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59)
제259화 거래(2015.07.02.)
운휘는 초류향이 걱정스러웠다.
항상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는 초류향의 성격상 이번 화령의 죽음에도 분명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좋지 않다.’안타깝게도 지금 초류향은 화령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냉하영이 와 있으니까.
그녀는 이번에 궁지에 몰린 천마신교를 시기적절하게 도와주었다.
곧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해 올 게 분명하다.
‘이럴 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다.’그 자리에서 이렇게 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초류향에게나 천마신교에나 분명히 좋지 않은 일이었다.
운휘는 그 점이 염려스러웠다.
“걱정 마세요. 저는 괜찮습니다.”“……!”운휘에게 등을 돌리고 초혜정에 앉아 있던 초류향.
그가 갑작스럽게 입을 열자 운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말에 깜짝 놀란 것이다.
“그렇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시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운휘 님.”“주군…….”초류향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운휘와 눈을 마주친 다음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띠었다.
“화령의 죽음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연연해서 큰 것을 잃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녀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 겁니다.”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류향이 운휘를 보며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옵니다.”초류향의 시선이 향하는 곳.
적발의 미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만한 미소와 당당한 태도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여자.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 했군. 오랜만이다. 그곳에 앉으면 돼.”초류향의 말에 냉하영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초류향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제는 날 바람맞힐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었겠지? 안 그러면 나 몹시 화낼지도 몰라.”“그래. 엄청 중요한 일이었다.”“뭔지 물어보면 대답해 줄 거야?”초류향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냉하영의 양옆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전에 먼저…… 두 분도 앉으셔도 됩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듯한데, 서서 기다리기 불편하지 않으십니까?”“…….”냉하영의 좌측과 우측.
그곳에는 각각 냉무기와 시엽이 서 있었다.
시엽은 좌측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잠시 초류향을 괴물 보듯이 응시했다.
본인이야 그렇다 쳐도 냉무기의 존재까지 파악한 초류향이 인간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놈과 닮았군.”우측에서 모습을 드러낸 냉무기는 초류향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냉하영의 오른쪽 옆에 앉았다.
초류향은 냉무기를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팔십구.’진정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닌가?
냉무기의 수치에 초류향은 잠시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착각했군.’오늘 그의 상대는 냉무기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를 조용하게 관찰하고 있는 저 여인.
냉하영.
그녀가 그의 상대였던 것이다.
“어제는 미안했다.”“사과는 했으니까 됐고, 이제 이유를 설명해 줘.”초류향은 잠시 숨을 들이켰다.
냉하영은 지금 그녀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원하고 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화령의 죽음은 분명 초류향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커다란 사건이었다.
하지만 냉하영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잠시 고민하던 초류향은 결국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소중한 사람이 이번 일로 죽었다. 어제는 그것 때문에 너와 이야기할 정신이 없었지. 미안하다.”“소중한 사람?”“그래.”냉하영의 눈이 묘하게 바뀌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냉하영은 짧게 물었다.
“여자?”“……그래.”“그럼 됐어. 더 이상은 안 물어볼게.”“…….”입가에 짓고 있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니 무언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했지만 초류향은 굳이 입을 열어서 변명하지 않았다.
괜히 그쪽으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은 초류향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이제 일 이야기를 해 볼까?”냉하영의 말에 초류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가 본론인 것이다.
냉무기는 조용하게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시선에 담겨 있는 감정은 분명한 색깔의 놀라움이었다.
‘공손천기는 괴물을 만들어 냈군.’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나이를 먹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들이 있다.
사람을 판단하는 안목이 바로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상대방을 판단하게 된다.
연륜이 쌓여 어느 정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상대의 모든 것을 읽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냉무기가 읽어 낸 초류향은 과거 공손천기와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있었다.
“이번에 천마신교를 도운 것은 흑월회로서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했던 일이야. 어쩌면 본 회의 존망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이었지.”“그랬을 거다.”초류향은 긍정했다.
확실히 흑월회의 개입은 초류향도 매우 의외였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너무도 커다란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초류향에게도 의외였던 만큼, 흑월회의 가세는 정도맹 측에 아주 뼈아픈 일격이 되었다.
“내가 왜 무리를 해 가면서까지 천마신교를 도왔다고 생각해?”“얻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겠지.”냉하영은 초류향의 대답에 화사하게 웃었다.
“맞아. 제대로 봤어.”초류향은 냉하영을 바라보았다.
그가 알기로 흑월회에는 어떤 상황에서나 통용되는 절대적인 규율이 있었다.
‘이득이 없이는 움직이지 마라.’흑월회는 강호의 다른 집단과는 그 성격이 미묘하게 달랐다.
철저하게 이득을 추구하는 집단인 것이다.
다른 곳들이 명분을 따지고, 그 와중에 이득을 챙기는 것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
“너도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천마신교와 흑월회가 힘을 합쳤으면 해. 그것을 위해 이번에 너를 도운 거야.”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흑월회는 이번 일에 개입함으로써 다른 세력들과는 철저하게 척을 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다른 세력과 적이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천마신교와 손을 잡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그녀가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
초류향이 조용한 시선으로 냉하영을 바라볼 때.
냉하영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궁금하지? 진짜 목적이?”“그래.”“흑월회는 이득 없이 움직이지 않아. 내가 너와 손을 잡으려는 것은 가장 확실한 이득이 이쪽에 있기 때문이야.”“그게 뭐지?”냉하영은 초류향을 가만히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천하 제패. 설마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이번에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이곳에 왔어.”냉하영은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미소 지었다.
“우선 첫 번째, 황실의 힘을 완전히 강호에서 지우는 것이었는데 이건 이미 이루어졌지.”“황실의 힘을 배제하려는 이유는?”초류향의 물음에 냉하영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무림인이야. 황실이 개입하는 건 체질상 맞지 않아.”“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그래? 보통이라면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될 텐데…….”냉하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황실을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이유겠네. 이건 두 번째 목적과 관계가 있거든.”“두 번째 목적?”냉하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천하 통일. 그것을 위해서는 이 이상 황실이 개입하는 건 곤란하거든.”천하 통일.
그 이야기를 듣자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었다.
본인이 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하여 듣자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묻지만, 설마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할 생각은 아니지?”초류향은 앞서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며 은근히 압박하는 냉하영을 보고 피식 웃어 버렸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무슨 목적으로 천하 통일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을까?
‘나와는 분명히 다른 이유일 것이다.’그래서 궁금했다.
그리고 냉하영은 그 이유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이건 천하에서 가장 이득이 많이 남는 거래야. 우리는 그런 거에 아주 민감하거든.”“이득을 위해서인가?”“응. 우리 흑월회는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니까.”냉하영은 초류향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미소에 무언가를 감추는 기색이 없음을 깨닫자 초류향은 오히려 안도했다.
“너는 내가 왜 천하에 욕심을 부렸는지 알고 있나?”“글쎄? 우리보다야 훨씬 숭고한 이유가 있었겠지.”“아니, 그다지 숭고한 이유는 아니다.”초류향은 씁쓸하게 웃으며 냉하영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냉하영처럼 솔직담백하게 이득만을 따졌더라면, 지금의 실패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의’라는 허울 좋은 탈을 너무도 일찍 써 버렸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무조건 옳고, 힘들지만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헛된 망상.
그 망상을 무턱대고 믿고 전력 질주 하는 것보다 저렇게 냉하영처럼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는 편이 백배는 나았다.
‘내가 가슴속에 품은 것은 대의가 아니라 욕심이었다.’천하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아무런 다툼도, 무의미한 싸움도 없는 그런 상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만 싶었던 건가?’초류향은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스스로에게 묻다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솔직히 평화로운 세상을 순수하게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천하 제패라는 욕망에 조금도 사적인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스승님이 쌓아 놓았던 업적처럼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는 욕망도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하 제패는 결코 혼자서 이룰 수 없다.’이번 실패로 인해 초류향이 얻은 것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하나 처음부터 되짚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온 결론.
“나는 아직 천하 제패를 포기하지 않았다.”천하 제패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대의에서든, 개인적인 욕망에서든, 사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너무도 분명한 목적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처럼 두루뭉술하지 않았고 이제눈 너무도 분명한 실체를 가지고 눈앞에 나타났다.
“연합을 원하나?”“아니. 우리는 그것보다 더욱 진한 관계가 되어야 해.”냉하영은 초류향 앞에 하나의 서찰을 내밀었다.
두툼한 서찰에서는 왠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본 회의 가장 중요한 극비 사항들이 적혀 있는 문서야. 소속되어 있는 문파들의 목록부터 각 문파의 무공과 고수들의 숫자, 보유하고 있는 경제력과 영역 등등.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정보들이지.”초류향의 눈빛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냉하영이 내미는 서찰에 손도 대지 않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이것을 보여 주는 목적은?”“나는 지금 너에게 혈맹(血盟)을 제의하는 거야.”혈맹.
단순히 서로의 힘을 합치는 연합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서로를 완벽하게 믿고,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신뢰.
그것이 기반이 되는 관계니까.
초류향은 가만히 서찰을 지켜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것을 보여 주는 이유는 나에게도 역시 비슷한 것을 원하기 때문이겠지?”“그래.”“이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알아.”냉하영은 팔짱을 끼고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본래 혈맹은 이렇게까지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려 주고, 또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방법이 있긴 하지.’초류향과 냉하영.
둘 모두 미혼이다.
본래는 둘이 혼인을 하는 게 제일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 무엇보다도 명확한 혈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지.’냉하영과 초류향.
둘 모두 서로에게 호감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연애 감정과는 많은 거리가 있었다.
서로의 능력이나 재능에 대한 감탄과 인정의 의미가 더 강했던 것이다.
‘그건 분명 연애 감정과는 다른 거야.’게다가 이미 각자 마음에 담아 둔 상대가 있지 않은가?
냉하영은 서찰을 건네고 자신의 우측에 앉아 있는 시엽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힐끔거렸다.
자신의 숨은 의도가 들킬까 봐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엽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초류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덕분에 냉하영의 얼굴은 복잡미묘하게 변해 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