….”“이제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군.”초류향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초류향은 붉어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제 그녀의 서찰을 보여 주시오.”“여기 있습니다. 교주님.”흑월회 안휘 분타주가 건넨 서찰을 그 자리에서 꺼내어 읽어 보던 초류향의 얼굴이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초류향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은 채 운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늘이 아직 저를 버리지 않은 모양입니다.”흑월회와 천마신교의 연합.
그것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