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77)
제277화 오리(2015.09.03.)
운휘는 핏물에 절어 있는 초류향에게 다가갔다.
협곡 위쪽.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모습.
“주군, 일단 이것으로…….”초류향은 운휘가 건네는 수건을 받아서 대충 얼굴을 닦아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냉하영이 있었다.
“이것으로 시간을 벌었겠지?”냉하영은 초류향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이걸로 이제 상황 역전의 가능성이 열린 거야.”“다행이군.”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다.’천하를 목표로 했을 때 이미 각오했던 일이긴 하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각오를 했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고 나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잠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상념을 떨쳐 내며 초류향은 말 위에 올라탔다.
“가자.”자신을 기다리느라 지체된 시간도 아까웠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정도맹에 도착하고 싶었다.
그들을 정리해야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갈 것 같았던 것이다.
* * *
쾅-!
상관중달.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평소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망자곡이 뚫렸다는 정보.
그것은 그가 짜 놓은 계획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무당칠성도 흑월회를 막지 못했다는 건가?”상관중달은 냉하영의 공작에 속지 않았다.
흑월회의 움직임을 귀신같이 내다보고 그에 걸맞은 안배를 한 것이다.
한데 그것이 실패하다니…….
“……능공천상제로 교주가 직접 협곡 위에 올라섰다고 합니다. 그 한 명에게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니…….”“웃기는 소리! 그는 아직 능공천상제를 펼칠 수 있을 만큼의 경지가 아니야. 분명 어설픈 허공답보로 능공천상제를 흉내 낸 것일 터.”“하나…… 그를 직접 보고 살아남은 무당칠성이 그렇게 증언했습니다.”상관중달은 얼굴을 찡그렸다.
무당칠성이 그렇게 말했다면 다른 자들도 그것을 능공천상제라고 생각할 터.
‘겁을 주는 거군……. 영악한 놈.’분명 겁을 집어먹을 만했다.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전설상의 무공을 직접 본 셈이니까.
천하에 소문이 돌 거고, 그것은 곧 초류향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바뀔 것이다.
드륵-
의자를 밀어내며 상관중달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에게 보고하고 있던 수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급하게 다녀올 곳이 있다.”“혹시 어디로 가시는지 속하가 알 수 있겠습니까?”“얼마 전에 잡아 놓은 오리가 있는 곳으로 간다. 밥을 줄 시간이거든. 혹시 검황께서 나를 찾으시면 그리 갔다 일러라.”오리에게 밥을 줄 시간이다?
상관중달의 부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군사님.”“다녀오마.”상관중달은 곧장 바깥으로 이동했다.
정도맹을 벗어나 마차를 타고 한나절을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바로 커다란 장원 지하에 뚫려 있는 미로와 같은 거대한 동굴이었다.
그곳에 ‘오리’가 있었다.
“어때? 지낼 만한가?”차르륵-
쇠사슬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고개를 들었다.
죽어라 얻어터진 얼굴.
벌거벗겨진 전신에는 피멍 자국이 가득했다.
“……너희들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물론 무사하지. 흑월회주님.”흑월회주 냉파천.
냉무기의 친아들이다.
그는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로 상관중달을 쏘아보았다.
“아버지가 알고도 너를 가만 내버려둘 것 같으냐?”“가만 안 두시겠지. 애초에 그걸 기대하고 널 잡아온 거거든.”상관중달은 냉파천이 잘 보이는 자리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으며 말했다.
“솔직하게 물어보마. 너랑 놀아 줄 시간이 없으니 묻는 말에 빨리 대답을 해 줘야겠다.”“……미친놈.”냉파천이 핏물이 고인 입을 열어 침을 뱉으며 이죽거렸다.
하나 상관중달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질문을 했다.
“네가 인질로 잡혀 있으면 정말로 흑월야황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나?”“…….”냉파천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상관중달이 한숨을 내쉬며 앞에 있는 인두를 집어 들었다.
“내가 너와 놀아 줄 시간이 없다고 했을 텐데?”치이이익-!
“크, 크아악!”“시간 끌지 말고 빨리빨리 대답해. 오늘은 무척 바쁘니까.”“크, 흐흐…….”냉파천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이놈들의 목표가 자신이나 흑월회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맨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황당했던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미친 소리를 하는군.’처음에는 그런 말을 했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절대로 아버지가 이곳에 오셔서는 안 된다.’정도맹은 완벽한 함정을 파 놓고 냉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여러 함정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태극검황 백무량이었지만, 그 외에도 하나하나 위험하지 않은 게 없었다.
“시간 끌지 마라. 어차피 너를 살려 보낼 생각은 없으니까.”냉파천은 억지로 미소 지으며 상관중달을 쏘아보았다.
그 웃음에서 광기가 느껴지자 상관중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흑월회가 갑자기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 말은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인데…… 그게 아무래도 냉무기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움직일 이유가 없지.”“…….”“만약 놈들이 검황 어르신과 야황이 목숨을 걸고 싸운 이후,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도 이해가 되지.”상관중달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냉파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사실 야황과 검황 어르신의 승부가 기대되는 사람이긴 하다. 솔직히 너도 그렇지 않나?”“…….”냉파천은 입술 끝을 씰룩거렸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상관중달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지금 오해하고 있는 게 있는데, 나는 사실 야황과 검황, 둘의 승부에 방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둘 모두 그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상관중달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냉파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만약 야황이 온다면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는 산증인이 될 거야.”상관중달이 들뜬 얼굴로 속삭이듯이 중얼거리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냉파천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상관중달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퉤-
어지간한 무인이었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었겠지만 상관중달은 무인이 아니었다.
침을 고스란히 얼굴에 맞은 상관중달은 침착한 눈으로 냉파천을 바라보았다.
“네 이런 무모한 태도가 서로 간의 관계 발전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나?”“미친 새끼……. 분명히 말해 주지만 우리 아버지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다. 그분은 한 번도 가정을 돌보신 적이 없었다.”“그래? 아주 훌륭하신 분이셨군.”상관중달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내며 침착하게 다른 인두를 집어 들었다.
치이익-!
“크아아악!”손에 든 인두를 냉파천의 복부에 가져다 대며 상관중달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부디 그 생각이 틀리길 빌어야 할 거다, 흑월회주. 만약 야황이 오지 않는다면 너는 정말 지옥을 보게 될 거거든.”상관중달은 살짝 짜증 섞인 얼굴로 냉파천을 한동안 괴롭히다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멈칫했다.
“재미는 좀 보았나?”백무량.
그가 동굴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상관중달은 최대한 공손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놈의 태도로 보아 냉무기는 이곳에 올 것 같습니다.”“그래? 그건 잘되었군.”백무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상관중달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망자곡이 뚫렸습니다.”“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온 걸세.”“놈들이 이렇게 서두른다는 것 역시 야황이 이곳으로 온다는 방증입니다.”“알고 있네.”상관중달은 평소와 다름없는 백무량의 태도에 살짝 초조해졌다.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물론이지. 놈은 이곳에서 내 손에 죽네. 적어도 검으로는 천하에 나를 이길 사람이 없지.”백무량의 자신감을 보면서도 상관중달은 불안했다.
본래라면 그도 진심으로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순수한 무인들의 싸움이 보고 싶은 건 마찬가지니까.
한데 천마신교가 저렇게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오는 것을 보니 마음속에 한 가닥 불안함이 생겼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백무량 모르게 작은 장치를 하나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
상관중달은 백무량을 향해 공손히 읍을 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의 진출에 대한 대책을 세우러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러시게나.”상관중달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백무량은 입을 열었다.
“조만간 어떻게든 결말이 나겠군.”상관중달은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지만 백무량은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나 그것이 냉무기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임을 확신했다.
그게 차후 백무량을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드는 첫 번째 실수였다.
* * *
주호유는 마차 문을 열고 나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웬 토끼 한 마리가 거만한 자세로 마차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괜찮으십니까?”“누구……세요?”공손아리는 갑작스럽게 문을 연 낯선 사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주호유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주호유입니다.”“……?”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공손아리가 그런 의문을 담아 멀뚱히 바라보자 주호유는 아차 싶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교주님의 지인입니다. 교주님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 그걸 갚으려고 왔습니다.”“아…….”교주 초류향.
그와 아는 사이라는 말을 듣자 공손아리는 씁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런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주호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일단…… 위험에 처해 있다는 말에 급히 달려온 건데, 소군주님은 안전해 보이시네요?”“네. 저는 안전해요.”주호유는 순간 아쉬운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죠?”“네.”“제가 안전한 곳까지 호위를 해 드려도 될까요?”공손아리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전하려 했다.
그때.
공손아리에게만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그럼요.”주호유는 사람 좋은 웃음을 그리며 마차 안에 냉큼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응? 어르신은 왜 안 타십니까?”“……나는 마부석에 타겠네.”“예? 왜요?”척계광.
그는 마차 안에 있는 토끼를 괴물 보듯이 바라보며 어색하게 말했다.
“난 아무래도 바깥이 편할 듯하네만……. 자네는 그곳이 좋다면 타고 가게. 말리진 않겠네.”막수는 히죽 웃었다.
저놈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다.
척계광은 막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마부석 위에 올라타며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여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 괴물의 작품이겠군.’공손아리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대로 돌아갈 생각에 크게 안도하던 척계광이었다.
한데 주호유가 오지랖 넓게 괜한 호의를 베풀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척계광은 짐짓 모르는 척했다. 평범한 토끼인 양 행세하는 저 괴물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천마신교는 저런 괴물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건가…….’새삼스럽게 천마신교와 부딪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척계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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