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73)
제273화 함정(2015.08.20.)
백무량은 심각한 얼굴로 문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바로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이 사천 지역에서 물러나고 있다는 첩보였다.
“흑월회의 군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나군.”씁쓸했다.
천마신교와 새외의 세력들이 부딪쳐서 서로가 피해를 입었어야 했는데 이건 예측과는 너무도 다른 결과가 아닌가?
“군사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러다가 흑월회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천마신교를 맞이하게 생겼는데?”곤란했다.
아직 정도맹이 생각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천마신교가 도착하기 전에 흑월회 쪽을 완전히 소탕할 계획이었습니다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뜻밖의 사태에도 상관중달은 침착했다.
흑월회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다고는 해도 그들은 딱히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현재 흑월회가 두려운 이유는 단 하나. 흑월야황 냉무기 때문입니다.”“그렇겠지.”흑월야황 냉무기.
그가 은거했다고 알려져 있는 동안에도 천하는 그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한데 그가 바깥으로 나오자 상황은 정도맹에게 더더욱 안 좋게 흘러갔다.
흑월회의 깃발 아래로 수없이 많은 문파들이 몰려들고 있었던 탓이다.
“저희가 흑월회를 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더 이상 흑월회의 덩치가 커지기 전에 경고를 하기 위함이죠. 그 점에서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정도맹의 경고는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냉무기의 이름을 보며 몰려들었던 문파들이 조금 신중하게 떨어져서 사태를 관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상관중달은 지도를 펴 사천성의 인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천마신교의 정예들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그놈들이야 뭐…… 애초부터 힘으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 없지. 이번에 교주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야.”백무량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놈을 죽여 버리고 최대한 빠르게 천마신교의 잔당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번째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두 번째 문제.
그것을 상관중달이 말하기도 전에 백무량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황을 말하는 거겠지?”“예. 그를 제거하는 게 먼저입니다. 가능하면 천마신교가 도착하기 전에요.”상관중달은 하나의 서찰을 꺼내어 백무량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본래 계획대로, 그의 유일한 핏줄인 흑월회주 냉파천을 이번에 저희가 은밀하게 확보했습니다. 문제는 냉무기가 그를 과연 구하러 올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정도맹이 이번에 흑월회를 동시다발적으로 습격한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들의 세력을 약하게 만들기 위한 산발적인 공격.
이건 단순히 겉으로 내세우기 위한 구실이었다.
숨겨진 의도는 바로 흑월회주의 납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했다.
“확실히 야황 냉무기가 자신의 핏줄을 구하러 올지는 알 수가 없군. 워낙에 속이 시커멓고 음흉한 놈이니까. 한데 놈이 만약에 그곳으로 찾아온다면…….”백무량은 흐릿하게 웃었다.
“나에게 맡겨 두게. 놈은 그곳에서 죽을 것일세.”야황 냉무기가 어느 정도의 고수일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백무량은 확신했다.
공손천기가 없는 이상 천하에 그의 적수는 없다고.
“제가 드린 서찰에는 현재 흑월회주 냉파천이 감금당해 있는 장소가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과 똑같은 정보가 조만간 냉하영을 통해서 냉무기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백무량은 서찰을 꺼내어 읽은 후, 그것을 불태우며 말했다.
“정말 기대되는군. 피도 눈물도 없다고 알려진 야황 냉무기가 과연 친아들을 위해 직접 움직일 것인지……. 확실히 알고 싶어지는 부분이긴 해.”명성에 비하면 냉무기에 관한 정보는 거의 세상에 알려진 게 없었다.
그의 엄청난 무공 실력조차도 소문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이건 그냥 단순히 내 예감에 불과하지만…… 그놈은 자신의 아들을 구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아마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함정에 빠지러 올 것이네.”“…….”이게 무슨 소리일까?
상관중달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해 보이자 백무량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늙은이의 단순한 희망 사항일 수도 있겠지만, 그놈도 아마 나만큼 궁금할 거야. 나 역시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거든.”삼황.
태극검황, 흑월야황, 암흑마황.
그들의 시대는 분명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천하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했다.
태극검황 백무량.
그는 그들의 시대가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승부를 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와 암흑마황의 승부는 이미 천하에 다 알려졌지. 그 싸움에서 내가 놈에게 패배했지만 그 결과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네. 공손천기 그놈은 정말 괴물같이 강했으니까.”놈의 실력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했다.
분하고 화가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과만큼은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자네도 궁금하지 않나? 나와 냉무기. 둘 중에서 누가 더 위에 있을지.”상관중달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역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누가 더 셀까?
단순하지만 그만큼 아주 원초적이고 직선적인 호기심이었다.
“나는 사실 언젠가 죽기 전에는 결과를 보고 싶었거든. 삼황 중에서 누가 가장 강한지 알고 싶었지. 그리고 이번에 내가 판을 벌여 줬으니 분명 냉무기는 그것을 핑계 삼아 나를 찾아올 거라 생각하네.”둘은 지금까지 굳이 서로가 서로에게 전력으로 달려들 만한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이번에는 명분이 생겼으니 정면으로 붙게 될 것이다.
“아무튼 놈이 찾아올 그 날이 무척 기대가 되는구만.”태극검황 백무량의 얼굴에 서서히 열기가 떠올랐다.
* * *
냉하영은 자신의 손에 들린 문서를 구겨서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이마에 손을 짚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방심했어.”정도맹이 진정으로 노렸던 것.
그것은 흑월회의 세력 감소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를 노리고 있을 줄이야…….”흑월회주 냉파천.
그의 신병을 확보한 정도맹은 냉하영에게 천마신교와의 동맹을 끊으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하나 냉하영은 확신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내세우기 위한 명분일 뿐, 사실은 냉무기에게 냉파천을 구하러 오라는 압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건 함정이에요, 할아버지. 알고 계시지요?”냉하영의 뒤에 가만히 앉아 있던 냉무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냉무기의 무덤덤한 얼굴을 바라보던 냉하영은 결국 고개를 떨구며 입을 열었다.
“……아빠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할아버지는 지금 그곳에 가시면 안 돼요.”“그것도 알고 있다.”천마신교와 냉하영.
그들이 지금 함께 움직이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힘을 한곳에 집중해서 단번에 정도맹을 쓸어버리기 위함이다.
지금 그 힘이 분산되었다가는 양쪽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내가 멍청했어요. 상관중달이 이런 계획을 짜고 있을 거라고는 정말 예상도 하지 못했어요. 제 탓이에요.”“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변변찮은 놈 편을 들어 줄 필요는 없다.”“하지만…….”분명히 신경을 썼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일이다.
자신이 흑월회의 정예 병력을 일부러 외부에 빼놓지만 않았더라도 흑월회주 냉파천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납치당하지는 않았을 터.
“제 실수로 벌어진 일이니 제가 해결해 볼게요. 그러니 할아버지는 이번 일에 절대 나서지 마세요.”냉무기는 자신의 손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본래부터 무심한 사람이라 가족들의 일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런 것에 관심도 없었지. 생각해 보면 너희에게 참으로 무정했다.”“…….”냉하영은 얼굴을 찡그렸다.
냉무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건 내가 잘하는 일이고, 네가 기대도 될 만한 일이다.”냉무기는 냉하영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아비의 일은 걱정하지 마라. 이것은 네 일이기도 하지만 내 일이기도 하다. 나는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하, 할아버지…….”
최근에 냉무기는 변했다.
초류향과의 비무에서 무언가를 보았음일까?
그때부터 냉무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물론 무심하고 무덤덤한 말투와 표정은 평소와 같았지만, 주변에 풍기는 분위기에 예전과는 달리 묘한 따뜻함이 있었다.
“애초에 그쪽에서 이런 함정을 짠 것도 네가 아니라 나를 노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나서는 게 맞다.”냉무기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게다가 놈들은 아직 나를 모른다.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이상 어떤 함정을 펼쳐 놓았든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흑월야황 냉무기.
그는 삼황이었다.
그 앞에는 어떤 함정이나 암습도 무의미한 것이다.
그를 죽이는 방법은 단 하나.
정면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워 힘으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는 없다.
“엽아.”“예, 스승님.”냉하영의 뒤쪽.
그곳에 서 있는 시엽을 바라보며 냉무기가 말했다.
“내 손녀를 네게 맡겨도 되겠느냐?”시엽.
그는 그의 스승이자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무인 앞에서 공손한 태도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제자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냉무기는 옅게 웃었다.
그것은 정말 미묘한 웃음이었지만 평소의 그를 잘 알고 있는 시엽과 냉하영에게는 정말로 엄청난 변화였다.
“그렇다고 목숨을 걸지는 말아라. 네가 죽으면 저 아이가 슬퍼할 게 아니냐?”핵심을 불쑥 찌르는 냉무기의 말에 냉하영이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 할아버지…… 쓸데없는 말까지 안 하셔도 돼요.”“그래. 알아서 잘할 거라 믿겠다.”시엽과 냉하영 사이에 잠시 어색한 기운이 흐를 때 냉무기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없어도 교주가 있으니 계획의 진행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예, 그렇긴 하지만…….”만약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냉하영의 얼굴이 급격하게 흐려졌다.
그녀답지 않게 진한 슬픔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최악의 경우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를 기다리지 마라.”“할아버지…….”냉하영을 바라보는 냉무기의 무표정한 얼굴 위에 미묘한 감정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걱정’이었다.
하나 그것도 금세 사라졌다.
냉무기는 평소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천하에서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백무량 정도일 거다. 늘 궁금했다. 그놈이 과연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내가 과연 놈을 제압할 수 있을지가 항상 의문이었지.”냉무기는 과거 그놈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공손천기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지만.
‘당시에 그놈과 나의 거리는 다섯 발자국.’그 거리 안으로 들어가면 백무량도 냉무기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만큼 승부를 쉽사리 장담할 수가 없는 상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돌이켜 보면 평생 동안 무공에만 집중해 온 삶이었다.
무공 외에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던 냉무기였다.
그는 스스로의 주름 가득한 손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그 오랜 의문과 정면으로 마주하러 간다. 그러니 너희는 슬퍼하거나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냉무기를 바라보던 냉하영의 눈은 어느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울음을 억지로 참는 것이다.
‘울면 안 돼.’할아버지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거기에는 분명 할아버지 나름의 깊은 각오와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믿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분명히 다시 돌아오실 거라 믿고 있을게요. 하지만 혹여나 돌아오지 못하시더라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안심하고 가셔도 돼요.”냉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천천히 말했다.
“가 보겠다. 건강하거라.”그 말을 끝으로 냉무기의 신형이 봄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냉하영은 냉무기가 사라진 뒤로도 한동안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겨우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교주를 만나러 가겠어요. 계획을 서둘러야 해요.”“예.”“할아버지와 백무량이 싸운다면, 설혹 백무량이 그 승부에서 이겼더라도 무사하지는 못할 겁니다. 저희는 백무량이 제대로 움직이기 전에 정도맹을 와해시켜야 합니다.”시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냉하영이라는 여자에 대해 감탄했다.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한 시점에도 그녀는 냉정했고, 가장 옳고 현명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초류향. 이제 너는 반드시 천하를 제패해야 해.’냉하영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바깥으로 향했다.
초류향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