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75)
제275화 망자곡(2015.08.27.)
사천성에서 호북성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중경이라는 곳이 있다.
그 중경에서도 험난하고 높기로 이름난 옥화산에 천하에 유명한 대협곡이 하나 있었다.
망자곡(亡者谷).
단순히 이름을 풀이하면 죽은 사람들이 사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섬뜩한 이름처럼 망자곡은 지형이 거칠고 험난한 데다가 너무나 깊었기에 햇빛조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협곡이었다.
애초에 길 자체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를 넘으면 무당파가 있는 호북성이 지척이라는 사실이었다.
흑월회에는 천마신교처럼 강대한 무력 단체가 많지 않았다.
딱 세 개가 있을 뿐.
그중 하나인 사룡대는 지금 망자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끝에 올라가 있었다.
휘오오오-
발밑으로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 사이를 강한 바람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군사께서는 천마신교가 완전히 통과할 때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곳을 지키라고 하셨다.”사룡대의 주인.
대주 엽호아는 자신의 민머리를 긁적거리며 수하들을 응시했다.
“재수 없으면 이곳에 무당파가 몰려올 수도 있다고 했으니 각별히 신경을 쓰자.”“……그럼 저희는 특별히 재수 없는 편이니 아무래도 무당파와 마주할 가능성이 높겠군요?”엽호아의 옆.
그곳에는 불만 가득한 얼굴의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사룡대의 부대주.
등사평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자, 부대주.”“후우, 우리는 항상 이런 식이에요. 늘 최악의 상황만 찾아오죠. 꿈도 희망도 없네.”등사평은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우울한 얼굴을 해 보였다.
엽호아는 그런 등사평의 등을 두드려 주며 달래듯이 말했다.
“이번 일만 잘되면 그래도 당분간 큰일은 없을 거야.”“제발 그래야죠.”등사평이 푸념 섞인 얼굴로 하늘을 바라볼 때.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등 부대주! 저길 보게. 벌써 천마신교가 오고 있잖아, 와하하핫!”엽호아는 환한 얼굴로 등사평을 돌아보았다.
먼지구름을 본 등사평의 그늘진 얼굴에도 조금은 화색이 돌았다.
“어떤가? 나름 괜찮지 않나?”“…….”등사평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서 접근하고 있는 먼지구름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 거리면 아무리 빨라도 도착하는 데 대략 반 시진(1시간)은 걸릴 겁니다.”“그래 봐야 고작 반 시진이지.”“거기서 이곳을 통과하는 데 또 반 시진이 걸리겠죠.”“다 합쳐 봐야 한 시진이잖은가?”엽호아의 말에 등사평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대주처럼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한 시진(2시간).
그 정도라면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정찰을 조금 더 늘려야 해.’등사평은 불안했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리는 경우는 살면서 거의 접해 본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마음먹으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반대쪽에서 수하가 부리나케 뛰어오고 있었다.
“대, 대주님!”다급한 음성.
촉박한 발걸음.
“……망할.”등사평은 수하가 뛰어오는 모습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엽호아를 바라보았다.
엽호아 역시 얼굴 가득히 띄웠던 웃음기를 지우고 등사평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대주님…….”“이,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 보자, 부대주.”“들어 보나 마나예요, 이건.”등사평이 어두운 얼굴로 이마를 감싸 쥐고 있을 때.
엽호아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수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왜 그렇게 소란스럽게 뛰어와? 사실 별일도 아니지? 그치?”누가 들어도 아니라고 말하라는 압박이었지만 눈치 없는 수하는 엽호아의 말뜻을 알아먹지 못했다.
“무, 무당파입니다. 대주님.”“……우라질!”등사평이 하늘을 향해 욕지기를 쏟아내자 엽호아는 머쓱한 얼굴을 해 보였다.
“괘, 괜찮아. 그래도 그쪽 역시 많이 보내지는 못했을 거야. 규모는 얼마나 되더냐?”“그, 그것이…….”수하는 잠시 마른침을 삼킨 다음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략 천여 명쯤 되어 보였습니다.”엽호아의 얼굴에 큰 안도가 떠올랐다.
“다행이다. 우리가 세 배나 많잖아? 이건 충분히 해볼 만해.”등사평은 엽호아의 말을 순진하게 믿지 않았다.
그는 항상 상황을 회의적으로 보아 왔고, 그의 예측은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무당파 놈들이 만약에 최정예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면?’등사평은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지금은 사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사룡대는 병력을 정비하며 최대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애썼다.
‘무려 한 시진을 버텨야 한다.’상대는 무당파의 고수들이다.
이쪽의 숫자가 세 배는 된다지만 이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격전이 될 게 분명하다.
‘누가 왔을까?’사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엽호아의 말처럼 저쪽이 정말 별 볼 일 없는 놈들뿐이라면 이건 의외로 쉬운 싸움이 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등사평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무당파의 고수들이 몰려오고 있는 쪽을 응시하다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망했다.’무당칠성.
두 명이 죽고 지금은 비록 다섯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정면에서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지 않은가?
저들이야말로 무당파의 간판 고수였다.
‘젠장, 반대쪽 절벽은 어떻지?’반대쪽 절벽.
그곳을 서둘러 응시하던 등사평은 다시 한 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반대쪽 역시 상황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쪽도 뭔가 분주해 보였고, 곧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냉하영이 급하게 짜 놓은 흑월회의 대비책.
그것이 과연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가 진정한 승부였다.
* * *
가장 정면에서 말을 몰고 가던 초류향이 문득 위를 바라보았다.
거리는 멀었지만 그의 초인적인 시선에는 보였다.
저 멀리 있는 협곡의 절벽 위.
그곳에서 맞부딪치기 직전인 두 개의 세력이.
‘왔군.’갑작스럽게 이동 경로를 변경했고, 그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빠르게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맹은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서 움직인 모양이다.
초류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투와 그들의 이동 속도를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계산식들이 뒤섞이다가 결론이 나왔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초류향은 무의식적으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냉하영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녀도 분명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을 터.
과연 그녀도 낭패한 얼굴이었다.
초류향의 시선을 읽었음일까?
말을 타고 질주하는 와중에 냉하영이 괴로운 얼굴로 전음을 날렸다.
[미안해…….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악의 경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냉하영은 현재 동원할 수 있는 흑월회의 모든 전력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그리고 그 병력으로 최고의 위치를 선점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미지수였다.
적들이 이번 움직임에 대비해 어느 정도의 병력을 동원했을지 그녀조차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관중달이 이 협곡을 차지하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병력을 움직였을까?’이게 승부의 관건이었다.
상관중달이 처음부터 천마신교가 이곳을 통과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였다면 이 싸움은 애초에 성립할 수가 없었다.
거리가 가까운 정도맹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초류향은 냉하영의 얼굴을 보며 희미하게 웃어 주었다.
그녀는 몰랐다.
초류향이 바란 시간 벌이가 딱 이 정도였다는 것을.
‘여론을 조장하고, 정보에 혼란을 준 것만으로 본 교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완벽하게 숨기긴 어렵지.’상관중달은 분명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도 천마신교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있었을 테니까.
여기서는 가장 확실한 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일단 속도를 높인다.’위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위쪽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더더욱 속도를 높여서 협곡을 지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초류향이 앞에서 지시하자 천마신교의 이동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하나 그 이상은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다.
‘이게 한계.’타고 있는 말들이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그만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는 뜻이다.
초류향은 다시 한 번 힐긋 협곡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옆에 있던 우 호법과, 주 호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최악의 경우 위쪽에서 공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맡겨만 주시지요, 교주님.”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바위 덩어리 같은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어마어마한 흉기였다.
지금 이동하고 있는 천마신교의 정예가 그런 것에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낙하하는 바위가 많으면 그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초류향은 말의 속도를 조절하여 냉하영의 바로 옆에 붙었다.
그리고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자.”“응? 뭔데.”“왼쪽과 오른쪽, 어느 쪽에 병력을 집중했지?”냉하영은 초류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냉하영은 초류향의 미소를 보다가 재빠르게 오른쪽을 눈짓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흑월회의 무력 집단은 총 세 개야. 그들 중에 두 곳은 오른쪽으로 몰았고 왼쪽에는 사룡대, 하나밖에 보내지 못했어.”“좋아. 그거면 충분해. 군사는 할 일을 다한 거야.”초류향은 냉하영의 얼굴을 바라보다 절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없어지면 이곳은 네가 지휘를 해 줘. 상황 판단은 너에게 맡길게.”“저길 정말 올라갈 수 있겠어?”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끝이었다.
파악-!
초류향이 말 등을 세게 박차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절벽으로 쏘아져 갔던 것이다.
“느, 능공천상제!”아래에서 지켜보던 주 호법과 우 호법이 경악에 물든 얼굴을 할 때.
초류향은 허공에 떠 있는 와중에도 쑥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해 주시는군.’초류향에게도 아직 능공천상제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물론 잠깐 정도는 허공에 떠서 이동할 수 있었다.
심지어 허공답보(虛空踏步, 허공을 계단처럼 걸어 올라가는 무공)도 연출할 수 있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막대한 내력을 방출하기만 한다면 가능한 것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내력을 쏟아부어도 서서히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나에게 완벽한 능공천상제는 불가능하지만…….’냉무기가 사용했던 것처럼 장기간 허공에 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흉내 내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초류향은 잠깐 동안 허공에 떠서 날아가다가 서서히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아주 미미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이것은 한계가 찾아왔다는 의미였다.
‘여기까지군.’초류향은 가만히 절벽을 바라보았다.
아직 거리는 대략 삼십여 장(백 미터) 정도 남아 있는 상태였다.
‘충분하다.’초류향은 추락하는 와중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빈 허공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꽉 움켜쥐고 바깥으로 끌어 내렸다.
그러자 무당파의 고수 하나가 절벽 끝에서 밀려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하나.’초류향이 무당파의 고수 하나를 잡아 끌어내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허공을 날아서 오는 초류향의 모습에 무당파 고수들의 얼굴에 공포가 떠오를 때쯤.
탁-
초류향이 절벽 끝에 발을 내디뎠다.
어딘가를 응시하던 초류향의 입가에 차츰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