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70)
제270화 뇌력환(2015.08.10.)
흑월회는 본래 사파의 여러 문파가 연합 형식으로 모여 유지되는 일종의 공동체 집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본적으로는 회주의 명령을 듣지만, 각자의 문파가 위치해 있는 지역에서만큼은 회주의 발언권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아오며 그 영역을 대표하는 거대 문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흑월회의 특성을 잘 고려해서 정도맹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흑월회 소속 문파 지룡문.
그곳의 문주인 임한석은 갑자기 쳐들어온 남궁세가의 고수들을 보며 낮게 이를 갈았다.
“이 개자식들!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나 있느냐?”“물론이다.”“이런 짓을 하고도 흑월회가 네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으냐?”“가만있지 않으면?”촤아악-!
남궁세가의 정예들을 이끌고 온 세가 직속 무력 집단인 천왕검대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주변을 휩쓸며 입을 열었다.
“흑월회 따위가 뭘 어쩔 건가?”“이, 이 자식!”임한석이 손에 들고 있던 겸(鎌, 낫)을 자신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놈을 향해 집어 던졌다.
“흥!”가벼운 코웃음과 함께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낫을 가볍게 위로 쳐 날린 중년인.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세옥은 임한석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조만간 다른 곳에서도 친구들이 따라갈 테니 외롭지는 않을 게다.”“이 자식…….”남궁세옥은 검을 휘두르며 임한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주변에서 피와 비명들이 터지기 시작했으며, 정확히 한 시진(두 시간)이 지난 뒤에는 지룡문이 있던 자리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남궁세가의 무인들밖에 없었다.
“모두 정리가 끝난 게냐?”“예.”남궁세옥은 검 끝에 뭉쳐 있던 핏물을 닦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남궁세가 소속의 최강 고수이자 화경의 고수인 창천검군 남궁윤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서 있었다.
“한데 옥빈이는 어디 있느냐?”“아, 아마 도망친 잔당들을 추적하고 있을 겁니다.”남궁세옥의 대답에 창천검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정마대전의 시작인가…….”“예. 전 사실 이번 일이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사파의 해충들을 전부 다 정리해 버릴 수 있으니 참 마음에 드는 작전입니다.”정도맹 군사인 상관중달의 계책.
그것은 바로 각 지역에 있는 무림맹 소속 단체들을 이용해서 흑월회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은 적어도 전쟁 초반인 지금은 확실하게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대규모 병력이 움직인다면 흑월회의 눈을 속일 수 없겠지만……. 지금처럼 각 지역의 문파들이 움직이는 정도야 놈들의 정보망에 걸려들지 않지요. 설사 걸리더라도 지원을 요청하기엔 너무 늦을 테고.”상관중달이 간만에 괜찮은 작전을 짠 것 같다고 남궁세옥이 칭찬하려 할 때.
남궁윤호가 어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작전은 좋다. 하지만…….”“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으십니까?”남궁세옥이 의아한 얼굴을 할 때.
남궁윤호가 입을 열었다.
“지룡문처럼 작은 문파만 쳐서는 기습이 성공해도 별 의미가 없지. 위험부담이 조금 있더라도 덩치가 큰 문파들을 중점적으로 부숴야 한다고 생각한다만…… 군사가 다 생각이 있겠지.”그랬다.
상관중달은 이런 염려마저도 이미 다 계산해 두고 있었다.
그렇게 천마신교가 강호에 다시 한 번 이빨을 들이밀려고 할 때.
한편으로는 정도맹 역시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정도맹의 움직임을 흑월회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흑월회의 각 지역 지부장들에게 속속 급보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흑월회 소속 문파들이 입은 처참한 피해를 알리고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흑월회에 소속된 수십 개의 중소 문파들이 박살 나거나 몰살당한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군사님의 말처럼 됐는데…….”흑월회의 군사 냉하영.
그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대비책 역시 이미 모든 문파에 퍼져 나가 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흑월회 전체에 내린 명령은 단 하나.
[이번 작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버티는 거예요. 어떻게든 최대한 오래 버티면서 시간을 끌어 줘요. 그 사이에 제가 천마신교를 이용해서 놈들을 박살 내고 올 테니까.]적들에게서 도망쳐도 좋다.냉하영 그녀가 흑월회 소속 고수들에게 원한 것은 절대 죽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있으라는 명령이었다.
‘근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냐고…….’강호에서는 명예가 목숨보다 소중했다.
이름값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살고 했으니까.
그런 냉엄한 현실 속에서 적들이 쳐들어온다고 몸을 피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무조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지켜 내야만 했다.
도망쳤다가는 목숨이야 건지겠지만 목숨을 뺀 나머지 모든 것을 잃게 될 테니까.
‘이제 선택해야 할 시간인가…….’흑월회의 지부장들은 각자 고심한 끝에 냉하영이 지시했던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현재 흑월회가 맡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간을 버는 것.
천마신교가 사천 지역을 통과하여 정도맹을 완전히 박살 낼 때까지.
단지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버티기만 해서는 재미가 없지.’흑월회의 각 지역 지부장들은 은밀히 미소 지었다.
흑월회의 약점을 정도맹이 알아냈듯이 그들도 이미 정도맹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흑월회가 정도맹의 아픈 약점을 정확하게 찌를 준비를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흑월회의 냉하영과 정도맹의 상관중달 간의 두뇌 싸움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 * *
초류향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자가…….’적혈명은 목숨을 도외시한 채 공격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상대가 가장 힘겨웠다.
저 정도의 고수가 스스로의 방어를 아예 하지 않고 공격만 해 온다는 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초류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초류향은 적혈명의 공격을 최대한 흘려 내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딱 한 번. 딱 한 번의 기회만 있으면 된다.’하나 적혈명의 공격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초류향의 목숨을 노려 왔고, 덕분에 초류향 역시 초조한 얼굴로 그 공격을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척에서 공격을 주고받았을까?
어느 한순간 초류향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적혈명의 불편한 왼쪽 팔이 일시적으로 흔들렸을 때.
몸의 전체적인 균형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그 찰나의 순간, 초류향은 적혈명의 왼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이 자식이?’적혈명은 초류향의 속셈을 읽었기에 낮게 이를 갈며 몸을 빠르게 회전했다.
하나 초류향 역시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적혈명의 몸을 따라 빠르게 돌며 더더욱 적혈명의 왼쪽 팔에 달라붙었다.
‘빌어먹을.’적혈명은 선택을 해야 했다.
이놈이 이 이상 가까이 붙게 된다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하게 될 것이다.
적혈명은 이를 악물고 검을 찔렀다.
푸욱-
검 끝이 고깃덩이를 관통하는 섬뜩한 느낌.
적혈명은 스스로 불편한 왼쪽 팔을 찔러서 그것을 통과한 검 끝으로 초류향의 심장을 노린 것이다.
‘지독하군.’적혈명의 강렬한 집착이 느껴졌기에 초류향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사실 이것이야 말로 초류향이 원하던 가장 최적의 그림이었다.
초류향은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 오는 검을 향해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았다.
‘잡는다.’찔러 오는 검날을 양 손바닥으로 압박해서 잡아 누를 생각이었다.
쿠우웅-!
엄청난 무게감과 함께 적혈명은 얼굴을 찡그렸다.
팔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저절로 이가 갈릴 정도였다.
한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내력 대결을 하자 이거냐?’초류향이 원하는 것은 순수한 내력 대결이었다.
누구의 내력이 더 강한지, 얼마나 내력을 잘 조절할 수 있는지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제법 똑똑했다만…….’분명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초류향이 유리한 것이 맞았다.
서로의 무공 수위가 비슷하기에 내력의 양도 아마 엇비슷할 것이다.
한데도 초류향이 이런 도박 아닌 도박을 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지금 적혈명은 무척이나 지쳐 있고, 굉장히 불리한 자세로 내력 대결을 해야만 하니까.
게다가 자신감도 있었다.
수라환경과 월인도법이라는 희대의 기공을 익히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너는 지금 큰 착오를 한 것이다.’적혈명은 속으로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북해빙궁의 내력은 그 얼음장과 같은 차가운 성질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순수한 내력 대결에서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했다.
치지지직-
적혈명의 검날에 금방 새하얀 서리가 끼며 엄청난 냉기가 초류향의 두 손바닥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초류향 역시 내력을 모아 냉기를 밀어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건…….’내력이 마치 끈끈한 풀처럼 초류향의 두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더니 빠르게 온도를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내력 대결에서는 밀리지 않았지만 체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류향은 애써 침착한 얼굴을 해 보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크게 동요했다.
처음 접해 보는 종류의 내력에 당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흔들림을 적혈명은 단번에 눈치챘다.
‘죽어라, 멍청이.’북해빙궁의 사람에게 내력 대결을 거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그런 기본 상식을 모를 줄이야…….
절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적혈명은 내력을 잡았다 당겼다 하며 냉기를 천천히 초류향의 몸속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큰일이다.’양쪽 손바닥을 타고 차가운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기 시작했다.
저절로 오한이 들고,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초류향 입장에서는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공포였다.
‘방법이 없나?’냉기가 팔목을 지나 순식간에 팔꿈치까지 뻗어 왔다.
양손에서 감각이 사라지고 초류향의 두 팔에 새하얀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저, 저런!”멀리 떨어진 뒤쪽에서 지켜보던 우 호법이 발작하며 발을 동동 구를 때.
초류향의 어깨까지 새하얀 얼음 알갱이들이 덮이기 시작했다.
‘위험하다.’정말 위험했다.
양쪽 팔의 감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내력을 끊임없이 불어넣고 있었기에 내력의 힘에서는 밀리지 않았지만 체온이 떨어지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어리석었다.’다 이겼던 승부였다.
상대방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덕분에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지 못했다.
그때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이런 위기를 맞이할 리가 없었다.
초류향이 어두운 얼굴로 스스로의 두 팔을 바라볼 때.
불현듯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가능할까?’하나의 가능성.
그것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초류향은 호흡을 골랐다.
지금은 가능한지 아닌지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가만히 서서 죽음이 오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뇌력환.’내력 대결을 하는 도중인데 무공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 뇌력환 자체가 워낙에 특이한 무공이었기에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문제는…….’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뇌력환을 쓴다면 성공하더라도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였다.
초류향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상념들이 가득해졌다.
‘하지만…….’초류향도 알았다.
지금은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초류향은 단전에서 끌어온 두 가지 다른 성질의 기운을 양쪽 팔로 내려 보냈다.
감각이 없었기에 적당한 양을 조절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간다.’두 개의 다른 성질의 내력이 양쪽 손바닥에 모이고, 그것이 어느 순간 중간에서 뒤섞이며 엄청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