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61)
제261화 해답을 구하다(2015.07.09.)
냉무기는 생각했다.
‘이놈에게 크기에 맞지 않는 칼을 쥐여 줘도 될까?’초류향을 처음 보았을 때.
녀석이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했는지가 너무도 확연하게 보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벽 하나를 돌파하지 못했던 자신과 같은 위치가 아닌가?
나이를 고려하면 이놈의 성장은 너무도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하지만…….’이놈의 스승이 공손천기라는 희대의 괴물임을 감안하면, 어찌어찌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놈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그리고 냉무기는 그답지 않게 웃어 버렸다.
‘공손천기…….’그놈이 이 어린놈에게 어떤 수작질을 해 놓았는지가 훤히 보였던 것이다.
아마 몇 년 전의 냉무기였다면 알아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나 지금은 보였다.
공손천기가 저 아이의 머릿속에 무언가 거대한 것을 집어넣고 이리저리 주물럭거려 놓은 흔적.
그것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것이다.
‘재미있군.’그렇게 여유만만하고 오만방자했던 공손천기도 막판에는 정말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놈이 저 아이의 머릿속을 열어서 잘게 잘게 쪼갠 자신의 깨달음을 급하게 쏟아부은 티가 났다.
아마도 저 꼬마는 그것 때문에 한동안 바보 천치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더욱더 유심히 지켜보고 있자니 뭔가가 이상했다.
이리저리 아무리 둘러보아도 저건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손천기의 봉인을 부순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외부에서 개입을 했군.’이건 더더욱 흥미가 생기는 일이었다.
천하의 공손천기가 공들여 해 놓은 작업을 누군가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았다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은 저것의 정체를 알아보는 놈이 냉무기, 본인 말고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그것대로 너무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다른 놈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냉무기에게는 너무도 똑똑하게 보였다.
완벽하게 스며들지 못한 커다란 덩어리들이 초류향의 머릿속 여기저기 어지럽게 묻어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초류향이 저것들까지 다 흡수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가긴 하겠지.’하나 자신에게 그것을 도와줘야 할 이유가 있나?
흥미로운 일이긴 하지만 굳이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 냉무기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씁쓸하게 웃어 버렸다.
‘있군.’과거 공손천기와의 인연이 기억난 것이다.
그 이상한 놈이 자신에게 정말 퍽이나 비싼 밥을 먹여 놓은 모양이다.
그래서 냉무기는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친절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초류향이 움직인 것은 아마도 변화가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될 테니까.
그래서 달려들었고, 그것은 냉무기도 예상했던 바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냉무기는 피식 웃어 버렸다.
‘좋은 판단이군.’초류향이 달려드는 척하다가 곧장 뒤로 쭈욱 빠지며 거리를 벌리는 것을 보고 냉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은 적어도 무모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승부를 바꿀 순 없었다.
피윳-
공간을 쪼개며 덮쳐 오는 검날.
초류향과 냉무기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하지만 이미 거리 따위는 상관없었다.
‘심검.’야황 냉무기 역시 백무량과 마찬가지로 심검이라는 벽을 돌파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초류향도 예상했었다.
‘승부다.’눈에 보이지도 않는 심검을 피한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백무량의 심검을 상대로도 피하지 않았던가?
방법은 간단했다.
심연술을 극도로 집중해서 발휘하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심검이 느껴졌다.
‘하지만 피하면 안 돼.’초류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패배의 되풀이일 뿐이다.
현재 초류향에게는 심검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다.
확신이 없었기에 백무량의 심검에 사용하지 않았던 것.
‘수라환경과 월인도법을 합친다.’이것으로 과거 꿈속에서 인간이 아닌 괴물.
막수의 몸뚱이에도 구멍을 내지 않았던가?
이 순간은 그것으로 과연 심검을 상대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볼 절호의 기회였다.
‘심검이 보인다?’여기에는 냉무기도 솔직히 놀라 버렸다.
초류향은 지금 심검을 너무도 정확하게 인지하는 듯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피하지 않을 속셈이라 이건가?’태극검황 백무량과의 승부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냉무기는 전혀 모른다.
그냥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사실 냉무기는 이번에 초류향에게 그저 심검을 피할 방법을 알려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피할 방법이나 제대로 찾길 바랐는데…….’믿을 수 없지만 이놈은 아직 벽을 넘어서지도 못한 주제에, 심검을 보고 심지어 그것을 피할 방법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막아 낼 수 있겠나?’냉무기는 초류향이 양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있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저것이 아마 초류향이 마지막으로 걸고 있는 도박일 것이다.
‘벽을 넘어서지도 못한 녀석이 심검을 막을 비책이 있다?’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냉무기 역시 심검이라는 것을 처음 얻었을 때.
그 위력과 말도 안 되는 활용법을 깨닫고 나서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심검 외에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키이잉-!
초류향은 모으고 있던 양손 사이에서 만들어진 매우 작은, 좁쌀만 한 크기의 무언가를 앞으로 쏘아 보냈다.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
초류향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양손을 뻗어 내는 그 느릿한 동작이 냉무기의 눈에 천천히 그려졌다.
초류향이 내보낸 좁쌀만 한 무언가를 지켜보던 냉무기의 동공이 순간 크게 확장됐다.
동시에 그가 뿜어낸 심검과 초류향이 던진 좁쌀 같은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파아아앗-!
폭음은 없었다.
그저 엄청난 빛과 함께 초류향의 신형이 빠르게 벽을 향해 튕겨 나갔을 뿐.
콰콰쾅-!
초류향의 신형이 귀빈실 벽을 부수고 바깥에 있는 외벽과 충돌하려는 그 순간.
복면의 사내.
운휘가 그림자처럼 등장해서 그를 몸으로 받았다.
쿵-
엄청난 충격파가 전해져 오고 운휘가 발을 디디고 있는 돌바닥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후우우웅-
물결의 파장이 사방으로 넓게 퍼져 나가고 운휘의 입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나왔을 때.
바닥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쪽으로 터져 나갔다.
쿠콰콰콰쾅-!
운휘는 운석에라도 맞은 것처럼 파여 버린 바닥에 앉은 다음 초류향을 조심스럽게 안아 뉘였다.
그리고 품에서 단약을 꺼내어 그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크흑, 컥!”고통스러운 얼굴로 피를 게워 내던 초류향의 얼굴에 빠른 속도로 혈색이 돌아왔다.
운휘는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안도했다.
당장 위험한 고비는 넘겼기 때문이다.
잠시 기절한 초류향을 안아 들고 귀빈실로 들어간 운휘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 섰다.
‘이건…….’허공에 유령처럼 둥둥 떠 있던 냉무기.
그가 바닥에 내려앉아 가부좌를 튼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냉무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왔고, 전신에서는 수증기가 무럭무럭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내력으로 내상을 치유 중이다.’운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냉무기 주변에서 엄청난 기의 파동이 느껴졌던 것이다.
스스로 입은 치명적인 내상을 빠른 속도로 치유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냉무기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음…….”냉무기는 짧은 신음을 내뱉더니 곧장 입에서 검게 죽은 피를 왈칵 토해 냈다.
평소에 무감각하고 표정 변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냉무기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놀람과,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운휘 품에 안겨 있는 초류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았나?”냉무기의 나지막한 말에 운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보았냐고 물어봤는지 알아챘던 것이다.
최후의 격돌 순간을 운휘는 똑똑히 목격했다.
‘벽을 뚫고 튕겨 나간 것은 분명히 주군이셨지만…….’냉무기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초류향이 튕겨 나간 그 엄청난 반발력을 냉무기는 제자리에서 고스란히 감당했던 것이다.
“심검을 막아 내는 무공이 세상에 있다, 이건가…….”봐서는 안 될 무시무시한 것을 봐 버린 기분이다.
냉무기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기절해 있는 초류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초류향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였다.
눈을 뜨자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선우조덕이 보였고, 운휘가 그 곁에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주군.”운휘가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말을 걸자 초류향은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갈라지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꼬박 사흘을 쓰러져 계셨습니다, 교주님.”선우조덕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답지 않게 정말 크게 화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교주님은 오장육부가 완전히 뒤집어질 정도의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충격의 여파를 운휘가 감당해 주었고, 이놈이 적절하게 내상약을 복용시켜 드렸기에 지금 이렇게 살아 계신 겁니다.”“…….”초류향은 선우조덕이 진심으로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덕분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있을 때, 선우조덕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분노한 채 초류향과 운휘를 차례로 훑어보며 말했다.
“제가 교주님을 치료하면서 조금이라도 실수했거나 늦었다면, 아마 교주님은 죽거나 폐인이 되셨을 겁니다.”초류향은 선우조덕의 음성에서 전해지는 진심 어린 걱정에 순간 가슴이 뜨끔해졌다.
그래서 초류향은 선우조덕을 향해 손을 뻗어 그의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미안……합니다. 선우 호법님.”“…….”선우조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입술을 한일자로 꾸욱 다문 채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인생 다 산 듯한 표정으로 초류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교주님이 현재 본 교에서 어떤 위치에 계신지 알고 있습니까?”“…….”초류향은 눈을 깜빡이며 긍정의 눈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정말 미안한 얼굴로 선우조덕을 바라보았다.
선우조덕은 초류향의 태도에 한풀 꺾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신 분께서 이렇게 몸을 함부로 다루십니까? 이 늙은이, 정말 마음 같아서는 냉무기 그 작자를 당장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지만…….”“그……분은 어찌 되셨습니까?”초류향이 갑자기 생각난 듯 힘들게 묻자 선우조덕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겸사겸사 내상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아마 멀쩡하게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있을 겝니다, 그 망할 영감탱이는.”선우조덕답지 않은 거친 말에 초류향은 눈을 번뜩였다.
‘내상을 입었다?’그 말은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에 펼쳤던 무공이 효과가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음이 나왔다.
‘좋다.’초류향은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전신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내력을 끌어모으고, 그것을 한 덩이로 응집해서 몸 안의 균형을 빠르게 맞춰 갔다.
웅웅웅-
선우조덕과 운휘가 급하게 거리를 두고 있을 때.
잠깐 동안의 운기조식으로 상태가 확 좋아진 초류향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무래도 그분을 뵈러 가 봐야겠습니다. 직접 보고 이야기할 것이 있습니다.”“안 됩니다. 조금 더 몸을 보중하신 후에…….”“선우 호법님.”초류향은 진지한 얼굴로 선우조덕의 말을 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선우조덕 역시 묵직한 표정으로 초류향을 응시했다.
“항상 그렇지만 절 돌봐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그거야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교주님은 본 교의 주인이 아니십니까?”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정말 염치없지만 하나만 더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선우조덕은 얼굴을 흐렸다.
무언가 강력하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아마도 앞으로 몇 번 정도는 더 제가 이런 빈사 상태에 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그게 무슨…….”‘말도 안 되는 개소리입니까!’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이성이 가까스로 그것을 억눌렀다.
선우조덕이 입술을 푸들거리고 있을 때.
초류향은 그의 주름진 손을 가만히 잡으며 정말로 미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무래도 제가 검황을 잡을 해법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선우조덕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무언의 허락을 한 그 날부터 한동안, 선우조덕은 이미 없어진 공손천기와 초류향을 속으로 부단히 원망하는 처지가 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