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60)
제260화 감사할 수 있는 자격(2015.07.06.)
“어떻게 보십니까?”초류향은 냉하영과 헤어진 뒤 곧장 천마신교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흑월회 측에서 제의한 것은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수뇌부 회의에는 팔대 호법들이 참석했고, 거기에 더해 오늘만 특별하게 사대 세가의 대표들도 동석했다.
“어렵습니다, 교주님.”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전박이었다.
그는 탁자 위에 올려놓은 주판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서찰 안에 있는 흑월회의 극비 사항들이 설령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본 교의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무리라 판단됩니다.”서찰은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초류향은 그것을 받은 그대로 가져와 탁자에 올려놓고 질문부터 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나중에 불만도 생기지 않고 실수가 없을 테니까.
“험험, 제가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겨서 그러는데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교주님?”우 호법.
그가 입을 열자 초류향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세요.”우 호법은 깍지 낀 손을 탁자에 올려놓으며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와 힘을 합치고 싶다는 것이 흑월회 측이 요구하는 전부입니까? 본 교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원하는 게 이것뿐이라면 이상하지 않습니까?”“……!”초류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랬다.
흑월회가 천마신교를 도운 보상이 저것뿐이라면 너무도 이상하다.
따지고 보면 저것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조건이지 흑월회에 유리한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근본적인 문제라 초류향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신중한 눈빛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초류향이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천하 제패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본 교와 손을 잡으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았겠지요.”아마도 냉하영이 진정으로 원하는 보상은 바로 천하 제패 이후에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초류향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는 천하 제패 이후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 이후에 생기는 막대한 기득권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흑월회.
그들이 문파의 존망을 걸고 움직였다면 그만큼의 보상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전 호법님.”“예, 교주님.”“만약 본 교와 흑월회가 천하 통일을 한다면 경제적인 이득이 얼마나 있을 거라 보십니까?”전박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주판을 빠르게 튕기며 계산하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닥-
한동안 회의장 안에는 전박이 튕기는 주판 소리만 울려 퍼졌다.
어느 순간 전박이 계산을 멈추고 초류향을 응시했다.
그러다 말했다.
“모든 세력들을 밀어 버리고 중원을 온전히 차지했을 경우 생기는 이득을 단순히 계산만 해 봐도 현재 천마신교 자금력의 서른 배 정도라 보입니다.”“……!”천마신교라는 거대 단체.
그런 단체에서 유통되는 자금력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 사천에서 소금 장사로 막대한 이득도 얻었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자금의 서른 배라면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금액이 아닌가?
“거기에 더해서…….”전박은 놀라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미건조한 어조로 더욱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 계산의 경우입니다. 무림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류를 통제하고, 그것을 하나로 단일화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저것의 몇 배가 될지…… 현재로써는 알 수가 없는 일이겠지요.”초류향은 입을 다물었다.
단순히 무림을 통일하겠다는 생각만 했지, 거기에 따른 막대한 이권과 그 규모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데 냉하영은 이미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잠시 고민하던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흑월회와 혈맹을 맺는 것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부담이 너무 큽니다, 교주님.”주 호법도 조심스럽게 부정적인 의견을 꺼내었다.
그 역시 흑월회와의 공조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신 그들이 극비 문서를 흑월회에 건네줘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그 점은 초류향도 마찬가지였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사대 세가의 대표로 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젊은 사내.
천씨 세가의 대표 천자후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초류향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서 역시 가장 걸리는 것은 저희가 흑월회 측에 공개해야 할 극비 문서에 들어갈 내용이 아닙니까?”“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하면 어째서 그 극비 문서의 내용을 누락시킬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초류향은 천자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너무도 노골적인 비난의 기색이 담겨 있어서 천자후는 잠시 마른침을 삼킨 뒤 대답했다.
“극비 문서 조작이 은인에 대한 도리가 아님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만 아니라면 현재 흑월회와 혈맹을 맺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습니까?”“……그건 거론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어째서 그런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천자후의 질문에 초류향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냉하영이라는 존재 때문이지.”“그녀에 대한 의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단체와 단체 사이에서 그런 사소한 의리나 신뢰쯤은…….”초류향은 손을 들어 천자후의 뒷말을 막았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다들 이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모두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는 걸 보니 그들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초류향은 얼굴을 찡그리다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이것을 처음부터 고려하지도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초류향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문서를 지그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저 안에 있는 내용물은 열어 보는 그 순간, 흑월회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을 만큼의 극비 문서일 게 확실합니다. 즉, 그녀는 완전히 혈맹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런 위험한 것을 저희에게 보낼 만큼 이쪽을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그건 그렇겠지요.”선우조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냉하영의 명성을 생각했을 때.
그녀가 이런 일로 수작을 부렸으리라 생각되진 않았다.
“그 신뢰를 배신할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초류향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치며 입을 열었다.
“바로 냉하영이라는 사람 자체입니다. 제가 판단했을 때, 그녀는 가볍게 속일 수 있는 여자가 아닙니다.”“…….”모두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문서 조작을 해서 흑월회를 속여 보고 싶다는 생각은 다들 하고 있다.
하나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 여우 같은 냉하영이 호락호락 속아 넘어갈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모두의 얼굴에 근심이 떠오를 무렵.
초류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역시 이런 것은 진솔하게 부딪쳐야 답이 나올 듯합니다.”그들이 무엇 때문에 곤란해하는 것인지 확실해졌다.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서 다시 협상하면 그만인 것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초류향은 탁자에 놓인 개봉하지 않은 문서를 들고 천천히 움직였다.
다시금 냉하영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귀빈실로 향한 초류향은 그곳에서 명상에 잠겨 있는 냉무기와 마주했다.
‘혼자 있는 건가?’귀빈실 주변에 감각을 날카롭게 세워서 훑어보아도 근방에는 냉무기 혼자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초류향은 기척을 흘리며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냉무기가 입을 열었다.
“손녀가 지금쯤이면 네가 올 것이라 하더군.”“…….”냉하영의 예측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초류향은 얼굴을 찡그렸다가 곧 피식 웃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한순간에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양보를 하고 협상을 해 가며 어느 정도 조율 과정을 거치는 게 필수였다.
초류향은 냉무기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야황께서는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곳에 혼자 있을 이유가 없겠지.”“그녀가 용케 자리를 비켜 줬군요.”초류향이 희미하게 웃자 냉무기의 무덤덤한 얼굴에 재미있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넌 아직 어설프다.”냉무기가 불쑥 던진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초류향은 잠시 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이다.
냉무기는 그런 초류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상 사람들의 말처럼 네가 정말 검황과 비등하게 싸운 것이라 보나?”“…….”초류향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검황 백무량과의 승부는 이미 지나갔지만 찜찜한 구석이 너무도 많이 남았다.
여러모로 검황의 실력이 초류향보다 모든 면에서 윗줄에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미미하고 작은 차이였지만,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놈은 너를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아마 변덕이었겠지만 그냥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절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초류향은 찌푸린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황 백무량은 천마신교가 확실하게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는 초류향이 불타 버린 천마신교를 보며 절망에 빠지길 기다린 것이다.
물론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 계산들이 초류향을 살려 보낸다는 명분 밑에 두껍게 깔려 있었다.
“하나 놈의 그런 욕심이 이제는 제 목숨줄을 위험하게 만들겠지. 실로 어리석은 놈이다.”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었다.
냉무기는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삼황급의 고수는 확실히 대국을 보는 식견이 달랐다.
‘나는 분명 과거의 사람들이 정해 놓았던 삼황이라는 기준에 도달했다. 하지만…….’초류향을 비롯한 후대의 고수들, 즉 적혈명과 구휘 등이 강해져서 삼황 수준으로 성장한 만큼.
그 긴 시간 동안 기존 삼황급의 고수들 역시 마냥 놀고먹지만은 않았다.
흑월야황 냉무기와 태극검황 백무량.
둘 역시 기존보다 더욱 높은 곳에 도달해서 그들을 굽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운이 좋은 놈이다, 너는.”앉아 있던 냉무기의 몸이 가볍게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곧 초류향과 눈높이를 맞추고 멈춰 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류향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펼친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 허공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경공술)에 깜짝 놀란 것이다.
“검황이 마음만 먹었다면 너는 그곳에서 죽었다.”“…….”초류향은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정말로 그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올 수 있었을까?
백무량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어렴풋한 느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백무량은 초류향을 상대로 힘 조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살아남기는 힘들었겠지요.”초류향이 바람 빠진 어투로 어렵게 인정하자 냉무기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놈을 죽이고 싶나? 공손천기의 제자.”냉무기의 말에 초류향은 눈을 번뜩였다.
그가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 홀로 기다리고 있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런 초류향을 보며 냉무기가 입을 열었다.
“너는 그 오만한 공손천기와 빼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녀석이다. 그놈은 기회를 마주했을 때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편이었지.”기회를 마주했을 때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말일까?
잠시 의문을 가졌던 초류향은 번뜩이는 해답을 찾아내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냉무기에게 읍을 해 보이며 예를 갖췄다.
“감사합니다, 야황.”“감사는 아직 이르다.”초류향은 냉무기의 냉정한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감사하기는 아직 일렀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냉무기를 상대로 반드시 무언가 얻어 내야만 했다.
그래야 일부러 이런 시간과 자리를 만들어 준 냉무기에게 진정으로 감사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전력으로 부딪친다.’진법을 사용해선 안 된다.
냉무기는 백무량처럼 방심하지 않을 것이고, 진법을 펼칠 시간도 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설픈 요행을 바랄 수 없는 절대적인 적.
초류향 몸의 근육들이 긴장으로 인해 팽팽하게 당겨졌다.
‘단 한 번.’냉무기를 마주한 초류향의 전신 근육들이 움찔거리며 쉴 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근육을 조였다가 풀며 상대방의 빈틈이나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하나 허공에 유령처럼 둥둥 떠 있는 냉무기의 전신에 빈틈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가만히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초류향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었다.
‘백무량. 너는 분명 큰 실수를 했다.’눈앞에서 죽일 수 있었던 적을 살려 둔 것은 분명 엄청난 실수였다.
백무량은 곧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피잇-
초류향의 몸이 제자리에서 사라지는 그 때.
냉무기의 눈가에 살기가 떠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