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6)
제26화 진법 안의 괴물(2013.04.11.)
조기천은 신중한 얼굴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대야에 가득 담긴 황색 점토. 아까부터 그것을 연신 주물럭거리며 무언가의 형상을 열심히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점토와 씨름하고 있던 조기천은 곧 다섯 개의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완성된 그것을 보는 조기천의 얼굴에는 만족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말을 탄 사람. 대략 손바닥 크기만 한 다섯 개의 점토 인형을 이곳저곳 살펴보며 조기천은 소매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었다.
차르륵-
작은 주머니 속에는 거무튀튀한 빛을 뿜어내는 돌덩이들이 가득했다. 흑요석이었다. 남만의 더운 땅에서도 아주 극소량만 생산된다는 그 진귀한 보석. 손톱만 한 것 하나로 장안에 있는 거대한 저택을 다섯 채나 사들일 수 있다는 게 흑요석이다. 그것이 조기천이 꺼낸 작은 주머니에 가득히 들어차 있었다.
“우선은 다섯 개.”조기천은 작게 중얼거리며 흑요석 다섯 개를 골라내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놓은 바늘로 오른손 손가락 끝을 한 번씩 찌르기 시작했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주름투성이 다섯 손가락 끝에서 피가 한 방울씩 배어 나왔다.
조기천은 그것을 빼놓은 흑요석 하나하나에 묻히기 시작했다. 흑요석에 핏방울을 묻힌 후 그것을 다섯 개의 인형에다가 박아 넣었다. 이로써 가장 기초적인 준비가 끝났다.
“그럼 가볼까.”조기천은 완성된 다섯 개의 점토 인형을 가지고 어딘가로 향했다. 바로 악중패의 무덤. 그곳을 감싸고 있는 진법을 향해서였다.
* * *
진법 앞에 나타난 조기천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 이런 일은 버거웠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사흘 후라…….’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전까지 뭔가 결과물을 보여주어야 했다.
조기천은 산길을 걸어가다가 멈춰 섰다.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돌 비석들이 사방에 세워져 있는 곳.
이 앞에서부터는 위험했다. 진법의 영향권에 있기 때문이다. 조기천은 신중한 표정으로 경계선을 살펴보았다.
전문가.
이쪽 방면에 있어서 조기천은 달인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눈에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뚜렷한 진법의 경계선이 보였다. 그 경계선을 신중한 얼굴로 살펴보며 가져온 점토 인형 다섯 개를 내려놓았다.
경계선.
딱 그 위에 걸쳐지는 위치였다.
“후우.”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조기천은 경계선을 계속 살펴보며 점토 인형들을 조금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 점토 인형이 완전히 경계선 안으로 들어갔다.
조기천은 무릎을 꿇고 오른손만을 경계선 안으로 집어넣었다. 엎드린 듯한 약간은 불편해 보이는 자세. 어쩔 수 없이 그 상태로 기다려야 했다. 첫 번째 변화가 찾아올 때까지.
다행히도 첫 번째 변화는 금세 찾아왔다. 진법 안에 들어가 있던 다섯 개의 점토 인형이 점차 아래위로 가늘게 진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던 조기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너무 빠르다.’좋지 않은 징조였다. 진법 안에 들어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첫 번째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드드드득-
진법 전체가 가늘게 떨려왔다. 동시에 경계선 안에 들어가 있던 다섯 개의 점토 인형. 그것들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조기천은 그것을 신중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진법은 인간이 자연의 힘을 인위적으로 비틀어서 만든 공간.’진법 안은 일종의 다른 세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일이 그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벌어지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푸르릉-
말을 탄 다섯 명의 무인들. 조기천이 만들어서 가져왔던 다섯 개의 점토 인형이 어느새 진법 안에서 말을 탄 사람들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법 바깥의 조기천을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은 하나.’조기천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던 오른손의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그리고 신중한 얼굴로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제일 오른쪽 끝에 있던 무인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보통 진법이 발동되면 진법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모습은 바깥쪽에 있는 사람이 볼 수 없었다. 진법 안과 바깥의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기천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이쪽 방면의 달인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편법을 동원했다. 그 편법이 바로 점토 인형이었다.
조기천의 오른손은 지금 진법 안에 들어가 있었다. 본디 이렇게 신체의 일부분만이 진법 안에 들어가 있는 경우, 대다수의 진법은 발동되지 않는다. 그것이 기본 조건.
하지만 조기천에게는 대리인이 있었다. 그를 대신해서 어떠한 위험이라도 감수할 수 있는 무적의 대리인. 다섯 명의 말 탄 무인들.
흑요석이라는 비싼 보석을 매개체로 한 점토 인형 다섯 개. 그것들이 지금 진법 안에서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점토 인형이 겪는 진법의 변화를 조기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이건 어렵구나.’사실 이곳에 펼쳐져 있는 형태의 진법은 조기천으로서도 난생 처음 보는 희한한 것이었다.
진법 바깥부터 시작되어 이곳까지 이어진 기이한 문양의 비석들. 그것은 보자마자 해석할 수 있었다. 비석들에 새겨져 있는 기이한 문양들은 산법에서도 잘 쓰지 않는 무척 오래되고 낡은, 그래서 더더욱 복잡한 수식들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애초에 엄승도는 이 복잡한 수식들만 풀고, 해석해내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조기천은 그 복잡하고 어렵게 꼬여 있는 수식들을 단박에 해석했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산법으로 비석에 새겨져 있던 수식들을 풀어보자, 놀랍게도 그것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진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들이었다.
누군가가, 산법과 진법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는 어떤 누군가가 이곳에 진법을 펼쳐놓은 것이었다. 그것도 미리 해답까지 비석에 새겨서 보여주며 펼쳐놓았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문제는 해답을 보고도 파진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정답까지 알고 진법의 진행 방향까지도 알았지만 이것은 조기천으로서는 도저히 뚫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림인만이 가능하다.’진법 안에서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진법을 파훼할 수 있겠는가?
그랬기에 이렇게 간접적으로 진법을 경험해보고 정확한 파훼법을 찾은 후에 천마신교에 그 방법을 전해주리라 생각하고 있던 조기천이었다.
‘음?’갑자기 조기천의 얼굴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진법의 가장 바깥쪽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어마어마한 압력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압력이 이 정도라면 진법 안에 들어가 있는 말 탄 무인들이 겪고 있는 압박감은 정말 엄청날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묵묵히 조기천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앞서 걸어갔던 가장 오른쪽의 말을 탄 무인. 그는 조기천이 생각하기에 제일 첫 번째 관문으로 보이는 곳에 도달하게 되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첫 번째 시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돌파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모든 진법이 그러하듯 이것은 대단히 은유적인 표현 방법이었다.
조기천은 그동안 진법에 대해서 공부해오며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는 표현을 몇 번 보아왔었다. 그 표현이 나오는 진법은 대단히 거칠었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적대감이 엄청났다. 사람이 그런 진법 안에 들어가면 대다수가 죽어서야 나오는 진법들인 것이다.
때문에 조기천은 한껏 신중한 얼굴로 새끼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가장 전면에 서 있던 무인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첫 번째 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섰던 그 순간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평탄한 반응.
조기천이 의아한 마음을 품었던 순간. 갑자기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이 무엇인지 머릿속으로 채 깨닫기도 전에 조기천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크윽!”새끼손가락이 생으로 뜯겨 나가는 듯한 엄청난 통증. 조기천은 늙은 몸뚱이 전신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을 참았다. 방금 하마터면 오른손을 진법 밖으로 뺄 뻔했던 것이다.
만약에 조금 전에 오른손을 진법에서 빼냈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여태껏 했던 모든 사전 작업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아슬아슬했다.’조기천은 고통으로 얼룩진 표정 속에서도 크게 안도했다.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이다. 그리고 조기천은 고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곧장 의구심을 품었다.
첫 번째 관문. 그 안에 점토 인형을 한 방에 부숴버린 무언가가 있었다. 형태도 움직임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체 뭐였던가?’아무래도 간접적으로 진법을 경험하는 상황이다 보니 반응이 한 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 관문 안에 있는 것을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조기천은 갈등했다. 다시 보낸다고 해서 안에 있는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첫 번째 관문만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확실하게 볼 수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일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조기천은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한꺼번에 들어가 본다.’한 명이나 두 명이 들어가서는 안에 있는 것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었다. 확실하게 하려면 남아 있는 점토 인형 넷을 한꺼번에 들어가게 해서 확인하는 방법뿐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조기천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으로 바닥을 빠르게 두드렸다.
톡톡톡톡-
그러자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네 명의 말 탄 무인들이 첫 번째 관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며 조기천은 각오를 다졌다.
안에 있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저 네 명 중 몇 명은 부서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조금 전에 겪었던 그 고통을 다시금 겪게 된다는 뜻이다.
‘버틸 수 있으려나.’한 번도 단련하지 않은 늙은 몸뚱이였다. 방금과 같은 고통을 또 겪는다면, 완전히 감당할 수 있는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기천은 곧 평소의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그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그가 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납득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때쯤 네 명의 점토 인형이 첫 번째 관문 입구에 도착했다.
‘한꺼번에 들어가야 된다.’조기천은 신중한 얼굴로 점토 인형을 배치시켰다. 그리고 마음의 각오를 다지며 점토 인형들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네 명을 안으로 밀어 넣었는데 역시 조금 전처럼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때가 중요했다.
네 명의 점토 인형의 시선으로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려는데 갑자기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퍼석-
순식간에 두 개의 점토 인형이 박살 난 것이다.
‘크윽!’조기천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에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놓는다면 말짱 헛수고였다. 재빨리 남은 두 개의 점토 인형을 조정해서 진법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되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두 개의 점토 인형을 안으로 밀어 넣자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첫 번째 관문 안은 널찍한 동굴이었다. 그 넓은 동굴 중심에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있었고, 물웅덩이에는 탁하고 음습한 독기가 가득했다.
‘여긴 뭐지?’그렇게 의문을 품는 순간.
퍽-!
다시금 하나의 점토 인형이 박살 나 버렸다.
조기천은 전신을 덮쳐오는 어마어마한 고통 때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하나 남은 점토 인형으로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체 뭐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조기천은 ‘놈’을 똑똑히 보았다.
‘이, 이건 말도 안 된다.’뱀이었다.
그것도 집채만 한, 엄청난 크기의 뱀.
머리에는 왕관 같은 붉은색 뿔이 돋아나 있었고, 온몸은 검은색 비늘로 뒤덮여 있는 거대한 뱀이었다. 그 뱀은 지금 동굴 천장에 붙은 상태로 조기천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랬다. 분명히 놈은 웃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본 것 같은 그 표정에 조기천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결국 봐버렸구나.]“……!”진법 바깥에 있던 조기천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계집처럼 비명을 지를 뻔했다. [넌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 돌아가라.]뱀의 거대한 꼬리가 휘둘러지는 것이 보이는 데서 조기천의 기억은 끊기고 말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