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71)
제271화 최강의 호위무사(2015.08.13.)
공손아리는 꿈속에 나타난 낯선 사내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사내아이는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그리고 있다가 곧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곤란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쪽 모습은 몰라보려나?”“아뇨. 알아볼 수 있어요, 아빠.”공손천기.
그는 달라진 모습에도 불구하고 바로 자신을 알아보는 딸을 기특하다는 얼굴로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다 웃으며 말했다.
“우리 딸, 요즘 고생이 많지?”공손천기의 걱정 가득한 물음에 공손아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공손천기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그와 눈높이를 맞추며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요, 아빠. 너무너무.”“…….”공손천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운 얼굴로 그의 딸을 응시했을 따름이다.
그러다 공손천기는 자신의 작은 손을 뻗어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나저나 잠깐 안 본 사이에 많이 이뻐졌다, 우리 딸. 이제 시집보내도 되겠어.”“…….”“초류향, 그 녀석이 엄청 답답하게 굴지? 이쁜 우리 딸이 그놈 좀 이해해 줘라. 매일 공부에 수련만 하던 녀석이라 연애 같은 건 전혀 모르거든.”공손천기가 딸의 머릿결을 정리하며 달래듯이 말하자 공손아리는 힘들게 웃어 보였다.
초류향의 이름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울렁거려서 그에 관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고 싶지 않았다.
‘……교주님 바보, 멍청이.’누가 봐도 초류향은 그녀를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둔한 공손아리조차도 그 사실을 알았다.
너무도 뻔히 보였으니까.
한데 그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나쁜 사람.’오히려 초류향은 어떻게든 자기를 밀어내려고만 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 깊은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시에 공손아리는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초류향은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초류향답지 않았다.
늘 보여 주던 이성적이고 자신만만한 모습이 아닌, 자신만 보면 갈팡질팡하고 약해지는 초류향의 모습은 공손아리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다.
그래서 떠나 준 거였다.
천마신교를 떠나던 그 날을 생각하자 공손아리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그때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그러니 힘들어도 기다려. 그놈이 반드시 널 찾아낼 테니까.”애써 웃어 보인 공손아리는 자신의 머릿결을 정리하던 공손천기의 손을 잡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거기는 좀 어때요, 아빠?”“여기? 여기야 뭐, 그럭저럭 지낼 만하지. 잔소리쟁이 영감들이 많아서 좀 피곤하긴 하지만 그거야 아래쪽도 마찬가지였으니 다를 바가 없고. 근데 일이 너무 많아, 귀찮게.”공손아리는 작게 투덜거리는 공손천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거기서 엄마는 만나 봤어요?”“네 엄마?”“네.”공손천기는 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만나 봤지.”“어땠어요?”“어땠을 거 같으냐?”“여전히 예뻐요?”공손천기는 거만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말했다.
“최고지. 역시 세상에 그 여자밖에 없다.”“와…….”공손아리가 감탄을 터트리자 공손천기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렇게 오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딸. 이제 아빠가 찾아오는 일은 없을 거야.”“왜, 왜요……?”공손아리가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똑똑한 우리 딸도 알잖아? 원래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아빠가 오늘 이렇게 찾아올 수 있었던 것도 뒷방 영감쟁이들이랑 합의를 봐서 가능한 거거든.”“합의요? 무슨 합의요?”“응. 사실은 지금 우리 딸 꽤 위험한 상황이거든.”“제가 위험하다구요, 아빠?”“응. 꽤나 위험하지.”하나 공손천기는 히죽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도와주려고 온 거야. 마지막으로.”공손천기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뿅하는 소리와 함께 공손아리의 바로 앞에 새하얀 토끼가 나타났다.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는 흰색 토끼.
“막수 님……?”“그래. 막수라는 건방진 토끼지.”공손아리가 갑자기 등장한 막수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 보일 때.
공손천기는 다짜고짜 막수의 귀를 잡더니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봐, 돼지 토끼.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서 밥값을 해라, 게을러빠진 놈아.”[…….]“대체 언제까지 잘 생각이냐? 슬슬, 네가 나랑 한 약속을 지킬 차례다.”부르르-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막수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떨고 있는 막수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으며 공손천기가 말했다.
“너무 먼 곳까지 여행 갔잖느냐? 서쪽 바다는 너무 멀어. 슬슬 돌아와라. 기다리기 지친다.”[…….]몸이 펄떡펄떡거리긴 해도 막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공손천기는 자신의 부름에도 눈을 뜨지 않는 막수를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음흉한 얼굴로 막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아! 그러고 보니 손오공이 네 탐스러운 엉덩이를 다시 보고 싶다고 전해 달라더라. 아주 귀여워서 미치겠다던데?”[……이, 이 개자식!]눈을 감고 있던 막수가 갑자기 번쩍 눈을 뜨며 사납게 몸을 일으켰다.
공손천기는 재빨리 공손아리의 정면을 막아서며 기운을 모았다.
[빌어먹을 원숭이 새끼! 쳐 죽여 버린다!]쿠콰콰콰쾅-!엄청난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공손천기가 만들어 놓았던 꿈의 공간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유리 조각처럼 박살 난 공간에서 공손천기가 엷은 미소를 띤 얼굴로 공손아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건강해라, 우리 딸.”그게 공손아리가 들은 공손천기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 * *
공손아리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복슬복슬한 두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막수의 모습이었다.
막수는 사방을 휘휘 둘러보더니 분노에 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크으으…… 그 새끼 어디 갔어?]“네? 누구요?”[손오공 그 원숭이 새끼!]막수는 분노한 음성을 토해 내다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이건?]쿠콰콰쾅-!바깥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공손아리는 마차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폭발음에 깜짝 놀라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마차의 창 밖으로 피투성이가 된 선우초린이 눈에 들어왔다.
“무공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하긴 합니다. 이건 마치 마녀들이 쓴다는 마법 같지 않습니까?”안토니오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자 옆에서 지켜보던 그레고리가 무거운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양을 조절했다고는 하나 설마 인간이 맨몸으로 대포를 받아 낼 줄이야…….”“그러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레고리 경. 저 노란 원숭이 놈들에게는 처음부터 마음껏 대포를 사용해도 될 거라구요. 경의 잘못된 판단으로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으음…….”그레고리는 마뜩잖은 얼굴로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맨 처음에 그는 이번 일을 대단히 쉽게 생각했다.
고작해야 여자들 몇 명을 사로잡는 일이다.
어려울 게 무어가 있겠는가?
한데 채찍을 든 여자 하나가 마차에서 내리면서부터 일이 더럽게 꼬여 버렸다.
‘저 여자 혼자서 우리 쪽의 훈련된 성기사를 무려 서른 명이나 죽였다.’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급하게 화승총을 꺼내어 저 여자의 다리를 맞추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을 뻔했다.
“그런데 정말 이런 짓을 해도 되겠는가? 가급적 인질이 다치지 않게 해 달라는 이 나라 황족의 부탁이 있지 않았나?”“어차피 공손아리라는 여자만 인질로 사로잡고 교주를 유인해서 처단하면 저희들의 임무는 끝나는 겁니다. 굳이 그자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는 임무가 끝나자마자 이 나라를 뜰 테니까요.”“으음…….”그레고리와 안토니오가 그렇게 자기 나라 말로 수군덕거리고 있을 때.
한편에서 선우초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빌어먹을…….’입에서 한 움큼이나 되는 피가 흘러나왔다.
왼쪽 다리도 호신강기를 뚫고 총알이 박히는 바람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태인 것이다.
사실 맨 처음 놈들이 대포를 쏘려고 했을 때.
선우초린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선 안 되었지.’그녀 정도의 절정 고수라면 다리를 다쳤다고는 하지만 놈들이 작당하는 동안 여유롭게 대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몸을 피한다면 뒤에 있는 마차에 대포알이 명중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소군주님은 무사하시니까…… 그걸로 됐어.’지금 선우초린이 아쉬운 것은 단 하나.
마차 위에 은신해 있는 린과 령만으로는 공손아리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
[푸흐흐, 거참 꼴 한번 보기 좋구나. 내 언젠가 네가 그 꼴이 될 줄 알았지. 아주 속이 다 후련하다.]“……!”선우초린은 자신의 발목 부근에서 들린 음성에 깜짝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어느새 막수가 뒷발로 서서 오만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던 것이다.
막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보는 선우초린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왜? 이 몸의 등장이 그렇게 기쁘더냐, 계집아?]선우초린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슬며시 웃어 보였다.
이제는 안심할 수 있었다.
최강의 호위 무사가 긴 잠에서 깨어났으니까.
‘너희들은 이제 뒈졌다.’선우초린은 미친년처럼 실실 웃더니 그 상태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런 그녀를 가볍게 받아 내며 막수는 입을 열었다.
[서쪽 바다 너머에서 온 노랭이들은 잘 들어라. 지금 당장 물러가면 이 어르신이 넓은 아량을 베풀어 여태까지 있던 사고는 없던 일로 해 줄 테니 당장 꺼져라.]“허, 허억!”“토, 토끼가 말을 한다!”그레고리와 안토니오를 비롯한 바다 너머에서 데려온 병력들.그들 전부가 일시적으로 경악하며 입을 쩍 벌렸다.
[귀찮은 놈들. 빨리 꺼져.]막수가 성가시다는 얼굴로 재차 말하자 다시 한 번 교황청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사, 사탄의 종자다! 악마가 나타났다!”사태를 지켜보던 안토니오가 기겁한 얼굴로 말하자 주변에 있던 모두의 얼굴에 언뜻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사탄이나 악마라는 단어는 그만큼 무서운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나 동시에 그들이 반드시 처단해야 할 숙적이기도 했다.
스르릉-!
“놈의 간교한 말에 겁먹지 마라. 우리에게는 신의 가호가 함께한다.”그레고리가 검을 빼내어 들며 비장하게 말하자 그를 바라보던 교황청 소속 기사들의 얼굴 한가득 경건함과 사명감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교황청 소속의 성기사들.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던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그레고리가 작게 중얼거리자 그의 주변에 있던 성기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내 들었다.
스르르르릉-!
그 모습을 보던 그레고리가 막수를 칼로 가리키며 엄숙하게 소리쳤다.
“사탄을 처단하라!”“우와와와!”교황청의 기사들.
무공이란 것을 전혀 익히지도 못한 그들이 무거운 갑주를 입고 막수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막수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교황청의 기사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무공을 아는 인간들도 우스울 지경인데 모르는 놈들이니 오죽하겠는가?
[새롭게 얻은 힘을 이렇게 빨리 써먹게 될 줄이야…….]과거에도 강했지만 지금의 막수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그랬기에 막수는 배를 빵빵하게 만들 정도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켜고는 히죽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