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7)
제27화 우 호법보다 주 호법이 나은 이유?!(2013.04.15)
중국의 아주 오래된 책들 중에 산해경(山海經)이라는 것이 있다.
저자가 누구인지, 언제 기록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분명치 않지만, 거기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괴이한 신화나 전설, 요괴, 요마 등에 관련된 일화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곳에 보면 이무기에 대한 기록들이 나온다.
조기천 스승님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 초류향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될 정도로 무작정 뛰어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쫓으며 엄승도는 생각했다.
‘역시 아무리 봐도 평범해 보이는데.’교주님께서 직접 선택한 후계자. 그들이 사는 세상에선 신의 아이다.
그랬기에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타고난 골격이 작아 힘을 쓰기에 그다지 적합한 신체도 아니었고 또래에 비해 천부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의심은 거기까지였다. 엄승도는 딱 거기에서 의심을 멈췄다.
후계자를 선택한 것은 그가 아니다. 교주님이었다. 신의 대리인이자 천하제일인. 그런 사람이 선택한 아이니 분명 평범한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일 터.
그리고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그것이면 엄승도는 물론이고, 천마신교의 모두를 납득시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교주는 그들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헉, 헉헉.”엄승도는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가는 저 작은 아이를 바라보며 담담한 얼굴을 해 보였다. 생각해보면 저 아이는 이제 앞으로 그가 평생을 두고 지켜야 될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시간은 아주 많았다. 교주가 한 지금의 선택이 과연 어느 정도로 대단한 선택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차고도 넘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조급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스승님!”“왔느냐?”방 안에 있던 공손천기가 초류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우 호법과 주 호법은 읍을 하며 예의를 갖추었다.
하지만 초류향의 시선은 이미 그들에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침상 위에 초췌한 얼굴로 누워 있는 조기천 스승님에게 고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된 것입니까?”“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자. 이제 막 잠들었으니까. 여기서 시끄럽게 굴다가 깨면 곤란하거든.”공손천기는 파리하게 질려 있는 초류향을 억지로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리고 곧장 상황을 말해주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잠시 뜸을 들였다.
초류향은 인내심을 가지고 공손천기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이런 상황에서 재촉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의지와 다르게 몸은 솔직했다. 가늘게 떨리는 초류향의 팔을 보며 공손천기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진법에 뭔가 이상이 있는 모양이야.”“그게 무슨 말입니까?”“저 친구가 진법 안에서 괴상한 걸 봤다더구나.”“괴상한 것이라면…….”공손천기는 턱을 쓰다듬으며 히죽 웃었다.
“용(龍), 혹은 이무기가 있다더구나. 저 안에.”“……예?”이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초류향은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 얼굴을 보며 공손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안 믿기지? 나도 그렇다, 제자야. 근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저 친구라서 안 믿을 수도 없지 않겠느냐?”그랬다. 평소부터 농담과 장난을 극도로 싫어하던 조기천이었다. 그의 성격상 이러한 일로 거짓을 말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
한참 동안 공손천기의 얼굴을 살펴보며 말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려던 초류향은 곧 그런 생각을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진법 안에 있다는 그게 스승님에게 해코지를 했다는 말입니까?”“그렇다더구나. 실제로 내가 본 게 아니니까 믿기 어렵긴 하다만…….”초류향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스승님은 지금 어떤 상태인 겁니까?”“일단 기본적으로 가벼운 탈수 증상이 있고, 심적으로 많이 놀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건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는 거라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데…….”말을 잠시 멈춘 공손천기가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오른팔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저 친구 말로는 그 용인지 이무기인지가 팔을 가져갔다더군.”초류향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다시 방에 들어가 확인하려는 것을 억지로 잡아 세우며 공손천기가 말했다.
“걱정 마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팔이 없어지거나 떨어져 나간 게 아니니까.”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뜻인가?
“겉으로 보기에 팔은 멀쩡해. 다만 움직이지 못할 뿐이지.”“……!”“제법 쓸 만한 술법에 당한 걸 보니 안에 정말 저 친구 말대로 뭔가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공손천기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힘으로 부수자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되면 저 안에 있는 게 같이 부서질 테니 이쪽 입장이 곤란하단 말이야.”초류향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네가?”“예.”공손천기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결국 고개를 저었다.
“네 신안(神眼)이 나와는 전혀 다른 계통으로 열린 건 이미 알고 있었다만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나로서는 허락할 수 없다.”“전 할 수 있습니다.”고집스러운 얼굴.
공손천기는 그런 완고한 얼굴의 제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것인지 피식 웃었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 같은 얼굴이구나?”“…….”“하여간 제자가 스승님 말을 안 들어 먹는 건 본교의 오랜 전통인가 보다. 아주 역사가 깊구나.”공손천기가 그렇게 농담을 하며 히죽 웃자 초류향은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야 했다. 저 안에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여기서 진법에 대해 그나마 알고 있는 자신만이 파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류향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산법이라는 절대적인 비밀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공손천기가 말했다.
“제자야.”“예. 스승님.”“넌 저 방에 누워 있는 저 친구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내 제자이기도 하다.”“예…….”초류향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공손천기의 눈 속에서 제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스승의 진심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역시 이런 종류의 감정은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때 공손천기가 불쑥 초류향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난 이번에 새로 생긴 제자가 몹시 마음에 든다. 그러니 그 제자가 다치면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모르지.”“…….”“그런데도 꼭 가야겠느냐?”초류향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결국 다물었다. 공손천기 스승님의 말처럼 저 안에 들어가는 건 굉장히 무모하고 위험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냥 참고 있기엔 스스로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스승님이 저렇게 다치시는 동안 자신은 무얼 하고 있었던가? 희희낙락하며 천마신교의 후계자가 된 것만 내심 즐기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자책과 미안함이 혼합되어 더더욱 저 진법 안에 들어가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젠장 저 친구 말이 맞았군.”공손천기는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갑자기 투덜거렸다. 초류향이 의아한 눈빛을 보이자 공손천기가 말해주었다.
“아아, 저 친구가 쓰러지기 전에 진법에 대해서는 너에게 말을 꺼내지 말라고 하더구나. 아마 네가 이렇게 나올까봐 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실수해버렸다. 깨어나면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네.”“…….”“그만큼 저 안이 위험하다는 뜻인데 이젠 꼭 가야겠지?”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자가 한번 결심했으면 끝까지 가보는 게 맞는 거겠지. 그 끝이 뭐가 있든지 말이다.”승낙이었다.
초류향은 살짝 풀어진 얼굴로 공손천기 스승님을 향해 읍을 해 보였다.
“제자야. 그렇게 노골적으로 기뻐하지 마라. 이 스승님은 지금 마음이 몹시 복잡하니까.”“걱정하시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위험하면 바로 빠져나올 수 있겠지? 진법은 그래도 저 친구에게 좀 배웠을 것 아니냐.”“예.”“내가 어지간하면 널 제압해서라도 못 가게 하겠다만…….”공손천기는 초류향의 두 눈을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네 신안이 좀 특이한 종류라서 한 번 믿어보마.”“예.”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이번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짓겠다고 다짐했다.
* * *
“겸아, 내가 아까 말은 그렇게 멋있게 했다만 역시 그냥은 못 보내겠다.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부모의 심정이다, 지금.”임학겸은 슬쩍 웃었다. 근래에 계속 보게 되는 교주님의 인간다운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속하가 가보겠습니다.]공손천기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네가 가까이 가면 눈치 챈다. 저 녀석 눈이 좀 특별해서 말이다.”고민이 되었다. 제자의 신안은 임학겸이 제아무리 은신술의 대가라 하더라도 한 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때문에 그가 가게 된다면 십중팔구 들키게 될 테니, 자신이 도와주려 한다는 것마저 들키게 될 터. 그렇게 되면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사람을 보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건 별로 좋은 경우가 아니지.’여기까지 생각하자 아까 괜히 멋있는 척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공손천기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끙,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영감쟁이들을 불러와야겠다.”[……호법님들을 모셔오겠습니다.]임학겸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 중 하나와 자리를 교대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두 명의 인물이 달려왔다. 우규호 호법과 주상산 호법이었다.
“교주님!”“그래. 나 귀 안 먹었다. 작게 말해.”“무슨 일이십니까? 놈들이 쳐들어왔습니까?”“차라리 그게 낫겠다.”“허억?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까?”우 호법이 잔뜩 놀란 얼굴로 묻자 공손천기가 대답했다.
“제자 문제다.”“소공자님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그때까지 옆에서 듣고만 있던 주 호법도 놀란 얼굴이 되어 물어오자 공손천기가 말했다.
“아주 큰 일이 생겼지. 골치 아픈 일이야.”“속하가 해결하겠습니다.”우 호법이 먼저 나서자 주 호법이 옆에서 재빨리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
“너는 빠져 있어라. 교주님, 속하에게 맡겨주시지요.”“보기 좋은 모습이군. 누가 좋을까…….”기대를 담아 자신을 응시하는 두 명의 호법을 바라보며 공손천기는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머릿속에 떠올리곤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생각해봤을 때 이번 일은 우 호법보다는 자네가 낫겠어.”공손천기가 주 호법을 턱짓으로 가리키자 주 호법의 얼굴에는 기쁨이, 반대로 우 호법의 얼굴에는 절망과 서운함이 떠올랐다.
“교, 교주님.”“왜?”우 호법이 잔뜩 죽을상을 한 채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든 속하에게 맡겨만 주신다면 이 녀석보다는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공손천기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안 돼.”“크하핫! 이 구질구질한 녀석아, 교주님의 말씀을 못 들었느냐? 네놈은 나에게 안 된다.”“크윽!”공손천기는 희비가 엇갈리는 둘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우 호법. 자네는 이번 일을 하기에 덩치가 너무 커.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예?”우 호법이 의아한 얼굴을 할 때. 공손천기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주 호법이 왜소하니까 아무래도 이런 일에는 잘 어울리겠지. 크흐흐.”주 호법은 왠지 공손천기의 웃음소리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어 그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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